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백두대간 9-1구간(덕산재-우두령-작점고개)종주 산행기 *-

paxlee 2008. 10. 1. 22:05

                           백두대간 9-1구간(덕산재-우두령-작점고개)종주 산행기

 

[덕산재-(5.3)-부항령-(8.2)-삼도봉-(0.72)-심미걸재-(6.78)-화주봉-(3.55)-질매재]

 

2박3일의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이번 산행은 서초 건축사 등산동호회의 조병섭 건축사 권유로 참가하게 되었다. 어제 저녘 부랴부랴 분담키로 한 김치와 과일 등을 챙겨 둔 배낭을 메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일을 하다 점심을 먹고, 산행 출발을 위해 만나기로 한 양재역으로 나갔다. 약속시간인 2시에 도착해 전화를 거니 조병섭 건축사가 오고 있다며 탑승할 위치를 예기해 주었다.

 

조금 후 도착한 차 안에는 이번에 같이 갈 사람이 한 사람 더 타고 있었다. 조건축사가 자신의 대학 산악부 선배인 이영호 사장이라고 소개를 해서 차를 타며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의료기 사업을 한다고 했다. 다시 수원으로 가서 다른 대원을 더 태우기 위해 분당을 지나갔다 휴가를 떠나는 차량이 많아서인지 도로에 차가 많이 막혔다. 수원의 강정길씨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부인이 주차장까지 나와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일행을 배웅했다.

 

수원 톨게이트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든 다음 망향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오후 7시 30분 덕산재에 도착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산행에 임한 기분과 달리 시원스레 나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 일행은 약간 넓은 공터가 있는 터널 입구에 숙박을 위해 텐트 칠 장소를 정했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산악부 출신답게 익숙한 솜씨로 텐트를 쳤다. 오늘은 여기서 숙박을 하고 내일 아침에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주변은 금새 깜깜해져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쏟아질 듯 초롱 초롱한 별이 빛나고 있었다. 텐트 안에 각종 짐을 정리하고 메트리스를 깔았다. 여름철이지만 산중이어서 냉기가 느껴져 걷 옷을 껴 입었다. 그렇게 누워 있으니 포근함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주변이 밝아옴을 느끼며 기상했다. 잠시 후 산행에 합류할 두 명의 대원과 추진조가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아침을 먹었다. 반찬은 많지 많았지만 준비된 모든 음식이 귀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꾸려 출발준비를 했다. 날씨가 맑아 상쾌한 기분이었다. 출발지점인  덕산재 산장 앞 주차장에서 체조를 하며 몸을 푼 다음 남은 사람에게 출발 보고를 하고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했다. 백두대간을 도로에서 시작하는 것이 좀 싱겁게 느껴졌지만 수풀을 헤치고 산비탈 길을 올라가니 곧 능선길이 이어졌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공터가 나왔다. 그 공터는 채광을 한 후 생긴 폐광터였다. 개발한 사람은 큰 돈을 들인 사업이겠지만 그로 인해 절벽이 생겨 산의 느낌이 훼손된 것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거기서 산행 시작 후 첫 휴식을 가졌다. 이번 산행에서 걷게 될 거리를 듣고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행은 프로이고 나는 산행을 많이 한 경험이 없는 상태여서 2박3일 산행이 쉬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나 먼 길을 가는지 그 것이 얼마나 힘이 들지 경험이 없는 상태로 동참해 있었다. 그러나 함께 길을 나선 이상 마주치는 모든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그래도 경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산행인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일행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견뎌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이번 산행에 참가한 것도 그 같은 어려움을 견뎌내며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자 한 것이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해 잠시 평평한 길에 접어들었다. 완만한 능선길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봉우리에 오르니 앞으로 능선이 펼쳐 보였다. 그곳부터는 한동안 능선을 걸어가게 되었다. 앞으로 나가 853고지에 올랐다. 그 곳을 지나 한참을 가서 고개 마루에 도착하니 확 트인 시선으로 나아갈 산세가 한눈에 펼쳐 보였다. 그렇지만 희푸른 빛깔로 멀리까지 중첩되어 있어 산을 몇 개나 지나야 할 만큼 먼 거리로 느껴졌다.

 

그런데도 우리가 도착해 점심을 먹기로 한 삼도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일행은 그곳에서 펼쳐보이는 산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저렇게 먼 거리를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기도 했다. 따가운 햇살을 받고 서 있는 동안 무더위에 땀이 많이 흘러 내렸다. 다시 출발해 계곡으로 내려가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 곳은 가파른 길이어서 연신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산을 오르는 중간에서 다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거기서 대원들이 산행 경험담을 말했다. 예전에 일주일 코스로 혼자 간 예기, 비를 만난 예기, 무거운 짐이 점점 줄어드는 예기 등을 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람들이 산을 간다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정 관념이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산을 간다는 것은 도봉산, 북한산 같은 목표지점의 봉우리를 오르는 일이었다.

 

가려는 산이 크기에 따라 작은 산, 큰 산으로 구분하여 감당할 자신감에 따라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했었다. 그런데 백두대간 종주는 주변에서 가장 큰 산들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계속 따라 걷는 일이다. 그렇게 걷는 동안 요새 직면한 일들을 천천히 생각하기도 했다. 백두대간은 큰 한국의 산악 지형의 지붕을 지나는 것처럼 여겨져서 산행 내내 호쾌한 시선이 펼쳐져 있을 것처럼 상상하게 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다.

 

계곡을 지날 때는 시야가 열리지 않고 또 능선길을 가더라도, 숲 속에 있으면 단지 걷고 있는 좁은 길바닥만 보일 뿐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백두대간을 걷는 보람이 느껴지지 않아서 실망스럽기조차 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종주의 의미는 전 구간을 빠짐없이 다 걷는데 있으므로 그 길을 밟고 지나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목적이고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같았다. 아까 산봉우리서 바라 보았던 데로 몇 개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나갔다.

 

큰 산 하나를 갈 때는 그 각각의 산의 느낌을 느끼며 가게 된다. 백두대간은 산이 이어져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국토의 지형에 따라 이루어진 고을의 자연조건을 느낄 수 있다. 종주 중 밋밋한 순간도 많이 지나게 되지만 전체로 이어진 어느 한 구간도 배제 될 수 없다. 종주란 시작점부터 종착지까지 전체를 빠짐없이 걷는데 있다. 시야가 펼쳐지지 않는 숲길을 가는 도중에는 백두대간을 지나는 것이 의식되지 않고, 오직 같은 땅을 반복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될 뿐이다.

 

결국 묵묵히 걸어가는 긴 여정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피로는 쌓여간다. 그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왜 이런 힘든 일을 선택해서 스스로 고생을 자초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우 힘든 급경사지를 오를 때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늘 목적지에 당도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백두대간 종주는 끝없이 이어진 길로 단지 걷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기에 걷고 걸을 수밖에 없다. 멀리 보이는 산들도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걷는 동안 산행이 팍팍하게만 느껴질 때 시야가 시원스레 펼쳐지거나 바람결을 느끼며 갈대 숲 평원을 지나갈 때는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특색 있는 풍경과 마주치거나 시원한 바람을 맞거나 하는 것이 피곤한 심신에 기분을 환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몸에 상처를 입으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지나가야 되기도 했다. 뒤 돌아보니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저 멀리 이어져 있었다. 시작한 곳은 희뿌연 푸른색을 띠며 더욱 아스라이 보였다. 제법 많은 거리를 걸어왔다. 산행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정표를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중간에 쉬며 이정표를 보니 삼도봉까지 거리가 많이 줄어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서 숲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곳을 지날 때는 통로처럼 주변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기도 했다. 걷다 보니 삼도봉이 가까이 보였다. 하지만 그 곳 정상까지 긴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라산 등 큰 산의 정상을 오를 때처럼 봉우리에 오르기가 더디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12시 30분 이윽고 삼도봉에 도착했다. 그 곳에 세워 놓은 정상석이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그곳까지 오는 동안 줄곧 그 곳에 당도하기만을 고대하던 터라 주변을 골고루 돌아보며 스스로 감격을 누리고자 했다.

 

삼도봉은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 세속이 모이는 곳이다. 그 곳에는 삼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새워져 있다. 왜 화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곳의 커다란 조형물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현란함이 의도적으로 그 의미를 부각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삼도봉이라는 의미를 부각하려 했지만 그 삶의 체취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느 장소적 인식은 삶의 교류가 있었던 길이 있었다든가 하는 그 지역의 문화와 어우러져야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그곳 표지석은 그것에 나타내고자 한 살가운 의미와 달리 단지 조형물로서 화려하게 장식된 느낌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 저쪽에 세워진 큰 관측소 또한 깊은 산세의 느낌을 산만하게 한다. 무주쪽 체취는 덕유산 쪽이 본령이어서 삶이 체취보다는 평소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별로 없는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지역의 느낌이다. 우리 일행은 삼도봉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우선 밥을 지을 물을 구하기 위해 지도에 나타난 우물을 찾아 내려갔다.

 

산길을 내려가니 길에 얕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돌과 진흙이 엉겨 있는 바탕에 산 돌이 널부러진 곳이 나타났다. 그런 모습이 평소에는 샘으로 보일리 없었지만 거기서는 생명수처럼 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옅게 흐르는 물을 뜨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겨우 돌을 들어내고 앞쪽을 막아 물이 더 고이도록 만들어 물을 길어서 코펠에 넣고 밥을 지어 먹었다. 커피까지 끓여 먹으며.  앉아 있다보니 몸이 더 노곤해졌다. 벅찬 길을 힘들게 걸어온 터라 거기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길을 나섰다.

 

어차피 계속해서 예정된 길을 가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 주었다. 한여름의 더위 속에 이런 바람이 없었다면, 산행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산등성이를 지나가다 근사한 나무아래 그늘진 공터에 도착했다. 아늑한 분위기가 잠을 유혹했다.

 

일행은 이심점심 마음이 동하여 거기서 오침을 하고 가기로 했다. 말을 하고 눕자마자 금새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시에 부시시 일어나 다시 출발했다. 다른 일행보다 내가 가장 힘든 상황일 것 같았다. 거리감각도 부족하고 우선 그 긴 거리가 부담을 갖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 걷다 보니 우측으로 김천지역이 보였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그처럼 각 고을을 가늠하고 삶의 바탕을 의식할 수 있는 것이 특별한 의미로 여겨졌다.

 

같은 국토건만 백두대간 능선의 이쪽과 저쪽은 많은 차이가 생겼다. 말씨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다른 문화가 생성되었다. 백두대간의 행로는 대부분 신라와 백제의 경계인데, 그 각각의 지역 사람들의 말씨와 성격이 달라서 문화적 경계가 되기도 한다. 지형보다도 문화적 차이 때문에 국가의 구분이 더 확연해지게 되었을 것처럼 말이다. 묵묵히 길을 가다 보니 개간지처럼 보이는 곳이 황폐화되어 있었다.

 

백두대간을 가다 보면 그처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래로 내려가다 길 가에 앉아 쉬었다. 일행 중 식물에 관심을 갖고 찍으며 가는 사람이 있어서, 생소한 식물이 나타날 때면 서로 관심을 나누며 얘기 거리가 되었다. 쉬면서도 평소에 나서보지 않은 긴 거리를 걷는 것이어서 과연 얼마나 가는 것인지 내가 무리 없이 따라 걸을 수 있는 것인지 내심 걱정을 했다.

 

다시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오늘 산행의 종착점 구간 끝에 다가가고 있었다. 다시 산이 나타났다. 어언 시간도 오후를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많은 것 같았던 하루 해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소가 밭갈이를 하다 김을 내뿜듯 힘겹게 오르다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앞에 나타나는 봉우리가 부담스러웠다. 평범한 산봉우리 들이 첩첩히 놓여 있을 뿐, 새롭고 멋진 풍경이 기대 되지도 않았다.

 

산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듯 멀리 새로운 지역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쯤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따금 시야가 트이고 멀리까지 조망되는 곳에 다다랐을 때 고생하며 걸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서 멀리 보이는 김천이 삶터로서 반갑게 눈길이 닿았다. 하지만 그곳은 계획적인 산업 도시로 발전된 곳이어서 인지 깊은 산중에 일구어진 삶터의 정겨움은 느끼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산길을 걷다 보니 어언 저녘 무렵이 되었다. 그러나 해가 긴 때여서 그리 어둡게 되지는 않았다. 이제 조금만 가면 오늘 일정이 끝나게 되었다. 오후가 지나가는데도 도착되지 않자 마음이 지쳐오기 시작했다. 꼼짝 없이 산에 붙들린 꼴이 되어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우두령에 거의 다 도착한 듯 했다. 숙영지로 내려가면서 일행이 추진조와 전화 통화를 하여 그들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우두령은 질매재라는 지명도 있는데, 질매는 소잔등에 얹은 안장 같은 것인데, 소 등에 짐을 지우기 위한 도구이다. 그 이름을 통해 우두령이 농사짓는 사람들이 다니는 이동 경로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산길을 내려가며 보니 복숭아 과수원 길옆에 텐트가 쳐진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쉴 수 있도록 나지막한 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후 6시 40분 숙영지 우두령에 도착하였다.

 

어제 합류한 팀 말고 멀리 남원에서 온 부부 등 지원조 인원이 더 늘어나 있었다. 대원들을 도와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가족까지 동행하고 왔다는 것을 느끼자 절로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과수원을 지키는 사람까지 12명이서 둘러 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먹었다. 남원에서 빗은 막걸리 한 통과, 소주 2병을 거의 다 마셔댔다. 낮 동안 걸어오며 쌓인 심신의 피로를 얼른 씻고 싶고, 견뎌냈다는 안도감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맑은 공기에 빨리 술기운이 가시리라는 속단을 하며 자제를 잃었던 것 같다.

 

식사 후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예기하다 잠을 자기 위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각자가 잘 위치는 도착하면서 미리 정해져 있었다. 여름 산행에서 잠자리는 텐트 치고 판초우의나 매트리스를 깔면 그만이었다. 모기장을 치기도 했다. 춥지 않기 때문에 바닥의 습기만 차단하면 되었다. 오늘 긴 거리를 걸은 탓에 몸이 많이 피곤하여 자리에 눕자마자 곤히 잠에 빠져 들었다. ( 글 / 김석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