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10] *-

paxlee 2007. 6. 16. 23:32

 

                    노익장들 세계 최고봉에서 일냈다!

 

 ▲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 제2캠프를 향해 설원을 걷고 있는 실버원정대원들. 왼쪽 옆의 검은 암벽면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오른쪽 저 멀리 움푹한 곳이 제4캠프지인 사우스콜이다.

 

“와!세계 최고봉 정상이다.”

 

노익장들이 세계 최고봉에서 일을 냈다. 한국산악회(회장 최홍건)와 조선일보사(사장 방상훈)가 공동주최한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의 김성봉(66·한국산악회 부회장) 대장과 이장우(63·대구 거목산악회) 대원이 5월18일 오전 7시13분(한국시간 오전 10시33분)과 9시45분 지구의 용마루 에베레스트 정상(8,848m)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에베레스트에 오르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해발 7,900m의 제4캠프(사우스콜)를 17일 오후 7시경 출발, 밤을 새며 걷는 12~16시간에 걸친 고투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까지는 표고차 900여m. 거의 절벽과 같은 길이어서 로프를 붙잡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길의 연속이다.

 

상업등반대가 활성화되면서 아마추어 산악인들의 세계 최고봉 등정은 많아졌으나 60대 이상의 단일 원정대가 결성되고 또한 등정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최고령 등정자는 지난해 70세에 성공한 일본인 아라야마 다키오씨다.

 

‘실버 에너지’ 바닥까지 태우며 올라

 

두 대원의 등정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김성봉 대장과 이장우, 조광현(67·해군 UDT/SEAL전우회 명예회장) 대원은 17일 오후 마지막 제4캠프에 도착했다. 그러나 ‘12시간 넘게 걸리는 등정길에 나서기에는 너무 지쳤다’는 고소등반 전문가 유학재(46) 지원대원의 판단에 따라 등정일을 하루 늦추었다. 또한 제4캠프 도착이 너무 늦어 등정도 어렵지만 하산길 위험이 높아 보이는 조광현 대원은 등정을 포기해야 했다.

 

 ▲ 아이스폴 지대를 오르는 실버원정대원들. 아이스폴지대는 정상으로 향하는 길의 첫 난관이다.

 

대원들의 등반과정이 순조로워지며 ‘너무 속도를 내면 정상사진 촬영을 위해 영하 20℃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베이스캠프의 대원과 스탭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했다. 이제 1시간이면 도착하리라 예상됐던 김 대장은 정상이 다가올수록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면서 점점 시간이 늦춰졌다.

 

출발 직후 김 대장과 1시간 거리를 내내 유지하던 이장우 대원은 정상이 다가올수록 점점 거리가 벌어지더니 정상을 약 30분 남겨놓고는 포기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장우 대원은 ‘실버 에너지’를 바닥까지 남김없이 태우면서 끝까지 정상을 향했다. 15시간30분간에 걸친 인고의 시간이었다.

 

김 대장은 등정 후 컨디션이 비교적 좋았으나 뜻하지 않은 설맹 증세로, 이장우 대원은 하산 중 다리가 풀리는 컨디션 난조로 큰 고생을 겪으며 일단 제4캠프로 하산했다. 두 대원은 19일 제3캠프까지 내려와 하룻밤을 보낸 뒤 20일 베이스캠프로 하산을 마쳤다.

 

 

▲ 한낮의 빙하길은 무덥기조차하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실버원정대원들.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역시 없었다. 실버원정대의 등정은 대원들의 체력과 인내 외에 철저한 대원 훈련과 관리 덕분이랄 수 있다. 원정대는 대원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철저한 회원제로 57년간 유지되어온 한국 최고(最古) 산악회인 한국산악회는 지난해 9월 실버원정대원을 공개 모집, 회원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50여 명의 지원자 중 최종 선발시에는 산행 경력과 무관하게 체력, 훈련 참여도 등 원정대에 도움 되는 지원자들을 우선적으로 뽑았다. 

 

대원 8명 모두 연령대별 체력은 국내 최고 수준에 이르는 대원들이었다. 20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실시한 4박5일간의 하중훈련에서 한 명도 낙오하는 이가 없었고, 전문등반 기술훈련 때에는 전문 산악인들보다 오히려 더욱 열정적이었다. 배낭을 가볍게 하라 해도 오히려 더욱 무겁게 배낭을 메는가 하면, 훈련량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해도 평일에도 훈련을 위해 산에서 살다시피 하는 대원이 많았다.

 

스탭들의 노력도 열정적이었다. 대원 8명 대부분 해외원정다운 원정은 전무한 상태. 때문에 스탭들의 도움 없이는 원정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김종호(52ㆍ고려대산악회) 부단장과 천병태씨(49ㆍ인하대산악회 회장) 등 에베레스트 경험자 외에 유학재씨(46ㆍ한국산악회 등산학교 전문과정장)와 같은 히말라야 원정 다경험자로 이루어진 스탭진들이다. 

 

지난해 11월 에베레스트 부근의 6,000m급봉인 임자체(일명 아일랜드피크) 전지훈련을 통해 고소에 적합한 대원을 선발하고, 베이스캠프 입성 후에도 등정에 가장 적합한 대원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이러한 노력은 막판까지 이루어져 마지막 캠프에서 다른 대원에 비해 두어 시간 늦게 도착한 대원은 정상공격조에서 배제시킨 것이다.

 

 ▲ 아이스폴지대를 통과 중인 실버원정대원들. 두 달간의 등반중 빙하가 움직이며 수시로

루트가 바뀌었다

 

대원들의 현지적응 과정도 눈물겨웠다. 베이스캠프의 높이만 해도 해발 5,400m.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올라서자마자 쓰러지거나 구토할 만큼 높은 곳이다. 그 베이스캠프에서 첫 번째 맞이해야 하는 구간이 아이스폴(ice fall)로서, 얼음폭포가 수없이 많이 겹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많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와 빙탑은 수시로 모양이 변하고 무너져 히말라야 고산족인 셰르파들조차 겁을 내는 구간이다. 유학재 지원대원은 그 구간의 돌파는 물론 마지막 캠프까지 동행하며 대원들은 안심시켜 주는가 하면 눈을 녹여 물을 끓여 마시게 하는 등 고산등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 등정 전, 제4캠프지에 모여선 대원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몹시 가빠지는 고소다.

 

대원들은 또한 불필요한 체력낭비를 철저히 피했다. 제3캠프(7,300m) 위 제네바스퍼(7,500m)까지 고소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정설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실버들의 체력에 맞게 6,800m에서 고소적응을 마치고 대신 베이스캠프보다 1,000m 아래 마을인 딩보체에서 두 차례에 걸쳐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등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편안한 휴식보다는 역시 노력과 인내였다. 정상에 올라선 두 실버 산악인은 마지막 한 발 한 발을 뗄 때마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나 포기하지 않았다. 15시간30분이란 산행은 평범한 산에서도 해내기 힘든 고행의 과정이다. 그 산행을 해발 8,848m 높이의 에베레스트에서 해낸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 심어주고자”

 

한국 산악인의 에베레스트 초등 30주년을 기념해 이번 행사를 추진한 한국산악회 최홍건 회장은 “늘어나는 실버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젊은이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심어주고자 기획한 이번 원정이 성공리에 끝나게 돼 기쁘다”며, “우리도 이제 산악강국으로서 등반에 도움을 주는 셰르파를 위한다는 뜻에서 원정대가 철수할 때 힐라리스쿨 2개교에 컴퓨터 교실 2개를 지어주고 컴퓨터 25대, 프린터 4대를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3월24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 열흘간의 캐러밴을 거쳐 4월7일 베이스캠프(5,300m)에 도착한 원정대는 60세에서 75세의 대원 8명 모두 고소증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구릿빛 얼굴로 건강한 상태였다.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 대원과 현지인들이 사용할 텐트 25동을 설치한 다음 4월11일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눈보라 속에서 라마제를 지냈다. 라마제란 등반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사안녕을 위해 지내는 의식이다.

 

               ▲ 서로 로프를 연결한 상태로 크레바스를 조심스레 건너고 있다.

 

원정대는 4월12일부터 아이스폴 등반을 시작했다. 표고차는 600m에 불과하지만 사다리를 걸 수 없을 만큼 폭이 넓은 크레바스와 높은 빙탑을 우회하노라면 제1캠프(6,000m)까지 실제 등반거리는 2km가 넘는다. 지난밤에도 아이스폴이 무너져 셰르파들로 구성된 아이스폴 원정대가 보수했다. 무너진 빙탑을 우회해 새로운 길을 내고, 크레바스에 걸쳐놓은 쇠사다리가 빙하의 움직임으로 주저앉으면 새로운 지점으로 다리를 옮겼다.

 

4월15일 유학재 지원대원의 인솔 하에 김성봉 대장, 이남진, 조광현, 이장우 대원, 이재승 의료담당 대원, 촬영담당 셰르파, 기자로 이루어진 1조는 새벽 6시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1조를 인솔하는 유학재 지원대원의 목은 출발 직후부터 쇳소리가 났다.

 

실버대원들은 체력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으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대다수가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폭 10m가 넘는 크레바스에 걸쳐진 사다리를 건널 때는 앞사람이나 뒷사람이 줄을 잡아당겨주어야 균형을 잃지 않고 건널 수 있고, 그런 협동이 이루어지는 사이 대원들은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아직도 여기밖에 못 오면 언제 제1캠프까지 가시려고 해요.”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남서벽 원정대의 박영석 대장은 정오경 유학재 대원을 만나자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10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한국도로공사 원정대원들이 또다시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실버대원들은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구만” 하면서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빙탑지대에 걸친 사다리 통과하며 팀웍 다져

 

노익장들의 인내심은 역시 대단했다. 1조 김성봉 대장과 조광현, 이장우 대원, 그리고 의료담당 대원이지만 같은 실버 세대인 이재승 박사(63·연대 의대 교수)는 막판에 수없이 이어지는 눈언덕을 넘고 넘어 제1캠프에 오후 3시경 무사히 안착해 삼계탕 2봉을 코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맛있게 들었다.

 

산악계에서 바지런하기로 소문난 유학재 지원대원은 식사 후 텐트 뒤편으로 가서 눈보라 속에서 열심히 눈구덩이를 파고 주변을 눈벽돌을 빙 둘러쌓아 화장실을 만들었다. 유학재 대원은 실버대원들을 도와주는 위치지만 25년이 넘는 산행경력에 미국 데날리 국립공원 내의 키차트나스파이어와 파키스탄의 가셔브룸4봉에 신 루트를 낸 바 있고, 얼마 전에는 에베레스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콩데라는 봉도 오른 바 있는 베테랑 클라이머다.

 

5월16일은 고소적응을 위해 제2캠프(6,500m)를 향해 갈 수 있는 만큼 가보기로 하고 새벽 6시 제1캠프를 떠났다. 그런데 시작부터 만만찮았다. 눈 언덕 사이의 골로 뚝 떨어졌다 다시 눈언덕으로 올라설 때는 절벽 같은 설벽을 올려쳐야 했고, 눈언덕에 올라서면 갈짓자로 이어지는 눈길에 혀가 빠질 정도였다. 춥기는 왜 그리 추운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손가락이 아려왔다.

 

                   ▲ 제2캠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중인 대원들.

 

오전 8시30분경 크레바스 지대를 벗어나자 등반로가 이어지는 로체 서벽까지 깨끗이 뻗은 대설원이 펼쳐졌다. 여기서 1시간 반 더 가면 제2캠프다. 하지만 유학재 대원은 하산길을 생각해 이 지점에서 뒤돌아서기로 결정했다. 1시간20분만에 제1캠프로 내려섰지만 벌써 지친 상태였다. 이 날 올라올 2조를 생각해 어지럽힌 텐트 안을 정리하고 매트리스와 침낭을 꺼내 말리고 그 사이 ‘아점(아침 겸 점심)’을 해먹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아이스폴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새벽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15kg 안팎의 짐을 제2캠프에 올려놓고 내려오는 셰르파들은 굼벵이처럼 걸어가는 대원들을 만나면 쏜살같이 추월해 버렸다. 몇 차례 그런 상황을 겪자 셰르파들이 가까이 따라붙으면 대원들은 아예 양보해 주었다.

 

 ▲ 아이스폴지대를 통과 중인 실버원정대원들. 두 달간의

등반중 빙하가 움직이며 수시로 루트가 바뀌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제1캠프로 이어지는 아이스폴이 거대한 얼음이 빚은 화려한 불꽃 같은 한마당이라면, 제1캠프에서 제2캠프로 이어지는 빙하구간은 웅장하면서도 신비감 넘치는 구간이다. 에베레스트에서 제2캠프는 전진베이스캠프(ABC)다. 대원들이 해발 6,500m까지 고소적응을 마치면 등반에 필요한 대부분의 장비와 식량을 ABC로 옮기고, 이곳에서 지내면서 마지막 고소적응에 들어간다.

대개 제3캠프에 올라 하룻밤 자는 것으로 고소적응을 마친 다음 베이스캠프로 하산, 정상공격 직전까지 체력관리와 컨디션 조절에 들어간다. 셰르파들은 제2캠프~제3캠프를 등정 가능을 위한 첫 시험대로 꼽는다. 해발 6,900m까지는 완경사 빙하지대를 따르지만 이후 제3캠프(7,300m)로 이어지는 로체 서벽 구간은 경사 70도가 넘는 데다 청빙구간이 많아 고정로프가 깔려 있더라도 체력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제2~제3캠프 사이에서 낙빙으로 셰르파 1명 사망

 

 ▲ [왼쪽부터] 한국 최고령 등정을 기록한 김성봉대장. 팀닥터로 대원들 못지 않은 고소 적응능력을 보인 이재승박사. 대원들 뒷바라지를 책임졌던 천병태 지원대원. 63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장우대원. 사우스콜까지 대원들과 동행해 오른 유학재 지원대원.

 

대원들에게는 요일 개념이 없다. 다른 원정대는 이틀간 등반하고 하루 쉬는 스케줄로 움직이지만, 실버팀은 이틀 산행하고 2~3일 쉬는 스케줄로 등반했다. 의료담당대원인 이재승 박사는 대원들보다 오히려 더욱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이 박사는 100회 마라톤 모임 멤버다. 현재 42.195km 풀코스를 47회나 완주했다고 한다. 그렇게 평소 건강을 관리해온 덕분인지 이번 원정에서 오히려 대원을 능가할 만큼 뛰어난 체력과 고소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제3캠프는 7,300m대 얼음사면이지만 워낙 원정대가 많다보니 좋은 자리를 잡는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4캠프로 향하는 루트 상에 위치한 캠프사이트가 가장 좋고, 그 사이트를 기준으로 아래쪽으로 길게 캠프지가 형성된다. 아래쪽에 위치한 캠프에서 제4캠프로 가려면 등반로가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제4캠프 도착시간이 늦어지면서 이튿날 출발을 앞두고 피로를 풀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상업등반대의 경우 미리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서둘러 셰르파들을 올려보내 캠프사이트를 확보한다.

 

4월25일 에베레스트에서 올 시즌 최초의 인명사고가 일어났다. 제2캠프에서 제3캠프로 향하던 셰르파가 낙빙에 맞아 사망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역은 해발 6800m에서 제3캠프(7300m)에 이르는 청빙과 설벽 혼합구간으로 평균 경사 70도에 이르러 등강기를 사용해야만 등반이 가능하다. 한국 등반대 4개팀 중 실버팀, 한국도로공사팀, 허영호씨 등 3개팀 역시 이 루트로 등반하게 되어 있어 대원들을 긴장케 했다.

 

김종호 부단장은 올해 30여팀 300명 안팎의 산악인이 남동릉 루트에 몰려 등정일에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100명이 하루에 몰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제3캠프는 혼잡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무전기나 장비를 떨어뜨리는 사고도 예상할 수 있다며 걱정스러워했다.

 

고소적응이 제대로 안돼 4월19일 딩보체(4400m)로 내려섰다가 5박6일만인 24일 베이스캠프로 올라온 차재현, 이남진, 박승언, 이충호 대원과 지원조인 이창기 대원은 4월25일 하룻동안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이튿날인 4월26일 오전 5시 베이스캠프를 출발, 아이스폴 등반에 나서 오후 2시경 제1캠프에 올라섰다.

 

아쉽게도 최고령 등정기록을 노리고 있는 75세의 차재현 대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대원들과 거리가 점점 벌어져 오전 8시경 등반을 포기하고 김종호 부단장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돌아섰다. 4월28일은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었다. 밤새 텐트가 바람에 주저앉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지낼 정도였다. 5월 초순 들어 아이스폴이 엄청난 속도로 변해갔다.

 

험난하기도 하지만 아침햇살이 내리쬘 때면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가늘게 갈라진 크레바스는 동화 속의 요정이 살고 있을 듯 신비스러웠다. 널찍하고도 깊디깊은 크레바스에 걸쳐진 사다리를 건널 때는 묘한 스릴감이 느껴졌다.

4월 말 들어서면서부터 셰르파들조차 해가 들면 오르려 하지 않고, 해든 이후 내려설 때는 쏜살같이 내달리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빛 아이스링크를 연상케 하던 설원은 쭉쭉 갈라지고 갈라진 판은 높낮이가 달라져 마치 지진 직후의 모습 같았다. 사다리 대여섯 개를 이용해 길을 낸 30여m 높이의 설벽은 상단부에 크레바스가 가로로 형성되면서 앞으로 넘어올 기세였다.

 

딩보체로 내려가 1주일간 컨디션 조절

 

 ▲ 베이스캠프에 모여 선 실버원정대 대원, 지원대원, 셰르파들.

 

대원들은 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딩보체에서 컨디션 조절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5월5일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이날 마침 한국산악회 2차 격려단이 베이스캠프를 방문해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베이스캠프 출발 이후 4~5일 걸린다. 하산까지는 6~7일 걸린다.

 

등정에 성공했든 실패했든 베이스캠프로 내려섰을 때는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한 시즌 두 차례 시도라는 것은 젊은이들일지라도 어려운 일이다.

 

5월5일 2차 격려단이 베이스캠프를 떠난 이후에야 김종호 부단장은 등정 스케줄에 대해 대원들에게 설명했다. 1, 2차로 나누어 등정을 시도한다는 계획은 말했지만, 공격대원에 대해서는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출정을 앞두고 모두에게 몸조심해줄 것과 입에 맞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컨디션 조절에 최선을 다해주길 부탁했다.

 

 ▲ 한국산악회 깃발을 들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김성봉대장

 

이러한 과정을 거쳐 1차 공격조로 김성봉 대장, 조광현, 이장우 대원으로 최종 낙점되었고, 이중 두 대원이 정상에 선 것이다. ‘실버’들의 남다른 투지와 김종호, 천병태, 유학재씨 등 노련한 중견 산악인들의 세심한 지원과 판단이 하모니를 이루어낸 찬란한 결실이었다.

 

/ 글 / 한필석 차장대우 '월간산'[452호] 2007.06
/ 사진 / 실버원정대 제공
/ 주최 / 한국산악회 - 조선일보사 공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