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

paxlee 2008. 8. 13. 20:53

 

                           [해외 트래킹]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머리를 뒤로 젖혀야 발가벗는 산,
        표고차 4,500m의 세계 최대 루팔벽을 보다.

떠나는 일을 상상하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선뜻 나서기 힘든 곳이다. 2007년 네팔의 쿰부히말에 있는 칼라파타르를 다녀온 후 몇몇이 의논하여 올해에는 낭가파르밧 트레킹으로 정하고 추진해왔다.

낭가파르밧(Nanga Parbat·8,126m)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중 하나다. 이 산괴에는 각각 루팔면, 디아미르면, 라키오트면이라 이름 붙은 세 산록이 있는데, 외양은 각각 판이하게 다르고, 진입루트도 전혀 다르다. 일행은 1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23세부터 68세까지로 평균 연령은 55.3세다.

먼저 라키오트쪽으로 진입

6월27일 오후 5시35분 이륙한 KE 651편은 5시간 후 방콕에 착륙했다. 항상 생기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물 초과다. 1인 20kg이 정량이지만 25kg까지는 허용하고, 그 이상은 오버차지를 해야 한다는 공항 여직원의 말에 중량 나가는 것만 별도로 배낭에 넣고 탑승하자는 얘기도 오갔으나, 나는 조용히 팀장을 만나 비상수단을 활용했다. 나의 대한항공 사번(社番)은 7708621. 그들에게는 대선배다. 팀장은 빙그레 웃더니 직원에게 사인을 보내고 통과시켜 준다.


▲ 라이콧트 브릿지에서 페어리 메도우로 가는 길은 절벽을 따라서 지프가 한 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가파른 길을 타토까지 1시간여 달려야 한다. 윗부분에 기프가 보인다.
다시 PK 893편(파키스탄에어)으로 환승하여 4시간30분 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것은 28일 새벽 5시10분. 쿡과 포터를 수배한 후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하여 늦은 오후 간다라 불교의 수도였던 탁실라 뮤지엄과 유적지를 다녀왔다.

6월29일(금) 이슬라마바드에서 베샴을 거쳐 칠라스까지 670km. 오전 6시에 호텔을 출발한 도요타 25인승 버스는 계속 추월하며 1차선 포장도로를 17시간 질주해 밤 11시 칠라스 파노라마호텔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어제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짐짝처럼 17시간을 흔들린 탓에 심하게 두드려 맞은 듯 온몸이 뻐근하다. 칠라스에서 라키오트까지 버스로 1시간40분,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달려 라키오트 다리에서 지프로 갈아타고 방향을 바꾼다. 비로소 강의 원류를 찾아가는 셈이다.

낭가파르밧으로 진입하는 길들 중 접근이 쉬운 라키오트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은 것은 루팔로 가기 전 고소적응을 해두려는 속셈도 있다. 라키오트는 처음으로 정상을 내준 길답게 쉽고 짧게 낭가파르밧의 동면 베이스캠프로 들어갈 수 있다. 거세게 용트림치는 물은 라키오트 빙하에 수원을 대고 있다.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면 빙하와 산과 하늘이 곧 하나의 세계임을 알게 된다. 끝과 끝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라키오트면 페어리메도에서 하룻밤

라키오트 계곡에는 외부 차량은 단 한 대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현지인들이 20여 년 전부터 계곡 절벽에 개미처럼 붙어 다듬어가며 길을 냈다. 장비라고는 삽, 곡괭이, 지렛대, 망치가 전부다. 절벽을 따라서 일부를 도려내듯이 깎아내고, 그 돌을 벽돌로 다듬어서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도록 절벽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고 한다.

▲ 페어리메도의 모닥불. 요정의 초원이라 불리는 해발 3,300m의 초원지대에는 아름답게 자란 풀들이 부드럽게 깔려있고 맑은 냇물들이 흐른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는 가파른 길을 따라 타토(Tato)를 향해 힘겹게 오른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으나 다갈색의 계곡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계곡 절벽은 너무 깊어 아래를 바라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빙하에서 녹은 물들이 보여야 하는데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일부에서는 길이 절벽보다 바깥으로 슬며시 나온 오버행 구간까지 있어 바닥을 내려보려 시도해도 불가능하다. 이런 길인 줄 알았으면 차라리 걸어 오르겠다는 사람도 많으리라.

가끔 차체 옆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바닥을 이루는 돌들이 차의 무게로 압력을 받아 절벽 밑으로 밀려나면서 내지르는 소리였다. 살벌하기 이를 데 없다. 핸들을 조금이라도 잘못 꺾거나 돌에 미끄러지면 그 다음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벼랑 아래로 내려갈 길이 전혀 없으니 뼈를 추스르기는커녕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 

바닥이 보이더니 어느새 시냇물이 흐르고, 양쪽 계곡이 완만한 경사를 보여 하늘이 차차 넓어지는 무렵에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배낭을 메고 해발 1,000m의 고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나 라키오트를 올라온 사람이라면 이제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락하고 행복한지를 알게 된다. “Thank You!” 대상이 누구건 또 어디건 차에서 내리면서 인사부터 나온다.   

해발 2,600m의 타토 마을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트레킹의 시발점일 뿐, 쉬어갈 곳은 아니었다. 누가 이곳을 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길이라 부르기엔 너무 위험하다. 때로는 눈을 질끈 감아버려야 할 지경의 절벽 위를 가야하고,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 계곡과 바위들은 태양열을 받아 지글거린다. 7월 초순의 이곳은 불판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 날씨가 쾌청하다. 구름 한 점 없는 정상부는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흰 자태를 뽐낸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다크블루다.

 

울창한 소나무숲과 모레인 지대를 지나면서 고도를 올리기 시작한 지 4시간. 천상화원이라 불리는, 넓고 평평한 푸른 초원지대 페어리메도(3,306m)에 도착했다. 일명 요정의 초원. 몇몇은 약한 고소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메슥거린다. 우선 편하게 쉬도록 하고 밀크티를 진하게 준비하여 권한다. 넓은 초원은 평화로웠다. 모닥불을 붙이고 손 이사가 준비한 와인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 조상진씨는 기타에 맞춰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페어리메도의 밤은 깊어간다.

1895년 낭가파르밧 등반 중 머메리(영국)는 실족사한다. 그 후 독일의 빌리 메르클이 낭가를 찾은 것은 37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2년 후 빌리 메르클을 포함한 대원 10명이 하산 도중 사망하고, 또다시 3년 후 한 번의 눈사태로 카를로 비인 대장을 포함한 16명이 사망하는 히말라야 최대 참사가 발생한다.


▲ 페어리메도를 다녀오고, 루팔베이스캠프를 다녀와서 이제는 하행길이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나고 뜨거운 햇살은 받으며 빙하지대를 돌아 모레인지대를 지나간다.

 

8,000m급 고산의 초등정은 국력 싸움이었다. 영국이 에베레스트를 아홉 번씩 도전해 성공을 이루었듯, 독일은 낭가파르밧을 집중공략했다. 에베레스트를 통해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영웅이 탄생했다면 낭가파르밧에서는 헤르만 불이라는 초인이 탄생했다. 1953년 7월3일 새벽 2시 티롤의 산악인 헤르만 불은 헤를리히코퍼 대장의 후퇴 명령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제5캠프를 떠났다. 영국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는 뉴스를 라디오를 통해 들은 뒤였다.

헤르만 불이 사력을 다해 홀로 정상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7시간 뒤인 오후 7시. 정상을 오르고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캠프로 귀환한 29세의 헤르만 불이 60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전설이 아닌 사진으로 입증되었다.

타라싱에서 루팔면 트레킹 시작


7월1일(화) 아침. 밤새 날씨가 제법 추웠나 보다. 1,000g짜리 거위털 침낭이 안성맞춤이다. 아침이 상쾌하다. 숲에서 뿜어나오는 깊은 향과 삼나무들, 야생장미, 히말라야 노송들이 함께 어우러져 펀잡 히말라야의 건강함을 느끼게 한다. 왼쪽으로 라키오트 빙하, 위쪽으로는 낭가파르밧 정상이 구름에 가린 채 일부만 드러내고 있다. 우측으로는 전나무와 히말라야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아름답게 자란 풀들이 녹색 융단처럼 부드럽게 깔려있고, 맑은 냇물들이 이리저리 굽이쳐 흐르는 곳곳에 오두막들이 자리 잡고 있다.

▲ 베샴을 거쳐 인더스강을 따라 달리는 구간에는 라엣지(껍질을 벗기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딸기 만한 열매)를 파는 곳이 많다.
 
오전 9시 출발, 11시10분에 타토로 나와 12시20분 라키오트 다리에서 버스를 타고 타라싱으로 이동, 오후 4시40분에 도착했다. 이곳 루팔 호텔(게스트하우스. 네팔의 로지보다는 조금 나은 편) 앞 잔디밭에는 이미 오스트리아 부부가 도착해 있고, 30대 독일 부부는 약 반 년 전에 뮌헨을 떠나 각국을 돌며 찍은 사진과 함께 기사를 송고하여 경비를 조달하며 자동차에 모든 장비를 싣고 이곳까지 와있었다.

7월2일(수) 날씨가 맑았다. 루팔 트레킹 기점인 타라싱(Tarashing·2,911m) 마을 앞에 눈과 얼음이 붙어 있기 힘든 경사의 헐벗은 산 낭가파르밧의 남벽과 동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발 5,000m 위로는 하얀 구름으로 완전히 뒤집어썼다. 아래의 흰 빙설들만 위엄 있게 우리를 반겼다.
생각과 달리 짐을 메고 다니는 포터가 별로 없다, 지역 경제가 꾸준히 좋아지면서 사람들은 노새를 몇 마리씩 소유하게 되었고, 따라서 짐을 운반하는 수단은 사람이 아니라 노새가 됐다. 바진 캠프에서 지낼 이틀분 식량과 막영구 등을 노새에 먼저 보냈다.

▲ 설명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채 양떼를 몰고 가는 여인이 이채롭다.
 
학교 사이를 지나 조금 높은 언덕에 이르면 이윽고 트레킹이 시작된다. 언덕에 올라서자 폭이 넒지 않은 빙하가 가로막는다. 타라싱 혹은 충파(Chungpha) 빙하로 펀잡 히말라야의 형제들인 라키오트(7,070m), 총라 서봉(Chongra West·6,476m), 총라 중앙봉(Central·6,455m), 총라 주봉(Main·6,830m)에서 내려오는 얼음길이다. 이 능선들은 북서쪽으로 휘어 고도를 낮추어 가다가 인더스강으로 들어간다.
▲ 파키스탄 인구 1억4천만 중 96.6%가 무슬림이다. 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어디서나 기도를 한다 (3,650m바진 캠프).
 
빙하상태는 청빙이 아닌 모레인 돌들이 얹혀 있어 걷기가 쉽지 않다. 빙하를 올라서고 모레인 지대에서 다시 빙하로 내려서는 가운데 한 떼의 양과 염소를 이끌고 가는 양치기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한 쪽에는 원색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이 지나간다. 물론 얼굴은 외면한 채다.

빙하 위 너덜지대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지루하고 뜨거운 지열에 쉴 곳이 마땅치 않아 햇볕에 달궈진 뜨거운 돌 위에 앉아 물통을 비운다. 이윽고 평평한 초지가 나타나면서 푸른 오아시스 마을 루팔(Rupal)이 기다린다. 보리 밀을 재배하는 완만한 경사 사이로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쌓은 돌담들이 있는가 하면, 돌담이 끝나는 자리에서는 그냥 꽃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벌판이 이어진다.
‘이런 표현을 혐오하지만, 그 말밖에 없다’

굽이굽이 계곡 몇 개를 지나치며 나무그늘 속을 파고들어 몇 번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바진(Bazhin·3,650m) 캠프사이트에 들어선다. 축구장만하다. 평평한 초지 위에 돌들이 간혹 있을 뿐 야영하기엔 아주 적격이다. 오른쪽으로는 깨끗한 물이 암벽 사이로 흘러 식수로도 훌륭하다. 구름에 덮인 낭가파르밧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주방과 식당캠프를 준비하고, 개인 텐트를 치고, 침낭을 해가 지기 전에 널어서 말리고, 모닥불을 지핀다. 오늘은 이상남 대원이 준비한 글렌피딕 18년생을 개봉하는 날이다.
▲ 바진 캠프에서 루팔 베이스를 향해 떠나는 대원들. 왼쪽 산허리를 돌아 언덕을 올라서서 바진 빙하를 넘어서 간다.

 

7월3일(목) 아침 5시30분 기상. 텐트가 밝아지기에 침낭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구름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청명한 날씨다. 초원은 물을 살짝 뿌려서 얼린 듯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캠프사이트에서 바라본 낭가파르밧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정상이 발갛게 물들어 오기 시작한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Good Morning, Sir! Milk Tea, Please.”
쿡의 따뜻한 밀크티 서비스로부터 하루 일정이 시작된다. 발갛게 물든 정상부가 걷히면서 그늘진 밑부분이 서서히 드러나고, 정상부는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흰 자태를 뽐낸다. 아! 정말 좋은 날씨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다크블루다. 어제만 해도 구름에 가려 정상부만 조금 보였었다. 혹시 오늘 기상이 안 좋아 정상이 안 보일 것을 대비해서 그런대로 쓸 만한 컷을 여럿 찍어 놓았다. 순간 옆에서 “형! 땡 잡았어!” 하는 박제혁 대원의 목소리가 들린다(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겠다는 제혁의 특이한 어법). 같이 밀크티를 마시며 “형! 여기”하며 권하는 게 있다. 우리 둘만 통하는 그것.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낀다.

▲ 영상 37~38℃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모레인 언덕지대를 오르내리며 루팔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헤르만 불이 낭가를 초등할 당시 베이스캠프에 이르는 코스는 바진빙하를 넘어 산허리를 왼쪽으로 끼고 멀리 돌아 독일과 일본대 등이 희생한 루팔벽 가까운 곳으로 나 있다. 헤르리히코퍼대의 베이스캠프는 연녹색의 여린 풀들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분지다.

낭가 일대의 베이스캠프들은 다른 히말라야와는 달리 대부분 시냇물이 흐르고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 자리 잡는다. 더 높은 곳에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낭가가 이 높이에서 갑자기 일어서듯 하늘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바진 캠프를 지나 꾸준히 오르면 이 자리에 도착한다.
▲ 정오가 가까워 오면서 산이 으르렁거린다. 햇살을 받은 얼음벽이 무너지면서 눈사태를 동반한 눈덩어리들이 흰 연기를 내뿜으며 계곡을 덮친다.
 
낭가파르밧 남벽은 지구 상 모든 산군 중에 가장 높은 벽이다. 그 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숨이 멎을 듯하다. 표고차 4,500m에 이르는 이 거대한 급사면 벽을 올려다보려면 머리를 뒤로 젖힐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아온 산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바꿔 말하면 이 산의 웅장함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그 유명한 남벽을 천천히 뜯어본다. 구름 한 점 티끌 하나 없는 사위에 청정의 본성이 묻어 나온다. 이 자리에서 불끈 일어선 위풍당당한 산을 정상부터 천천히 더듬는다. 버트리스, 단층애, 리페 현수빙하…. 그야말로 고산의 해부학 공부가 그대로 펼쳐진다.
▲ 하루에 25kg의 짐을 운반하고 8~10불을 받는 포터들.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나무를 주워 다가 불을 지펴 밀크티를 끓이고 차파티를 만든다.
 
엄청난 주봉. 그 아래로 4,500m를 잇달아 깎아지른 유일한 일직선. 그 앞에 서면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압도적이다. 어마어마하다. 이런 표현을 혐오하지만 여기서는 그 말밖에 쓸 말이 없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산이 으르렁거린다. 햇살을 받은 얼음벽이 무너지면서 눈사태를 동반한 눈덩어리들이 흰 연기를 내뿜으며 계곡을 덮친다.

이제 바진 캠프로 되돌아 가야했다. 다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모레인 지대를 지나간다. 양귀비꽃이 바람에 살랑거려 시선을 멎게 한다. 내려가는 길은 그래도 평화롭기만 했다.

 - 글·사진 / 조천용 한국산악회 자문위원·고려대 OB / 월간 산 [466호] 20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