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라운드 [3] *-
[히말라야 MTB 라이딩 <하>]
토롱라 내려서니 고소증 싹…‘룰루랄라’
베시사하르~토롱라~베니 234.66km… 베니~포카라는 버스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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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이제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같이 가기보다는 먼저 올라가서 내 자전거를 놔두고 내려가 아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방법을 취하기로 하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한다. 패스에서 우리를 찾아 내려온 고용인에게 아내 자전거를 부탁하고 토롱라까지 먼저 올라갔다. 4~5명의 트레커들이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배낭에서 수통을 빼어들고 아내에게 내려간다.
토롱라서 아내와 함께 안나푸르나 여신께 감사
20분 정도 내려가도 보이질 않는다. 아내가 많이 처진 것 같다. 걱정이다. 멀리 보이는 아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물을 건네주며 살펴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고소증세로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가이드에게 배낭만 주고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이미 마음이 한풀 꺾여서인지 자전거도 못 밀고 가겠다고 한다. 10m도 못 가서 자꾸 앉고 싶어 한다. 계속 독려하며 고개를 빨리 넘어야 한다고 채근한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고소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고개에 올라서서 초콜릿과 차로 몸을 녹이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찻집 안에는 고소 때문에 자기보다 더 움직이지 못하는 외국인이 있다며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한다.
- ▲ 밑으로 내려올수록 타고 가는 빈도수가 많아진다. 길이 끝나는 데까지 타고 갔다. 하산 중에 모레인 지대에서 오랜만에 긴 거리(?) 탔다.
- ▲ 협곡으로 들어서자 걸어 내려가기도 힘든 진흙 자갈밭이 나타났다. 우리보다 늦게 하산하는 트레커를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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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하산한다. 걱정이다.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다가 너무 미끄러워 다시 한 번 브레이크를 점검하기로 했다. 얄팍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최후의 방법으로 자전거를 뒤집어 바퀴를 빼고 혹시나 풀린 나사가 있는지 브레이크와 연결된 볼트를 하나씩 조여 나갔다. 이 과정에서 고장 원인을 발견했다. 브레이크 핸들 유격을 조절하는 볼트가 모두 풀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적당히 조이니 브레이크 레버가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왔다.
몇 번의 움직임에 정상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조금이라도 정비 기술을 아는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그런 작은 문제는 금세 해결했을 텐데. 생고생한 것을 알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몸이 매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자전거의 불안이 해소되었기에 그런 것이다.
묵티나스 쪽도 날씨가 흐려 하늘 쪽은 보이지 않는다. 계곡 사면을 거의 다 내려오니 지도에도 없는 로지 두 채가 있는 마을에서부터 비로소 자전거에 몸을 의지해서 내려갈 만하다. 노면이 약간 험하긴 해도 내려가는 데는 문제가 되질 않았다. 토롱라를 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싹 잊어버리고 자전거 타는 재미에 쏙 빠져들고 있다.
- ▲ 지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살이 거세 건너기를 걱정하던 중 나무다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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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m의 높은 고도에서 쌀쌀했던 날씨가 3,000m대로 내려오니 다시 덥다. 신나게 내려오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묵티나스에 도착하자마자 로지에 들어가 맥주 한 컵을 들이켜니 머리가 핑 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출발한 이후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초콜릿 두 개도 토롱라에서 아내에게 주었다.
이렇게 가장 우려했던 토롱라를 넘어왔다. 아내는 과거의 경험으로 패스를 넘어가려고 했지만 고소의 영향이란 언제 어떻게 오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이 정도로 끝내고 넘어온 것이 마낭의 곰파에서 시주한 덕, 할아버지의 기도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안나푸르나의 여신께 감사를 드린다.
- ▲ 토롱라를 넘어 처음 만나는 묵티나스 마을(3,760m). 표고 4,000m면 스노라인이 없어지고 마른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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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형 팀의 지프에 짐을 올려 좀솜까지 보내고, 아내와 나는 자전거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원하게 뚫려 있는 하이웨이를 보며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비되지 않은 자갈밭 길을 달리니 몹시 부담이 된다.
쭉 펼쳐진 계곡 사이로 가노라니 오른쪽을 암회색의 무스탕 지역이 거대하게 들어온다. 밀밭만 빼고 아직 풀이 자라지 않아 산 전체가 흙빛과 회색빛 바위로 어우러져 무겁고 장중한 위엄을 과시한다. 차도를 따라가다 밋밋한 길이 재미 없어 중간에 트레킹 로드로 접어들었다. 역시 찻길보다는 길이 험해 조금 위험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좀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도 좋지도 않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며 조그마한 개천도 건너고 강바닥으로 들어가 강물과 함께 가기도 하다가 시원한 그늘이 나오면 그늘 밑에 쉬며 그동안 지나온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 ▲ 사과로 유명한 마르파 마을을 지나 처음 만난 거목을 촬영하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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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좀솜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체크포스트에 등록하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가는 종량형 팀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계속 자전거로 내려간다. 오늘 일정은 카로파니(Karopani·2,518m)까지다. 거리는 멀어도 도로 상태가 좋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짐과 고용인들은 버스로 보내고 사과의 고장으로 유명하다는 마르파로 향한다.
마르파 마을에 들어서니 마을 주위에 밀밭보다 사과나무가 많이 보인다. 해발 고도 2,670m. 사과는 해발 1,000~1,550m 고지에서 양질의 제품이 나오는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아서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임에도 좋은 사과가 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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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다가와 몰래 택시 태워주겠다며 거액 요구
아내가 예전에 이곳에서 먹던 음식과 주스가 생각난다고 해서 지나가던 길을 되돌아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텅 빈 도시처럼 썰렁하다. 마을을 거의 다 빠져나갈 즈음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사과 파이와 사과 팬케익에 사과 주스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다. 아내와 나는 매번 음식을 시킬 때마다 고심한다. 아내는 어느 마을에 가든 거의 비슷한 음식만 시키는 데 반해 나는 다른 음식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내 음식이 궁금해서 자기 것을 다 먹고 또 내 것까지 걷어 먹는다.
그리 편치 않은 점심을 먹고 다시 오늘의 행선지로 향한다. 트레커들은 뜨거운 찻길 대신 숲길과 강변길을 따른다. 좀솜에서 트레커들은 대개 타토파니(1,250m)에서 고라파니를 거쳐 푼힐 전망대로 오른다.
- ▲ 찻길을 따라 돌아가는 것이 멀어 강바닥으로 내려섰다. 약하고 좁은 물줄기는 자전거를 타고 그냥 건너갔지만 이곳은 물살이 거세 들고 건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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