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사랑이란 무엇인가?

paxlee 2017. 1. 15. 16:44

 

 

사랑이란 무엇인가? [1]


우리는 그져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해! 내가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사랑하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 서로의 좋은 감정을 쌓아가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을 향한 마음이 움

직이는 곳으로 마음과 몸이 따라가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믿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사랑에 대한

간접 경험을 접하면서 우리가 읽은 책의 내용처럼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면서 막연히 책의 내용을 흉

내 내면서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은 의문을 가져본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명쾌하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지 못했다.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물었드니 스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보리밭으로 데

리고 가서 절대 뒤돌아 갈 수없고 앞으로만 걸어가면서 보리밭에서 가장 크고 실한 이삭 하나를 가져오라고 얘

기한다. 플라톤이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자 "그게 바로 사랑이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대답하는데 정말 사랑이

얼마나 선택하기 어려운 일인지를 잘 비유한 사례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뜻한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흔히 일컬어 왔다. 사랑 하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간에 사랑,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 이렇게 많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은 겉모습인 외모나 스타일을 긍정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태도와 성격을 긍정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과 가까움

을 말하고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로서 사랑을 이어나가는 힘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에로스의 신화나

소크라테스가 말한 사랑 등 고대의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과정

에서 미술작품이나 소설 작품들을 인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 껍데기가 아닌 안 쪽의 마음과

상처들을 보면서 자아를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학에서도 분석해 보려 했고,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도 사랑을 해석해

보려 했었다. 하지만 사랑이란 건 애초에 과학과는 먼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렵고 많은 개념이 있어서 이

해하기 힘든 사랑을 인간은 확실하게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

다. 사랑에 대한 깊고 넓은 탐색과 사유 그리고 신화와 전설부터 동서고금의 사랑얘기까지 그리고 영화와 소설

까지 동원하고 심리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연구까지 두루 인용하면서 사랑에 대해 추적 해부하고 사랑이

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과 같이 사랑에 대한 결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나누고 사

랑은 받아들이는 사랑문화와 인식은 동서고금의 역사처럼 사회문화가 바뀌듯이 사랑에 대한 사회인식과 사람

들의 생각이 바뀌어 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우정, 동지애와 전우애,

그리고 대표적인 남여간의 사랑 심지어 동성애까지, 그 모든 것들이 역사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따라 가치관과

사회변화와 더불어 조금씩 변해온 것을 감안하면 세상에 절대적인 무엇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2]

 

성문화가 개방되고 섹스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면서 사랑에 대한 관념 인식도 변화하는 시대다. SNS와 카톡같

은 소통채널이 대두되고 만남의 기회가 다양하게 열리고 변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 처럼 급변하는 한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유목문화같은 디지털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는 썸문화처럼 어찌보면 소극적이고 비겁

한 사랑방식에 갇혀 있기도 하다. 그런 시대흐름 한가운데서 한편에서 문란하고 방종에 가까운 유희를 즐기기

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런 세상과 담을 쌓고 한숨만 지으며 시대와의 불화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자본에 휘둘리고 이용당하면서 상품화되기도 하고 유희로서의 사랑에 탐닉하기도

하고 방종과 일탈이 암묵적이면서도 사회압력으로 폭넓게 용인되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랑과 유희

방종 일탈은 점점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게 아닐런지, 그래서 사랑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로맨스와 에로시티즘이 자본과 결탁하고 상품화 하면서 한편에서는 소외감과 불안을 증폭하기도 한다. 진정

한 사랑과 현신적이 부부에 동지적 부부관계를 보여주는 이따금의 영화와 소설들은 이제 신화와 전설처럼 남

고 썸같은 편하고 즉흥적인 인스탄트 사랑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듯도 하다. 어쩌면 스피

드한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법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할 말을 잃듯이 여성상위 시대니 모계사회의 도래니 하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네트워크 세

상 앞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지만 정리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사랑은 책임과 의무, 유희와

 낭만 사이에서 여전히 방향을 잃고 갈 길을 모르는 영혼을 짓누르는 감정이고 관념일 뿐이다.  Love is feeling,

Love is touch 누군가에게 이 말은 희열이고 낭만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이말은 슬픔이고 고통일 것이다. 라는

말이 온전히 이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쌓인 경험 덕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진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사랑에 대한 정의는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사랑의 집이다. 사랑의 집은 두 사람이 나눈 기억과 체험

의 편린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의 소중함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경험들은 사랑을 만들

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라고 해서 항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

의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사랑의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프롬은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며, 능력

의 문제이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

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므로 주는 능력의 문제가 된다.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통해서 인간 내면의 다른 자아를 발견하면서 서로

 공유하게 되면서 더 멋진 사랑을 통해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최고의 삶이라 생각한다. 쉬울것 같아도

결코 쉽지 않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랑법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습득 할 수 있고, 진실로 사랑을 통해서 시

대와 사람을 제대로 읽고, 중요한 관계를 확실하게 읽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으로 직접 이 좋은 기회에 사랑에

대한 숭고함과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사랑의 본질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의 종류와 조

건은 이 세상의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머물고 만다.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

가가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