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편지 *-
<지리산 편지>
무소유의 삶이 바라본 지리산 사계
지리산 봄의 첫 전령은 섬진강 황어… 설화·빙화·상고대가 피는 겨울이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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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사계절은 어떻게 변할까? 봄에는 어떤 꽃이 피고, 여름과 가을엔, 그리고 겨울엔 어떤 꽃이 피고 질까? 그 계절마다의 색깔과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 지리산 고유의 수종과 야생화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질 법하다. 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지리산이란 거대한 자연의 변화는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갖게 한다.
인간은 봄에 여름을 생각하고, 여름엔 가을을, 가을엔 겨울을, 겨울엔 봄이 올 것을 대비하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 법칙에 따라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지리산이란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을 한번 느껴보자.
- 도시의 팍팍하고 얽매인 생활이 싫다며 중앙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 타의가 아닌 순전히 그의 의지로 들어갔다. 기자생활 하면서 특종상도 몇 차례 받았다. 시인으로는 일찌감치 등단했다. 작품집도 몇 권 냈다. 그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 부질없는 짓거리일 뿐이었다. 몇 차례 입산(?)할 기회를 엿보다 살아계신 어머니에게 차마 못할 짓이다 싶어 기간을 조금 늦췄다.
-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급기야 세상을 달리하자 그는 주저 없이 가방을 쌌다. 그게 98년 일이다. 꼬박 만 10년, 햇수로 11년째다. 입산(?) 3년째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지냈다. 산짐승 생활 그대로 보냈다. 배 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고, 심심하면 지리산 이곳저곳을 누비며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정말 그에게는 집도 절도 없다. 아니 거대한 지리산이 그의 집이고 정원이고, 뒤뜰이며 앞뜰이었다.
- 그가 자는 곳이 집이고, 그가 먹는 곳이 식당이었다. 정처 없는 떠돌이가 아닌 ‘지리산 떠돌이’였다. 서울에 있을 때도 자의에 의해 노숙생활을 한 적 있지만, 그래도 세속적인 기준으로 집은 있었다. 지금은 지리산의 빈 집이 곧 그의 집이다. 빈 집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생활한다. 주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비워주고 다른 빈 집을 찾아 거처를 옮긴다. 전혀 불편이 없단다. 실제 그의 전 재산은 노트북 컴퓨터와 책과 오토바이뿐이다.
- 재산목록 1호는 오토바이일 것 같다. 세간붙이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아니 그에게 모든 것이 그러할지 모르겠다. 속세의 인연을 끊은 듯 끊지 않고, 수도승인 듯하면서 세속에 사는, 그러면서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원규(46) 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 지리산 입산(?)해서만 벌써 다섯 권째 책을 낸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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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하다 입산(?) 11년째
그를 만나러 구례 지리산까지 찾아갔다. 구례 고속버스터미널에 마중 나왔다. 확인 전화를 하니, 웬 바이크족 같은 사람이 앞에 턱하니 나타났다. 아래 위 모두 바이커 복장을 갖춰 의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전형적인 바이커였다. 그를 거쳐 간 오토바이만 하더라도 11대나 된다고 했다. 지리산을 때로는 걷다가, 때로는 오토바이로 구석구석 누비는 그 오토바이였다. 충격을 흡수하는 산악용이었다.
뒤에 타라고 했다. 난생 처음 오토바이를 타봤다. 그것도 뒷자리에. 타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내색 않고 가방 메고 슬그머니 올랐다. 가볍게 좌우로 흔드는 폼이 역시 예사롭지 않았지만 겁만 더 날 뿐이었다. 이슬비가 후드득 조금 굵어지는 듯했다. 핸들을 잡은 한 손을 놓으며 모자를 건넸다.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어 괜찮다고 했다. 목적지에 내려 난생 처음 오토바이를 탔다고 했다. 웃으면서 어색해했다.
그와의 희한한 첫 만남이다. 저녁 늦게 거나한 자리가 되기 전에 최대한 그를 파악해야 했다. 왜 내려왔고, 왜 지리산이며, 이번에 낸 책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이번 만남은 그가 5월 초에 낸 <지리산 편지>(대교베텔스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가 낸 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리산 입산해서만 벌써 다섯 권째다. 시집 <옛 애인의 집>(솔, 2003), <강물도 목이 마르다>(실천문학사, 2008) 2권과 산문집 <벙어리 달빛>(실천문학사, 1999),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좋은 생각, 2004)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리산 생활 11년간의 소회가 담긴 산문집은 처음이다. 이전 다섯 권에는 얼핏얼핏 담았지만 이번에는 전부 지리산이다.목차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순서로 내용이 실려 있다. 지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고, 명사들이 권장한 도서목록에도 이름이 있다. 삶의 담백한 소회가 가슴에 와닿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왜 지리산이었냐고 물었다. 고향은 왠지 아는 사람이 많아 불편할 것 같아 싫었다고 했다. 속세의 끈을 놓겠다는 의미 같았다.
가족의 인연을 멀리 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실제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형제자매 만나기를 꺼렸다. 찾아오면 일부러 피했다. 본질적 질문과 다른 대답이 먼저 날아왔다. 아마 그 나름대로 깊은 가치가 있으리라 싶었다. 일체 가족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혹시 언짢아하거나, 불편해 할까 묻지도 않았다. 길게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올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지리산은 모성의 산입니다. 어머니의 산이라는 말 그대로 경이로운 지혜로 가득한 백두대간의 마지막이자, 시작인 산입니다. 유정, 무정의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기에 가장 크고 높고 깊은 산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사람들 또한 곳곳에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야 이미 고래로부터 농사를 짓거나, 약초를 캐거나, 벌을 치거나, 지리산 녹차를 가꾸며 대를 이어왔으나, 외지인들도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봄의 첫 전령인 섬진강 황어, 지리산 3대 명당 중 한 곳인 운조루에 핀 초봄의 목련, 매화, 방아풀꽃에 앉은 긴꼬리제비나비.
‘가짜’ 많지만 3년 내 전문가로 변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일까?
“3대 명당 중 하나라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처럼 명당을 찾아온 사람들과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사람들처럼 무리를 지어 유불선 도를 깨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성골 등 등산객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석실 등에서 생식을 하며 사는 도인들도 수없이 있으며, 남원 실상사 주변과 하동군 악양면 등지에는 전국에서 귀농한 농부들로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종교인과 무속인도 있고, 암환자 등 갖가지 질병을 앓는 사람들도 귀의처로 삼고 있습니다.
지리산의 불문율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했든, 퇴직을 당했든, 사기와 도둑질을 했든, 이혼을 했든 더 이상 따지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바로 지리산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지켜볼 뿐입니다.그러다보니 가짜 종교인, 가짜 도사, 가짜 약초꾼, 가짜 녹차인, 돌팔이도 많습니다. 이들은 지리산의 거대한 품속에 깃들어 사는 가엾은 중생일 뿐 애써 내치지 않아도 스스로 떠나든지, 아니면 최소 3년 이내에 스스로 가짜 딱지를 떼어내고 전문가가 됩니다.”
- ▲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6월의 물앵두, 붓꽃, 정자 냄새가 난다는 밤나무꽃, 한여름 시원한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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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사람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도 이미 지리산 전문가가 됐다. 지리산의 사계를 속속들이 11년째 지켜보고 있을 뿐 아니라 산짐승처럼 사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지리산 지킴이 역할도 하고, 좌우 이념 대립을 풀기 위해 ‘지리산 위령제’를 지내는 기획과 실무를 맡기도 했다.
지리산의 푸른 눈빛을 받아 대립과 투쟁의 방식을 지양하고 주로 순례와 참회를 중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새만금 삼보일배를 기획 지원하고,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 생명평화탁발 순례 1만리, 대운하 반대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4대강 3천리 도보순례 등 주로 걸으며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며 경청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문인들도 지리산에 많은가라고 물었다.
“4년 전 전주 모악산에서 하동군 악양면으로 이사 온 시인 박남분과 섬진강변에 터를 잡은 박두규와 남원의 복효근,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8년째 녹차밭을 일구는 사진작가 이창수, 화가로서 붓을 꺾고 15년째 찻상 등을 만들고 있는 청오산방의 김용회, 차를 덖으며 사는 무향다원의 조성기 등이 있습니다. 산꾼도 있습니다. 지리산 터줏대감인 피아골산장의 함태식 선생과 불일평전의 변규화 선생, 백두대간을 홀로 첫 종주한 남난희, 연하천의 김병관 등과 칠선골 두지터의 약초꾼 문상희 등도 있습니다.” -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사람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도 이미 지리산 전문가가 됐다. 지리산의 사계를 속속들이 11년째 지켜보고 있을 뿐 아니라 산짐승처럼 사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지리산 지킴이 역할도 하고, 좌우 이념 대립을 풀기 위해 ‘지리산 위령제’를 지내는 기획과 실무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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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빈집 찾아 거처 옮겨 다녀
지리산 사계의 속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리산의 남쪽 섬진강변에는 매화들이 곧 터질 듯 부풀어 오릅니다. 성질 급한 매화부터 먼저 피어날 것이고, 그에 맞춰 황어떼들이 남해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에서 구례로 거슬러 올라옵니다. 봄바람과 꽃소식은 육지에서만 오는 게 아니고, 강물 속으로도 옵니다. 아니 어쩌면 고로쇠 수액이나 황어처럼 봄바람보다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매화꽃이 필 무렵, 그 주변 아래로 별꽃과 양푼쟁이꽃과 같이 작고 여린 것들이 더불어 꽃을 피우고, 마침내 산수유꽃이 구례 산동을 지나 밤재 너머까지 화신을 전해주는 순간 한반도의 봄은 급속도로 퍼져갑니다. 냉이꽃, 목련꽃, 개나리꽃, 벚꽃, 진달래꽃 등이 줄줄이 피어나면 구례 들녘과 하동 평사리의 들녘에는 무리무리 자운영꽃이 피어납니다.
이때가 바로 완연한 봄입니다. 곧이어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찔레꽃이 피고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수박향의 섬진강 은어떼가 올라오고, 세석평전과 바래봉 등에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매화에서 밤꽃이 피는 6월까지는 그야말로 세월의 흐름에 무감각해지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잠시 장마철이 지나면 곧바로 휴가철입니다.
단풍도 예외 없이 지리산의 가을을 수놓습니다. 손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단풍은 지리산 자락 어디를 가더라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의 참맛은 뭐니 뭐니 해도 봄을 기다리는 겨울입니다. 해발 1,500m 이상에서 피어나는 설화와 빙화와 상고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함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신의 희디흰 밥’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가을 들녘이나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산국화, 어름나무와 그 열매, 곶감, 늦가을 을씨년스러운 구례 오산의 사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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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는 구례 문수골 입구에 1년 집세 50만 원짜리 외딴 집에 살고 있다. 대문도 있고, 자물쇠도 있지만 그에겐 필요 없다. 누구나 찾아와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낡은 북에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고 쓴 문패를 걸어놓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방이란 뜻이다. 박남준, 이문재, 공지영, 김영현, 유용주, 이정록 등의 문인들이 자주 놀러온다.
- 북한산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과 실상사 수월암의 연관 스님, 판화가 남궁산 등도 한번씩 다녀간다고 했다. 찾아오는 문인들에게는 그가 머무는 곳이 ‘지리산 사랑방’으로 통한다. 지리산 와서 벌써 이사를 여섯 번째 했다. 자의든 타의든 지리산 자락 발 닿는 대로 옮긴다. 또 옮겨야 한다. 이번에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단다. 빈집을 찾아서 하동까지 같이 갔다.
- 그는 9월부터 전남도민에서 경남도민으로 바뀐다. 이사 비용도 필요 없다. 그가 하루에 몇 개씩 옮기면 된다. 세월은 그의 것이다. 돈도 필요 없다. 한 달에 용돈 20만 원이 채 안된다. 그가 피는 담뱃값과 오토바이 유지비용, 점심값 정도다. 그와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계속 됐다. 그 날 밤 지리산 자락에서 세상의 기억을 완전히 끊고 싶었다. 한밤 밤꽃 냄새 솔솔 풍기는 구례 지리산 자락, 빗방울 떨어지는 피아산방에서 기억이 끊겼다. 아마 영원히 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지금 그는 구례 문수골 입구에 1년 집세 50만 원짜리 외딴 집에 살고 있다. 대문도 있고, 자물쇠도 있지만 그에겐 필요 없다. 누구나 찾아와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낡은 북에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고 쓴 문패를 걸어놓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방이란 뜻이다. 박남준, 이문재, 공지영, 김영현, 유용주, 이정록 등의 문인들이 자주 놀러온다.
- ▲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리산의 명물로 유명한 뱀사골 와운마을의 천년송과 설경, 눈에 흠뻑 맞은 개가 장독대 옆에 앉아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 물이 얼어붙어 흰 꽃처럼 변한 빙화, 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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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에 찌든 속인의 기준으로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많은 단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다음 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다가 후드득 내리기도 했다. 세속 인간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또 지리산의 여름 장마는 시작되고 있었다.
- 글 / 박정원 차장대우 | 사진 이원규 시인 제공 / 월간 산 [466호] 2008.08 -저자 | 이원규 / 대교베텔스만(주)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지리산 시인, 발로 쓴 편지를 띄우는 만행의 구도자,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환경 운동가, 모터사이클 라이더. 과거 홍성광업소 막장 후산부, 노동해방문학 창작실장,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중앙일보 및 월간중앙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지리산. 입산한 지 11년째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버림으로써 가벼워지고 비움으로써 여유로워지는 삶의 한 경지를 이룬 듯하다. 쉬지 않고 걷고 걸어 손이 아닌 발로 시와 편지를 쓰는 그는 지금도 ‘대운하 건설’이라는 망령을 떨치기 위해 남도 어느 강 길을 걷고 있다.
1984년 《월간문학》과 89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옛 애인의 집》《돌아보면 그가 있다》《빨치산 편지》《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등과 산문집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벙어리달빛》 등을 펴냈다. 제16회 신동엽 창작상과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세속에 찌든 속인의 기준으로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많은 단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다음 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다가 후드득 내리기도 했다. 세속 인간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또 지리산의 여름 장마는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