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산행기

-* 축령산(祝靈山/879m) 산행 및 야유회 *-

paxlee 2009. 8. 24. 10:51

                 축령산(祝靈山/879m) 산행 및 야유회

                   

산행일시 / 2009. 08. 23. 일요일 -07:30분.
모임장소 / 전철 2호선 잠실역 10번출구 송파구청앞.
산행회원 / 1.드리님 2.영심님 3.노을님 4. 방이사자님 5.해암님 6.아우게님 7..수기님 8.드리님 지인

                9.펑키님 10.목동님 11.시몬님 12.소나무님 13.현이님 14.밤비님 15.안나님 16.은하수님    

                17.cool님 18.새솔님 19.미풍님 20.들소님.
산행코스 / 제1주차장-축령산 관리사무소-축령산 자연휴양림-축령산 야영장-수리바위-남이바위-

                축령산(887m) 정상-절고개-휴양림-잔디광장-계곡식당.
교통이용 /  25인승 미니버스.

 

  

지난 7월 23일 일요일 계획 되었던 산행및 야유회가 그날 장마비가 집중호우로 변하여 부득이 한 달 후 8월로 연기가 되어서 오늘 송파구청 앞에서 출발을 하였다. 잠실역에서 내리면서 시계를 확인하니 07:30분이다. 부지런히 지하도를 걸어서 송파구청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쯤 오고있는지 확인전화가 울렸다.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하고 열심히 걸었지만 걸어서 넉넉히 10분은 걸리는 거리다. 도착하니 모두가 승차를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가장 늦게 도착하여 미안하였다.

 

올림픽대로로 들어서서 한강의 물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남양주대교를 건너면서 서울-춘천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화도 톨게이트를 통하여 수동면으로 진행하였다. 지난번 주금산에 갔던 그 길로 올라가다가 축령산쪽으로 우회전을 하여 주차장까지 가서 우리가 예약을 하여놓은 장소에 준비해 온 짐을 옮겨놓고, 밤비님과 새솔님, 그리고 드리 지인님이 남고, 우리는 축령산 산행을 출발(08:50)하였다. 계곡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오르다가 축령산 관리사무소에서 휴양림 입장료(관리료)를 지불하고, 자연휴양림 갈림길에서 우리는 우측으로 산행 진입로를 향해 올라갔다. 이곳 휴양림 숲속에 텐트을 친 야영객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텐트를 평상위에 설치하게 되어있어 편리하고 좋게 보였다. 식수가 가까운곳에 준비되어있어 알뜰피서지로 안성마춤인 것 같았다. 산길은 비가 많이 내려 그런지 돌맹이가 많은 오름길이었다.

 

오름길을 열심히 올라가니 땀은 전신을 적시며 흐른다. 오늘은 이른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많은 편이었다. 능선에 올라서서 휴식을 하면서 시원한 물도 마시고, 과일도 나누어 먹고 또 출발을 하였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날씨는 더웠다. 그러나 바람은 조금씩 불어주어서 다행이었다. 날씨는 여름이었지만, 하늘과 바람은 가을의 서곡을 보여주는 듯 하다. 숲속은 쭉쭉 뻗어올라간 아름들이 소나무가 많아서 휴양림의 맑은 공기는 매우 신선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전혜의 자연휴양림을 걷는 산행은 즐거움이 땀처럼 솟아 오른다.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어 길 안내를 해 준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수리바위였다. 바위에 올라서니 산하의 전망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지나온 마을이 산과 산 사이에 산재해 있고 가정집보다 큰 팬션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자연휴양림이 있는 축령산에는 잣나무도 있지만, 미인송이라는 금강송이 소나무의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축령산은 암산과 육산이 어울어져 산행의 묘미를 느끼에 해 주는 산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곳곳에 암벽이 수리바위와 남이바위가 자리하고 그 중간 중간에도 암벽은 많았다. 그러나 암산은 정상이 암벽으로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축령산의 정상에는 돌탑이 서 있지만, 육산이다. 수리바위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있고, 암벽을 올라야하는 길도 이어진다. 이곳 남양주와 가평에는 경기도의 유명한 산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남이바위 가기전에 암벽 전망대에 오르면 수직의 암벽이 위압감을 느끼게 해 주는 곳도 있다. 전망과 배경이 좋으면 카메라앞에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재미도 산행의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산행의 즐거움이 산행 후 집에 돌아와 산행사진을 확인해 보는 것은 산행의 추억을 크로즈업 시켜주어 또 다른 산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준다. 다시 땀을 흘리며 남이 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다는 남이바위에 도착을 하면 남이장군의 호연지기가 살아나는 듯 축령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축령산 정상을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산 길로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높다란 돌탑이 서있고, 그 돌탑앞에 축령산 정상석이 서 있으며, 그 옆에는 태극기가 조기로 계양되어 있다. 축령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시야가 확 트여서 멀리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암산의 바위로 둘러쌓인 운악산이 자리하고, 그 옆으로 명지산과 그 앞쪽에 연인산 그리고 그 우측 뒤로 화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북쪽으로 바로 보이는 서리산, 그 뒤로 철마산, 그리고 남서쪽의 천마산이 솟아있다. 우리의 산은 높지는 않으나 산과 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고, 그 능선의 산 그리메가 바라 볼수록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가까이서 멀리까지 첩첩이 쌓여있는 것 처럼 그려져 있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멀리까지 조망이 좋아 더 많은 산들을 조망할 수가 있어 좋았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늘에서 간식을 먹은 후 서리산 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서리산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우리가 올라온 길 보다는 가파르지도 않고, 암벽도 없고, 부드러운 길을 내려갔다. 절고개에서 한 번 쉬고 휴양림쪽으로 하산을 하였다. 휴양림의 우거진 숲은 산객의 눈을 크게 뜨도록 유도를 한다. 한 아름이 넘는 굵은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는 축령산이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휴양림으로 손색이 없다. 휴양림의 삼림욕(森林浴)이란 건강을 위해 숲에다 온 몸을 드러내고 숲의 정기를 쐬는 것을 말한다.

 

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방향을  뿜어내어 해가 되는 해충의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테르핀(Terpene)이란 향기를 뿜어 식물에게 이로운 곤충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우리가 산에 가서 숲 속에서 느끼는 그윽하고 시원한 향기가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와 테르핀(Terpene)이다. 이 둘은 인간의 몸에는 다 유익한 것이어서 살균, 살충, 진통, 항생, 혈압 강화, 강장, 거담, 이뇨 등의 효과가 있다. 우리가 산을 종합 병원이라고도 말하는 것은 운동적인 면도 있지만, 이 두 가지 성분의 삼림욕의 영향이 더 큰 원인이다.

 

삼림욕을 하기 위해선 서서히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활엽수보다 소나무처럼 침엽수 나무가 이 두 물질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내려간 동료들이 있으나, 우리는 서서히 내려가면서 소나무의 굵기를 팔을 벌려 가늠하여 보기도 하면서 서서히 걸으며 사진도 찍으며 내려갔다. 잔디광장에 넓은 곳에 푸른 잎들이 카펫트를  깔아놓은 듯이 포근함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계곡과 아스팔트 사이에 산책로로 들어서서 걸었다. 숲 속의 산책로는 개울가의 피서객들이 모여있는 정경을 보면서 축령산 산행의 마무리를 운치있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관리소를 지나 우리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임장소에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도착하였다. 모두들 산행에 지처서인지 배가 고프다면서 아직 고기가  구워지기도 전에 식사부터 하였다. 치마살이라는 고기의 맛은 입에서 녹아들었다.

 

다우산방 여름 야유회를 위해 아우게님과 방이사자님, 그리고 현이님, 수기님, 안나님이 먹거리 준비하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시원한 장수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잘 익은 고기의 맛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잊게 해 주었다. 먹고 마시는 즐거운 시간은 4시가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장소를 정리하고 버스를 타고 잠실에 도착하여 야유회의 마무리는 노래방에서 유종의 미를 장식하였다. 함께해 주신 많은 회원님들께 감사 드리고, 준비와 진행을 해 주신 운영진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관리소 안내판은 남이바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조선조 명장 남이장군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방 조망이 좋은 이곳 축령산에 자주 올라 지형을 익혔다는 전설의 '남이바위'가 있으며 앉았던 자리가 마치 팔걸이의자와 흡사하다."  축령산에서 가까운 춘성군에 남이섬이 있고 그 섬에 그가 묻혔다고 전해오는 돌무더기가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남이 장군이 어렸을 때 이 근처에 살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남이장군이 역모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하여 무덤하나 없이 돌무더기가 전해 올 뿐이다.

 

남이 장군은 어떤 사람인가.

 

남이의 어머니는 조선 3대왕 태종인 이방원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니 태종의 외손자요, 좌의정 권남의 사위이기도 하다. 17세가 되던 세조 3년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고 대장으로 이시애의 난과 여진을 토벌하는 공으로 27세의 나이에 병조판서(현, 국방부장관)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젊은 나이의 출세는 많은 정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궁궐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데, 혜성(彗星)이 나타나자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除舊布新象)"라고 말했다. 이를 엿들은 자기보다 빠른 승진을 질투하던 그의 부하 유자광이 남이장군이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하며, 남이 장군의 시(詩)를 증거로 제시하였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가는데 다하였고,
頭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이는데 다하였다.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가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 어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이 7언 절구에서 원문의 전구(轉句)의 "未'平'國"(미평국)을 유자광이 "未'得'國"(미득국)으로 고의로 바꾸어 무고함으로써 국문 끝에 능지처참을 당한 분이 남이장군이다. 능지처참이란 사지(머리, 몸, 손, 발)를 토막토막 쳐서 죽이던 극형이었다. 그때 나이가 28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남이 장군은 갔지만 그가 무술을 연마했다는 남이바위가 남아있고, 그가 호연지기로 지은 시조 3수가 남아 있으니 그분의 시조로라도 낭송하여 남이 장군의 넋을 기려야겠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도 나오던 시조가 아닌가.

 

장검(長劍)을 빼여 들고 백두산(白頭山)에 올라보니
일엽제잠(一葉제岑)이 호월(胡越)에 잠겼에라
언제나 남북풍진(南北風塵)을 헤쳐볼까 하노라.

 

적토마(赤兎馬) 살지게 먹여 두만강(頭滿江)에 씻겨 타고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선뜻 빼쳐 둘러메고
장부(丈夫)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시험(試驗)할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