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강 과 문 화 [5] *-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1)]
한강을 시민공간의 네트워크로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
한강을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착상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다. 그러자면 한강의 장단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강이 다른 도시의 강과 차별되는 점은 ‘지역을 나누는 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강의 폭은 1km로 양쪽 지역이 상당히 멀기 때문에 양안을 통합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는 한강의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전체적으로 아우른다는 점은 한강이 지닌 최대 장점이고, 이것이 한강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
![]() |
서울 시민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한강을 무수히 지나다닌다. 그러나 정작 한강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그곳에 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장소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강 개발의 핵심은 시민들이 가고 싶어하고 또 서울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한강만 파편적으로 잘라서 보고 개발할 것이 아니라 서울의 도시 구조 속에서 한강을 봐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강 바깥이 아니라 강 안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파트와 도로 때문에 한강에 가기 어렵다면, 강에 도로가 면하게 하지 말고 강에 시설이 면하도록 하면 된다. 여기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하면 그곳에 가기 위한 크고 작은 접근로가 생기면서 접근성이 높아진다. 다만 대규모 시설 몇 개 만드는 것보다 작은 단위의 공원이나 문화공간을 곳곳에 점점이 포진토록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구조를 한강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서울 전체에 거미줄처럼 퍼뜨려야 한다. 숲을 예로 들어보자. 한강 인근 몇 곳에 대규모 숲을 만드는 데서 그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자주 찾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여전히 먼 곳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울의 숲들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의 숲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일종의 ‘라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쇼핑 공간이나 역사체험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는 숲과 쇼핑이 만나고 어디선가는 쇼핑과 역사공간이 만난다.
이렇듯 공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휴식공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연계되는 도시의 네트워킹을 이뤄내야 한다. 한번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서울 어디에서도 숲을 산책하다 쇼핑을 할 수 있고,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다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에 접근하는 방법이 한결 수월해짐은 물론이다. 시민의 삶에 밀착한 도시구조란 특정 시설이 어느 한군데에 집중되는 봉건적인 구조를 탈피해 이처럼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한강 개발도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해야만 큰맘 먹어야 한번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슬리퍼 신고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시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강과 도시와 시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관광자원이다. 진정한 관광상품은 스펙터클한 무엇이나 일회성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징인 문화 자체에 있다.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향유하는 서울 시민의 리얼한 삶이 펼쳐지는 한강이라면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차별되는 서울의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공영역의 디자인이란 간판만 예쁜 것으로 바꾼다고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시민 스스로 교통질서를 지키게 하는 도로체계를 만들고, 시민 스스로 모이는 공원과 시장 같은 ‘공간 구조’를 만드는 게 진정한 공공영역 디자인이다.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현란한 장치들보다 한강이 과연 서울에 어떤 의미인가 하는 본질적인 고민이 깊어야만 한강의 미래도 열린다. 다행히 서울은 산과 강이 있기에 조금만 수정하면 언제든 원형으로 복원이 가능한 아름다운 도시다. 한강을 통해 서울의 원형을 잘 살린다면, 어설프게 흉내 낸 워싱턴도 파리도 아닌 서울의 정체성이 명확해질 수 있다. 서울이 진정 건강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하드웨어보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김원 | 건축가·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한강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강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 옛날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사람들이 본 것은 서울을 둘러싼 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었다. 산과 한강이 바로 서울의 랜드마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자꾸만 뭔가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서울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대부분 서울의 산과 한강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도심에서 바로 산에 오를 수 있고, 도심 곁에 이렇게 거대한 강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아는 한강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정작 우리는 잘 모르는 듯하다. 높은 건물이나 인공적인 랜드마크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평야에나 필요한 것이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강이 시민 전체의 생활 속에 들어오도록 만들면 된다. 시민에게 강물을 맘껏 보여주고, 강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를 조성하면 된다. 강이 편안한 산책로가 되고,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가 되고, 서민들이 부담 없이 소주 한잔 마시러 들르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낚시와 수영과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고, 그 옛날 뱃놀이하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설치하고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세운다고 하루아침에 시민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을 바꾸겠다는 작업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강에서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드는 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페라 같은 이른바 고급문화가 아니면 어떤가. 큰돈 들여 거창한 건물을 짓지 않아도 시민 중심의 공간을 만들 방법은 많다. 그런데 지금 추진되고 있는 관련사업은 하드웨어를 먼저 만들어놓고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맞추려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다. 다른 한편으로는 짓는 것보다 비우고 허무는 방향에서 한강을 개발할 필요성도 있다. 아파트 일부를 허물어 강변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쪼개진 녹지를 연결해 한강에 닿도록 해서 산과 강의 원래 모습을 회복해야만 한강이 생활 속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산과 서촌(西村)을 언급하고 싶다. 과거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이 한창일 때도 지금의 남산 한옥마을 터에 아파트를 짓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그때 서울시는 남산골을 되찾는 것이 서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견을 수렴해 아파트 대신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그곳에 삭막한 고층 아파트가 촘촘히 지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서촌도 비슷한 맥락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한옥 선언’을 통해 한옥을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보전하여 도시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했다.
한옥이 밀집된 지역은 한옥을 보전한다는 전제하에 재개발을 추진하고 시의 예산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경복궁 서쪽 일대를 북촌처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다는 서촌 계획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곳은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위하던 중인들이 살던 곳이고, 역사적 인물인 세종이 태어난 곳이고, 겸재 정선이 살던 곳이다. 이상, 현진건, 노천명 등 근대 문인들이 살던 곳도 이 동네다. 이런 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당장 땅값은 치솟겠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문화벨트로 조성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개발이다. 이는 북촌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서울시의 결정은 단순히 한옥 리모델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숨어 있는 기억과 문화를 살리는 일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높게만 올리는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이 간직한 수백년 역사의 켜를 살리는 일이기에 환영할 만하다. 장황하게 남산과 서촌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한강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개발 마인드에서 벗어나 남산의 제 모습을 찾아주고 한옥 선언을 한 그 마인드로 한강에 접근한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시민의 공간으로 회복할 수 있다. 그러자면 개발 마인드에 익숙한 시민의 공감을 얻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