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 창조경영 *-
르네상스 창조경영
창조경영의 길, 르네상스 시대에서 찾아라
‘창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왠지 경건해지지 않는가. 창조주의 고유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이 창조를 꿈꾸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가위눌렸다. 유일신 숭배 전통이 깊은 시대에는 ‘창의성’, ‘상상력’ 같은 개념이 제대로 없었고 이를 추구하는 선각자들은 이단자로 몰렸다. 히브리어의 동사 ‘창조하다’의 주어에는 야훼만이 쓰일 수 있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운 자태를 재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술의 역사에서 상상력의 산물인 추상화가 등장한 것은 10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스 문명이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된 덕분이다. 그리스인들은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등 수많은 신(神)들을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 신이 인간을 빚어냈다기보다는 인간이 인간 모습을 닮은 신을 창조할 정도였다. 그리스 문명의 속성은 르네상스 때 다시 살아난다. 당시의 천재들은 엄격한 교회 질서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발휘했다. 근대 이후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빛을 뿜는다. 비행기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누가 믿었겠는가. 라이트 형제의 발랄한 상상력과 강인한 추진력 덕분에 비행기가 발명됐다.
20세기에 과학기술문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창조 비슷한 일들이 줄지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만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노트북 컴퓨터가 창조되지 않았는가. 생명체를 만드는 도전도 시도되고 있다. 창조는 경영에서도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개선’, ‘혁신’보다 강도가 높은 ‘창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세기 접어들어서 ‘창조’가 더욱 강조되는 것으로 봐 앞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흐름인 듯하다. 2007년 이후 한국 재계에서도 ‘창조 경영’이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창조 경영의 선구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 전 하버드대 교수는 기술 혁신으로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변혁을 일으키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기업경제의 원동력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어떻게 하면 창조경영이 가능할까. 여러 경영인과 학자들이 그 노하우를 찾으려 고심한다. 그들은 숙고 끝에 저마다 비결을 제시한다. ‘르네상스 창조경영’은 그 비결 가운데 하나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이 이룬 성과를 분석해 창조경영의 비밀을 밝힌 책이다. 저자 2명의 프로필을 보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파트너인 듯하다. 경영학 지식을 제공한 최선미 연세대 경영학과 부교수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펜실베이니어주립대에서 3년간 강의했다. 2005년 귀국해 현재 연세대에서 서비스 오퍼레이션 분야를 가르친다.
인문학 분야를 집필한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 부교수는 연세대 신과대에서 학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힌두교 전공으로 석사, 에모리대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박사학위는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받았다. 10여 권의 신학 관련 저술 이외에 ‘카바라조: 이중성의 살인미학’과 ‘르네상스 명작 100선’을 출간했다.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등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기독교, 힌두교, 르네상스 미술 등으로 관심의 대상이 넓은 학자이다. 저자들은 부부 사이다. 저자 가족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중심지를 여러 차례 찾은 경험을 정리했기에 성실한 발품, 전문성에 바탕을 둔 통찰력이 한 데 어우러진 책이다.
멋진 사진과 그림이 사이사이에 있어 ‘읽는 책’과 ‘보는 책’ 양수겸장이기도 하다. 효율 극대화를 초점으로 삼는 경영학, 인간정신의 부활을 꾀하는 르네상스 인문학. 상극인 듯한 이 두 분야는 전문가 부부끼리의 애정 어린 대화 덕분에 통섭을 이루었다. 저자들은 “아마 5000년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강렬한 ‘창조성’의 기운이 분출했던 시기는 14~16세기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에 나타났던 르네상스 시대일 것”이라며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들이 4~5년 단위로 줄줄이 태어나 문학, 예술,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시스템화가 불가능’한 창조경영의 ‘예술적 시스템화’를 꾀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발견한 ‘창조경영의 10가지 법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라
미켈란젤로가 13세 소년인 1488년 때다. 화가 견습생인 그는 천재화가 마사초(1401~1428)가 그린 ‘세례를 베푸는 성 베드로’라는 그림을 보고 경악했다. 추운 겨울에 벌거벗고 찬물을 맞으며 세례를 받는 신자가 벌벌 떨며 베드로를 째려보는 장면이었다. 거룩한 의식을 모독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추우면 떠는 것이 인간의 본질 아닌가. 두툼한 털옷을 입은 베드로가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매우 평범한 진리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미켈란젤로가 발견한 것은 바로 르네상스 예술의 본질이었으며 또한 인간의 본질이었다. 이 책은 미켈란젤로의 이 발견을 르네상스의 출발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최고의 창조경영자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사에서 쫓겨난 후 절치부심한 끝에 아이팟을 개발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이성의 시대가 가고 감성의 시대가 왔음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이를 상품화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기술우위에서 벗어나 고객우위 쪽으로 접근했다. 그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창조경영에 적용시킨 결과이다.
이 책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남들이 읽지 않는 책 읽기 △무작정 싸움 걸기 △실패의 위험 무릅쓰기 등을 시도하면 좋다고 추천했다. 독서와 관련, 경영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틀에 박힌 책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 좋다. 예를 들면 ‘향수’라든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 창조적 영감이 증대될 것이다.
2.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무장하라
초월적인 존재를 믿으면 창조성이 향상된다. 유대인들의 우수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유일신, 즉 야훼라는 절대자를 신봉한다.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신을 믿으니 상상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적 인간이 되기 위해 모두 신앙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지적대로 종교가 강요되면 오히려 상상력을 죽일 수 있다. 초월적 사고를 통해 고양된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경영자는 부하직원들에게 경외감을불러일으킨다. 경영자와 관리자는 혼자 있을 때 초월적 존재를 명상하고 자기가 운영하는 기업의 목표가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생각하면 좋다. 또 가급적 일일일선(一日一善)을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3. 고정관념을 해체하라
전 세계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구글이 등장했을 때 이 시장은 레드오션 상태였다. 야후 등 기존 업체들은 배너 광고, 다른 사이트로의 링크 등으로 수익을 냈다. 구글은 배너와 링크를 없앴다. 구글의 초기 화면은 깨끗해서 다른 검색 사이트와 차별화되었으며 빠른 인터페이스 전환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고 빨리 찾아준다는 구글의 원칙은 수익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고정관념을 해체시킨 결과이다. 현재 구글은 2003년과 대비해 28배의 순수익을 올린다. ‘혁신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 해도 급변하는 시장에서 생존할 확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지나치게 앞서가면 실패한다.
4. 천재들의 창조력을 후원하라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 시대의 황금기를 열었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들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1400년경부터 시작해서 1748년까지 지속됐다.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는 메디치 가문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 인물이다. 그는 피렌체를 23년간 실질적으로 통치하면서 이탈리아 중심 공국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궁으로 초청해 2년 동안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하며 후원했다. 창의적인 인재들은 대체로 통제 받는 것을 싫어하고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 받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창의적인 인재들에게는 ‘유연한 관리’를 적용하면 좋다고 권고한다.
5. 열정적으로 모방하라
천하의 미켈란젤로도 ‘라오콘’을 보고 조각 기법을 배웠다. 1506년 라오콘 군상 조각이 로마에서 발견됐을 때 완벽에 가까운 미학적 구조에 모두들 감탄했다. 미켈란젤로도 마침 발굴 현장에 있었다. 라오콘의 오른 팔은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됐다. 오른 손을 복원하기 위한 공모전이 열렸는데 미켈란젤로도 응모했다. 심사위원장은 라파엘로였다. 미켈란젤로는 원작품의 오른 팔이 뒤쪽 어깨쪽으로 굽어져 있을 것으로 보고 만들었다. 다른 조각가들은 허공을 향해 치솟는 포즈로 만들었다.
이 공모전에서 미켈란젤로는 입상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1957년 라오콘의 오른 팔이 로마에서 발굴됐다. 놀랍게도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과 흡사했다. 당시에 미켈란젤로는 비록 낙선했지만 라오콘을 모방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면도기 회사 질레트의 연구실 직원들은 아침에 면도하지 않고 출근한다. 회사에서 면도하는데 얼굴 절반은 자사 면도기로, 나머지는 경쟁사 면도기로 한다. 상호 비교를 통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모방을 통해 창조하려는 노력이다.
6. 최고를 향해 경쟁하라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경쟁을 벌였다. 미켈란젤로가 숨진 후 박학한 예술가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다비드상이 가분수인 점을 간파한 엘 그레코는 ‘성 로렌스의 환상’이란 자신의 회화에서 미켈란젤로를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가 작고 몸집이 큰 인물을 그렸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내면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등극하겠다는 열망은 창조성을 자극하는 촉매제이다.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의 창업자 이본 쉬나르는 “우리는 바지든, 셔츠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세계 최고품을 만든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7. 창의적 인재를 발견하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천재 화가 엘 그레코의 재능을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엘 그레코가 국왕의 초상화를 시범작으로 그려 바쳤는데 이탈리아 양식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궁중화가로 등용하지 않았다. 엘 그레코는 크게 낙담하여 지방도시인 톨레도에 칩거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창조경영을 위해 기업내에 창의적 인재들이 소수의 집단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좋다. 독립부서 형태나 태스크포스 형태 어느 것이든 괜찮다. 분산된 개인의 창의력이 집단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 틀을 만들라는 것이다. 창조적 보헤미안을 끌어안을 수 있는 관용의 경영이 필요하다.
8. 다양성을 인정하라
르네상스 시대엔 여러 도시가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은 저마다 자부심을 갖고 선진 문화를 가꾸었다. 해양 무역도시를 구축한 베네치아는 일찍부터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와 상거래를 하고 종교 토론도 비교적 자유스럽게 진행됐다. 이런 특성이 베네치아 번영의 원동력이었다. 문명사를 살펴보면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나라가 융성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특정 주제를 논의하면 창의성이 발현된다. 미국 국방부의 로널드 카디시 장군은 부하들의 창조성을 위해 주기적으로 팀원을 보충하거나 전출시켜 다양성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는 조직 창의성을 위해 구체적인 조언을 해달라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자의 요청에 “사람들을 뒤섞어라”고 대답했다.
9. 몰입의 환경을 구축하라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는 서양 미술사의 최대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성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 회의인 콘클라베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천장벽화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교황은 화가로 미켈란젤로를 지목했다. 그때까지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여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은 막무가내로 미켈란젤로를 밀어붙였다.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자 다혈질인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언제 완성되는가?”하고 다그쳤다. 미켈란젤로가 “제가 끝낼 수 있을 때”라고 무뚝뚝하게 대꾸하자 화가 난 교황은 지팡이로 미켈란젤로를 마구 두들겨 팼다.
미켈란젤로는 독촉에 못 이겨 피렌체로 도망갔다가 붙들려오기도 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달래려고 두둑한 선물을 주기도 하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어쨌든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작품 제작에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 결과 대작이 완성된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직원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20세기 산물이다. 21세기 창조경영 시대에는 의사결정권과 책임권한을 적절하게 아래로 위임하며 직원들이 내재적 동기로 업무에 몰입하도록 해야 한다.
10. 적절한 여가와 보상이 필요하다
1505년, 미켈란젤로는 로마를 떠나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카라라에서 6개월간 머물렀다. 고독한 명상과 휴식에 빠졌다. 그는 채석공들이 산 정상에서 잘라내는 대리석 덩어리를 바라보며 앞으로 자신이 만들 조각상 인물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창조성이 뛰어난 인물은 때로는 게으르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일 중독을 경계한다. 창조성은 즐겁고 행복한 기분 속에서 진작된다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생리학자이자 창조경영 전문가인 마이클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저서 ‘생각의 탄생’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력이 뛰어난 천재들의 창의성을 13가지 ‘생각의 도구’로 정리한 바 있다. 천재들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 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을 통해 창조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창조경영은 천재 한 사람이 “유레카”라 외치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경영자의 헌신적인 뒷받침에 의해 산출되는 결정체인 셈이다.
저 자 / 최선미, 김상근(연세대교수) / 2008년 출판 / 260P / 가 격 ₩ 15,000
리 뷰 / 고승철 전문기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