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과 고향 이야기
산소옆에 핀 할미꽃 1
산소옆에 핀 할미꽃 2
4월 6일 일요일은 한식(寒食)이다. 한식날에 왜 조상의 묘인 산소를 찾아가는 우리의 전통 풍습은 언제부터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나는 그 이유도 모르면서 4촌 6촌들의 모임인 세영회에서 오늘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간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에 있는 선대 산소를 다녀왔다. 한식에는 왜 찬밥을 먹어야 하는가? 그러나 한식이라고 모두가 이날 찬밥을 먹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세상의 변화에 부딪혀 많이 변화되어 오고 있다. 나를 이 세상에 세워주신 우리의 조상을 숭배하고 찾아가는 것은 우리들의 도리이다.
한식(寒食)은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이다. 옛날에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었다. 4대 명절에는 조상을 추모하고 제사를 올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를 행하는 의무사항이었다. 한식에는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한식의 유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다. 개자추는 배고픈 중이공자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서 요리한 적도 있다.
중이는 마침내 춘추오패중의 하나인 진 문공(晉文公: 재위 .C. 636~628)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모르고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했다. 그의 친구가 개자추의 일을 알려와서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고향의 선산을 찾아가는 행사는 한식과 추석 전에 행하는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날이다. 추석과 설에도 고향을 찾아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고향을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도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고향에 사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고향을 찾는 기회는 현저하게 줄어 든다는 것은 우리들이 경험하는 바이다.
형제중에 누군가가 그곳을 지키고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의 추억과 그리움으로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고향을 떠나고 선대 산소만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와 있는 형제자매가 만나 고향을 찾아가는 행사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4촌과 6촌 형제들이 모여 세영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1년에 한식과 벌초행사를 하기위해 2번 고향을 찾아간다. 할아버지 3형제분의 손자들의 모임인 세영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모두가 흩어져 살고 있어 이때가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모임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아들 딸들도 이 모임에 참가 시키자고 하였으나, 요즘 자식들은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려워 한다. 자식들의 고향이 아니므로 그곳에 애틋한 정이 없고, 아무런 추억도 없는 그곳에 어릴때 잠시 뵙기는 하였으나, 함께 한 집에 살아보지 못한 그들이기에 그들이 조상을 이해하고 숭배해야하는 인간의 도리를 깨닭기에는 그들이 배운 전통문화 보다는 개인주의 의식이 강한 현실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도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고향은 그곳에서 나서 자란 추억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추억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고향 친구는 어쩌면 형제자매 보다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며, 만남의 정의 여분이 존재하는 관계이다. 서울에 살고 있을 때는 서울 말을 쓰다가도 고향친구를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고향의 말투가 튀어 나오는 것은 고향의 뿌리가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산과 뒷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이름이 정겨웁기만 고향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추억을 공유하개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어릴때 고향에서 알고 느끼고 산 세상의 넓이가 우리 마을과 5일장이 서는 그곳에 초등학교가 있는 공간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지내던 그 때의 생각이 가끔 뇌리를 울린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세상 곳곳의 지구촌의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너무 많은 변화에는 따라가지 못해 어리둥절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선진국의 문화를 너무 많이 갑자기 받아들이다 보니 우리의 전통문화와 대치되는 과정에 혼동과 혼란 스러운 과정을 삭이기보다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것을 잊어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친척간의 간격이 멀어져 가고, 전통문화가 소외되어가는 과정에 버릴것과 잊지 말아야 할것을 정리하여 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 번쯤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선비문화인 호적이 없어지고, 앞으로 자기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족보문화도 갈수록 퇴화해 가지 않을까 우려해 본다. 서양문화인 개인주의가 팽배해 가면서 가정을 파괴하는 이혼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의 가족문화인 가정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은 우리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이므로 가정은 어떤 이유에서도 튼튼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깊히 성찰해 보아야 한다.
- 참고:http://www.youtube.com/watch?v=XZbNWabTz-k&feature=player_embedded 여의도 벗꽃과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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