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 아일랜드 피크(6189m) *-
네팔 아일랜드 피크(6189m)
쿰부 지역 대표적 트레킹 피크… 고산 초보자도 도전 해 볼만,
칼날능선 세우는 나는 바람이라네.
딩보체(4410m)를 출발하여 오늘 목적지 추쿵(4730m)까지는 고도를 300m 정도 올려야하기 때문에 열심히 걸음을 옮겨보지만 두 다리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겁고 더디기만 했다. 다리가 놓인 개울을 건넌 후 돌무더기 길을 돌아 올라선 곳 비브레(4570m)에 허름한 로지 한 채가 서있다. 순박한 얼굴의 로지 주인이 나와서 차를 권한다. 힘들게 올라온 뒤라서 배낭을 벗어두고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주인이 내온 블랙티를 천천히 마신다. [(주) lodge (영어) 임시로 거처하는 오두막집]
텡보체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아마다블람 북면의 모습과 로체 남벽의 검은 장벽이 시선을 붙잡아 둔다. 장난기가 발동한 김성민·지정화 대원의 협공에 모자를 빼앗긴 필자는 10일 넘게 감지 못한 머리를 애써 감추다가 포기하고 햇살아래 내놓자 처마 밑에 앉아 쉬고 있던 현지인들까지 짜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웃는다. 그렇게 30분 쯤 즐겁게 쉬고 다시 추쿵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는다. 멀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비브레를 출발한지 1시간 만에 추쿵으로 들어섰다. 딩보체를 출발한지 4시간이 채 못 된 것이다.
정상부 나이프 리지를 오르고 있는 등반대원. 하이캠프를 출발해 5시간 30분정도 등반하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트레커들에게 인기 높은 아일랜드 피크
비교적 빠른 운행으로 추쿵에 도착한 대원들은 고소적응에 문제가 없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다.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식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대원 모두 정상적인 상태를 보여 아일랜드 피크 등반을 앞두고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등반을 앞두고 고소적응을 위해 칼라파타르(5550m)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를 다녀온 것이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지정화(43) 대원은 자녀를 셋 둔 아이 엄마이면서 이번이 첫 히말라야 트레킹인데도 대원들 중 가장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주어 놀라울 뿐이다. “정화씨는 고소 체질인가 봐”하며 대원들이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말을 건넨다.
점심 무렵, 아일랜드 피크를 먼저 등반한 팀이 추쿵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연락에 모두들 마중을 나간다. 마을 외곽에서 재회한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웃으며 안부를 묻고 등반 얘기를 하였다. 먼저 등반한 대원 5명 중 이병영(43) 대원을 제외한 4명의 대원은 히말라야의 6000m가 넘는 봉우리를 등반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대원 중 히말라야가 초행길인 최창묵(61) 대원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아일랜드 피크 정상에 올라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하이캠프(5450m)를 출발한지 9시간 만에 대원 모두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지친 상태로 하산을 하다가 하이캠프에서 자고 오늘 캠프를 철수하여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2주 일정으로 와서 먼저 아일랜드 피크 등반을 마친 대원들과 다시 아쉬운 작별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추쿵에서의 오후 일정은 해발 5600m의 추쿵리를 오르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내일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면 다음날 바로 등반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지 말자는 대원들의 의견에 그냥 쉬기로 했다.
18일. 아침햇살이 마당에 들 무렵 로지를 나섰다. 파노라마 로지 길 건너편의 허름한 건물 앞마당을 가로질러 개울위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넌 후 빙하 가장자리의 도드라진 언덕위로 난 걷기 편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1시간 정도 지나자 넓은 평원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그 끝은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평원의 우측은 임자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강물처럼 쿵쾅거리며 흘러간다. 오르막을 올라 모퉁이를 돌아서니 작은 협곡모양으로 접어든다. 그곳을 다 지나치자 먼지 풀풀 날리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앞쪽 멀리 돌무더기 사이로 오르막길이 보인다. 1시간 쯤 그 돌무더기 오르막을 천천히 올라서자 베이스캠프(Pareshaya Gyab·4970m)가 반갑게 대원들을 맞이한다.
하이캠프에서 5~6시간이면 정상 도착
추쿵을 출발한지 5시간 만에 아일랜드 피크 베이스캠프에 입성하였다. 좋은 자리를 상업등반대에게 내주고 잡은 캠프 자리는 바닥이 불편하여 텐트를 옮겼다. 쿡 라무는 갖은 재료를 이용하여 대원들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무와 오이를 채 썰어 초고추장을 묽게 버무려 내놓은 것을 맛본 대원들은 살짝 언 야채를 씹는 맛이 ‘물회’와 같다며 국물까지 흔적 없이 비워낸다. 내일의 등반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서니 아일랜드 피크의 밤하늘에서도 별이 쏟아질 듯 가깝게 올려다 보이고 보름이 가까워 오면서 점점 커져가는 환한 달빛에 비친 만년설산들은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 하였다.
고정로프에 매달려 설벽을 등반 중인 각국 대원들. 아일랜드 피크는 쿰부 지역에서 인기 높은 트레킹
피크로 저렴한 비용에 등반할 수 있어 늘 사람들이 몰린다.
19일. 하이캠프까지 가면 되는 여유 있는 일정으로 9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안전등반을 기원하기 위한 라마제를 준비하며 등반을 위한 각자의 준비물을 점검한다. 타시 셰르파가 라마 역을 하고 10여분 간 엄숙한 분위기로 라마제(산신제)가 진행되면서 대원들은 차례대로 제단 앞에 서서 안전등반을 기원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1시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먼지 날리는 평지를 10분쯤 돌아가자 하이캠프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언덕 위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른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첫 번째 급사면을 40분 정도 오르자 하이캠프가 멀리 위쪽으로 올려다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로 파헤쳐진 먼지 날리는 길을 버리고 사면을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오르다보니 1시간 30분 만에 하이캠프(약 5400m)에 도착했다. 하이캠프는 등반루트가 시작되는 불안정한 협곡과 암벽에서 150m쯤 아래에 만들어 놓았다. 바람을 덜 받는 자리는 상업등반대가 차지하고 있었고 협곡이 시작되는 암벽 아래에도 텐트 7~8동을 칠 수 있는 자리가 계단식으로 몰려있다.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할 즈음 대원들이 모두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얼굴 표정이 모두 밝은 것으로 봐서 고소적응이 잘 된 듯 하다.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전날까지 조용하던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지만 ‘고도와 캠프의 위치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20일. 12시에 우리를 깨우겠다던 셰르파들을 1시에 대원들이 깨웠다. 서둘러 누룽지를 만들어 먹고 3시에 출발을 했다.
대원들의 이중화와 아이젠, 안전벨트는 설사면이 시작되는 곳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착용하도록 했다.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협곡으로 들어서니 바람은 거의 없고 불안정한 돌들이 많아 앞에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낙석에 주의할 것을 위험구간마다 강조해 주었다. 외국 대원들 중에는 낙석에 대비해 헬멧을 준비한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착용한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낙석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협곡을 200m쯤 올라서다가 횡단하여 작은 능선을 2~3개 지나치며 고도를 올렸다.
랜턴 불빛만으로 겨우 루트를 확인해가며 오르느라 등반루트 주변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부분적으로 짧은 바위가 자주 나타났고 루트가 꺾어진 곳에는 어김없이 여러 형태의 돌탑이 쌓여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보였다. 3시간 동안 느릿느릿 반복되는 어둠 속에서의 몸부림 끝에 룽다가 걸린 사람 키 높이의 돌탑이 쌓여진 암봉에 올라서자 10여m의 암릉은 설사면과 연결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정상과 연결되는 본격적인 설사면 등반을 시작하는 곳이다.
협곡을 지나오며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친다. 장애물이 없는 노출된 암릉 위라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3시간 동안 힘겹게 올라온 대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6시, 어렵게 장비 착용을 마무리하고 출발 할 즈음 주위가 밝아 온다. 설사면에는 지난 수일동안 좋은 날씨에 등반했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선명하게 루트가 나 있었다. 처음 사면을 넘어서자 크레바스가 험악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옆으로 난 길도 그다지 위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 설원위로 올라서자 정상까지 연결되는 루트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은 완전히 밝았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적당히 쉴 상황도 아니어서 선 채 잠시 숨을 고르기만 하며 꾸준히 고도를 높였다. 고정로프가 설치된 정상 설벽은 사람들의 발길에 계단 형태로 다져져 있어 주마링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구간으로 예상을 했는데 오히려 20분 만에 80m 정도의 급경사 설벽 구간을 통과하였다. 설릉은 나이프 리지 형태로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20여m 2피치 후에는 움푹 팬 넓은 공간이 있어 잠시 쉬다가 나머지 설릉의 첫 급경사를 올라서니 사람들이 10여명 몰려있는 정상이 코앞이다.
트레킹 중 투클라 부근을 지나는 대원들 뒤로 타위체와 촐라체가 우뚝 서 있다.
등정보다 힘들었던 하산 길
하이캠프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 만에 셰르파와 지정화 대원과 함께 정상(6189m)에 올라섰다. 10여명은 선 채로 있을 수 있는 정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기다렸다.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왔다. 30분이 지난 후에 김성민 대원이 도착했고, 바로 뒤에 올라오던 심현보 대장은 정상에 설 자리가 없는 상황임을 알고는 정상 사진도 찍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내려간다. 웅장한 로체 남벽은 아일랜드 피크 정상에서도 한참을 올려다 봐야할 만큼 크고 높았다. 50분 정도 머무르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외국 대원들이 대부분 내려가고 난 다음에 30여장의 깃발을 차례대로 꺼내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강풍 속에서의 하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정 로프에 확보 카라비너를 걸고 내려오던 중 지정화 대원이 바람에 날려 중심을 잃고 설벽으로 몸이 기운다. 앞뒤의 대원이 줄을 당겨 겨우 위기를 벗어나는가 했는데 나이프 리지를 다 내려설 때까지 더 센 바람에 더 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넘겨야 했다. 설사면을 신나게 내려와서 장비를 풀고 어두울 때 올라온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생각보다 루트 상태가 좋지 않아 밤길을 무사히 올라온 것에 감사했다.
협곡을 벗어날 즈음 사면을 휩쓸고 가는 강풍은 작은 모래까지 함께 날려 눈을 뜰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텐트가 위태롭게 바람에 펄럭이고 있어 서둘러 내려와 큰 텐트를 고정하는 사이 작은 텐트는 바람에 풍선 날리 듯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원들과 스텝 모두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은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더 거칠게 불어 닥친다. 2시간을 버티다 힘들더라도 철수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힘겹게 텐트를 걷어 각자의 배낭에 짐을 나눠지고 올라올 때보다 더딘 걸음으로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등반보다 더 힘든 하산 길이었다.
- 글·사진 이치상 경희대산악회 / 월간 마운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