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11-1구간(추풍령-큰재)산행기 *-
백두대간 11-1구간(추풍령-큰재)산행기
[추풍령-(2.65)-502m봉-(4.19)-묘함산갈림길-(2.05)-작점고개-(5.13)-용문산-(2.47)-국수봉-(3.18)-큰재]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시각은 아직 깜깜한 밤이어서 이지러진 반달과 별이 보였다. 전철역으로 가면서 무박 산행 같으면 그 시각 어디쯤 가고 있을 까 상상해 보았다. 야간 산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추운 밤길을 걷다 동트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며 문득 허전한 느낌이 들어 생각해보니 사진기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을 알았으나 시간이 없어 그냥 가기로 했다.
이렇게 아침 일찍 나서는 것은 오늘 내려가서 구간을 마치고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 나서기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편하게 잠을 잔 것을 생각하니 그래도 무박 산행 때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6시 30분 강동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차를 잘못 갈아타는 바람에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염치없어하며 기다리던 차에 오르니 최회장, 이대장, 채총무, 차종필 건축사, 양승창 건축사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장이 죽전에서 박정호 사장과 백인철 건축사가 합류할 거라고 했다.
죽전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두 사람을 태우고 8시 30분 죽전 휴게소에 도착했다. 눈을 부치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날씨가 찌뿌듯해서 몸도 으스스 추웠으나 우거지국을 먹으니 몸이 더워지고 속도 든든해졌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도 식사를 조금 했으나 산에 갈 때는 행여 산행에 어려움이 생길까봐서 챙겨먹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출발해 가는 동안 9시 21분 영동터널을 지났다. 그 동안 늘 지나치기만 하다 그 곳 마을 정경을 알고 난 후라 여느 때 고속도로로 지나갈 때와 다른 기분으로 찾아 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형을 살피고 보니 전에 지난 중재처럼 도시와 도시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9시 39분 추풍령 톨게이트를 통해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그 곳 지명은 대막골 광천1리였다. 옛 길이 지나가는 그 곳에서는 고속도로가 보이지 않아서 한적한 고개 길 느낌이 들었다. 9시 48분 그 곳을 출발해 산행을 시작하였다. 좌측으로 4번 일반국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번 갈 때는 공사 중 이었는데 완성 되어 있었다. 9시 55분 산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조금 걸어 산을 오르는데 바람이 불었다. 10시 3분 금산(370m)도착했다. 작점고개 8.7km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다. 반대쪽으로 벼랑이 되어 있어 그 곳을 쳐다보니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앞쪽으로는 추풍령 저수지가 보였다. 채석 후 금산은 지도 속에 나타난 산으로서 존재가 상실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채석장에 지형 복원 사업을 벌여 놓아서 깊숙이 내려 보이는 저 아래가 평평한 밭처럼 되어 있었다.
원래는 그 산을 넘어 능선이 연결되었을 듯 한데 절벽으로 변해 앞으로 나갈 수 없어 등산로를 우회해 닦아 놓아서 약간 부자연스런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 우측에 숲 너머로 고속도로가 보이고 기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길에 쌓인 낙엽은 2주 전 8구간을 지나며 보았을 때보다 빛깔이 바래고 부숴져 있었다. 그리고 밤새 서리를 맞아 땅에 밀착되었던 낙엽이 햇살을 받으면서 녹아 낙엽 밟는 소리가 부시럭 그렸다.
10시 17분 작은 봉우리를 넘어 능선 길을 지나는 동안 앞쪽으로 우리가 지나갈 산세가 보였다. 내리막을 지나 완만한 오름 길을 걸어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동안 좌측으로 추풍령 저수지가 내려다 보였다. 한 참 후 다시 경사진 산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금산이 반쪽으로 쪼개지듯 보인다. 완만한 길에 백두대간을 알리는 리본이 유달리 많이 보여 세어보니 24개나 되었다. 그것이 다 대간 길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 마음 쓴 흔적이어서 리본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 능선을 지나는 동안 좌측 아래쪽으로 이전에 작점고개에 도착한 후 밤에 등목을 하러 내려왔던 곳이 보였다. 그곳은 그 위쪽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농작물에 물을 주기 위해 설치한 펌프 우물이었다. 10시 37분 502봉에 도착했다. 거기서 쉬지 않고 봉우리를 넘어 가니 바로 아래쪽에 백두대간 200Km 통과 지점 표지가 보였다. 홀로 대간을 걷는 산꾼(홀대모)이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GPS 추정 자료를 근거로 천왕봉 기점 200Km 통과구간을 짚었는데 정확히 알수 없어 200Km 통과구간이라고 쓰노라고 밝혀 놓았다.
방금 지난 502봉까지는 199.79Km 라고 했다. 거기서 각자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곳은 백두대간의 전체 거리인 678km중 1/3정도 마친 위치였다. 10주년, 50주년 등 숫자를 끊어 특별히 기념하는 것 같은 의식을 느끼게 되는 곳이었다. 우리가 매번 나눠가는 구간은 전체에 비해 적은 거리지만 한 구간 한 구간 마치는 것이 마치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줌씩 항아리에 담아 쌀이 모여지는듯 된다.
앞으로도 그냥 묵묵히 한 구간 한 구간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때인가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날이 올 것 같았다. 그리고 구간을 가는 동안에는 그냥 평소 산을 대하던 마음가짐대로 대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초겨울이라 걸을 때는 모르지만 멈춰 서 있으면 금새 추위가 느껴졌다. 박정호 사장이 대추 인삼 등을 넣어 달인 뜨거운 차를 갖고 와서 마시니 몸이 녹는 듯 했다. 다시 출발해 내리막길을 걷다 오르막을 올라 우측으로 굽이 돌아가는 능선길을 걸어갔다.
나는 평소에 이대장 바로 뒤에 위치했는데 다시 출발하며 뒤쪽에서 걷게 되었다. 앞쪽에 박정호, 백인철, 양건축사가 앞에 가고 바로 뒤에 오는 차종필 건축사 사이에서 자연스레 요즘 근황을 이야기 하며 걸어갔다. 11시 5분 봉우리에 오르면서 이 대장이 한참 떨어진 듯해서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앞서가겠다고 했다. 오른 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올라서자 다시 봉우리 우측으로 완만한 길이 이어져 지나갔다. 능선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앞쪽에 큰 산이 놓인 곳에서 내려가다 다시 오름 능선을 오르며 앞을 보니 저 위로 이대장 모습이 작게 보였다. 11시 13분 함께 435.7봉에 닿았다. 이대장과 함께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바로 앞 계곡 건너에 내남산(난함산)이 보였다. 다른 일행이 뒤따라오는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11시 19분 완만한 능선 길 가에 빨갛게 익은 맹감나무 열매가 화원에서 꽃꽂이 재료로 팔기 위해 진열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능선을 지나 내리막길을 걸었다. 큰 산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보이는 산과 뒤에 지나온 산 사이 계곡을 지나는 동안 깊은 느낌이 들었다. 계곡 방향으로 산과 산들이 겹겹이 보였다. 우측 계곡으로 드문 민가가 길게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비닐하우스 등이 보였다. 11시 34분 임도를 만났다. 그 임도로 완만히 오르는 길을 걸어 11시 36분 사기점고개에 도착했다. 일행을 기다리면 뒤돌아보니 좌측으로 아까 보인 비닐하우스 쪽으로 연결되는 길이 갈라져서 삼거리가 된 지점이었다.
그 길에서 인근 마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터의 느낌이 느껴졌다. 거기서 일행이 다 모여 쉬다 다시 출발했다. 완만한 오름 길을 오르는 동안 좌측 마을로부터 개 짓는 소리가 들렸다. 좌측 높다란 나무줄기 숲 너머로 하늘이 해 맑게 보였다. 잠시 후 경사가 급해진 길을 지났다. 그 곳을 오른 능선에 작은 관목과 키 큰 나무가 앙상하게 보였다. 시선이 높아져 좌측 마을 쪽에 2층 공사장 가설사무소 같은 집이 보였다.
계속해서 봉우리를 넘어 능선으로 가는 동안 좌측으로 작점고개를 지나는 도로가 내려다 보였다. 조금 떨어져 앞서가는 이 대장이 낙엽밟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이 많이 쌓인 이 때는 보이는 모습보다 그 소리로 각자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가는 길에서 좌측의 숲 건너편으로 묘 2기가 보였는데, 묘역 앞쪽이 높다란 석축처럼 콘크리트 옹벽으로 되어 있어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11시 56분 내남산 통신소 올라가는 도로를 만났다.
아까 그 옹벽은 도로를 내며 설치된 것이었다. 도로를 건너 오르막 경사 길을 올라갔다. 도로를 벗어나 낙엽이 쌓인 곳을 디디니 웅덩이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12시 3분 내남산이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하여 일행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배낭에서 갖고 온 귤을 꺼내 한 개씩 돌리니 맛있다고 했다. 쉬면서 채 총무가 요즘 건강에 좋다고 하여 자전거를 샀고 댄스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등산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같다고 하였다.
12시 9분 다시 출발해 내리막 길을 걸었다. 오늘 출발한 곳에서부터 작점고개까지 가는 길은 직선으로 재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또아리 틀 듯 휘돌아가는 형상이었다. 뒤에 걷던 채총무가 아까 하던 에기를 계속했다. 애들한테는 해 달라는 데로 다 해주지만, 막상 스스로를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한 것이 없었다며 이제 스스로 즐길 일을 찾아 하며 살아야겠다고 했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로부터 가끔 들은 공감되는 얘기였다.
12시 14분 다시 임도를 만났다. 내리막 경사 길을 따라 조금 지나 굽은 곳에서 용문산이 보였다. 박정호 사장이 배가 고프다며 거기서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대장이 조금만 가면 당도하니 작점고개에서 편하게 먹자고 했다. 12시 24분 도로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입구에 성황당처럼 리본이 많이 걸려 있었다. 12시 28분 또다시 도로를 만났다. 그 길을 따라 가는 동안 좌측에 납골당이 보였다. 12시 34분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좌측으로 묘 2기가 보였다. 봉분의 표면이 쓸려 나간 곳이 있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묘 관리는 후손들의 정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어른들로부터 잘 가꾸어야 한다는 말들을 들은 기억이 났다. 조금 가다 보니 다시 좌측으로 묘 4기가 보이는데 상석이 이끼가 낀 것이 오래 전에 쓴 묘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완만한 산길을 걷는 동안 우측 아래쪽으로 큰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까이 작점고개를 지나는 도로도 보였다. 12시 41분 작점고개 (능치, 340M)에 도착했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육각정이 있지만 따뜻한 양지녘 잔디에 자리를 깔고 둘러 앉아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꺼냈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이대장이 준비해온 오징어 찌게를 끓였다. 찌게가 끓는 동안 소주를 한잔씩 돌렸다. 찌게를 먹어보고 다 맛있다고 했다. 최회장이 전문점에서 한 솜씨라며 그 것을 마련해준 이대장 사모님 음식 솜씨를 칭찬했다. 그리고 근래 담근 김장 김치라며 맛을 보라고 가까이 권했다. 김장김치와 무우김치 등이 모두 맛이 좋았다. 지난 구간에서 이대장이 과음을 하여 냉전중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화목을 되찾은 듯해 흐뭇하게 생각되었다.
다른 버너에 차종필 건축사가 끓여준 라면도 맛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코펠에 커피를 끓여 나눠 마시고 다시 산행할 차비를 갖췄다. 1시 31분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에 걸었던 구간은 전에 다녀간 구간이었으나 거기서부터 걷는 구간은 처음 걷는 길이어서 기분이 새로워졌다. 1시 38분 산 능선에 오르니 앞쪽으로 계속 완만한 길이 연결되었고 숲 너머로 우리가 지나갈 산이 보였다. 1시 51분 앞에 있던 473,7봉 정상에 닿았다.
그곳에서 주변으로 시선이 트여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완만한 오름 경사 길을 가는 동안 나무로 길을 막아놓은 곳이 있었다. 진짜로 길을 잘못 들지 않게 그렇게 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멈춰서 유심히 길을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앞쪽에 리본이 보여 치우고 지나갔다. 지나는 동안 앞쪽으로 용문산이 보였다. 그리고 우측 아래쪽으로 아까 작점고개에 당도하기 전 임도에서 멀리 보인 마을이 보였다. 용문산 가까이에 있는 봉우리의 급경사 길을 올라갔다. 그 능선에서 낙엽이 많이 덮인 길을 지나는 동안 우측 아래로 기도원이 보였다.
2시 5분 갈현에 도착했다. 그 곳은 용문산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오름 길을 걸었다. 산의 나무가 모두 알몸이 되어 앙상하게 서 있었다. 2시 13분 다시 봉우리에 당도했다. 뒤로 지나온 산들이 멀리 보였다. 산행을 하는 동안 앞으로 가야 할 산들은 애써 가야할 곳으로 의식되지만, 지나온 산들은 마치 상념을 떠올리듯 대하게 된다. 2시 15분 앞 쪽 오름 길가에 벙커 같은 건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며 일행들이 기도소 같다고 했다.
그 옆으로 계속해서 오름 길 능선을 지나 용문산 바로 앞에 이르렀다. 거기까지 가는 주변 숲에 가지런히 낙엽이 깔려 있는 모습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2시 39분 바위틈으로 정상 가까이 능선 오름 능선을 지났다. 높은 산 깊은 골의 느낌이 들었다. 바람소리가 들렸다. 추풍령에서 잦아든 산세가 다시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날리며 낙엽이 쓸려간 능선 길을 걸어갔다. 뒤로 멀리 보이는 산들이 역광을 받아 검푸른 빛깔을 띠어 보였다.
2시 46분 용문산 앞에 놓인 봉우리 정상부를 걸었다. 완만한 능선이 이어짐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걷는 동안 이따금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리본이 마치 급류에 쓸려가듯 우측으로 뉘어 보였다. 편안한 길이 연속 되었다. 내리막길에 접어드니 지나는 동안 가끔 보았던 알프스 산악회 리본이 다시 보였다. 거기에 쓰인 진부령까지 무사히 종주하라는 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봉우리 내리막길을 가다 다시 오르막 길에 접어들었다.
적당히 오르고 내리는 구간을 걷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막바지 용문산을 오르는 경사는 급한 편이었다. 그 길로 용문산 가까이 오르자 한바탕 쏴-아 하고 바람이 소리를 내며 물결처럼 스쳐갔다. 우측 아래로는 마을이 점차 지나쳐 보였다. 2시 57분 용문산(710m) 도착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여전히 바람이 불었다. 거기서 앞쪽으로 국수봉과 그 너머 산세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추풍령에서부터 깊숙이 이어져 온 계곡 틈새에 간간히 삶터가 일구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겨울철 산은 부드러운 살색 빛깔을 띠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 앙상한 모습인데 멀리서는 가지들이 수 없이 겹쳐 보여서 마치 색깔만 다를 뿐 마치 나무 잎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무성해 보인다. 그러한 빛깔은 새 싹이 돋을 때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된다. 지금은 철이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운 계절 모습으로 새롭게 비춰지지만 그 모습을 보며 한 두달 지나다 보면 긴 침묵의 세월로 느껴지며 신록의 계절이 그립게 된다.
잠시 쉬었다가 그곳을 다시 출발했다. 주변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니 옛날 고향집 살 때 앞산에서 나무 해다 땔 때 생각이 났다. 구들 온돌로 된 농가에서는 밥을 짓거나 난방을 할 때 모두 불을 때야 했기 때문에 땔감이 많이 필요했다. 5분 후 다시 작은 봉우리를 지났다. 주변에 간간히 보이는 집들이 추풍령에서 볼 때와 달리 더 깊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는 백두대간도 그 삶터를 이루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가자 앞쪽의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 뒤로 국수봉이 보였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어가며 좌측을 돌아보니 앙상한 나무숲 뒤로 그윽이 산이 놓인 풍경이 계절 느낌이 담겨 보여 스케치 했다. 3시 36분 작점고개에 당도하기 전 내가 그린 스케치 속에 나타난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를 오르고 있었다. 그 봉우리를 넘자 앞에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보여 긴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램프처럼 되어 있어서 걷기가 낳았다.
오늘 산행은 지도에 나타난 거리보다 짧게 지나는 느낌이 들어서 편한 기분이 되었다. 3시 40분 큰 느낌이 드는 계곡에 내려섰다. 그 곳에 우측 용문산 기도원까지 10분이라고 쓴 표시가 붙여져 있었다. 그 계곡 양측으로 멀리 시야가 트여져 있었는데 그윽이 먼 산세가 느껴졌다. 그러나 앞뒤 쪽으로는 산이 가까워 마치 프레스에 끼이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국수봉을 행해 올라갔다. 가는 동안 잠시 갈림길이 있어 주의를 기울였는데 조금 지나니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높은 곳에 이르자 바람소리가 마치 파도에 쓸려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뒤로는 용문산이 검게 보였다. 3시 50분 봉우리를 올랐으나 거기서부터 평지 길로 이어졌다. 더 그윽이 감싸인 주변 산세가 마치 고향 뒷동산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계속해서 지나가는 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걷게 되었다. 용문산을 730m 지난 위치에 용문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국수봉이 0.65km 남았다고 써 있었다. 용문산에서 내려다볼 때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해 보였으나 다가갈수록 완만해졌다.
다시 완만한 오름 길에 접어들어 가는 길 옆에 키 높이에서 잘려나간 나무가 보였다. 하나의 식물일망정 베려면 밑둥에서 깨끗하게 잘라야지 그렇게 상처 받은 모습으로 두는 것이 좋지 않아 보였다. 햇볕에 나무 그림자가 옆으로 길게는 그리는 구간을 지났다. 그 완만한 오름 길을 걷는 동안 산줄기의 탄력이 느껴졌다. 정상부에 다다르며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세가 겹쳐 보였다. 지나온 구간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 힘든 것은 다 지난 일이 되고 내가 갔던 각별한 의미로만 남게 되었다.
4시 5분 국수봉(掬水峰795M)에 도착했다. 백인철 건축사가 산봉우리 이름에 물(水)수 자가 들어간 것이 특이하다고 하니 이 대장이 낙동강과 금강이 나뉘어서 그런 연유로 쓴 것 같다고 했다. 그곳은 주변이 헬기장으로 되어 있었다. 2006 백두대간 정비사업을 할 때 이용한 헬기 이착륙 장소인데, 입목상태를 관찰한 후 적당한 수종으로 식재 할 계획이라고 써 놓았다. 산을 깍아 내는 일에 늘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접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상주에 접어들었는지 안내판에 상주시로 쓰여 있었다.
백두대간에 놓인 산들 가운데 그리 높지 않지만 국수봉은 이번 구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거기서 큰재까지 3km가 남았고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으로 되어 있었다. 일행은 사과, 빵 등을 간식으로 먹으며 휴식을 했다. 쉬면서 큰재 방향을 바라보니 다시 내리막 구간이어서 앞에 놓인 주변 산이 낮게 보였다. 하지만 저 멀리 겹겹이 보이는 산 가운데는 앞으로 가야 할 높은 산들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가는 11구간은 남한의 백두대간 가운데 상대적으로 지대가 가장 낮은 구간인데 다음 구간을 지나면서 점차 큰 산들이 가까워질 듯 했다. 그리고 길도 점차 험해질 것 같았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뒤돌아보니 멀리 황학산까지 보였다. 그 쪽을 보며 스케치를 하는 사이 뒤에 오던 최회장이 도착하여 남겨 놓은 정상주를 권했다. 4시 30분 하산을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 쉬고 나니, 추위가 느껴졌다. 급경사를 걸어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서 길이 완만해 졌다. 계곡을 지나 다시 오름 길을 걸었다. 스키 코스처럼 탄력을 받듯 올라갔다. 능선 길을 가다 보니 좌측으로 석양이 뉘엿뉘엿 지는 모습이 보였다. 햇빛이 많이 누그러지게 느껴졌다.
우측 멀리 평야지대가 보였다. 추풍령에서는 백두대간의 깊은 감각이 갑자기 사라진 듯 하였으나 다시 이전 구간에서 느꼈던 것처럼 아늑한 느낌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리고 대간 길에서 보이는 인근 삶터의 풍경이 소박하게 느껴졌다. 계곡을 건너질러 4시 46분 봉우리에 오르니 큰재가 내려다 보였다. 산간과 마을 작은 논 사이로 길이 혈관 같은 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번 눌의산 정상에서 고속도로를 내려다 볼 때와 달리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산행에서의 느낌은 그처럼 번잡하지 않은 느낌이어야 제격이었다. 큰재 인근의 마을과 경작지도 삶의 원초적이고 진실한 호흡이 느껴졌다. 거기서 산행을 무사히 마쳐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곳에서 하산 길은 완만하게 되어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좌측 숲 사이로 해가 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 있던 박정호 건축사와 번갈아 그 낙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지자 길이 금새 어둑해져서 랜턴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 때는 해가 뜰 때 보다 햇살이 사물에 산란되어 있기 때문에 밝음이 조금 더 지속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5시 13분 평지 같은 길을 걸었다. 아까 내려다 본 산봉우리에서 20분 정도 소요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더 걸릴 것 같았다. 주변이 점차 더 어둑해지고 있었고 해가 지자 더 추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 후면 그 산행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턴이 없어 마음이 바빠졌지만 잠시 후 날머리 길이 보여 안심 되었다.
구간 막바지에서 이제 조금 후면 곧 육신의 피로로부터도 해방되는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5시 20분 큰재(320m) 도착했다. 날머리 표지판에 작점고개 9km, 개티재 5.2km 두시간 남은 지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도한 그 곳은 평온한 농촌 느낌이었다. 주변 산세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큰재에 당도하니 이 곳이 내려다보인 봉우리에서 이대장이 연락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차를 세워 둔 추풍령 고개 감자탕 집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작은 들녘을 지나는 동안 농촌의 삶이 피부로 느껴졌다. 식당을 찾아가면서 내가 평소 감자탕을 먹지 않는다고 하니 옆에서 택시기사에게 추천 할만한 곳을 물어 보았다. 기사가 조금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듯 좋은 곳이 있다며 그리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가는 길가에 기사가 예기한 식당이 있어 내렸다. 채 총무는 택시를 계속 타고 가서 우리 차를 갖고 오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이 탄 운전기사가 뒤에 오는 기사에게 식당 위치를 알려 주었다. 채총무가 차를 갖고 오고 뒤의 일행도 들어왔다. 뒤에 들어온 일행은 그 사이 세수를 하고 왔다.
나도 나가서 세수를 하고 오려다 안쪽에 앉아 있어서 그냥 물수건만 사용했다. 메뉴를 주문하면서 나만 따로 삼계탕을 주문했다. 먼저 맥주와 소주를 시켜 제조한 술을 한잔씩 돌리며 11구간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는 건배를 했다. 최회장은 형님 생일잔치에 참석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전화 통화를 했다고 했다. 오전에 출발할 때는 일찍 마치기로 했었는데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자 모두 마음에 들어했다. 더운 음식을 먹으니 움츠려 든 몸이 풀렸다.
식당에서도 찾아 든 우리 일행이 반가웠는지 과일까지 내 주었다. 7시 20분 식당을 나와 서울로 출발했다. 바로 옆 추풍령 톨게이트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몇 번 이 곳으로 오가는 사이 더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쉬지 않고 서울 가까이 올라와 죽전에서 백인철 건축사와 박정호 사장을 내려주고 9시 45분 서울 최회장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최회장은 차를 주차장에 세운 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일행을 강동역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뒤 따라 나오다 맥주 한잔을 더할 사람은 하고 가자고 하여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김석환 0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