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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4구간(매요리-중재) 산행기 *-

paxlee 2008. 9. 20. 22:35

 

                        백두대간 4구간(매요리-중재) 산행기

 

[매요리-(3.3)-사치재-(2.93)-새맥이재-(1.4)-시리봉-(3.38)-복성이재-(4.11)-봉화산-(7.73)-중재]
         
 11시에 서초 구민회관 앞 출발시각에 늦지 않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갈 차량은 작은 버스였다. 먼저 온 일생이 다 타고 있었다. 대부분 평소 산행을 같이 했던 분들이다. 차내에서 인사를 나누고 11시5분 출발했다. 마치 임무를 부여 받은 특수부대원인양 잠 잘 시간에 산행길을 나서고 있었다. 이 밤중에 멀리 있는 그곳까지 가서 야간 산행을 시작할 마음을 먹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야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평소 산행때와 다른 긴장감이 수반되기도 했다. 야간 산행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일출을 보기 위해 깜깜한 새벽에 토암산을 오른 때가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88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새벽1시58분 차가 함양휴게소에 도착했다. 하늘을 올려보니 구름 사이로 반달이 보였다. 비가 올거라는 예보를 들은바 있어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함양에서 식사를 하고 간다고 하는데, 그 시각에  밥이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산행에 대비해 우동을 시켜 국물만 먹었다. 2시 49분 지리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 인월쪽으로 갔다. 인근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가 있어 전에 몇 차례 온 일이 있었다. 3시 3분 산행을 시작할 지점에 도착했다. 잠을 깨워 화가 났는지 여러마리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숲속에서는 두견새 특유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3시 10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헤드 랜턴이 마치 도깨비 불 같았다. 나도 난생 처음 낯에 구입한 헤드 랜턴을 착용했다. 우리가 내린 도로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통해 산행을 시작했다. 백두대간 종주 구간임을 표시하는 표지판이 입구에 서 있었다. 어둠길을 헤드 랜턴이 비춰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둠다움을 느낄 수가 없어 해드 랜턴을 껏다. 점차 어둠에 적응되면서 고향에서 밤길을 걷던 때가 생각났다. 숲 너머로 인월 방향으로 도시 불빛이 보였다. 우리가 시작한 산행길은 비교적 완만했다.

 

20여분 지난 후 가산(618M) 봉우리를 넘어 다시 완만한 길을 걷게 되었는데 들리던 두견새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다 들리지 않았다. 다시 10여분쯤 지난후 고개를 넘어가다 발디디기 거북한 돌무더기를 만났으나 그곳을 지나자 다시 완만한 산길이 되었다. 3시 55분 88고속도로를 만나 횡단했다. 그리고 횡단 지점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시작하고 조금 있으니 인솔을 맡은 이명철 건축사가 금새 다시 출발한다고 했다. 4시 5분에 출발해 어두운 길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본격적으로 험산의 행로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위쪽으로 오르니 주변으로 시야가 터져 다시 고속도로 주변이 휜이 보였다.

 

위쪽 주변에는 군락을 이루 듯 고사목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소백산 정상 부근의 모습과는 달리 산에 화재가 나서 그렇게 된 듯 했다. 4시17분 오르던 봉우리 정상(697M)에 섰다. 고속도로와 인월 방향의 도시 불빛이 보였으며 지리산 휴게소도 보였다. 새벽에 습기가 눅눅히 베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능선길을 걸어갔다. 4시 45분 시리봉(776.8M)을 지나 내리막길을 걸어가니 조금 넓은 길이 나왔다. 거기서 다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갔다. 점차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부리 쪼는 소리 등이 들렸다.

 

여명이 밝으며 우리가 지나는 주변 숲의 표정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에 원추리, 취나물, 맹감나무 등이 모습과 두더쥐가 굴을 파고 지나간 흔적도 보였다. 5시 30분 새맥이재서 휴식을 취한 후 오르막 숲길로 접어들었다. 상석, 비석 등을 정교하고 기품 있게 세운 묘지를 지나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숲길을 걸었다. 다시 오르막길을 오를 때 앞쪽으로 보이는 산세가 맑은 연두 빛깔을 띠며 해밝게 보였다. 잠시 후 평평한 헬기장에 당도했다. 그런데 점차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앞쪽으로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뒤틀린 소나무 숲이 보였다.

 

아직 날이 훤히 새지 않은 새벽에 안개 사이로 보이는 그 모습이 색다른 조형감을 띠었다. 길을 가는 동안 곳곳에서 길을 알려주기 위해 달아 놓은 표지들을 보게 되었다. 내려가다 다시 오르막 길을 걸었다. 앞서가는 이명철 건축사가 안개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안개가 더 촉촉해졌다. 나무가 습기를 머금어 바람결에 흔들릴때 나무에 이슬처럼 맺혔던 물방울이 비처럼 떨어졌다. 그것을 보면서 비가 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일행은 한동안 묵묵히 산길을 걸었다. 날이 흐려 길은 더 어둡게 보였다. 그래도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색다른 모습이 눈에 띠었다.

 

길가에 버섯이 헬기장 표시하듯 열지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는 분재한 듯 밑둥부터 여러갈래 줄기로 자란 소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큰 판석을 세워 놓은 듯한 병풍석 옆을 지나기도 했다. 병풍석을 지나 산등성에 오르게 되어 시야가 훤해졌다. 하지만 짙은 안개가 끼어 운해만이 펼쳐 보였다. 조금 지나 시야가 트인 완만한 능선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길로 조금 가다 철쭉군락이 있는 곳을 지났다. 키 작은 군락식물은 멀리서 볼때는 그냥 능선으로 보이지만 막상 당도하면 장애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빽빽한 철쭉 사이로 마치 터널처럼 생긴 길을 지났다.

 

그런 곳은 그 가지에 얼굴이 긁힐까봐 조심스럽기도 하고 시야가 막혀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곳을 벗어나니 앞이 훤히 트였다. 잠자리 때가 무리지어 날고 있었다. 6시 4분 다시 휴식을 취하고 6시 19분 출발했다. 평평한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번갈아 걸었다. 숲 속 길을 지날 때는 비교적 길이 완만했다. 그러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나면 다시 시야가 트이고 우리가 걸어갈 산이 보였다. 숲속 길가에 뱀딸기가 요염한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독이 있어 먹지 못한다. “대자연속으로라“는 성산고 동문회가 매달은 표지가 그들의 마음을 읽게 했다. 다시 평평평한 길이 나왔다.

 

주변에 너르게 깔려 있는 갈대숲을 지나가는 동안, 갈대 밑둥에 머금은 이슬 같은 물방울과 빗방울에 튀겨 갈대 밑둥에 묻어 있던 흙이 신발을 젖고 얼룩지게 만들었다. 6시 30분 아막성터에 도착했다. 부숴져 널부러진 성곽돌이 그곳에 성이 쌓여져 있었던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쪽에 마치 원래 성곽 일부가 남아 있는 것처럼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는데, 그것은 근래 누군가 널부러진 돌을 모아 쌓은 것 같았다. 그 부근을 지날때까지 오른편으로는 쭉 전북 아영면 일대와 저수지가 보였다. 그런데 아영면은 흥부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조금 더 가서 복성이재가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당도하였다 그런데 그 곳도 여전히 아막성의 흔적이 보였다. 길 옆에 그 성의 유래를 적어 놓은 표지판이 서 있었다. 아영고원 줄기에 자리 잡은 이 성은 신라와 백제 사이 영토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으로서 둘레 길이가 633M 라고 했다. 조금 가니 성 터 아래로 백두대간을 횡단해 지나가는 길이 보였다. 돌무더기를 밟으며 경사지를 내려가 6시 46분 길에서 휴식을 취했다. 성리(흥부마을)는 경상남도 쪽으로 1.5Km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갈 봉화산까지는 4,2Km가 남았다.

 

출발때부터 3시간 반이 더 지난 무렵이라 일행 모두가 시장기가 느껴지는 듯 매실주, 막걸리, 감자 부침개등을 꺼내 나눠 먹었다. 6시 58분 다시 그곳을 출발해 산길을 걸어 올랐다. 7시 4분 다시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소로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길에 대문을 만들어 놓아서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다시 그 곳을 지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 7시 7분 복성이재에 당도했다. 복성이재는 남원군 산동면과 아영면을 있는 길이었다. 거기서 성암마을이 7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일행은 조금 더 가서 아침 먹기로 했는데 이대장이 라면 끓일 물이 부족할 것 같다며 수통에 물을 담아가자고 했다.

 

작은 안내 표지에 10분 정도 떨이져 있는 식당이라고 써 놓았다. 2명이 나사서 물을 길러 오기위해 떠난 동안 일행은 거기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일부는 앞서가다 만나자고 하며 먼저 나섰다. 길 옆에 이정표에 사치리 7,2Km 중치 12.1Km로 쓰여 있었다. 물 뜨는 곳이 10분 거리라는데 시간이 자나도 기척이 없자 누군가 신호하기로 한 피리 호각을 불었다. 그랬더니 가까이서 금새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7시 41분 다시 산길을 들어섰다. 잠시 후 제법 경사가 급한 산길을 오르게 되었다. 산행에서 휴식을 취할 때 너무 길게 쉬면 다시 걸음이 팍팍해진다.

 

거름기 많은 까만 흙으로 덮인 산길 가운데서 잎이 피어나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벗어나니 다시 완만한 길이 되었다. 앞쪽을 보다 예전에 내가 설계해준 천문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의뢰한 장춘엽씨와 부지 답사를 와 본 일도 있었는데 도면만 받아가고 연락이 없어서 지어진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왔었는데 지어진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시공 과정에서 내 의견을 반영해 제대로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구상이 실현되어 이번 산행에서 보게 된 것이다. 7시 52분 수풀 속을 지나 긴 능선이 펼쳐 보이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길 옆에 패랭이 꽃이 귀하게 피어 있었다.

 

잠시 후 경사길을 올라가니 봉우리 위에 설치된 헬기장이 나타났다. 앞서가는 일행이 그 길에서 숨바꼭질 하듯 나타나다 숲에 묻히다 했다. 높은 지대라는 것을 착각할만큼 완만하게 연결된 구릉진 산세가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산행에 나설 때 바라던 마음과 같이 산과 일치된 평온한 느낌이 느껴졌다. 산에 10분 쯤 더 지나가다 이번에는 보기 드문 어름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식물들을 보면 더 반갑게 느껴진다. 7시 53분 우리가 선 봉우리 정상에서 멀리 봉화산이 보였다. 그 앞으로 나갈 동안 철쭉 군락이 많았다.

 

대간 길을 가는 곳곳에는 산행 표지가 한꺼번에 많이 늘여져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 옆에 있던 일행이 그것이 마치 당집 같아 보인다고 했다. 다시 시원한 능선길을 걸을 때 뒤돌아본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우리가 걷는 길 주변에 산이 끝임 없이 흩어져 있었다. 자연의 의지대로 기가 흘러 생긴 모습들이다. 고개길을 지나 8시 13분 삼거리에 당도했다. 우리 일행은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박기현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 회장, 정명옥 대한 건축사협회 부회장, 최진 건축사부부, 이명철, 차종필, 강성택 건축사와 박정호, 차정민 사장과 내가 자리에 둘러앉았다.

 

잡곡밥과 불고기와 상추쌈 고추, 오이를 된장 고추장에 곁들이고 갓김치와 라면까지 푸짐한 아침에다 구수한 커피까지 넉넉한 식사를 마쳤다. 9시 3분 다시 길을 나섰고 13분 후 꼬부랑재를 지났다. 9시 47분 봉화산 가까이의 능선길을 걸어가는 동안 상쾌한 산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10시2분 봉화산 정상(919.8m)에 당도했다.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주변 산세가 다 내려다 보였다. 정상임을 표시하는 표지석 앞에서 돌아가며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나아갈 광대치쪽 산세도 휜히 보였다. 10시 13분 다시 출발해 억새 군락 사이로 완만하게 난 능선길을 따라 걸었다.

 

좌측으로 희멀겋게 보이는 큰 산이 산맥을 이으며 서 있었다. 오늘 코스를 오는 동안 주변에는 푸른 능선이 가깝고 멈에 따라 그 능선이 연녹색이나 희멀건 푸른 색 등 갖가지 색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주변 풍경을 보며 평소 우리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고 깊은 산중에 있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야말로 영혼의 안식처가 될 것 같았다. 10시25분 길이 가로질러 가는 옆 공터에 도착했다. 광대치까지는 4.0Km 그리고 중재까지는 3.2Km라고 되어 있었다. 다시 앞산을 오르니 우리가 갈 방향과 지나온 능선이 앞뒤로 펼쳐보였다.

 

보통 하나의 산을 찾아가는 산행과 달리 백두대간 코스는 산과 산으로 이어진 멀고 긴 구간을 순례하듯 가는 것이다. 산과 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우리가 나갈 방향으로 보일 듯 말 듯 아스라이 보였다. 옆에 있던 이명철 건축사가 남덕유산일 것 같다고 했다. 숲속을 지나 다시 완만한 철쭉군락길을 지나갔다. 오늘 코스에서는 멀리서 보면 산봉우리 같지만 철쭉 군락이 형성되어 있어서 터널같은 길을 지날때가 많았다. 그리고 다시 숲 길을 지나 10시52분 평평한 바위가 있는 산봉우리에 당도했다. 일행은 그늘을 찾아 쉬었다. 하지만 바람이 없는 것을 아쉬워 했다.

 

11시 20분 우리가 지나온 산이 뒤로 보였다. 오르고 있던 산길의 경사가 급하고 긴 편이서서 그 곳을 지나는 동안 힘이 들었다. 그런 구간에서는 봉우리에 오를 때까지 그냥 묵묵히 견디며 걸어야 한다. 산행을 하다 힘이 들 때면, 우리가 걷는 길에 나무 말뚝을 박거나 해서 걷기 편하도록 길을 닦은 사람을 생각한다. 그냥 걷기도 힘든데 여기까지 재료를 운반해서 작업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면 참을 마음이 더 생긴다. 그런데 산행에서 힘이 들면 마음속 거리를 좁히려는 심리가 되기도 한다. 11:39분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다시 구름이 많아져서 기온이 한 낯의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었다. 

 

그곳에 세워진 이정표에 봉화산 4.7Km, 중치 3.2Km, 광대치는 0.9Km 라고 쓰여 있었다. 앞서가다 쉬고 있으니 뒤에 오던 일행이 하나둘 도착했다. 그러나 모두 거기가 월경산이 아닌 것을 알고 실망하였다. 실망한 대원들이 마치 농성 하듯 하였으나 이내 각자의 마음들을 스스로 달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일행이 마음을 삭이려는 듯 "가야해".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오늘도 걷는다마는" 등의 유행가 제목을 한가지씩 끄집어냈다. 광대치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었으나 두어번 오르락 내리락 했다. 12시5분 광대치(820M)에 도착했다.

 

잠시 멈춰서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다시 우측 길로 올라 중치(중재)를 향해 갔다. 12시 20분 약초 시범 재배지를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곳에 당도하였다. 거기서 좌측으로 철망을 끼고 평평한 길을 걸어갔다. 철망 둘레가 1500M라고 쓰여 있었다. 12시30분 월경산과 중치 가는 삼거리 분기점에 도착했다. 거기서 중치 1.9Km 광대치 1.3Km가 남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달리 시간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30여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나중에 도착한 일행과 더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1시5분 하산을 시작했다. 마지막 하산길이었다. 소나무가 밀식되어 곧게 하늘로 솟구쳐 자라고 있었다.

 

중재 가까이 내려가는 동안 숲 사이로 다음 구간에 오를 산이 멀리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1시 37분 중재에 도착했다. 야간산행을 시작하여 매요리에서 중재까지 백두대간 4구간 코스 산행을 마쳤다. 앞 쪽으로는 다시 계속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보였다. 산길을 한참 걸어 마을로 내려오니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왔다. 그 길을 내려오니 마을에 우리가 타고 온 차가 보였다. 빨강색이서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뒤에 오고 있는 일행이 다 당도하자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먼저 내려온 일행이 길 옆 계곡에서 탁족을 했다. 맑고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그니 피로가 쏵 가시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 한편으로 마음이 급했다. 사정을 말하니 뒤풀이를 서울 가서 하기로 하고 바로 가자고 했다. 기사님이 차 안에 준비해 논 시원한 맥주를 꺼내 돌려 마실 수 있어서 바로 위안이 될 수 있었다. 2시35분 서울로 출발했다. 우리가 지나온 산으로부터 흘러내린 하천이 길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길가 가게에 들러 시원한 맥주와 안주 등을 샀다. 미리 준비된 고추장과 풋고추도 있어서 차내에서 임시 뒤풀이 분위기가 되었다. 잠시 후 함양 시내를 지났다. 주변의 상림은 최치원이 함양고을 관리로 있을 때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방재림으로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조림이다. 6시14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버스 전용차로제가 시행되는 시각이어서 막힘없이 빨리 올라오게 되었다. 6시 40분경 양재역에 내려 급히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인사를 나누고 먼저 귀가했다.         (김석환07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