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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 브로드피크 [2] *-

paxlee 2007. 9. 5. 23:11
 
      [K2 & 브로드피크] 성난 K2가 죽음의 거미줄을 쳐놓았다.
 
                        등정길에 니마 셰르파 실족사
▲ C1(6000m)으로 오르는 김지우대원과 니마 셰르파.

오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폭풍설이 몰아쳤다. K2는 마지막에 우리의 발목을 낚아챘다. 다음날 ‘등정’이라는 말보다 성난 K2가 쳐놓은 죽음의 거미줄에서 빠져나오려는 ‘생존’이 먼저였다. 러시 어택(rush attack) 방식으로, 한 번에 밀어붙인 첫 시도는 무위로 마쳤다.


베이스캠프에는 한국여성 K2 원정대(대장 오은선)의 6명을 비롯하여 여러 외국팀이 들어왔다. 각 팀의 대장들은 우리 팀의 로프 사용을 청하며 홍 대장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할 정도였다. 또 그들은 기꺼이 로프사용료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우리의 답은 “돈은 필요 없다”였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달콤한 휴식이다. 그리고 다시 2차 등정시도를 위해 출발했다.


▲ 청빙을 횡단해야 하는 보틀넥.

C3에서 3일을 화장실도 가기 곤란한 눈보라에 갇혀 기다렸고, 전에 작업했던 C4까지의 루트 흔적은 모두 사라져 다시 힘든 러셀을 하며 도착한 마지막 캠프지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텐트, 보틀넥 구간에 사용할 로프, 산소, 식량 등 눈 속에 묻힌 것인지 바람에 날아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후 이른 시간이라 설동을 파고 잠깐 쉰 후 등정시도를 생각해 보지만 취사구가 없다는 게 걸림돌이다. 다시 내려왔다. 파키스탄 기상국에서 들려오는 기상예보는 몬순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록 카라코룸에 직격탄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날씨는 보다 불안정해진다. 등정의 기회는 멀어지는 듯 보인다.


우리가 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각국의 원정대들은 아래쪽에서 고소적응을 마쳤고 위쪽으로 합류했다. 정보를 교환하여 D데이가 잡혔다. 러시아, 미국, 포르투갈, 이란 등은 우리보다 하루 빠른 15일 BC를 떠났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난구간인 보틀넥 구간은 러시아와 미국팀이 루트를 만들기로 약속하여 우리 팀의 로프까지 가지고 올라갔다.


먼저 출발한 팀은 C4로 가는 깊은 눈을 하루에 뚫지 못했다. 결국 우리 팀이 합류한 날 7월19일 C4에 들어갔다.


오늘 밤 출발이다. 한국여성대는 밤 11시, 우리와 미국팀은 밤 12시, 4명 전원 산소를 사용하는 러시아는 새벽 2시, 이렇게 출발시간이 결정됐다. 8,000m가 넘는 고소에서 더구나 6명이 한 텐트 안에서 음식을 끊여 먹고 복장을 갖추는 데 2시간 이상 소요됐다.


이전 시도에서 무산소 등정을 대장께 상의드렸지만 원정대 공동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산소는 8통이 있다. 진태형과 지우형이 각각 2통씩, 셰르파 3명이 각각 1통씩, 그러면 1통이 남는다. 정상으로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 달 전 에베레스트 8,500m 지점에서 산소 없이 활동한 경험이 있다. 괜찮았다. 산소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고 한 통은 예비로 가지고 간다.


▲ 브로드피크의 정상에 선 김진태 대원, 폭풍설에 온 몸이 얼었다.

27일 새벽 1시20분, 대원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텐트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나선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팀이 제일 선두다. 여성대가 합류한다. 기온은 영하 32C°다.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가르며 걷기 좋게 크러스트된 숄더를 서서히 오른다. 어제 러셀하느라 젖은 신발이 마르지 않아 발이 무척 시리다. 고산등반을 하면서 발이 시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간은 걱정되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오르는데 니마의 산소마스크 밴드가 잘 맞지 않는지 진태형이 도와주고 있다. 젖은 신발에 꽉 조여 맨 발은 얼어갔다. 안전한 지점에서 피켈에 확보하고 신발을 벗어 발을 주무른다.


가끔 빙사면이 나타난다. 그믐이 지난 직후라 달빛은 없다. 보틀넥으로 연결되는 사면에서 여성대의 틸렌이 150m 로프를 설치했다. 그리고 설치된 로프는 계속 연결되지 못하고 가파른 설사면을 고정로프 없이 20여m 더 올랐다. 틸렌과 진태형은 위쪽 바위턱에 올라섰고, 오은선 대장, 지우형, 여성대의 밍마 셰르파, 그리고 나 이렇게 한 지점에 모였다. 그리고 니마가 내 왼쪽에 막 도착했고, 파상과 펨바는 그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 넓은 산, 브르드피크.

멀리 곤륜산맥과 티벳고원 위로 붉은 여명이 밝아오는 4시 반경이었다. 쉬고 있는 잠시,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주먹만한 낙석에 내가 “Stone Fall!”이라고 주의를 주었고, 니마가 체중을 다른 쪽 발로 옮기는 순간 균형이 깨지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한 순간이었다. 니마는 단단한 설사면에 피켈 샤프트를 깊이 박지 않았다. 멍하니 미끄러지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니마는 피켈로 첫 번째 제동을 시도했고, 평평해지는 굴곡진 부분에서 두 번째 시도를 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속도는 거의 멈추는 듯했다. 그리고 자연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멈출 수 있어’라고 되뇌었다. 그러나 니마의 몸은 가파른 남쪽 사면으로 틀면서 다시 빠르게 내려갔다.  


여성대에게는 계속 등반하라고 얘기하고는 고정로프의 끝 지점으로 내려왔다. 네팔 쿰부의 타메(Tame) 마을에서 함께 태어나고 자란 파상과 펨바는 친구의 죽음에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외국대는 말을 잇지 못한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다 BC에 보고했다.


“니마가 떨어졌습니다.”


홍 대장도 한 동안 말이 없다. 그리곤 다른 대원과 셰르파의 안위를 묻는다. 간단히 상황을 말씀드리고 무전을 끊었다. 북받침을 참느라 말을 이을 수가 없다. 다시 BC와의 교신에서 홍 대장은 등정을 권한다.


“냉정해야 한다. 니마를 생각해서라도 등정하는 게 좋다. 대원들 의견을 물어 결정해라.”


나와 진태형은 계속 등반하기로 한다. 그리고 지우형과 파상, 펨바는 C4로 사고 후처리로 내려갔다.


단단한 청빙의 보틀넥 구간 트레버스는 너무나 위험했다. 그 다음 가파른 빙벽 위에 쌓인 눈은 언제 눈사태가 날지 모른다. 작년에도 여기에서 눈사태로 4명이 실종됐다. 하늘 위로 맞닿은 설빙사면은 지루하리만치 계속됐다. 7,500m대에 구름띠가 둘렀다. 가끔 세찬 바람도 몰아친다.


오후 3시15분, 러시아대 2명과 진태형, 나 순으로 북쪽으로 경사진 넓은 정상에 섰다. 그리고 여성대의 오 대장과 두 명의 셰르파도 올라왔다. 산소를 쓰지 않아도 딱히 힘듦은 없었다. 바람은 잦았다. 카라코룸의 장엄한 설봉과 아래로 꿈틀거리는 악어 등 모양의 빙하가 펼쳐진다. 니마는 이 넓은 세계의 어디로 갔을까!

                         
     / 글·사진 김창호 서울시립대 OB /- 월간 산 -  [455호] 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