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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7구간 (송계삼거리-소사고개) 종주 산행기 *-

paxlee 2008. 9. 28. 23:23

 

                        백두대간 7구간 (송계삼거리-소사고개) 종주 산행기

 

백암봉(송계삼거리)-(2.75)-귀봉-(0.34)-횡경재-(1.15)-싸리덤재-(0.51)-지봉-(1.2)-

달음재-(1.11)-대봉-(3.96)-빼재-(4.35)-삼봉산-(3.1)-소사고개

 

 6시 30분 천호역에 도착했다. 이명철 대장과 정병섭 건축사 사모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잠시 후 최진 회장과 이사장님이 차를 갖고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조금 후 채총무도 도착하여 함께 출발했다. 다시 경부고속도로 죽전 정류소로 가서 박정호 사장을 태우고 지난번 우천으로 다 마치지 못했던 송계삼거리서 신풍령까지를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진고속도로(대전진주간)로 접어들어 8시 35분 인삼랜드 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고 가다 9시 42분 무주리조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지난번 앉아 쉬던 목재 계단을 지나 리프트 타는 쪽으로 올라갔다. 리프트 승강기 주변으로 넓게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일행은 거기서 송계삼거리로 가기 위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리프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걸어서 올라가는 등산객도 눈에 띠었다.

 

9시 50분 위쪽 승강장에 도착해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 10시에 향적봉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일찍 올라온 사람들이 정상석 부근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주변이 조망되는 모습을 병풍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송계삼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향적봉 바로 아래에 있는 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는 완만한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봉을 넘으니 구릉진 덕유평전이 시야에 넓게 펼쳐졌다.

 

천상의 화원길이라고 부르는 그곳에 가을이 찾아와서 추색을 띠어가고 있었다. 조릿대 철쭉등 관목 군락이 양탄자를 깔아노은 듯 가지런히 산을 덮고 있었다. 안개가 끼어 호쾌한 시선은 펼쳐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기분을 느끼며 지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송계삼거리에 도착했다. 거기서 남덕유산은 12.7km, 신풍리까지는 11km가 남아 있었다. 지난번 아들이 배탈이 나 삿갓재서 바로 내려갔던 이사장님은 따로 무룡산까지 다녀와서 차를 갖고 신풍령으로 오겠다고 했다.

 

11시 8분 지난 구간에 이어 신풍령쪽으로 백두대간 종주에 돌입하였다. 지난번 송계삼거리 (백암봉)까지는 백두대간으로 접어드는 과정이었다. 서울 출발 때 오늘 산행이 지난번 다 마치지 못한 구간을 땜빵하는 일정인 것이 기분을 조금 김빠지게 하였지만 백두대간 길로 들어서자 본래 목적에 또렷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내리막길을 걸어 숲으로 들어섰다. 부스러진 낙엽이 썩어 길의 흙 색깔이 까만색을 띠고 있었다. 산길을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걷는 동안 점점 걷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초록 일색이었던 숲의 빛깔이 바뀐 계절을 따라 달라져 있었다. 숲이 드문드문 다채로운 단풍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길에는 주변의 떡갈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널려 있었다. 번잡하고 무표정한 도시에서와 달리 산에서는 변화가 직접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많은 시간이 금새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행은 혼자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산길을 걷게 된다.

 

일행이 있다 할지라도 걷기의 순간순간은 혼자 걸으며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게 된다. 나로서는 산행에서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하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흐린 날이 많았다. 9월에 비가 온 날이 기상 관측이래 가장 많은 해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장마 때 고대하던 쾌청한 가을 날씨를 접하지 못했다. 오늘도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였다. 하기야 산세가 큰 덕유산 부근은 전국이 맑은 날씨에도 구림이 끼고 비가 올 때가 많다고 들었다.

 

11시 23분 작은 봉우리를 지나 다시 참나무 숲길을 걸어갔다. 아까보다 더 굵은 도토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산에 사는 동물들의 요긴한 식량이 될 것 같았다. 11시 45분 다시 언덕 같은 능선을 지나는 곳은 큰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 걷던 이대장이 100년쯤 되어 보인다고 했다. 산길은 여름철에 비해 낙엽이 지면서 공간이 더 트여 보였다. 패인 진흙 길에 등산화가 미끄러진 자국이 줄을 그은 것처럼 보였다.

 

다시 봉우리 능선을 지나 내려가 11시 53분 황령재(1350m)에 도착했다. 거기서도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눅눅한 날씨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막걸리 가져온 사람 있으면 한 모금 마시고 가자고 했다. 박정호 사장이 갖고 온 막걸리 한 통을 꺼내어 나눠 마셨다. 얼려온 상태여서 더 시원했다. 거기서는 신풍령이 7.8km 남아 있었다. 다시 출발해 내려가다 다시 오르막길에 접어 들었다. 안개가 자욱이 낀 숲길을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올라갔다.

 

12시 29분 경사가 급한 오르막 길을 올라 헬기장에 도착해 뒤의 일행을 기다렸다. 뒤이어 일행이 올라오면서 근처에서 더덕냄새가 난다고 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상의하다 조금 남은 지봉에 가서 먹기로 했다. 12시 33분 지봉(못봉1,342m)에 도착했다. 헬기장서 보이던 바로 앞 봉우리가 지봉이었다. 그러나 식사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없어 앞으로 가면서 적당한 장소를 찾기로 하고 다시 걸어갔다.

 

그러나 계속해 걸어도 적당한 장소가 금새 나타나지 않았다. 능선을 지나며 나무에 부딧칠 때마다 자욱한 안개의 습기가 나뭇닢에 쌓여 빗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12시 57분 월음령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신풍령이 4.7km 남아 있었다. 오늘 대간길을 시작한 송계삼거리는 6.3km 지난 지점이었다. 앞 봉오리를 오르는 길에 다시 더덕냄새가 낫다. 그것은 산에서 자란 것이라 약효가 있을 것 같았다.

 

옆에서 캐볼까 하고 말했지만 줄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시도도 하지 않았다. 1시 10분 길가에 조금 너른 공터가 보였다. 앞에 가던 이대장이 그 곳을 식사 후보지로 삼고 앞으로 조금 더 가서 찾아보고 온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금새 돌아와 마땅한 곳이 없다며 자리를 펴자고 했다. 뒤이어 일행이 모두 도착하자 서로 기다린 듯이 배낭에 넣어 온 식사를 꺼내 놓았다.

 

박정호 사장이 훈제 오리고기와 돼지고기 편육 그리고 상추까지 꺼내어 푸짐한 식단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채 총무는 참석하지 않은 박기현 회장이 준 매실주를 꺼내 놓았다. 각 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일행들은 진행이 예상보다 빨리 지나고 있다면서 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출발 때 예기를 꺼냈던 데로 덕산재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최회장이 그럴꺼면 서둘러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머뭇거리면 시간이 애매해질 듯 하여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혼자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출정식 하듯 코펠에 끓이던 커피를 나눠 마시고 2시에 그 곳을 혼자서 출발했다. 잠시 후 2시 18분 대봉에 도착했다. 거기서 신풍령은 3.6km 거리였다. 바로 출발해 10분쯤 후 작은 고개를 지나 오르막길을 걸었다. 길을 지나며 전북 완주, 경북 안동, 그리고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지나며 매어 놓은 리본들이 보였다.

 

다시 한 봉우리를 지나 2시 37분 갈미봉(1210.5m)에 도착했다. 그 곳도 거창권역이었다. 여전히 안개가 끼어 산행에서 멀리 주변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맛볼 수 없어 아쉬웠다. 추적추적한 공기와 부딪히며 계속해서 산길을 걷는 연속이었다. 이따금 숲을 벗어난 능선길에 접어들어 바람을 느끼게 된 것 즐거움이었다. 2시 53분 다시 봉우리를 넘어 철쭉군락을 지났다. 가는 도중 자작나무 갑옷 같은 비늘이 벗겨져 나불어진 모습이 보였다.

 

2시 46분 헬기장에 도착했다. 혼자 갈 먼 길을 의식해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걸어갔다. 진달래와 참나무 숲이 어우러진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능선을 지나가니 신풍리가 1km 남은 이정표가 세워 있었다. 그 곳을 지나 3시 9분 다시 산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거기서 신풍령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이어진 내리막길로 가다 신풍령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둘러 길을 걸었다. 

 

3시 27분 신풍령(빼재)에 도착했다. 그곳은 무주와 거창을 잇는 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신풍령은 추풍령에 비해 새로운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신풍령 고개에 지어 놓은 정자에 두 사람이 쉬고 있었다. 좌측 도로로 나가서 다음 구간으로 이어가는 길을 찾았으나 금새 잘 보이지 않았다. 가다 되돌아서다 하며 살펴보는데 무주쪽에서 넘어오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나와 무관할 듯 하여 바라보니 뜻 밖에 송계 삼거리에서 헤어졌던 이사장님이었다. 무룡산까지 갔다와 무주 리조트에 둔 차로 산행에서 차편이 없는 사람들을 태워 주고 있었다. 내가 덕산재까지 가려 한다고 하자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도로 건너에 달린 백두대간 리본을 보고 길을 찾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들머리 길의 경사가 심해서 힘이 들었다. 3시 40분 그 봉우리를 올라 완만한 오름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앞 봉우리 능선을 지났다. 다시 내리막 오르막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4시 10분 삼봉산이 2.0km 남은 지점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5분 후에는 삼봉산이 1.0km 남은 지점에 당도했다. 목표로 한 덕산재까지 남은 거리를 몰라 최대한 빨리 걷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숲길을 걸어가는 도중 길 옆에서 갑자기 꿩이 푸드득 날아가 놀라 바라보게 되었다.

 

계속해 길어가니 소사재가 2.5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4시 30분 덕유삼봉산(1254m)에 도착했다. 정상석 글에서 아직 그 곳이 덕유산 산세임을 알 수 있었다. 쉬지 않고 그 곳을 출발해 4시 48분 암릉 정상부를 지났다. 그 주변은 칼 바위가 널부러져 발을 디디기 어려웠다. 잠시 후 4시 50분 우측으로 직각되게 꺽인 방향으로 급경사지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 곳은 곧바로 가다 길을 잃기 쉬운 지점이어서 주의하도록 많은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그 길은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운데다 구르는 자갈돌이 놓여 있는 길이어서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사람의 자연스런 보폭으로 디딜 수 있는 지형이 아니어서 한걸음 땔 때마다 억지로 동작을 취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한참을 내려가도 그 상태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짜증스럽게 되어 지랄같은 길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산 길 이란 것이 애초에 사람을 위해 생겨난 길은 없을 듯 했다. 5시 2분 다소 평평한 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몇 번을 오르락 거리며 봉우리를 넘어가자 앞 쪽에 너른 밭이 보였다. 그 근방에서 나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였다. 5시 25분 무주 고제면 소사재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차가 없어 서울로 가기 위해 이동할 일이 걱정이 되었다. 거기서는 지나는 차를 붙들고 사정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드문드문 차가 나타날 때마다 손을 들었으나 몇 대가 그냥 지나갔다. 잠시 후 트럭이 다가와 손을 들으니 멈춰 서 주었다. 과일 포장 박스가 가득 실린 차량인데 사정을 말하니 차를 태워주었다. 5시 35분 그곳을 출발해 내려가면서 행선지를 물으니 대구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무풍리에 내려 주겠다고 했다. 어딘지 알지 못하지만 차만 탈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기사님의 나이가 많은 편인데 인상이 아주 부드러웠다.

 

그분은 포장박스를 운송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신다고 했다. 그런데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과속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진실한 성품이 느껴졌다. 15분 후 무풍리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려 무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물어 본 사람이 그 시각에 가는 차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생각이 난 듯 영동으로 가는 과일 장수에게 가서 태워달라고 하라고 했다. 그 과일 장수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5시 55분 그 차를 얻어 타고 무풍리를 출발하여 영동으로 행했다. 얼마 후 낮 익은 터널이 나타나 바라보니 나제통문 이었다. 언젠가 가 보려고 했던 곳인데 우연히 그곳을 지나면 보게 되었다. 밤길을 지나며 기사가 하는 예기를 들었다. 그분은 용인에서 7년쯤 직장생활을 하다 내려왔다고 했다. 큰 벌이는 못되지만 인심이 좋아서 살기는 편하다고 했다. 7시 10분 영동역 앞에 도착했다. 그분이 팔다 남은 머루포도를 한 박스 사며 거스름돈은 받지 않았다.

 

영동역에서 표를 사고 바로 옆에 잇는 식당에서 올갱이국을 먹은 후 7시 28분 무궁화 열차를 탔다. 몸에 땀이 배어 앉아 잇기가 불편했지만 잠깐 잠이 들기도 했다. 10시 15분 서울역에 도착해 전철을 갈아타고 11시 10분경 집에 도착했다. 산행에서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 집에 오니 해결할 수 있어서 새삼 편안함을 느꼈다. 피곤한 상태여서 바로 잠을 자고 싶었지만 내일 할 일의 준비를 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