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 서울의 산 [32] *-

paxlee 2009. 5. 18. 22:14

 

                        11. 불암산[佛岩山/507m](1)

 

  1. 명칭과 연혁

 

불암산은 옛 양주 고을 남쪽 40리 거리에서 수락산의 남쪽으로 이어져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중계동·하계동·공릉동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와 경계를 이룬다. 불암산이라는 명칭은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졌다. 화강암으로 된 주봉 남쪽에는 높이 420m의 제2봉이 있다.

 

507m의 우뚝 솟은 바위산인 불암산은 일명 필암산(붓바위산)이라 하여 먹골·벼루말과 함께 땅의 기운을 꺾는다는 문방사우의 이름을 빌린 풍수지명(風水地名)이었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불암산폭포·석천암·불암사·불암굴·학도암 등이 있고, 서쪽 기슭에는 정암사·약소암 등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다.

 

불암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서울의 동북편에 자리잡고 있는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다.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남산이 없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금강산에서 듣고 자기가 가서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었다. 이에 금강산에서 떠나 한양으로 오다가 지금의 위치까지 와보니 벌써 한양에는 남산이 들어서 있었다.

 

그래서 돌아선 채로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불암산은 현재 보는 것과 같이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세의 불암산은 수락산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들어 서울의 북쪽 방어선을 이루며 서울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세조 때는 도성 외곽에 있는 왕실의 4대 원찰의 하나로 동쪽은 불암사가 손꼽혔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금강경 등 불경이 판각되고 석가의 일대기를 새긴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이 새겨져 전하기에 이르렀으니, 불암사는 조선시대 사찰문화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산 이름 역시 불암인 것이다.

 


                - 남성적인 풍모를 자랑하는 불암산 정상 -
 
이러한 불교와의 인연이 닿은 것인 양 조선시대 불교를 중흥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인 중종비 문정왕후의 태릉이 불암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후 그의 아들 명종의 강릉이 또한 인근에 위치해, 불암산은 조선왕실의 특별한 불교성지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불암산은 형형색색의 기이한 모양과 수십 길이 되는 절벽에 노송과 괴목이 어우러져 있다.

 

단풍 또한 아름다워 많은 시인과 묵객이 찾아들었다. 또한 지역주민들은 자연의 힘을 빌어 안녕을 기원하니, 중계동에서는 구릉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제사하는 치성터가 있고, 하계동 용동마을에서는 용(天神)에게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는 산제의식을 행하고 있으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주민들은 불암산 신령님께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육군사관생도를 중심으로 한 불암산유격대가 활동하여 큰 성과를 올린 게릴라기지로서 활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근년에 들어서는 불암산 서남쪽에 고층아파트가 지어지고 주택지역으로 개발되면서, 남동쪽에 있던 배밭 등 과수원 지역이 축소되었다.

 

불암산 남쪽 기슭에는 태릉선수촌이 자리하여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체력단련 훈련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별내면 지역은 아직 한적한 농촌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불암동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에는 유스호스텔과 불암수영장 등이 위치하여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2. 자연생태

 

한북정맥이 양주지방에 이르러 주엽산을 이루고, 그 남쪽으로 뻗은 여맥 하나가 수락산으로 이어지는데, 그 주능선을 따라 덕릉고개를 넘으면 불암산이 된다. 따라서 불암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의정부시 방향, 동쪽으로는 남양주 방향, 남쪽으로는 노원구 공릉동 쪽으로 능선이 형성되어, 불암산 제2봉은 남쪽 기슭에 있는 태·강릉의 진산을 이룬다.

 

서쪽으로는 중랑천을 끼고 마들평야가 발달되어 있고 북한산과 마주하고 있다. 전체적인 지형지세는 남북으로 능선이 뻗어 내린 장방형의 산지로 지형 변화가 심하고 암반 노출지가 많다. 경사의 대부분이 30% 이상의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주 경사 방향은 남향 또는 서향이 많다.

 

불암산은 수락산과 같이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최고봉의 표고는 507m로 그 자체가 준험한 화강암의 바위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가 하면 불암의 제2봉은 제1봉 남쪽에 420m의 표고로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있다. 불암산의 봉우리는 암석이면서도 정교하고 기이한 모양과 수십·수백길의 절벽 바위 틈에 그림처럼 자란 소나무가 아름답다.

 

봄의 철쭉꽃, 9월의 단풍은 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화원으로 만든다. 이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불암산에는 등산·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사계절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한편 불암산의 주능선과 부능선에 의해 5개의 분수령이 이루어져 있다. 분수령으로 둘러싸인 유역에는 강우시 일정한 배수체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경수사계곡, 재현중고교 뒤편 계곡 등 주로 자연적인 배수로를 따라서 당현천을 거쳐 중랑천으로 유입된다.

 

식생 분포는 활엽수와 침엽수의 혼용림이 59.2%, 침엽수림이 15.5%를 이룬다. 나무종류로는 떡갈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 등이 주종을 이룬다. 지역을 구분해 보면 경수사 뒷편 제1야영장에서 제2야영장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부는 산불로 식생이 훼손되었으며, 일부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떡갈나무·오리나무·현사시나무 등이 주종을 이룬다.

 

재현중고교 뒷편 정암골은 수목의 생태가 양호하며, 특히 계곡 하단부의 수종이 매우 다양하여 아름다운 산림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계4동 183번지 밤나무정이골 입구에는 수령 800년에 높이 31m, 둘레 8.6m인 큰 은행나무가 있다. 조선 고종 때 명성왕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여주로 피신하면서 이 정자목 앞 민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때 명성왕후가 은행나무에 치성을 드린 이후 성황당으로 변하여 토속신앙의 대상물로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학도암 아래 뒷개울골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수형과 질감이 매우 양호하다. 개발제한구역 밖으로는 배나무 과수원단지가 인접해 있다. 한전연수원과 태릉선수촌 및 삼육대학에 접하는 남측 수림대는 낙엽·활엽교목림 지역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불암산은 전체적으로 암석정원 형태를 띠고 있어 바위 틈새로 뿌리를 뻗고 살아가는 소나무·신갈나무·진달래·철쭉 등이 자연경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계곡 깊은 곳에서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정취를 더해 준다. 소쩍새는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옛날에 소쩍새가 ‘솥작다 솥작다’라고 3음절로 울면 불암산 기슭의 배밭은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 불암산 정상에도 태극기가 휘날린다. -

 

 

 

 - 한국의 산하에서 옮겨온 불암산 사진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