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

paxlee 2008. 9. 26. 07:11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에 대한 불후의 현답이다. 지금은 산악인들이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새기고, 경전처럼 외우는 명언이 되었지만 본디는 조지 맬로리가 귀찮아 내뱉은 말이었다. 그 태생을 알고 보면 실소를 자아낸다.


  에베레스트 원정에 세 차례 도전한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로리는 192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 강연회를 마친 후, 한 여인으로부터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왜 그렇게 위험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죠?”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강연회의 요지였다. 그런데도 여인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뜬금없이 질문을 한 것이다. 순간 짜증이 난 맬로리는 “그것이 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아무렇게나 대답해버린다. 맬로리가 말한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에베레스트를 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맬로리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한 말이 오늘날 모든 산악인이 산을 오르는 이유가 되었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로 산에 오른 지 여러 해. 문득 등반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마침맞게 세계 등반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 우리나라 최초로 발간되었다. 이용대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이 펴낸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가 그것이다. 초판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는 책을 구입했다. 그게 2007년 9월의 일이다.


  구입한 뒤 1년 넘게 버려두었던 그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진정한 의미의 등산을 뜻하는 알피니즘의 초기 태동기에서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200년 등반 역사를 총망라한 책은 마치 학부의 전공과목 같았다. 강의실 문을 여는 심정으로 여러 날 책을 펼쳤다. 최소한 ‘F학점’은 면해야겠기에.


  일견 딱딱할 수 있는 책 강의가 지루하지 않았다. 설산 등반의 역사, 그에 얽힌 얘기들을 옛 자료와 비경 사진들과 함께 담은 탓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비롯하여 알프스와 안데스, 록키, 아프리카 등 지구 전역의 거봉들과 거기에 도전한 사람들의 얘기를 유장하고 재미나게 엮었다. 책이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근대적 등반, 즉 알피니즘의 시초는 1786년 8월 8일 몽블랑 등정이다. 인류가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등정함으로써 마침내 근대 등반의 문이 열린다. 인간 한계를 극복하고 감히 신의 영역에 오른 역사적인 인물은 의사 ‘미셸 파카르’와 수정 채취꾼 ‘자크 발마’다. 이들이 몽블랑 등정에 나선 이유는 소쉬르가 내건 희대의 현상금 때문이었다.


  1760년 어느 날 스위스의 자연과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프레방(2526m) 산에 올라 맞은편에 우뚝 솟은 몽블랑(4807m)을 보고 그 장엄함에 감동한다.

  ▲ 몽블랑

  이에 몽블랑 등정을 결심하고 “누구든지 이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다. 그는 이제까지 아무도 오르지 못한 신비스러운 이 산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몽블랑이 파카르와 발마에 의해 초등된 것이다. 초등 이듬해인 1787년 소쉬르 자신도 몽블랑 재등정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근대 등반의 아버지’로 등극한다.


  이후 책은 융프라우, 마터호른, 그랑드 조라스, 아이거 등 알프스 고봉들에 도전한 소쉬르, 윔퍼, 틴들, 스티븐, 그리벨 등 걸출한 인물들 얘기를 한 편의 영화처럼 웅장하게 그려낸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을 가리키는 ‘알피니즘’이란 말은 이때부터 알프스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진다.


  알프스 몽블랑 등정으로 시작된 근대 등반은 1865년 알프스 4000미터 급의 마지막 산인 마터호른이 초등되기까지 무려 79년간 지속된 영욕의 알프스 등반 황금시대를 마감한다.


  그리고 1881년 새로운 등반 사조가 등장한다. 머메리에 의해 제창된 이른바 등로주의를 추구하는 머메리즘이다. 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르는 것이 등정주의라면 ‘더 험한 루트’인 벽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게 등로주의다. 그것은 등반 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었으며, 벽 등반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인공 등반의 총아로 칭송받는 피톤과 카라비너가 철시대로 불리는 ‘벽 등산 시대’에 개발되었다.


  “등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상에 오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며 새로운 등산이념을 탄생시킨 머메리는 1895년 6월 낭가 파라바트 등반 도중 눈사태로 사망한다. 인류 역사상 첫 8000m급 거봉 도전이었고, 히말라야 등반의 첫 희생자였다. ‘모든 세대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산악인’으로 칭송받았던 등반사의 일대 반역아 머메리는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아홉이었다.

 

  책은 알프스 등반 황금기와 은시대를 마감하고 대륙별 최고봉을 지나 마침내 히말라야 거봉 등반사로 옮겨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 막히는 순간의 연속이다. 영국이 9번의 도전 끝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정상을 밟는 불굴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는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인류가 지구상 최고봉에 첫 발자국을 남긴 날이다. 그 역사적인 주인공은 애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다. 이로써 힐러리와 텐징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최초의 인간으로 영원히 기록되고, 텐징이 정상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매단 피켓을 높이 쳐들고 서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은 등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남는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은 영국이 1921년부터 1953년까지 32년 동안 9차례나 도전한 끝에 이룩한 쾌거이며,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발견된 지 100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15명의 목숨이 이 산에서 희생되었다.


                                 ▲ 에베레스트
    


  우리나라는 1977년 9월 15일 고상돈 씨가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8번째의 에베레스트 등정 국가로, 고상돈은 57번째의 등정자로 기록된다.


  인류의 8000미터 14봉 도전의 역사는 1950년 안나푸르나로부터 시작하여 1964년 시샤팡마에 이르기까지 14년에 이른다. 8000미터 거봉 초등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고, 알프스에서 그랬듯이 히말라야에서도 등로주의 거벽 등반으로 전환되며 슈퍼 알피니즘 시대를 연다.


  알파인 스타일, 무산소 등반, 속도 등반, 단독 등반, 동계 등반, 연속 등반, 종주 등반, 개인의 14좌 완등, 최고령 등반 등이 그것이다. 예전엔 상상조차 거부됐던 등반들이다. 최첨단 등산장비의 발달과 축적된 등반기술, 정보 등이 이를 가능케 한다.


  "등반의 역사는 도전과 극복의 역사다”


  단 한 줄의 이 말은 책의 첫 문장이자 책의 내용을 압축한 말이다. 앞으로도 인간한계를 뛰어넘는 알피니즘의 등반 역사는 계속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일이지만 초등학생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평범한 산꾼이 백두대간 종주하듯 히말라야를 종주하는 시대가 머잖아 올지도 모른다. 산이 거기에 있는 한.

 - 산 그리고 책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