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로키 트레킹 [8] *-
캐나다 로키 트레킹 / 밴프 국립공원 시타델 패스 (Citadel Pass)
짙푸른 야생화원에 펼쳐진 겨울 성채
캐나다 로키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밴프 국립공원은 겨울 레포츠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겨울철이면 눈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 다양한 형태의 레포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운힐 스키장을 찾아가면 되고, 보다 다이내믹한 활강을 원한다면 헬기를 타고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 순백의 버진 파우더(Virgin Powder)를 즐기는 헬리스키를 택하면 된다.
눈을 즐기는 방법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알파인 스키나 스노슈즈를 신고 설원을 가로지르거나 높은 산 정상을 목표로 걸어 오르기도 한다. 개썰매나 스노모빌을 타고 눈 위를 달리는 것도 신나는 일이거니와 꽁꽁 얼어붙은 폭포에서 오름짓을 즐기는 아이스 클라이밍도 또 다른 선택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겨울 레포츠 즐길 수 있는 밴프
밴프 국립공원 안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키 리조트가 세 개 있다. 루이스 호수 인근에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스키장이 있고, 밴프 도심 가까이에도 노퀘이(Norquay) 스키장이 있다. 그 중간 지점에 선샤인 빌리지(Sunshine Village) 스키장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연간 강설량이 10m에 이르고 캐나다에서 가장 눈의 질이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 1928년 태평양철도회사(CPR)에서 캐빈을 짓기 시작하면서 이 스키장에 밴프의 스키 마니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브루스터 여행사에서 시설을 매입하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개발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국립공원 지역의 스키장 확장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개발이 주춤거리긴 했지만,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시대적 요구를 거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겨울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두 다리만을 이용해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겨울철이 그리 달갑지 않다.
가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한겨울에는 만만치 않게 쌓이는 까닭이다. 길 위에 몇m씩 쌓여 있는 눈을 치울 방법이 없어 접근로를 아예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개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는 간선도로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로가 폐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산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노르딕 스키나 스노슈즈를 신고 눈 위를 걸어야 한다. 어쩌면 무거운 등짐은 기본이고 눈 위에서 야영을 하며 며칠이 걸리는 대장정이 될 수도 있다.
쿼츠 힐로 오르는 능선까지만 올라서도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겨울철 스키장으로 유명한 선샤인 빌리지는 아시니보인 산(Mt.Assiniboine·3618m)으로 가는 가장 보편적인 코스이다. 이 산은 캐나다 로키에서 여섯 번째로 높고 밴프 국립공원에서는 가장 높다. 그 생김새가 알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을 닮아 ‘캐나다 마터호른’이라 불린다. 밴프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라고 보면 된다. 아시니보인 산은 1884년 조지 도슨(George Dawson)이 원주민 부족들 간의 수(Sioux) 동맹에서 이름을 따와 명명하였다. 본래 의미는 ‘물 속에 뜨거운 돌을 넣어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참으로 특이한 요리법이 아닐 수 없다.
야생화 흐드러진 완만한 산길 이어져
아시니보인 산 아래까지는 하루에 다녀오기 어려워 대개 시타델 패스(Citadel Pass·2360m)에서 되돌아선다. 여기까지도 선샤인 빌리지에서 왕복 20km나 되는 거리이다. 시타델 패스는 시타델 봉(Citadel Peak·2610m)과 퍼티그 산(Fatigue Mountain·2959m) 사이에 놓인 안부를 말한다. 앨버타 주의 밴프 국립공원과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아시니보인 주립공원의 경계선에 있으며, 아울러 물줄기를 가르는 대륙분기점에 속하기도 한다.
시타델 패스에 이르기 전에 이미 공원 경계선을 두 번이나 넘는다. 산행을 시작해 1km 지점에서 처음으로 경계선을 넘어 밴프 국립공원에서 아시니보인 주립공원으로 들어서지만 눈치 채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다시 밴프 국립공원으로 되돌아온다. 이 경계지점에 무슨 특별한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지형적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선샤인 빌리지를 출발해 남쪽으로 뻗은 산길을 따라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낮은 구릉지대이지만 그래도 대륙분기점에 속한다.
시타델 패스로 이어지는 산길을 걷다 보면 감각이 무딘 사람도 이곳에 야생화가 유독 많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한 마디로 천상화원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다. 우선 선샤인 메도우(Sunshine Meadow)에는 무려 340여종이 넘는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야생화도 가끔 눈에 띈다. 웨스턴 아네모네(Western Anemone)는 눈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글레이셔 릴리(Glacier Lily)와 헤더(Heather), 물망초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또 야생화뿐 아니라 1년 내내 짙푸른 전나무 숲속에는 낙엽송(Larch)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낙엽송의 침엽은 가을이 되면 오렌지색으로 변해 잠시나마 산색을 일순간에 바꾸어 놓기도 한다.
기왕 야생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고산지역에 서식하는 야생화들의 치열한 삶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자. 바람에 살랑이는 야생화를 보면 우리는 그저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난 여린 꽃이 기특할 뿐이다.
하지만 야생화 한 송이가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지역은 연평균 강설량이 10m에 이른다. 한여름에도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을 정도이니 야생화들은 눈이 녹는 여름철에만 겨우 햇빛을 볼 수가 있다. 햇볕이 있을 때 얼른 자양분을 만들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씨를 뿌려야 한다. 어떤 야생화는 30~45일만에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어야 하는 처절한 운명 속에서 살아간다.
더디게 굴다가는 씨조차도 퍼뜨리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야생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에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식물은 꽃을 피우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산행기점인 선샤인 빌리지로 가는 길에 1번 하이웨이에서 이 캐슬 산(Castle Mountain)을 볼 수가 있다.
마치 성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반적인 산길은 평탄한 편이다. 오르내림도 그리 심하지 않다. 선샤인 메도우를 가로질러 쿼츠 리지(Quartz Ridge)에 오르면 사방의 경관이 탁 트인다. 호워드 더글러스(Howard Douglas) 호수를 지나야 작은 호수들이 점점이 박힌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이 1933년 등산객들에 의해 늑대 세 마리가 그리즐리(회색곰)를 공격해 물어 죽이는 희한한 광경이 목격되었다는 곳이다. 잔설이 남아 있는 완만한 구릉지대를 오르면 시타델 패스에 닿는다.
한결 가까이 보이는 아시니보인 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편히 앉아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아시니보인 산장에서 며칠 묵는다는 노부부의 배낭이 너무 작아 의구심이 일었다. 침낭 하나도 들어가기 어려운 크기였다. 그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인 즉, 숙식에 필요한 무거운 짐은 이미 헬기로 보냈다고 한다. 이런 방법이야말로 직접 자연을 즐기고 싶어 하는 노년층에겐 나름대로의 절충안이 아닐까 싶다.
Information / 시타델 패스 산행길잡이
산길
주차장에 있는 곤돌라 탑승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왕복 32km, 셔틀버스를 이용해 선샤인 빌리지로 오르면 왕복 20km의 거리를 걷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이용해 선샤인 빌리지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그럴 경우 등반고도는 약 200m이며, 소요시간은 왕복 7시간 정도이다. 선샤인 빌리지에서 남으로 뻗어있는 평탄한 길을 따라 걷는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사방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멀리 아시니보인 산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20여분 후에 길이 갈린다. 오른쪽 넓은 길은 락 아일(Rock Isle) 호수로 가는 길이고, 시타델 패스는 왼쪽 좁은 길을 따라 초원지대로 들어서야 한다. 그리곤 3km를 평지를 걷듯 선샤인 메도우 속을 거닌다. 빙하가 녹으면서 남겨놓은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쿼츠 힐(Quartz Hill)에서 뻗어 내린 쿼츠 리지를 지나면 호워드 더글러스 호수로 내려선다. 호수 동쪽에 조그만 야영장이 있다. 다시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걷다 보면 오른쪽에 시타델 봉이, 왼쪽에 퍼티그 산이 훨씬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에 있는 안부가 시타델 패스이다. 시타델 패스를 알리는 게시판과 공원 경계선 표식이 있어 쉽게 알 수가 있다.
찾아가는 길
선샤인 빌리지로 오르는 산행기점은 곤돌라 탑승장 뒤쪽에 있다. 이 지점부터 선샤인 빌리지까지는 약 6.2 km. 하지만 걸어 오르는 사람보다는 화이트 마운틴 어드벤처란 회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선샤인 빌리지까지 오르는 사람이 많다. 이 셔틀버스는 6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성인 한 명에 왕복 24불을 받는다.
- 글·사진 / 이남기 캐나다 통신원 / 월간 마운틴 2008년 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