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진정한 친구 *-

paxlee 2007. 11. 9. 22:24


 

‘진정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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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많다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아들을 걱정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만나는 수많은 친구 모두가 진정한 친구라고 자랑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친구들의 우정을 시험해 보자고 하였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아들은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거적으로 싸서 지게에 지고 밤늦게 친구들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실수로 사람을 죽였으니 도와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믿었던 친구들 중 문을 열어 주는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친구를 찾아 갔다.

아버지의 단 한명인 친구는 크게 걱정을 하며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열 친구보다 진정한 친구 한명이 낫다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다.

 

 잘 나갈 때에는 친구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렵고 힘이 들 때를 함께 해줄 진정한 친구는 드물다.

진정한 친구는 단 한명만 있더라도 행운이요 행복이다.

‘사랑을 받고자 하거든 사랑을 먼저 주라.’고 했다.

진정한 우정을 바란다면 먼저 다가서며

진심을 보이고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사심을 버리고 진솔하게 대하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하다보면

저절로 우정이 쌓인다. 우정은 무슨 계약을 맺듯

서로 만나 다짐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가 발아되고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듯이 서로간의 노력과 만남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며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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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리분별력이 떨어지고 쉽게 물들며 해야 할 일이 많은

청장년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진정한 친구를

진심으로 사귀기를 원한다면

불교의 분류방식에 따라 친구를 나누어 사귈 수는 없다.

 

어떤 부류의 친구는 사귀고 어떠한 친구는

멀리하거나 배격할 것인가.

 친구는 그냥 친구이다.

이용하려 덤벼도 친구요, 계산적이더라도 친구요,

한없이 관대해도 친구요,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친구도 친구다.

“착한 사람은 바른 일만 생각하고

나쁜 사람은 남 속일 궁리만 한다.”지만,

친구가 친구에게 해코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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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4가지의 부류로 보고 있다.

 

 첫째, ‘꽃과 같은 친구’,

즉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


둘째, ‘저울과 같은 친구’,

즉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운다.

그와 같이 나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

 

셋째, ‘산과 같은 친구’,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

 

넷째, ‘땅과 같은 친구’,

즉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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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친구’란 대개는 ‘꽃과 같은 친구’일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의 주위에는 초대하지 않아도 문전성시를 이루며

친구를 자처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권세든, 돈이든, 힘이 있는 사람들의 애경사만 가 보아도

그 위세를 금세 눈치 챌 수가 있다.

 꽉 들어찬 조화와 북적거리는 사람들,

안면만 있어도 친분관계를 내세우며 나타나

눈도장을 찍으려 기다란 줄을 서고 있다.

 

부조(扶助)도 그렇다.

 애경사에 건네는 부조는 말 그대로 십시일반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는 물건이나 돈이다.

그러므로 없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도 있는 집의 애경사에 더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이 세상인심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가장 비참할 때는 선거에서 패배한 때라한다.

Vae victis!

낙선자는 보통 한두 달, 길게는 1년이 넘도록 비참하단다.

 당선 가능성이 있던 후보시절에는 밀물처럼 모여들었던 인파가

낙선하자 썰물처럼 떠나더라는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사귀게 되는 대부분의 친구관계가 그렇다.

잘 나가는 사람, 힘 있는 사람에게 모이게 되어 있다.

심지어 초중고대학의 동창생도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너무 서운해 할 이유는 없다.

그러려니 하며 그대로 인정하고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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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삭빠른 우정이 있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친구라면서 먼저 계산부터 한다.

 주판알을 튕겨보아 이익이 되면 절친한 친구요

그렇지 않으면 그저 아는 사이요

 손해이다 싶으면 모르는 사이이다.

 

시소(seesaw)처럼 우정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린다.

 이러한 친구의 공평관념은 매우 편의적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했을 적에는 차등이 공평이라 우기다가도

가진 자 측에 끼게 되면 공평을 내세워 따진다.

매사를 계산하고. 오랜만에 만나 쓴 소주 한잔 나누는데도

이용가치가 있거나 그렇지 못하면,

분담능력이라도 있는 친구끼리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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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같고 어버이 같은 ‘산과 같은 친구’.

세상살이 고달프고 하는 일마다 꼬일 대로 꼬여

답답하거나 우울하거나 방황할 적에

 스스럼없이 찾아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때로는 투정부리듯 토로하는 넋두리 같은 하소연도

진지하게 들어 주는 믿음직한 친구.

 언제나 싫은 기색조차 없다.

크고 작고 맑고 흐린 강물을 끝도 없이 받아주는

바다처럼 묵묵히 받아 주고 편히 쉬게 해준다.
 

썩어 악취를 풍길 것 같은 바다 속의 정중동(靜中動),

그러나 보이지 않게 움직이며 그 안의 모든 생명체에게

살아 갈 수 있는 자양분을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

그러한 존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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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숙아가 그랬던가. ‘땅과 같은 친구’, 친구의 잘못과

단점을 감싸고 돌면서 친구가 자신을 딛고 올라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주는 친구. 이러한 친구를 갖는 복은 천운이다.

 

관중의 고백, “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淑牙).”

그러나 포숙아와 같은 친구를 둔 관중을 부러워함은

그 자체가 이기심, 사심이 없는 우정의 소유자만이

포숙아와 같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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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같은 친구‘에게서는 각박한 세상의 인심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저울과 같은 친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꾀바른 처세술을 배울 수 있다.

 ’산과 같은 친구‘는 애타심(愛他心)과 관대함을 가르치고,

’땅과 같은 친구‘는 아낌없이 주는 법과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며, 그리고 행복을 준다.

 

그러므로 이래저래 어떠한 부류이든 친구를 기피할 이유는 없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적극적이어야 한다.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을 때 행복하다.”(러셀).

 

 서로 만나 격의 없이 어울리다보면

좋은 우정이 쌓일 수 있는 것이다.

친구는 자주 어울려야 친구이다.

 

- 좋은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