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알프스의 4,000m 명봉] (16) 몽블랑 정상에서 설동 비박 *-
paxlee
2010. 1. 26. 11:01
[알프스의 4,000m 명봉] (16) 해발 4,800m 정상에서 설동 파고 비박
4,000m 이상 고개들 오르내리며 고산 등반의 묘미 만끽,
- 동구권의 슬로베니아 주변국에서부터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을 거쳐 지중해까지 장장 1,200km에 이르는 알프스산맥은 넓이가 약 8만5,000평방마일의 초승달 모양으로 드넓게 펼쳐진 여러 산군의 집합체다. 바로 이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4,807m)은 1786년에 초등된 이후 알피니즘 역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각 시대 대표적인 알피니스트들의 전위적인 등반 목표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무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의 첨단 등반 추세가 히말라야 지역으로 향해 있지만 넉넉하고 장엄한 산악미를 품고 있는 몽블랑은 여전히 도전적인 등반선이 무궁한 알프스의 최고봉이다. 최고봉에 대한 일반 산악인들의 열망 또한 뜨거워 매년 여름 시즌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순례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 ▲ 침낭 등 비박장비를 지고 몽블랑 뒤 타귈 북사면의 신설을 헤쳐 오르는 이진기씨와 백승기 선배.
필자는 한 해에 적어도 한두 번 몽블랑에 오르고 있다. 이제껏 20여 회 몽블랑 정상에 섰는데, 어느 것 하나 멋진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동벽과 남벽으로 한 번씩 오른 후에는 모두 북측 기슭에 위치한 알프스 최대의 산악도시 샤모니가 산행기점이 되는 3개의 일반 루트를 통해 올랐다. 몽블랑 정상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경선이 동서로 이어져 있는데, 북면은 상대적으로 완사면을 이룬 반면 남면은 급사면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방향으로 빙하가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뻗어내리는 등줄기에는 여러 위성봉이 솟아 있어 알프스에서 가장 거칠고 외딴 산악미를 간직하고 있다. 샤모니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가장 친숙한 봉우리이기도 하다. 언제나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몽블랑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몽블랑만 보고서도 그날의 기상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다.
- ▲ (좌) 시간 이상 화이트 아웃을 뚫고 내려오던 중 일행 뒤로 현지 산악인들이 줄지어 있다. (우) 구름을 뚫은 햇살을 받으며 정상으로 오르는 일행. 뒤로 저 멀리 몽모디와 타귈이 보인다.
좌우로 엄청난 고도감 느껴지는 낭떠러지
지난 여름이었다. 이번에는 몽블랑을 조금은 달리 오르고 싶었다. 동서로 횡단할 뿐 아니라 정상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늘 알프스의 최고점에서 자고 싶었던 터라 필자의 제안에 백승기 선배와 이진기씨가 기꺼이 응했다. 하여 우리는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3,842m) 전망대에서 출발하여 북동릉을 경유해 정상에 올라 설동을 파 비박하고 다음 날 서쪽인 구테 루트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 케이블카역에서 만난 우리는 곧장 전망대로 올랐다. 텐트만 뺐다 뿐이지 눈삽을 매단 배낭은 제법 묵직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많은 산악인과 전망대에 오른 우리는 몽블랑 쪽을 일별했다. 옅은 구름이 살짝 얹힌 모습을 확인하고 곧장 얼음동굴을 빠져나왔다. 몽블랑 정상까지 신고 갈 아이젠을 착용하고 피켈을 집어들었다. 조심해서 북동 설릉을 내려왔다. 좌우로 엄청난 고도감이 느껴지는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지만 익숙한 곳이라 우리는 안자일렌을 하지 않고 움직였다. 혹시나 싶어 자일을 챙겨 갔지만 사용할 일은 없길 바랐다. 갈 길이 멀었다.
설원을 가로질러 코스믹 산장 아래의 눈밭을 지났다. 눈이 내린 후라 산악인들은 많지 않았다. 콜 미디(Col Midi·3,532m)를 가로지르자 찬바람이 불어 방한모를 눌러썼다. 곧 몽블랑 뒤 타귈의 거대한 북사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 두 발 발걸음을 옮겼다. 신설사면이라 걸음이 무겁다. 눈으로 덮이기 전에 있었던 러셀 자국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아 우리가 길을 뚫다시피 전진했다. 셋이기에 번갈아 선두에 서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신설사면은 끝이 없었다. 러셀이 잘되어 있을 때에 비해 거의 두 배나 힘들고 많은 시간이 걸려서야 몽블랑 뒤 타귈 북사면을 넘어섰다.
- ▲ 이튿날 새벽, 심상치 않은 날씨 때문에 몽블랑 정상에 판 설동을 서둘러 나서고 있다.
시간은 이미 정오가 넘었으며 하늘에는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콜 모디(Col Maudit 4,035m)를 가로지르자 세찬 바람에 가루눈이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이제 우리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인 몽모디(Mont Maudit·4,465m) 북사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가 진 우리는 잠시 쉬기로 하고 거대한 세락 아래서 바람을 피했다. 몽블랑 정상까지 절반도 가지 않아 지친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에 몽모디에 오를 때엔 러셀이 되어 있던 길을 따라 가볍게 올랐지만 지금은 침낭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새롭게 길을 뚫고 왔던 터였다. 한편 이미 와본 길이라 하여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돌아서려면 지금 해야 했다. 모두 마음속에는 조금은 돌아설 마음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어쨌든 가보자는 필자의 제안에 모두 기꺼이 따라주었다. 한 명이라도 돌아서자고 했다면 필자도 순순히 따랐을 것이다. 다들 결의를 다지며 아이젠을 단단히 조이고 배낭을 고쳐 멨다.
힘든 러셀 피해 위태스런 빙벽 등반으로 돌파
- ▲ 에귀 뒤 미디에서 콜 미디를 지나 타귈 북사면을 오르는 일행.
- 몽모디 북사면은 타귈 북면에 비해 훨씬 가파르다. 하단부 설사면에서 허우적거리다시피 러셀을 하며 올랐다. 중단부에 이르러서야 설사면이 단단해졌다. 오히려 급사면의 단단한 지대를 골라 프런트 포인팅하며 올랐다. 배낭이 무거워 자칫 균형을 잃고 추락할 위험이 있었지만 러셀을 하며 오르는 것보다 편했다. 이윽고 몽모디 북서릉 아래의 가파른 빙벽 구간에 이르렀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쉰 후, 한 명씩 오르기 시작했다.
- 북서릉에 올라서자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가루눈이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하지만 남쪽에 솟아 있는 몽블랑의 거대한 덩치가 어서 오라 손짓하듯 가깝게만 보여 힘이 솟았다. 이제 정상까지 절반은 올라섰다. 이제 길은 몽모디 정상부 서면의 가파른 빙설사면을 가로질러야 한다. 몇몇 구간은 프런트 포인팅까지 하며 지나갔다. 브렌바 고개(Col de la Brenva·4,303m)에 접근할수록 바람이 강했다. 몽블랑 정상부는 구름에 휩싸였다 벗겨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나 바람이 심한 브렌바 고개에 이르자 북측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오른쪽 뺨이 얼얼할 정도였다. 안면 가리개까지 했지만 뺨이 시려 두 켤레나 낀 장갑으로 바람을 막으며 걸었다. 이제 정상까지는 추락의 위험이 없는 경사진 설사면만 오르면 되었지만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발걸음이 무거워졌으며 북풍은 한층 매서웠다. 다행히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이 몽블랑 정상에 걸렸던 구름 아래로 내려와 강하게 비춰주었다. 온기라곤 없었지만 찬란한 태양빛은 정상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줬다. 모두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서로 말이 없었다. 각자 지고 온 보온병의 물은 바닥이 난 지 오래였다.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프스 최고봉에 처음으로 오른 백 선배의 기쁨이 제일 컸으며 이 루트로는 처음 오른 이진기씨 또한 기뻐했다. 필자 또한 이렇게 힘들게 오른 적이 없었기에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상에 선 두 동료를 카메라에 담으려다 그만 아이젠이 스패츠에 걸려 남쪽 사면으로 굴러 넘어졌다. 아차 하는 순간 수 미터를 떨어졌는데, 용케 균형을 잡고 설사면에 피켈을 꽂았다. 자칫 2,000m 아래의 남벽으로 추락할 뻔했기에 등골이 오싹했다. 정상 등정의 즐거움에 젖어 방심한 탓이다. 기쁨 후에는 슬픔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경험한 셈이다.
정상에 서는 데 10시간 이상이 걸려 이미 저녁 6시가 넘었다. 시간이 없었다. 처음 계획대로 정상에서 자기 위해선 설동을 파야 했다. 정상에서 10여m 아래의 남쪽 사면에서 눈을 파기 시작했다. 가져간 눈삽이 두 개라 작업에 진척이 있었다. 교대로 입구를 깊이 파 들어간 다음, 자세를 낮춰 본격적으로 굴을 파기 시작했다. - 겨울철에는 종종 설동을 파지만 여름철에 그것도 몽블랑 정상에서 파려니 쉽지 않았다. 고소의 영향으로 힘이 들었고, 설질이 단단했으며 깊이 파 들어가자 얼음이 나타났다. 서로 번갈아가며 파김치가 되도록 약 2시간 동안 파자 셋이서 하룻밤 자기 적당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비좁은 공간에 배낭을 집어넣어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을 펼쳐 지친 몸을 누이는 고된 작업이 이어졌다.
- ▲ 브렌바 고개에는 유독 바람이 세차게 불어 뺨이 얼 정도였다. 저 멀리 몽블랑이 보인다.
화이트아웃 속에서 길 찾아 헤매
각자 편한 자세를 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설동을 파느라 지치고 얼어붙은 몸을 녹이느라 침낭에 든 몸을 빼, 타는 갈증을 해결해야겠다며 침낭 지퍼를 연 것은 몇 시간이 지난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모두 경미한 고소증세마저 겪고 있어 버너를 찾고 코펠에 얼음덩이를 넣어 물을 만드는 일조차 힘겨웠다. 따뜻한 차 한 잔씩을 마시고 난 후에야 설동에 울려 퍼지던 신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후 한 번 더 수분 섭취를 위한 번거로운 절차를 행하자 설동 밖의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새벽 5시였다. 바람에 실려 온 가루눈이 입구에 가득 쌓였지만 급한 용변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높은 구름이 펼쳐진 회색 하늘이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설동 안의 아늑한 침낭 속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지만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비스킷 몇 조각을 먹고 출발 준비를 했다. 복장을 고쳐 입고 배낭에 짐을 넣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더 어두워져 있었다.
하룻밤 동안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설동을 떠난 우리는 다시 정상에 섰다. 설동에서 하루 자고 오른 기쁨은 전날과는 사뭇 달랐다. 시간이 없어 기념사진만 찍고 구테 루트로 하산을 서둘렀다. 가파른 설릉을 내려서자 새벽 2시에 구테 산장에서 출발한 산악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날씨가 험해졌다. 북서풍은 더욱 매서웠다. 한 시간 반 걸려 발로 무인대피소에 이르렀다. 산장 안에 들어가 바람을 피해 쉬었다. 차 한 잔을 끓여 마시니 한결 몸에 온기가 돌았다.
- ▲ 발로 비박 대피소에 이르자 날씨가 더 나빠졌다.
- 또 출발이다. 비박산장 아래의 급사면을 내려서자 구름이 사방을 에워싸 버렸다. 2, 3m 이후로는 보이지 않았다. 콜 뒤 돔의 드넓은 설원에 내려서자 방향 감각이 없어졌다. 만일을 위해 우리 셋은 자일로 서로를 묶었다. 선두에 선 필자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길을 찾았다. 익히 아는 지대지만 길을 잃는다면 끝장이다. 눈을 부릅뜨며 눈보라마저 치는 화이트아웃을 헤쳐나갔다. 이런 마당에 바로 길 옆에 위치한 또 다른 4,000m 봉 돔 뒤 구테(Dome du Gouter·4,303m)는 생각도 못할 처지다. 우리가 가는 오른편으로 일이십 분만 가면 닿을 수 있는 또 다른 4,000m 봉의 정상이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돔 뒤 구테의 북측 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은 더욱 매서워졌고 구테 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층 애매했다. 그래도 자세히 살피니 새벽에 올라온 이들의 희미한 흔적을 쫓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내려오며 몇 번 길을 잘못 들어 주춤하며 앞길을 살피길 수십 번 하며 언뜻 돌아보니 우리 뒤로 십여 명이 줄을 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앞장서 가고 있는 우리가 제대로 길을 찾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앞선 필자가 이곳 지리를 잘 아는지 묻곤 했다.
한 시간 동안 화이트아웃을 헤쳐 내려와 마침내 구테 산장 어귀에 이르러서야 그렇게나 짙은 구름 속을 빠져나왔다. 시야가 뚫리자 그동안 굳어졌던 표정들이 밝아졌다. 우리를 지나쳐가는 몇몇 자일파티는 고맙다는 인사마저 건넸다.
구테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쉬고 계속해서 하산길에 올랐다. 산장 아래의 가파른 바위지대를 걸어 내리고 낙석 다발의 쿨와르를 건넌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좀 더 빨리 하산을 하고픈 마음에 테테 로제 산장 우측 아래로 뻗어내린 쿨와르로 접어들었다. 일반적인 길은 쿨와르 오른편 능선에 있었다.
상단부는 킥스텝으로 수월히 내려갔다. 하단부에 이르자 얇게 덮인 설사면 속에 얼음이 있어 그 사실을 모르고 글리세이딩을 했더니 피켈로 아무리 제동을 하려 해도 되지 않았다. 50m 정도 가속도를 내며 추락해 버렸다. 다행히 카메라는 무사했지만 좌측 팔다리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고 엉덩이에 뿔이 났다. 이렇듯 마지막까지 극적인 순간을 겪은 우리는 니데글 역에 이르러서야 몽블랑 횡단등반을 무사히 마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행 Guide
몽블랑 등반의 기점은 북측 기슭에 위치한 프랑스의 샤모니와 남측의 이탈리아 쿠르마예다. 일반적인 등정은 주로 교통이 편리해 접근이 쉽고 루트들이 이탈리아 쪽에 비해 쉬운 프랑스의 샤모니 쪽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난이도 있는 등반들은 주로 남측이나 동측에 치우쳐 있다.
샤모니를 기점으로 하는 루트들은 비교적 등반이 쉬워 전문 산악인들과 동행하면 초·중급자들도 오를 수 있다. 대표적인 루트가 에귀 뒤 미디에서 시작하는 북동릉 루트와 플랑 케이블카 역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보송 빙하(Bossons Glacier)를 거슬러 오르는 그랑뮬레 루트, 그리고 니데글 산악열차 종점에서 시작해 구테 산장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구테 루트 등 3개 루트가 있다. 이 중 구테 루트가 가장 일반적이고 안전한 루트며, 그랑뮬레 루트는 시즌 초반엔 안전하지만 7월 말부턴 크레바스가 많이 벌어져 조심해야 한다.
한편 북동릉 루트는 4,000m 이상의 고개들을 오르면서 고산 등반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루트지만 세 루트 중 가장 조심해야 하는 루트다. 몽블랑을 오르는 노멀 루트 중 하나지만 1998년 여름 시즌에만도 이 루트에서 가이드를 포함하여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후 눈사태로 인한 조난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한편 한국 산악인들도 이 루트에서 조난당한 경우가 있다.
- 글·사진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 / 월간 산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