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선 가셔브룸Ⅰ 등정 *-
오은선 가셔브룸Ⅰ 등정…14좌 완등 ‘-1’

낭가파르밧(8천126m) 설원에 히말라야 8천m 14좌 완등의 꿈을 묻은 ‘철녀’ 고미영씨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졌던 여성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씨가 상실감을 딛고 히말라야 13번째 8천m 고봉 등정 길에 오른다.
오씨는 23일 후원업체인 블랙야크측과 전화통화에서 “24일 파키스탄 발토로 산군(山群)에 위치한 가셔브룸Ⅰ(8천80m)을 향해 출발하겠다”라며 “오로지 가셔브룸Ⅰ만 생각하겠다. 어느 때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회사 관계자가 전했다.
그는 이어 “정상에 오르고 싶지만 가셔브룸Ⅰ이 받아줄 수 있는 만큼만 순응하며 오르고 싶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잘 다녀오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낭가파르밧에서 실족사한 고인에 하루 앞서 정상에 올랐던 오씨는 애초 곧바로 가셔브룸Ⅰ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사고 소식을 접한 직후 베이스캠프(4천300m)에서 고인의 구조작업을 도왔다.
그는 고인의 시신이 한국으로 운구된 뒤에는 파키스탄 스카루드에 머물며 사고 충격으로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는 언행을 극도로 조심해왔다.
이런 가운데 오씨가 칩거에서 벗어나 가셔브룸Ⅰ 등정에 나서기로 한 데에는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 8천m 14좌 완등을 누구보다 강렬히 원했던 고인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인의 오빠 석균씨도 “오은선 대장이 빨리 이번 일을 털고 일어나 미영이 대신 한국 여성산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천m 고봉에 오르기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오씨는 이날 통화에서 고인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블랙야크측은 설명했다.
오씨의 가셔브룸Ⅰ 등정은 내달 3∼5일쯤에는 성패가 결정이 날 전망이다. 등정에 성공하면 오씨는 14좌 완등에 안나푸르나(8천91m) 단 한 개만을 남겨두게 된다.
현재 8천m 12개 봉을 오른 여성산악인은 오씨를 제외하고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 등 3명이다.
평소 고(故) 고미영씨와 ‘언니, 동생’ 하며 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던 오씨가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을 안고 가셔브룸Ⅰ 정상에 설지 주목된다.
앞서 오 대장은 지난달 11일 선의의 경쟁자였던 고(故) 고미영 대장과 나란히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에 올랐으나 뒤늦게 베이스캠프로 내려오던 고 대장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졌었다. 오 대장은 당초 예정됐던 등반계획을 2주가량 미룬 채 현지에서 사고 수습을 돕다 가셔브룸Ⅰ에 도전했다.
블랙야크는 “오 대장이 올가을 안나푸르나에 도전할지, 아니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내년 봄에 도전할 것인지는 오는 20일쯤 오대장이 귀국한 뒤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위치 : 위도 35도43'30"N, 경도 76도41'48"E 의 카라코람 발토로산맥, 중국 신강자치구 경계
1889년부터 1929년 사이의 히말라야 카라코람 개척사의 초기에 영국, 이탈리아인들이 가셔브룸 I봉을 측정하고 탐사활동을 펼쳤다. 이 산의 측량기호는 K5.
1934년 스위스의 디렌푸르트의 지휘 아래 국제원정대가 가셔브룸 I봉에 대한 대규모의 탐사를 감행했는데 H.에르틀과 A.로흐가 남서쪽에 있는 스퍼를 올라 6,300m 지점까지 도달했고, 1936년에는 H.드세고뉴의 프랑스 원정대가 수송문제와 포터의 파업으로 남쪽의 스퍼를 통해 6,900m까지 도달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58년 미국원정대(대장 크린치)가 이 '숨겨진 봉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7월 4일 쇼닝과 카프만 대원이 강추위와 심설을 헤치고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이로써 미국은 8,000m급 초등정 대열에 끼게 되었다.
히든피크는 알파인스타일로 등정된 최초의 8,000m봉이다. 1975년 8월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홀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가 가셔브룸 I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것은 히말라야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알파인스타일 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