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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파키스탄 히말라야 *-

paxlee 2008. 11. 28. 21:09

        

                  2008 파키스탄 히말라야

 

* 바투라2봉 세계 초등 낭보와 K2 조난사고의 비보
* 경남연맹팀, K2 하산길에 대원 3명과 셰르파 2명 사망

올여름 파키스탄 히말라야는 어느 해보다 나쁜 날씨에 등반이 순조롭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산악인들은 역동적이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7월31일 8,000m급 거봉 레이스 중인 오은선의 브로드피크(8,047m) 등정을 시작으로, 경남연맹대(대장 김재수)의 K2(8,611m) 등정과 계우팀(대장 윤정원)의 가셔브룸1봉(8,068m) 등정에 이어 시즌 막판 한국산악회 원정대(대장 유학재)와 서울시립대 원정대(대장 김창호)는 6,000~7,000m급 고봉 세계 초등의 낭보를 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에베레스트 남서벽 눈사태 사고 이후 최악의 산악사고를 겪기도 했다. 8월1일 세계 제2위 고봉인 K2 정상에 선 경남연맹대의 황동진(45) 등반대장과 김효경(33), 박경효(29) 대원 3명이 하산길에 눈사태에 휩쓸려 동행한 셰르파 2명과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오은선, 8,000m급 8개봉 등정기록


K2를 비롯, 브로드피크, 가셔브룸1봉과 2봉에는 정승권등산학교 팀(대장 정승권)과 전남대 팀(대장 김영필) 등 5개 팀이 6월 중순부터 등반을 펼쳤으나 강한 바람과 수시로 쏟아지는 폭설은 시즌 막판까지도 정상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7월 중순 한 차례 찾아온 좋은 기회는 한국 원정대 대부분 등정일자를 맞추지 못해 시도조차 못하고 말았다. 정승권등산학교 팀과 전남대 팀은 이후 1봉과 2봉의 마지막 캠프까지 진출, 두세 차례씩 등정을 시도했지만 귀국 일정 때문에 7월28일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해야 했다.


▲ K2 보틀넥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경남연맹 원정대원들. 위쪽에 솟구친 거대한 세락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발토로 빙하 지역에서 등반을 펼친 한국 산악인 가운데 첫번째 등정은 오은선(42·수원대 OB·동진레저)부터 시작됐다. 다른 한국팀에 비해 보름여 늦은 7월2일 베이스캠프(5,000m)에 도착한 오은선은 원정 대행사인 ATP(Adventure & Tour Pakistan)측이 계약과 달리 베이스캠프용 텐트 외에는 전혀 준비해 놓지 않아 프랑스팀에게 텐트 한 동을 빌려야 하는 등 시작부터 애를 먹었다.

 

때문에 오은선은 여분의 텐트가 없어 C1을 생략한 채 C2(6,400m)까지 한 번에 오르고, C3(7,200m)에 오를 때는 C2 텐트를 거둬 올려야 했다. 텐트보다 더욱 큰 걸림돌은 C1 아래쪽 설벽에서 수시로 쏟아지는 낙석이었다. 낙석이 떨어질 때면 핑핑거리는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등반이 끝날 때까지 베이스캠프로 들어온 헬기가 다섯 대 중 네 대는 낙석사고 사고를 당한 외국 산악인들의 후송용이었다.


▲ 브로드피크를 등반중인 오은선 대장.

7월14일 저녁, 날씨가 좋지 않아 1시간 거리인 K2 BC의 경남연맹팀을 방문하고 BC로 돌아오자 ATP 원정에 참가한 외국 클라이머들은 모두 이튿날 정상을 향해 등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오은선은 이튿날 정상 공격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16일 하루만에 C3에 올라서는 쾌속 등반을 펼친 끝에 17일 외국 산악인들과 함께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등반 시간이 오래 걸리자 너무 늦은 시간에 하산하면 추락의 위험이 높겠다 판단한 오은선은 이튿날 재도전하기로 마음먹고 C3로 내려섰다. 그러나 18일 아침부터 스노샤워가 쏟아지는 등 강풍이 불어대는 바람에 등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틀넥 부근서 2차 눈사태에 사고 당해


오은선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적기를 기다렸다. 베이스캠프에 내려선 지 1주일쯤 지나 7월30일부터 8월1일까지 3일간 정상부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오은선은 29일 또다시 하루만에 C3에 올라선 다음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하루 쉬고 31일 새벽 2시30분 정상 공격에 나서 11시간15분만인 7월31일 오후 1시45분 제13위 고봉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오은선은 브로드피크 등정으로 8,000m급 8개봉 등정을 달성, 여성 최다 등정자인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11개)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10개)에 이어, 이탈리아의 니베스 메로이(8개)와 같은 기록을 세웠다.


▲ 중앙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나선 가셔브룸1봉 원정에서 정상을 밟은 계우 팀 박종철 대원.

오은선이 등정 이튿날 하산중 낙석 위험이 높은 설벽이 얼어붙기를 기다리며 C1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경남연맹 팀은 K2를 등반 중이었다. 31일 마지막 캠프인 C4(7,900m)에 올라선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을 비롯한 5명의 대원은 이튿날 8월1일 새벽 3시10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여러 원정대의 셰르파 7명이 새벽 1시 대원들에 앞서 출발했으나, 위험구간에 고정로프를 깔면서 등반하자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맺은 약속과 달리 외국 대원들이 고정로프를 가져오지 않아 밑에 깐 고정로프를 거둬 위쪽에 설치하면서 올라야 했다. 게다가 외국 산악인들은 8,000m급 고봉 대여섯 개씩을 올랐을 만큼 고산 등반 경험이 풍부했지만 무산소로 등반하다 보니 더욱 늦어졌다.


▲ 사고 이틀 전인 7월30일 C3에서 기념촬영한 황동진 등반대장, 박경효, 김효경 대원(맨왼쪽부터).

보틀넥을 향해 오르던 세르비아 산악인이 추락사하면서 대원들은 더욱 긴장이 더욱 긴장이 되었다. 게다가 사고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가선 고소포터가 함께 수천 길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자 몇몇 외국 산악인들을 포기하고 최종캠프로 내려서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경남연맹 팀은 오후 5시40분부터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에 이어 대원 한 명 한 명 정상에 올라섰고, 마지막 대원이 올라선 오후 7시경 기념촬영을 마친 뒤 하산길에 들어섰다. 곧 어둠이 밀려들었다. 다행히 경남연맹팀 셰르파인 주믹 보테가 70m 로프를 짊어지고 올라와 위험구간은 확보한 상태로 내려설 수 있었으나, 함께 하산한 여러 명의 외국 산악인들까지 10여 명이 한 가닥 로프에 의지해, 그것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하산하자니 시간은 한없이 지체됐다.


▲ K2 정상에 오른 고미영 대원(오른쪽).왼쪽 노르웨이의 여성 산악인 시실리아는 하산길에 남편이 추락사하는 비극을 겪고 말았다.

이튿날인 2일 새벽 1시, 김재수 대장은 해발 8,200m의 보틀넥 상단에서 고정로프를 발견하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김 대장은 정상에 섰을 때 동상 조짐을 보이던 발가락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김 대장은 대원들이 뒤쫓아 내려오는 모습을 확인한 뒤 먼저 내려서도 별 문제가 없겠다 판단하고 고미영과 서둘러 내려섰다.


보틀넥 트래버스 구간에 들어서자 등정길에 설치해놓은 고정로프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일어난 세락 붕괴 때 쓸려 버린 것. 어둠 속에서도 노르웨이 팀이 깔아놓은 4mm 로프가 눈에 띄었다. 노르웨이 부부 팀이 하산길에 설치해놓은 로프였다. 안타깝게도 그 로프를 잡고 먼저 내려선 부부 팀의 남편은 하산 중 추락사한 상황이었다.


▲ 바투라2봉 세계 초등정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

보틀넥 구간을 무사히 내려선 뒤 동상 증상이 점점 악화되어 간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김재수 대장은 C4의 불빛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고미영에게 조심하라 하곤 먼저 내려섰다. 그러나 고미영은 이후 옅은 안개에 길을 잃고 헤매다 김 대장에 비해 2시간 이상 늦은 새벽 5시가 넘어 도착했다.


고미영은 짧은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했기에 다른 대원들이 당연히 먼저 도착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대원들 모습은 보이지 않고, 보틀넥 일원에서 반짝이는 불빛만 보였다. 보틀넥 상단을 내려서던 중 무너져내린 세락에 길이 끊기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던 대원들의 불빛이었다. 눈사태 지역 위쪽에 외국 산악인 3명이, 아래쪽에는 한국팀 3명과 셰르파 1명, 그리고 프랑스 산악인과 하이포터가 고립돼 있었다. 프랑스 산악인은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말았다.


날이 밝자 2차 공격조로 C4에 올라와 있던 대원 2명과 셰르파 2명이 구조차 보틀넥으로 향했다. 오전 9시경 구조차 등반에 나섰던 파상 보테로부터 "대원들은 심하지 않지만 주믹은 동상 상태가 심각하다. 함께 하산하겠다"는 무전 연락이 날아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원들로부터 끔찍한 비보가 전해졌다. 오전 9시30분경 일어난 제2차 눈사태에 대원 3명과 파상 보테를 포함해 셰르파 2명 모두 몰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을 포함한 한국 대원과 셰르파들뿐 아니라 외국 산악인들은 혹시 살아서 내려올지 모를 대원들을 위해 C4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사고 당일부터 급격히 나빠진 날씨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8월1일과 2일 일어난 사고로 한국 산악인 3명과 셰르파 2명, 그리고 외국 산악인과 고소포터 등 총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86년 16명이 사망한 이후 K2 최악의 사고였다.


모교인 중앙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가셔브룸1봉에 도전한 계우산악회 팀의 박종철 대원은 K2 사고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8월2일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박종철 대원은 오은선씨가 브로드피크 등반을 마치고 합류하기로 돼 있는 수원대 팀의 이덕주 대원과 함께 8월1일 C3(7,100m)에 도착했으나, 이 대원은 C3 도착 직후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 등 폐부종 증세가 나타나 등반을 포기해야했다.


서로 힘이 되며 올라온 선배 대원이 등반을 포기하자 불안해진 박종철 대원은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대자 공격 예정시각인 자정을 넘긴 뒤에도 출발을 머뭇거리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셰르파의 말에 용기를 내어 2일 아침 6시 반 정상을 향했다. 고산 경험이 전혀 없는 박 대원에게 등정길이 쉬울 리 없었다. 그러나 박 대원은 끊임없이 찾아드는 포기 유혹을 뿌리치고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지 9시간만인 오후 3시30분경 세계 제11위 고봉인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올라서고 말았다.


서울시립대, 바투라2봉 세계 초등


▲ 김창호 대장과 파트너를 이뤄 등반을 성공으로 이끈 최석문 대원.

지난 7월13일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팀이 인도 히말라야에서 메루피크 북벽 세계 초등 기록을 낸 데에 이어 파키스탄 히말라야에서도 초등 기록이 나왔다.


한국산악회 카니바사샤르·글로스터피크 원정대는 8월2일 파키스탄 카니바사샤르(6,441m) 주변 2개 무명봉 초등에 성공했다. 유학재 대장과 김동규, 강태원, 차경렬 대원 등 4명은 3박4일간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 끝에 남동릉 루트를 통해 첫 번째 무명봉 정상에 선 이후 카니바사샤르 우측 무명봉도 2박3일간만에 초등했다. 한국산악회는 '센트럴 카라코람 개척등반대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이번 원정대를 파견했으며, 향후 5년간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히스파르 빙하 지역 미답봉을 등반할 계획이다.


▲ 한국산악회 원정대가 도전한 카니바사샤르. 원정대는 카니바사샤르 부근의 6,000m급 2개봉을 올랐다.

개교 90주년을 기념해 히말라야 최고 미등정봉에 도전한 서울시립대팀(대장 김창호)은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바투라2봉(7,762m) 초등에 성공했다. 바투라2봉은 최근까지 남아 있는 미등정봉 중 가장 높은 봉으로, 바투라 산군 서쪽에 위치하고, 가파른 설벽과 빙벽, 대암벽이 뒤섞여 난이도가 매우 높은 봉으로 알려져 있다. 주봉인 1봉은 1976년 서독 원정대가 초등했다.


원정대의 등정시도는 2차에 걸쳐 시도됐다. 제1차 시도는 8월1일 최대 난코스 구간인 중간 암벽지대를 넘어 정상 설사면에 C4(7,100m)를 설치한 다음날 새벽에 공격하려 하였으나 기상악화와 9일간의 루트작업에 따른 피로누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베이스캠프에서 3일간 휴식 후 2차 시도를 위해 8월7일 베이스캠프를 출발, 9일 C4에 도착했고, 김창호 대장과 최석문 대원이 11일 오전 4시 C4를 출발해 5시간 반만에 바투라2봉(7,762m) 정상에 도달했다. 이렇듯 올 여름 파키스탄 히말라야에서는 한국 산악인들이 모처럼 초등기록을 세우는 등 한층 높아진 고산등반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안타깝게도 K2 사고로 비극을 겪고 말았다.

- 글 / 한필석 차장대우 / 월간 산 [467호] 2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