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야성적 충동 *-

paxlee 2010. 1. 18. 20:45

야성적 충동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근 서점가에는 많은 행동경제학(고전경제학과 대비하여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아니라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경제학)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상식밖의 경제학‘, ’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등의 책이 그것이며, 거기서 저자들은 인간의 경제활동은 합리적 이성뿐 아니라 탐욕이나 시기 등 인간의 심리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왜 이렇게 최근에 행동경제학 서적이 많이 출간된 것일까? 왜 합리적 이성이 아닌 인간 심리에 의한 경제적 활동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최근까지도 여진을 일으키고 있는 서브프라임에 의한 금융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금융위기는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의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다.

 

전세계에 번진 부동산 열풍, 신용부실자에게 제공한 부동산 대출, 부실한 신용을 조각조각 내어 금융상품으로 만든 금융회사들은 합리적 선택보다는 탐욕과 오류투성이인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현상들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행동경제학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며, 관련서적들도 출간되고 있는 것이다.


본 서적의 제목 ‘야성적 충동’은 경제사상가 존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에서 인간의 비경제적 본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처음 언급했다. 그는 ‘심리적 요인’이야말로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즉, 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은 비관과 낙담 그리고 회복기의 심리적 변화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했다고 설명한다.

 

7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야성적 충동’의 저자들은 케인즈의 ‘야성적 충동’에 기반해 최근 6년간 진행된 세계 경제흐름을 설명하려 한다. 이미 1970년 발표한 논문 ‘레몬이론’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오류를 발견하였고, 이 레몬이론이 행동경제학의 초석을 다진 공로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 조지 애커로프와 예일대 경제학교수이자 금융시장 및 행동경제학에 대해 전방위적 글을 쓰는 저자 로버트 쉴러는 본 서적에서 인간의 합리적 선택에 의존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의 근본가정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의 경제학에서 완전히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요소였던 자신감, 공정성, 부패, 화폐 착각, 그리고 이야기 등의 요소들을 경제학의 핵심부로 갖고 들어오며, 이를 통해 금융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경기순환, 실업, 물가 등 기존 경제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에 대해 통찰력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 자신감, 그리고 상승효과

언론과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발생할 때 ‘자신감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902년 주식시장이 붕괴됐을 때 J.P. 모건이 은행가들을 모아서 자신감을 가지라 언급하기도 했으며,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은 첫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라며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했다. 자신감이 얼마나 경제에서 중요한지 경제학자들은 알고 있다.

 

가령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휩쓸고 난 후 거주자들이 다시 집을 짓고 싶어 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뉴올리언스에 집을 짓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이웃도 상점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겠는가.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정착하려 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참할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착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좋은 평형과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라는 자신감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나쁜 평형, 2가지 평형이 존재한다. 단지 자신감의 여부에 따라 말이다.


이렇게 자신감은 경제 상황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가정이다.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활용하여 합리적인 예측을 하고 예측에 기반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위에 합리성을 뛰어 넘는 믿음, 자신감이 존재한다. 실제로 지나친 자신감은 주어진 정보를 왜곡해서 해석하기도 하고, 올바르게 해석했더라도 합리성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 금융위기의 발단이었던 전세계적인 부동산 버블도 인간의 자신감 즉,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자신감을 근거로 한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 공정성

자신감과 마찬가지로 공정성도 고전경제학에서는 간과되었던 요소였다. 경제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늘 마지막 장에 위치해 있을 정도로 경제학에서는 소홀히 다루어지는 분야다. 하지만 공정성에 따른 동기가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보다 강하게 작용한다는 연구결과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경제학자인 잭 크네시, 리처드 세일러의 연구가 그것 중 하나이다. 그들은 실험참가자들에게 공정성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는데, 폭설이 내린 후 철물점이 눈삽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공정하냐 안하냐는 질문이었다. 기초적인 경제학에 따르면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답자의 82%는 폭설이 내린 상황에서 눈삽의 가격을 15달러에서 20달러로 올린 것은 불공정하다고 대답한 것이다. 실제로 홈디포는 1992년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한 후 그러한 반감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합판 가격의 상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경제학 속에서 공정성은 주요한 결정에서 동기로 작용하여 신뢰와 협동력에 관계한다. 가령 자신이 손해보더라도 규범을 어긴 사람 즉 공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은 인간이 합리적 경제주체라는 가정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 부패와 악의

경제의 작동 방식과 야성적 충동을 이해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면까지 파악해야 한다. 일부 경제적 변동은 부패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부패의 확산에 의한 것이며, 불법은 아니지만 나쁜 동기를 가진 악의도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되면 경제적 변동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지난 3번의 경기침체, 즉 1990년 7월부터 1991년 3월까지 발생한 경기침체, 2001년 3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경기침체, 2007년 12월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는 모두 부패 스캔들이 연루되어 있다. 1991년 저축대부조합 사태는 1982년 저축대부조합의 규제가 철폐되면서 시작되었다.

 

주택대출을 제공하는 은행 역할을 하는 저축대부조합은 정부로부터 예금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줄 수 있었다. 경영진은 그 기회를 틈타 부실 여신을 쌓았고, 그러면서 부정거래를 틈타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결국 그렇게 쌓아온 부실여신이 문제가 되어 저축대부조합은 파산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지불해야 할 돈은 자그마치 1,400억 달러나 되었다.

 

2001년 발생한 경기침체는 1990년대에 불어닥친 주식투자 열풍의 후유증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지만, 엔론 사태로 대표되는 기업의 부패 스캔들이 역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2007년에 시작되어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경기침체는 부동산가격의 급락, 그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화, 그리고 파생상품이 된 모기지 담보 증권의 정크화가 결합된 형태이지만, 복합적인 원인 내부에는 부패와 악의가 숨어 있다.

 

많은 서브프라임 대출업체들은 대출자들에게 대출조건을 다소 속이기도 하였다. 낮은 초기이자를 광고하면서 나중에 갚아야 할 높은 이자를 숨기는 것이 가장 흔한 수법이었다. 이는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미국사회에서 교육수준이 낮으며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쉬웠다. 한편, 모기지 대출업체들은 대체로 채권의 안정성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채권을 처분하고 싶어 했다.

 

그에 따라 모기지 중개업체나 은행에게 모기지 채권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판매하도록 했다. 이 채권의 가격과 리스크는 정확히 산정되지 않은 채 신용평가 회사들은 조합된 채권 패키지에 인증도장을 찍어 주었고,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결국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채권이 부실화되고, 이를 대량으로 구매한 은행들도 파산의 절벽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3번의 경기침체가 야성적 충동 중 하나인 부패와 악의에 의해서 발생되고 확대되었다는 것을 저자들은 제시하고 있다.


■ 화폐 착각

야성적 충동 중 하나인 화폐 착각은 화폐가 물가수준에 따라 실질적 가치가 변하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화폐가치가 불변한다고 착각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케인즈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화폐 착각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 화폐수치의 인하에는 반대하지만, 실질가치의 하락에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화폐 착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저자들은 보스턴 통근열차의 알림판 사례를 들었다. “금연-일반법 272조 43A항에 따라 10일 이하의 구류나 5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음”이라는 알림판인데, 이 알림판에서 제시된 2가지 처벌은 엄청나게 차이가 큰 것처럼 보인다.

 

금연법은 1968년에 처음 공표된 이래 50달러라는 벌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 이후 50달러의 실질가치는 80%나 줄어들었으며, 그 당시 구류 하루치에 해당했던 5달러는 지금은 웃음거리에 불과한 금액인 것이다.

 

이처럼 화폐가치가 물가 수준에 따라 변하는 데도 불구하고 화폐가치가 불변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외에도 많다. 저자들은 노사간의 임금계약이나 일반 채권 매수, 주택 대출, 기업의 회계장부 등에서도 화폐 착각이 존재하며, 경제의 작동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야기

저자들이 주장하는 야성적 충동 마지막은 바로 ‘이야기’이다. 경제학자들은 이야기에 기반하여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전문적이지 못한 일로 평가받는다. 오직 정량화된 사실과 경제적 변수의 최적화에 기반한 이론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가 시장을 움직인다면 어떨까? 과도하게 설명된 이야기가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면 어떨까?

쉴러는 <이상 과열>에서 1994년부터 대중이 이용할 수 있었던 인터넷의 발명과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지속되어 경기호황으로 이어진, 즉 ’이야기’가 주식시장 활황에 미친 핵심적인 영향을 자세히 설명했다. 소재과학, 화학, 기계공학 분야의 수많은 점진적 진보로 구성되어 수 세기동안 경제성장을 이끈 꾸준한 기술 발전은 한 번도 대중의 대대적인 관심을 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경제를 지배했다. 인터넷을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그것을 통해 젊은 사람들이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19세기 골드러쉬의 현대적 재현이었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성공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신감을 주었고, 경제 변화 양상에 변화를 주기도 하였다.

이처럼 저자들은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착각, 이야기 등 야성적 충동을 고전경제학과 대비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야성적 충동을 활용하여 8가지 질문과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왜 경제는 불황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가장 궁금한 질문인 현재의 금융위기에 필요한 조치는 무엇인가?와 왜 소수계의 빈곤은 계속 대물림되는가?까지 고전경제학으로 설명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 행동경제학 이론에 비추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 맺음말

인간은 정말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경제적인 결정을 하는가. 경제학에서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고전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최근 경제위기를 맞이해서 이 질문에 대한 관심과 대답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점차 복잡해지고 빨라지는 환경변화와 소비자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추세 속에서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반영한 행동경제학은 더욱 주목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더욱 많은 사회현상과 경제 현상들을 설명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땅 속에 누워있는 케인즈 교수도 ‘야성적 충동’에 대한 이해가 점차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서적은 적절한 시기에 출간되어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켜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경제학에 대한 오랜 공부가 없었다면 본 서적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쉽지 않아 많은 대중독자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필자의 마지막 의견이다.

리뷰 / 한 일영 수석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저자 / 조지 애커로프 외 공저 / 발행일 2009년 / 342p /가격 1500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