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원정] 스팬틱 북벽 [2] *-
[해외원정] 스팬틱 북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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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눈이 계속 내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텐트 속에 갇혀서 아까운 하루를 그냥 보내야 했다. 답답함이 눈보다 더 깊이 내려앉아 쌓이고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다행히 눈이 그쳤다. 눈과 바위가 뒤섞인 형태에서 60m를 로프 없이 세 명이 동시에 1피치를 올랐다. 다음으로 형일 형이 블랙타워 중단부분의 눈 덮인 부실한 바위지대와 빙벽구간 5피치를 리딩했고, 120m 거리의 혼합등반 구간에서는 2피치를 내가 리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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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총 8피치를 올라 밤 10시가 거의 다 될 무렵 비박지에 도착했다. 비박지는 어제보다 더 상황이 나빠 최악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2피치를 리딩했기 때문이다. 리딩은 등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 속에서도 결국 짐을 덜어내고 온 이유는, 리딩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내 짐을 형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리딩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는데 형일 형이 내 마음을 눈치 채고 그 기회를 일찍 준 것이다. 8피치 중 확보물 설치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지만, 리딩할 때의 기분은 날아갈 듯 행복했다.
7월 12일, 벌써 2차 시도 다섯째 날이다. 120m를 세 명이 줄을 묶지 않고 올랐다. 벽의 각이 커졌고, 눈은 허리까지 빠지는 상태로 밀려왔다. 눈 밑에는 얼음이 아니라 바위인 상태가 더 많았고, 벽이 끝났다는 느낌의 위치에서는 눈이 내리고 화이트아웃이 되어 버렸다.
우측의 설사면을 횡단해 정상으로 오르기로 했으나 화이트아웃으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텐트 자리를 만들고 있는데 순간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눈앞의 설사면 끝이 정상과 만나는 위치임을 확인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정상부와 연결되는 설사면에 텐트를 설치했다. 날씨는 정말 좋지 않았다.
- ▲ 하단 설빙벽을 등반 중인 김형일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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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2시에 잠을 깼다. 새벽 기온은 고도 6,000m를 넘기면서 손끝과 발끝을 마비시킨다. 장비와 짐을 챙겼다. 정상에 크레바스가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로프는 두고 오르기로 결정했다. 1시간 정도 올랐을 때 크레바스가 나타났다. 로프를 두고 온 게 후회되어 추위보다 마음이 더 얼어붙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이럴 땐 차라리 한숨 돌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우린 가볍지 않은 맘이지만 잠을 청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일본 등반팀이 나타난 것이다. 셋째 날부터 계속 마주보며 등반했는데 그들은 무사히 정상에 올랐고, 하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린 다시 정상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날씨가 급격히 나빠졌고, 눈보라에 의해 일본팀의 발자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설사면 80도 각도에서 앞서가는 준영 형의 모습이 불안해 보여 우측으로 돌자고 제안했으나 형들은 그 각을 넘어서 정상을 찾고 있었다. 화이트아웃으로 인해 정상은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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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메고 캠코더를 들고 바람에 맞서 호흡을 멈추며 촬영하고 걸음을 옮기는 터라 힘이 들었다. 트랑고타워 원정 때 호흡 조절에 신경 쓰지 않고 촬영에만 열중하다가 고소가 와서 고생했던 경험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방송국의 요청과 촬영을 잘 하고 싶은 개인적 욕심, 가지고 올라간 4개의 테이프를 모두 찍어내야겠는데 고도가 높을수록 배터리가 금방 바닥나니까 배터리를 아껴야 하는 계산까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정상을 확인했다고 두 형이 소리를 질렀다. 난 품에 품고 있던 캠코더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고글도 벗고 촬영하고 싶은데 설맹이 올 수도 있겠지?’ 그러한 염려는 잠시뿐. 난 이미 고글을 벗고 정신없이 테이프를 돌리고 있었다. 형들과 부둥켜안았다.
“정상이다!”
- ▲ 1차 등반시 등반 장비 및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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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환호 한 마디.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해냈다는 감격 속에서 뱉어낼 수 있는 최고의 한 마디였다. 정상의 감격은 짧다. 정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에 우린 분주한 손놀림으로 깃발을 꺼내 들었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눈이 지독하게 내려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비박지까지 힘들게 돌아서 내려왔다. 뿌듯한 성취감으로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눈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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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설맹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고, 냉찜질을 시작했으나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가 양쪽 눈의 통증을 호소하는데 형일 형도 한쪽 눈이 아프다고 했다. 밤새도록 머리를 감싸 안고 쿡쿡 쑤셔대는 통증을 견뎌내며 다시 아침을 맞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은 계속 아프고 부어올라 내압으로 눈알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텐트에 밀려들어온 눈덩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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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눈을 뜨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기적이다’라던 평범한 삶에 대한 감사의 글이 생각나 새삼 목젖이 젖어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보름달처럼 떠올랐다가 금세 멀어져 갔다. 온몸이 점점 굳어가고 앞을 볼 수 없는 두려움에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을 때, 사랑하는 이들이 고개를 들라고 한다. 눈이 희미하게 떠졌다. 있는 힘을 다해 눈꺼풀을 치켜올렸으나 낮이 되었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시야뿐, 전혀 물체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약속
이 상태로 하산을 결정했다. 나는 하산 내내 앞이 흐려 가물거리는 상태로 로프를 잡고 계속되는 통증으로 눈물범벅이 되었다. 너무 힘들고 무서웠다. 밤이 되자 눈부심이 사라져서인지 눈의 통증이 그나마 덜해졌고,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것이 나았던지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거의 도착지점에서 뿌옇게 흐리던 시야에 한 점 빛이 들어왔다. 빛을 보니 살았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호흡 한 번 할 때마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꼭 살아서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집중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빛이 있지만 나를 살게 하는 빛은 한 점으로도 충분하고 넘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힘겨운 내리막길도 끝이 났다.
- ▲ 블랙타워 상단의 돌출된 바위 위에 설치한 마지막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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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게만 봤던 이 등반이 어떠했냐고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묻는다. 난 내 자신에게도 묻는다. ‘정말 힘든 등반이었다. 동시에 너무 신나는 등반이었다’고 성의 없어 보이는 짧은 문장으로 읊조려 본다. 하지만 이게 100% 진심이다.
동기가 순수했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 인간의 한계 속에서 지혜와 능력을 형들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짜릿한 모험. 내 눈과 가슴으로 찍어낸, 자연과 사람의 호흡을 담아낸 셔터 소리의 신바람. 그래서 난 마음속으로 혼자 으쓱했다. 깊지 않은 숲속에서 서바이벌을 끝내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어머니 앞에 선 어린 초등학생처럼.
사람들이 또 묻는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
그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약속! 그건 사랑하는 이들이 내려 준 동아줄이자, 넘치는 빛이었다고.
스팬틱 북서벽 ‘드림(Dream) 2009’ 개요
- ▲ 스팬틱 북서벽에 K2 익스트림팀이 개척한 드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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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팬틱(Spantik)은 스카르두 지역에서 불리는 이름이며, 나가르 지역에서는 제니시치시(Genish Chhish·Golden Peak)로 불린다. 1955년 7월 5일 독일의 칼 크라머와 그의 동료들이 남동릉을 경유해 초등을 기록했으며, 북서벽 초등은 1987년 8월 5~11일 영국의 빅토로 사운더와 믹 파울러가 당시로선 혁신적인 알파인 스타일 등반으로 이루어냈다.
원정대명 2009 K2익스트림팀 스팬틱 골든필라 원정대
대상산 스팬틱(7,027m) 골든필라
위치 파키스탄 서부 카라코람 산맥 라카포시 산군
난이도 스코틀랜드 등급 Ⅴ/Ⅵ, WI4, M8
등반루트 북서벽 신루트. 등반고도 2,100m. 상부 1,100m는 아주 가파르고 어려운 암벽과 혼합구간.
등반방식 알파인 스타일
베이스캠프 바르푸빙하 상부 4,500m
도보거리 호퍼에서 약 35km, 9스테이지, 3일 소요
등반기간 2009년 6월 2일~7월 22일까지(51일간)
대원 대장 김형일 외 4명
- 글 김팔봉 대원 / 사진 K2 스팬틱 골든피크 원정대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