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당호수쪽에서 오른 검단산(黔丹山·657m) *-
팔당호수쪽에서 오른 검단산(黔丹山·657m)
산행일시 / 2009. 07. 26. 일요일 08:30분.
모임장소 / 2호선 전철 잠실역 10번 출구 송파두청앞.
산행회원 / 아우게님, 방이사자님, 수기님, 영심님, 송이님, 해암님, 저녁노을님, 소나무.
산행코스 / 팔당대교-수자원공사-기와집순두부-계곡길-검단산 능선-삼거리-정상.
교통편은 / 자가용 2대.
- 검단산 정상에서 -
2호선 전철 잠실역에서 내려 10번 출구 송파구청까지 가는데, 조금 멀어서 한참을 걸었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을 하기 위해 만나는 동료들은 항상 미소로 인사하고 손을 잡아준다. 그렇게 정이 쌓여 몇년이 지난 동료도 있고, 이제 몇 번 함께한 동료가 있지만, 산행을 한 번 같이 땀을 흘리며 하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몇 년 지기의 산우가 되어있다. 산행은 그렇게 서로가 부담없이 만나서 서서림없이 산 벗이 된다.
네사람이 탄 우리차는 올림픽대로에 진입하여 한강을 따라 진행을 하여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호수를 바라보면서 수자원공사 옆으로 기와집순두부집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기다렸다. 승용차 한대는 에니메이션 고교쪽으로 가서 하남시에 사는 송이님을 픽업하여 오기로 하였다. 검단산 산행은 대부분 에니메이션 고교에서 시작을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한적하고 여유를 가지고 산행을 하고 싶어 배알미동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배알미동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이곳에서 산행을 하는 분들은 승용차를 가지고 가야한다. 그래서 그 만큼 등산객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여 산행의 낭만을 즐기는 여유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푸르름이 짙은 수목의 숲길을 따라 계곡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걸어가면 자연이 보여주는 순수성에 젖어든다.
배알미동은 아래, 윗 배알미동이 나누어 진다. 이곳은 검단산 넘어이지만 하남시에 속한다. 옛날 도성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곳부터는 임금이 거처하는 곳이 보이지 않거나, 또는 멀리서 도성 근처로 다가오는 길손이 이곳에 들면 임금을 배알할 수 있게 된다'는 설이 전해지는 마을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서울 사람들이 마실 수돗물 만드는 공장 수자원공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아랫배알미동 마을버스 종점은 속칭 '매운탕마을'이라 불리는 강변마을이 있다.
검단산은 백제 위덕왕 때 '검단(黔丹)이라는 도인(道人)이 이산에 은거했다'해서 검단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한다. 이 지역이 한강에 접해 있으므로, 전국 각처에서 올라오는 물산(物産)의 집산지였기에, 여기서 일단은 '검사하고 단속하였다'는 것이다. 이 산 입구에 창우동(倉隅洞)이라는 마을 이름이 있다. 창우동이란 '창고가 있던 곳'이란 뜻이다. 한 때는 검단산의 검(黔)을 '금'으로 읽어 '금단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검단산 일대는 백제 시조인 온조왕 4년 이래 근고초왕 26년까지 무려 370년을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다. 검단산과 남한산의 북쪽 산줄기 가운데, 오늘날 '고골' 일원으로 추측된다는 설이다 있다. 검단산에는 조선 시대까지 봉수대가 있었고 최근까지 군부대가 있었다. 정상은 족구를 하고도 남을 만큼 넓은 공터가 있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팔당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해돋이 풍경이나, 해넘이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배알미동 동쪽에, 지금은 호수가 되어버린 곳에 도미진(都尾津)이라는 나루가 있었다. 이 마을에 도미라는 사람이 살았다. 백제 4대 왕 개루왕은, 도미의 아내가 미인이며 정절이 굳다는 소문을 듣고, 도미를 궁중에 머무르게 하고 왕으로 변장한 신하를 도미의 집으로 보냈다. "오늘 도미와 내기를 해 너를 얻었으니 너는 이제 나의 것이니라." 도미의 아내는,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하고는 몸종을 곱게 단장시켜 들여보냈다.
후에 임금이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왕을 기만했도다."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고 쪽배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왕이 도미의 아내를 겁탈하려하니, 도미 아내 왈 "마침 달거리(月經) 중이니 며칠 기다려 주십시오"하고는 틈을 보아 달아났다. 강가로 내달아 쪽배를 타고 남편을 찾아갔다. 얼마 후 배알미 근처에서 두 눈이 없는 남편을 배알하니, 세인들이 이곳을 배알미라 일컬었다. 도미와 아내의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 얘기가 전설이 되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검단산의 유래와 배알미동에 얽힌 이야기를 참고하면서 검단산을 오르는 계곡길은 흙길이 좋은 곳이 있기도 하지만, 자갈과 돌이 깔린 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계곡물은 산 중턱에 이를 때까지 우리의 눈 길을 사로 잡아준다. 계곡 물소리가 멀어지면서 능선을 향해 오르는 가파른 길이 다가온다. 산 길은 그래도 흙 길이어서 계곡길 보다는 걸음을 옮기기가 훨씬 편하고 좋다. 오늘 날씨는 비온 후라 그런지 끝내주게 화창하고 좋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능선길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주었다. 우리는 한쪽에 쉬면서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이렇게 등산객이 적은 한적한 산행길을 걸으니 너무 좋다며 모두들 즐거워 하였다. 기와집순두부집에서 정상까지 2.3km 라고 하였는데, 능선에 올라서니 정상까지 590m라는 거리표지판이 서 있었다. 산행거리는 어떻게 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종종있다. 여기서도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한고개 두고개 그리고도 몇 구비를 올라가야 한다.
산곡초교쪽으로 하산하는삼거리를 지나 정상이 가까워지면 새로 설치한 나무계단이 나오고, 그리고 또 한 구비를 올라가야 정상에 이른다. 전망대 역활을 하는 언덕에 올라서니 오늘은 서울 끝까지 한 시야에 들어온다. 삼각산에서 도봉산까지 연봉이 뻗어있고, 서울시내의 모습과 남산의 타워도 낮게만 보여준다. 불암산의 뾰족한 정상봉우리는 어디서 보아도 아름다운 정상으로 크로즈업되 온다. 그 뒤에 수락산과 멀리 관악산까지 조망이 된다.
마지막 10m라는 표지판을 보고도 한 100m는 좋게 걸어야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검단산 정상은 그래도 넓은 공터가 있어 많은 등산객이 함께 쉴 수 있어 어느산 정상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양수리 팔당땜이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어 전망이 좋은 산이다. 한강 건너편 예봉산과 마주하여 그 사이를 흐를는 한강은 팔당땜을 만들어 호수를 만들어 놓은 넉넉한 호수를 보는 것 만으로도 검단산 산행을 위해 흘린 땀을 보상해 준다.
산과 강은 한 곳에서 출발하여 서로가 바라보면서 서로를 지켜주면서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자세로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불어넣고, 산 계곡을 흐를 때는 그렇게 소리치며 요란하게 물소리를 내드니, 한강에 와서 많은 물이 모이니 소리없이 묵묵히 흐르는 모습은 계곡물이 아니라 강물이 되어 그만큼 성숙하였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강물과 산의 나무들이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에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의미를 터득할 때까지 산을 올라야 할 것 같다.
정상이 넓다보니 그늘이 없어 햇볕이 따가웠다. 우리는 나무 거늘에 간편하게 자리를 깔고 앉으니 시계는 겨우 11시였다. 일찍 시작한 산행이라 여유가 많아서 좋았다.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함께 산행을 한다고 하여도 휴식시간이 아니면 서로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어렵다. 앞뒤에 가면서는 이야기를 나눌수 있지만, 모두가 얼굴을 대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은 휴식시간 아니면 중식시간이다.
그래서 산행 후에 모두가 뒤 풀이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과정이 산악회에서 산행을 이어가는 통로가 되어준다. 우리는 11시 40분 쯤에 일어나 하산을 시작하였다.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하므로 우리는 다시 배알미동 쪽으로 걸었다. 올라가는 길이나 하산하는 길이나 힘들기는 같지만,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숨이 들 차므로 조금은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는 더 해야 한다. 우리는 산행을 산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의 걸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산행은 집을 출발하여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산행은 욕심을 내서도 안되고, 무리를 해서는 안된다. 걸음의 속도도 자기가 걸어서 숨이 차지않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남이 앞서간다고 따라가려고 하면 그 만큼 힘이 들고 고통이 따른다. 처음에는 앞서가는 사람만 보고 열심히 따라 가게 되지만, 어느정도 산행 경험이 쌓이면 산 속에 살아 숨쉬는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걸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내려가다가 물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족탕을 하면서 쉬었다. 한 여름에도 계곡물은 수정같이 맑아서 그런지 물은 차다. 발을 담그고 준비해 온 점심식사를 간단하게 하였다. 상치와 배추잎의 쌈은 여름의 별미여서 요즈음은 빠지지않는 메뉴이다. 얼음이 사각사각하는 막걸리를 한잔하니 속까지 시원하고, 송이님이 콩을 갈아만든 콩물도 매우 고소하였다. 수기님의 꽁꽁언 수박은 얼음과자였으며, 자두의 맛은 계절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차차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였다.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는 여기저기에 등산객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기와집순두부집에 이르니 앞뒤로 승용차가 가득하였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자리가 나면 호출을 하였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고 내려오는 길이라 차를 타고 출발을 하였다. 길에도 한쪽에는 자동차가 줄을 서 있어서 겨우 한대가 내려갈 수 있는 여유밖에 없는데, 장체는 계속 이어졌다.
수자원공사쯤에 이르니 2차선이 뚫려 막혔던 숨을 크게 쉬고는 추어탕을 먹으러 간다고 구리시로 진행을 하였다. 추어탕하면 남원, 원주, 설악추어탕이 있지만, 구리에 가면 구리시장 입구에 충북추어탕이 맛이 좋다며 그리로 안내를 하였다. 맛집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데, 역시 맛집을 찾아온 미식가들이 가득하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추어탕의 그 맛이 매콤한 맛으로 가미하여 추어탕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