산악인의 발자취

-* [오은선 특집ㅣ생방송] 8,091m 고봉 정상에서 *-

paxlee 2010. 6. 23. 09:51

 

        [오은선 특집ㅣ생방송] 8,091m 고봉 정상에서 히말라야를 내려다보다

 
KBS방송단,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고봉 등정 HD 생방송 성공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 못지않게 감동을 주었던 게 KBS방송단의 생방송이었다. 지구상 최고 오지 히말라야. 그것도 해발 4,000~5,000m 높이의 베이스캠프가 아닌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을 힘겹게 오르는 여성 산악인 오은선 대장의 등반 모습뿐 아니라 설연(雪煙)이 휘날리는 히말라야 설산의 웅대함과 험난함을 안방에 앉아 고화질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 1 베이스캠프에 구축된 방송센터에서 방송단원과 블랙야크 임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2 방송전진기지인 C1. 정상으로 향하는 오은선 대장의 모습을 잡기 위해 방송카메라에는 2,200mm 초망원렌즈가 부착돼 있다. 3 KBS방송센터. 3.5톤 무게의 방송장비가 설치돼 있다.

폭풍설 뒤집어쓴 모습 셀카로 촬영해 방영

KBS방송단은 이번 생방송을 위해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해왔으나 현지에서는 드라마 같은 극적인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안나푸르나 HD(High Definition·고화질) 생방송이 결정되기 전부터 히말라야 오지에서 방송장비가 견딜 수 있나 확인하고, 카메라 등 주요 장비에 습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미세한 틈새라도 실리콘을 바르는 등 오지에 맞도록 손을 봤다.

몇몇 방송대원은 한국등산학교 동계반에 입교해 겨울산을 경험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23명의 방송단원들에게 출국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거리는 과연 4,200m 높이의 베이스캠프까지 무난히 올라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거종 전 영상제작국장과 정하영 촬영감독 등 4명은 히말라야 고산등반 경험이 있었지만 KBS방송단원 23명 중 19명은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조차 없었다. 평생 지리산 천왕봉 한 번 오른 게 등산 경험의 전부인 단원도 있었다.

예상대로 안나푸르나 남면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흙먼지 속에서 11시간 걸리는 레테(2,480m)에 도착해 이틀간 현지 적응기간을 가진 방송단원들은 4월 1일 레테를 출발해 나흘 뒤인 4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 사이 하루에 1,000m 안팎씩 고도를 높이며, 추락의 위험이 높은 툴루보겐(4,600m)을 넘자니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지난해 가을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첫 도전에 동행했을 때 ‘고소체질’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무난했던 김경수 기자의 경우 툴루보겐을 넘어 닐기리 베이스캠프(4,300m)에 도착하는 날 구토와 두통으로 심한 고통을 겪는 등 여러 명의 단원이 고소증에 시달려야 했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각 분야의 전문가이므로 한 명이라도 컨디션을 잃는 날이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단원들의 건강과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출국 전 철저히 체크하고 카트만두 도착 이후에도 다시 한 차례 점검하기는 했지만 3.5톤에 이르는 방송장비가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운송될 수 있을지도 걱정거리였다. 단 하나의 장비라도 빠지는 일이 생기거나 운송 중 고장이 난다면 생방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형 헬기로 다섯 번이나 운송한 장비와 식량은 거의 10톤에 육박했다. 소규모 방송국이 이전하는 수준의 엄청난 규모였다. 단원들은 장비가 도착하자마자 각자 맡은 촬영·방송장비를 설치하고, 태양광축전판과 발전기에 이어 위성송수신기도 설치했다. 스크린은 자료화면(녹화)용, 카메라 8대가 촬영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나오는 스크린 2대, 그리고 실제 방송용 외에도 그 전 단계에 필요한 스크린을 2대 더 설치했다.

전진중계기지인 C1을 비롯한 카메라 8대를 설치해놓고도 베이스캠프 현장을 담은 첫 그림을 인공위성을 통한 KBS 본사로 보낼 때까지 조마조마했다. 과연 히말라야 오지의 생생한 현장 모습을 고화질로 생방송한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공이었다.


방송단 전원의 가슴이 철렁했던 첫 순간은 4월 4일 베이스캠프(4,200m) 도착 4일 만인 4월 8일 일어났다. C1(5,100m)에 중계를 위한 방송전진기지가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C2(5,600m) 아래에서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났고, 그 후폭풍은 눈 깜짝할 사이에 C1을 덮쳤다.

C1의 방송단원 가운데는 너무 놀라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비백산한 사람도 있었다. BC에 머물고 있던 다른 방송단원들은 상상치도 못했던 눈사태 후폭풍이 덮친 C1과 무전교신이 되지 않자 “모든 게 끝이다”라고 낙담했다. 하지만 곧 사태를 파악한 C1의 단원들은 안전지대로 피하기보다 소중한 장비를 챙기느라 몸을 아끼지 않았다. 김승일 방송기기보전국 부장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소형 카메라로 눈을 뒤집어써 설인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직접 촬영, TV를 통해 방영하기도 했다. 이날 일은 단원들 한 명 한 명이 전문가다운 정신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오은선 대장뿐 아니라 촬영대원 등정에 불안

눈사태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 등정 시도를 위해 22일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하루에 표고 1,400m 올려치고 C2까지 올라선 원정대와 촬영단원들은 이튿날 C3(6,400m)로 향했다. C2~C3는 급경사 세락지대를 이루고 있어 눈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최난 구간. 셰르파 세 명이 앞장섰다. 순조로웠다. 그런데 급경사 설사면 상단부에 접어들어 C3까지 무난히 갈 수 있으려니 마음놓고 있을 때 위쪽 쿨와르에서 커다란 굉음이 나면서 쏟아져내린 눈사태는 어마어마한 눈보라와 함께 그대로 세 사람을 덮쳤다.

C1에서 2,200mm 초망원 렌즈를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홍성준 촬영감독은 너무 놀란 나머지 처절한 목소리로 “안 돼! 안 돼!” 하고 소리쳤다. 후폭풍에 일어난 눈보라가 서서히 걷히자 세 셰르파는 소설 속의 한 장면 같이 설사면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C3를 향해 한 발 한 발 올랐다.

C1에 전진중계기지를 구축하는 날 ‘눈사태 후폭풍 폭격’으로 한 차례 난리를 치른 방송단이 베이스캠프에 설치한 생방송센터 개소식을 가진 것은 4월 10일. 그러나 예년의 봄 날씨와 달리 안나푸르나 일원은 4월 중순까지도 겨울 같은 눈이 내려 원정 자체가 무산되지 않나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런 가운데 4월 22일 제1차 정상공격에 나섰고, 23일 오후 4시경 C3를 향해 무난히 올라설 듯하던 셰르파 세 명 위로 거대한 눈사태가 쏟아져내려 방송단을 다시 한 번 가슴 철렁케 했다. 

출국 전부터 방송단이 가장 걱정한 것은 무엇보다 오은선 대장이 안전하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나 하는 것과 촬영담당자가 정상까지 올라 오은선 대장이 올라오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촬영대원은 정하영 촬영감독과 산악인 나관주(오지로여행사 대표·밀레) 대원. 나관주씨는 이미 8,000m 고봉 7개를 오른 베테랑 산악인이라 누구도 나씨의 등정을 의심치 않았다. 정하영 촬영감독 역시 믿음직스러웠다. 1999년 여름 낭가파르밧을 시작으로 캉첸중가 북면·캉첸중가 남면·K2 원정에 엄홍길 등반대 촬영대원으로 동행했고, 지난해 봄 오은선 대장의 캉첸중가(북면)·낭가파르밧·가셔브룸1봉·안나푸르나 원정에 동행해 늘 마지막 캠프까지 함께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해왔다.

이번은 달랐다. 오은선 대장의 등정 순간을 촬영하려면 정상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오은선 대장의 낭가파르밧 원정 때 마지막 캠프를 출발, 정상 가는 길에 동행했지만 정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 KBS 방송단의 최종 목표는 정상에 오르는 오은선 대장을 촬영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오를 수 없거나 오르지 못하겠다는 사람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억지로 오르라고 강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하영 촬영감독 역시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 HD카메라로 촬영한 고화질의 영상이 송신기(포터블 HD마이크로웨이브)를 통해 C1과 BC를 거치고 인공위성을 통해 한국의 KBS 본사까지 전해질지 의문이었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하기 앞서 새 배터리를 카메라에 끼워넣고, 예비 배터리기 추위에 방전되지 않도록 우모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지만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잘 견뎌낼까 싶었다.

오은선 대장도 편치 않았다. 25일 등정을 목표로 삼은 제1차 공격을 앞두고 “바람이 너무 세다” “지난해에 비해 설사면이 훨씬 가팔라 보인다”는 등 자신감을 잃은 듯한 말을 김경수 기자에게 건네곤 했다. 제2차 공격에서 정상을 3시간여 앞둔 지점에서는 포기할까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하산하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그냥 포기할 수 없게 했던 것이다.

2차 공격에 나선 오은선 대장 일행이 C2에 도착한 모습을 담은 영상은 C1에서 잘 잡혔다. 때문에 등정 사진도 좋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C4를 출발한 지 11시간이 지난 27일 정오경에도 오 대장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정상까지의 거리가 한참 남아 있자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다. 오 대장이 포기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기 때문이었다. C1에 설치해놓은 2,200mm 초망원렌즈에 정상을 향해 오르는 클라이머들(당시 스페인 대원들도 함께 정상을 향했다)이 잡히기는 했지만 누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방송단의 환호성은 나관주 촬영대원이 오은선 대장이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C1의 방송중계기지를 거쳐 베이스캠프에 전달되는 순간 터져나왔고, 그 생생한 장면은 당시 TV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감동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오은선 대장의 등반도 등반이지만 해발 8,000m 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히말라야의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신비로운 풍광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5kg 무게의 휴대용 SD(Standard Digital) 송신기와 약 4kg 무게의 산소통 등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4차례의 방송을 성공적으로 끝낸 나관주 촬영대원 역시 자신의 역할을 200% 이상 해냈지만 아마추어 산악인에 지나지 않는 정하영 촬영감독은 촬영뿐 아니라 등반대를 이끄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주었다.

C4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로 등장하기도 했던 정하영 감독은 7차례의 히말라야 촬영등반 중 처음으로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정상을 향했다.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C1으로 전송하는 6.5kg 무게의 송신기(HD)는 동행한 옹추 셰르파가 짊어져주었으나 1.5kg 안팎의 캠코더 외에도 그는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산소통과 레귤레이터에 물이며 간식, 예비 장갑 등이 담겨 있는 6kg 안팎의 배낭을 지고 있었기에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하영 촬영감독, 오은선 대장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

정 감독은 촬영할 때마다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벗어야 했고, 그로 인해 호흡이 가빠오는 등 고통을 겪어야 했으나 전문등반가 못지않은 속도와 적응력을 보여주며 정상까지 올랐다. 나관주 촬영대원의 촬영을 통해 몇 차례 화면에 나온 정 감독은 오은선 대장보다 컨디션이 나은 듯했고, 정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설사면에서 “물 한 번 마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까?” 하며 오히려 오은선 대장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데 도움이 돼주기도 했다.

오은선 대장이 정상에 서는 순간 그 감동은 정하영 촬영감독이 더 컸던 것 같았다. 정 감독은 “오은선 대장이 드디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며 “만세! 만세!”를 외쳤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정상 등정 생방송은 성공적이었다. 4월 27일 낮 12시30분부터 오후 2시10분까지, 오후 4시10분부터 7시10분까지 두 차례에 걸쳐 KBS 특별생방송 ‘여기는 안나푸르나’를 통해 오은선 대장의 등반 상황을 생생히 전하는 데 성공했다.
▲ 방송을 성공리에 끝내고 베이스캠프에 내려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정하영 촬영감독과 나관주 촬영대원(왼쪽). / 방송단원이 마이크로웨이브 장비를 살피고 있다.

 

[KBS 안나푸르나 등정 생방송의 숨은 주역]


이거종 KBS 전 영상제작국장
“이제 KBS는 세계 어떤 오지에서든 HD 생방송을 해낼 겁니다”


1988년 일본의 NHK가 중국 CCTV·네팔TV와 공동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을 생중계하고, 2008년 중국 CCTV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장면을 생중계한 바는 있지만 8,000m 고봉을 등정하는 전 과정을 HD 생중계한 것은 세계 방송 사상 KBS방송단이 처음이다.

이렇게 성공리에 끝난 ‘세계 최초의 8,000m 고봉 HD 생중계’가 이거종(李巨鍾·58) 전 KBS 영상제작국장의 역작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KBS 내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생중계에 이거종 전 국장은 심혈을 기울여왔다.

“다 끝났다. 다 죽었구나 했어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요.”

▲ 라마제를 지낸 뒤 오은선 대장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이거종 전 영상제작국장(왼쪽).

 

안나푸르나 생방송에 동행한 이거종 전 KBS 영상제작국장은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역시 1996년 9월 엄홍길 대장과 처음 함께한 히말라야의 마나슬루봉 원정에서 ‘두개골이 깨지는 듯한’ 고소증세을 경험하고, 1999년 캉첸중가 북면 등반시 폭풍설이 몰아치고 눈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해발 6,200m 고소에서 22일간이나 머물며 방송을 진두지휘한 바 있지만 후배들이 히말라야 8,000m 정상을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다는 것은 그가 직접 오르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거종 전 국장은 히말라야 생중계에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1999년 여름 낭가파르밧 등반을 시작으로 1999년 가을 캉첸중가 북면 등반, 2000년 캉첸중가 남면 등반, 2000년 K2 등반 등 엄홍길씨의 8,000m 14개 거봉 레이스에 동행했다. 특히 당시 촬영을 주도했던 이거종 국장은 엄홍길씨의 14번째 고봉인 K2를 생방송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99년 캉첸중가 북면 등반 중 눈사태 사고로 기자 1명과 대원 1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로 인해 사측이 꺼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봄 캉첸중가 등반부터 진행된 오은선 대장의 촬영 역시 이거종 전 국장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가을 시즌 안나푸르나 생중계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아쉬워했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주었다. 당시 안나푸르나 녹화중계가 좋은 반응을 나타냈고, 그에 힘을 얻은 이거종 전 국장은 다시 한 번 HD 생방송 계획을 사측에 올린 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좋은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사장의 의지와 맞아떨어져 이번에 HD 생방송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32년3개월의 근무를 끝으로 6월 말 정년을 앞두고 있는 이거종 전 국장은 “아끼는 후배인 정하영 감독이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KBS는 앞으로 세계 어떤 오지에서든 HD 생방송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글 한필석 부장 / 사진 KBS방송단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