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라 산 르포 *-
한 라 산
성판악∼작은속밭∼진달래밭∼백록담∼용진각대피소∼관음사
한라산(1,950m)은 휴전선 이남의 최고봉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는 산이다. 제주에서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말이 안 된다. 제주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은 곧 제주인 것이다. 그만큼 제주에서 한라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도민들의 생활, 문화 등 독특한 문화적 특징은 한라산에서 비롯되었으며 4면의 바다와 역사를 함께 했다.
그동안 제주의 한라산은 겨울철의 눈꽃 축제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정상 개방을 허락했다. 그래서 평소에 한라산 백록담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 남은 채 유명작가의 사진첩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9년 3월 1일부터 5곳의 등산로 중 성판악코스, 관음사코스로 정상을 오를 수 있어 정상을 갈망하던 등산인을 기쁘게 했다.
성판악 관리사무소 앞. 흐린 날씨지만 오랜만에 찾은 한라산 산행에 기대가 부푼다. 제주도 특집에 맞춰 개방된 한라산 산행에는 한라산 전문산행 가이드인 진용진씨(41세·樂山카페)가 취재진을 안내한다. 그는 한라산을 많이 찾을 때는 한달에 15회 정도 오른다고 한다. 걷는 동안 진용진씨는 산행코스에 대해 설명을 한다. “등산로는 전반적으로 돌길이고, 정상까지 9.6킬로미터로 멀어 여름이면 탈진사고가 많이 나고, 봄·가을에는 발목을 접질리는 일이 자주 있답니다.”
들머리 좌우에는 잎이 쳐진 굴거리나무와 꽝꽝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때는 조금이른 봄이지만 한라산의 높은 해발 고도와 잦은 기상변화로 인한 일교차가 심하다. 가끔 나타나는 살얼음은 밟을 때마다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출발한 지 40분만에 ‘제주조릿대’가 나타난다. 제주조릿대는 육지의 조릿대와는 달리 잎 가장자리에 흰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덧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배낭을 고쳐 멘 일행의 눈길을 붙드는 선명한 동물 발자국. 진용진씨는 그 발자국을 살펴보더니 2년쯤 된 노루의 발자국이라 설명한다.
제주조릿대 숲에 나타난 노루
출발 1시간 10분만에 해발 980미터 지점인 성판악 부근에 도착한다. 등산로 왼편으로 성판악이 보여야 할 지점이지만 구름이 자욱하다. 성판악은 원래 ‘성널오름’의 한자 표기로 등산로가 이 성판악(1,215m) 부근을 지나기 때문에 등산로 이름도 성판악코스가 되었다.
성판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쯤 구름 자욱한 제주조릿대 사이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노루 한 마리가 ‘신선’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일행 모두 노루 쪽으로 시선을 모은다. 화들짝 놀란 장기자가 “노루다!” 하고 외치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나 쫓아가면 흰꼬리 보이며 도망가고 멈추면 같이 서서 뒤돌아보고…. 장기자는 촬영을 포기하고 돌아온다.
돌과 흙길이던 등산로는 해발 980미터 지점부터 눈 덮인 길로 이어진다. 취재진이 해발 1000미터 지점을 지날 때 또다시 노루 한마리가 나타난다. 역시 찍기가 수월치 않다. 이젠 눈이 잔잔하게 깔린 삼나무 숲을 지난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모든 나무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다. 삼나무 숲에서 10분이면 숲속의 작은 쉼터 ‘작은속밭’에 도착한다.
10시 40분, 100평 남짓한 작은속밭에 도착한 일행은 준비한 간식을 나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을 쉼터로 이용한다. 이곳에서 30∼40분이면 무인대피소인 사라오름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다. 출발을 서두를 때쯤 전날 결혼식을 마치고 서울에서 밤 비행기로 신혼여행 온 박완호(30세), 조인순(27세)부부를 만나 동행을 한다. 비록 날씨는 나빴지만 그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 한라산의 날씨가 금방이라도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다.
“생애 최고의 신혼여행 선물”
작은속밭을 지나니 가스가 걷히고 하늘이 열린다. 다들 이게 웬일인가 하는 표정이다. 이대로라면 정상에서 백록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1시 10분 사라오름대피소를 지난다. 다시 구름이 순식간에 사방을 덮는다. 사라오름대피소를 지나면서 경사는 급해지고 눈길이 미끄럽다. 등산로 주위에 구상나무도 가끔 보이고 산행을 돕는 밧줄도 있다. 해발 1300미터 지점부터 계단길이다.
고도가 높아갈수록 구상나무와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어떤 구상나무는 이미 고사목으로 둔갑해 처절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진용진씨가 신혼부부에게 구상나무와 주목의 식별 요령을 일러준다. “구상나무는 잎끝이 두갈래이며 솔방울이 열리고 잎 뒷면은 은빛입니다. 반면 주목은 잎끝이 뾰족하고 빨간 열매가 열립니다.” 11시 40분, 해발 1400미터의 눈 덮인 계단길을 지나니 정돈된 길이 나타난다.
진달래대피소 200미터 전방부터는 나무와 돌들을 적절히 이용해 만든 길이다. 얼마후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지만 일행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날씨 때문이다. 좋아지겠지 위로하는데 진달래대피소 관리인 정환웅씨(40세)는 우리의 희망에 쐐기를 박는다. “오늘은 틀렸습니다. 요즘 내내 날씨가 안 좋아요” 그래도 신혼부부는 정상에 오른다는 기쁨에 마냥 좋은 표정이다. 대피소 주변 진달래밭은 5월 중순이면 온통 연분홍 진달래가 꽃불 잔치를 벌인다. 1500∼2000평 규모의 진달래가 군락을 형성하는데 만개시기에 맞추어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12시 40분 진달래밭 대피소를 출발한 일행은 취나물과 곰취가 많이 있다는 해발 1600미터 지점을 지난다.
특히 이곳부터는 구상나무 고사목들을 많이 볼 수 있고, 날씨만 좋으면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계 불량으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그런데 취재진이 정상직전의 너덜지대에 이르렀을 때 정상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으로 이어진 등산로와 백록담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이 시원하게 뚫리더니 구름이 발 아래로 깔린다. 취재진은 물론 함께 한 신혼부부도 신이 났다. 특히 신부인 조인순씨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신랑인 박완호씨의 손을 잡고 “올라오길 잘했지! 잘했지!” 하며 애교를 떤다. 박완호씨 또한 생애 최고의 신혼여행 선물을 받은 듯 뿌듯한 표정이다. 너덜지대 길옆으로는 한라산 자생 식물인 ‘시로미’가 제법 많다. 제주 사람들은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제가 구하던 불로초가 이 시로미였다고 믿고있다. 오후 1시 20분, 해발 1820미터의 정리된 계단길로 들어선다. 잠시후면 백록담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계단길을 오르는 동안 서너번 구름이 산정을 휘감아도는데 20미터쯤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기대가 무너진다.
신선의 흰사슴이 뛰놀던 백록담
1시 50분, 정상에 올랐지만 취재진을 반기는 것은 백록담에서 뛰노는 ‘신선의 하얀사슴’이 아닌 뿌연 구름바다. 취재진은 백록담이 제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다른 등산객들은 하나 둘씩 하산하고 10분이 더 흐른다. 얼마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기다리는 시간을 틈타 진용진씨가 백록담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백록담은 원래 흰사슴이 뛰놀며 분화구내의 물을 먹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 사냥꾼이 뛰노는 사슴을 잡기 위해 활을 쏜다는 것이 그만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추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정상을 뽑아 들어 사냥꾼에게 던졌답니다. 그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고,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지요.”
정상에 도착한 지 15분이 흘렀다. 변덕이 심하던 하늘에 다시 햇살을 비낀다. 분화구 사면의 흰눈과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여줄 듯 말 듯 하던 분화구는 구름 옷을 천천히 모두 벗어 버렸다. 이제 거칠 것이 없이 맑다. 지금은 입산이 금지된 북쪽의 1950미터 최고봉과 남서쪽의 장구목이 선명하다. 처음이거나 오랜만에 보는 백록담의 모습에 가슴 뿌듯해 한다.
특히 취재진과 동행한 박완호, 조인순부부는 영원히 잊지 못할 신혼여행의 추억이라며 좋아한다. 관리사무소측에서는 정상에서의 하산 시간을 오후 2시 30분으로 못박아 놓았다. 취재진은 백록담의 장관을 구경하느라 다소 지체한 터라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을 뒤로하니 앞쪽에는 고사목 사이로 장구목이 색다른 절경을 만든다. 하산코스인 관음사코스는 북향이라 성판악코스보다 눈이 많다. 용진각으로 가는 길에 지난 겨울 훈련팀이 만들어 놓은 비박굴을 만난다.
그리고 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고상돈씨를 추모하기 위해 쌓은 ‘고상돈 케른’ 돌무지도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고 앞서가던 장기자의 “앗!”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빠진 것이다. 3월초라 해도 눈이 적지 않은 한라산은 등산로를 벗어나게 되면 무릎 이상 빠지기 쉽다. 장기자는 전날에도 사진 촬영중 발목을 접질렸는데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다. 다시 용진각대피소로 내려가는 길. 이젠 구름 속으로 들은 듯 내내 가랑비가 내린다. 3시 20분 실내가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용진각대피소에 도착한다.
용진각대피소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인다. 용진각대피소는 피곤에 지친 등산객과 훈련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보금자리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올해 한라산 눈꽃 축제가 한창이던 1월 10일 등산객의 안전을 돕고자 용진각대피소에 파견나온 한라산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의 문용진씨가 과로로 사망하기도 했다. 문씨는 73년부터 한라산과 더불어 살면서 한라산을 찾는 이들의 안전을 도와주었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평소 몸이 좋지 않아 수술 받고 퇴원한 지 일주일만에 다른 동료의 수고를 덜고자 근무를 자청해 파견 나간 것이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일행은 그 희생정신에 숙연해진다. 슬픈 사연을 아는지 촉촉하게 비는 내리고…. 취재진은 비를 맞으며 용진각대피소를 떠난다. 구름바다 속에서는 삼각봉의 위용도 왕관릉의 아름다운 경관도 볼 수 없다. 흙탕길로 바뀐 등산로를 한참 내려가니 탐라계곡대피소. 여전히 비는 계속 내린다. 대피소를 그냥 지나쳐 급경사를 내려서니 탐라계곡이다. 비가 와 몸을 감출 데가 없지만 쉬기엔 좋다. 비를 맞아가며 물통을 주고받는다. 이제 조금만 가면 관음사 관리사무소다. 다들 피곤에 보인다. 산행거리가 먼 이유도 있지만 몇 시간동안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기에 다소 지루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타나는 숯가마터, 표고버섯 재배용 원목관수장 등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숯가마터는 1940년경 만들어졌는데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의 나무를 숯으로 만들어 숯을 생산한 가마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국립공원지역으로 지정되어 재배가 금지되었지만 1960년까지만 해도 표고버섯을 재배할 때 쓰던 작은 연못이 남아 있다. 연못에는 버섯 종균을 위한 나무들 대신 수생식물인 ‘가래’가 자생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8시간이 지나고, 속이 비어있는 ‘구린굴’에 도착한다. 굴의 입구는 등산로에서 옆의 땅이 30미터 정도 깊이로 꺼져 땅속으로 이어지는데, 등산로를 계속 따르면 구린굴 나오는 구멍과 다시 만난다.
구린굴을 뒤로한 지 30분 정도 흘렀을까 보호구역을 알리는 말목들이 질서 있다. 그리고 취재진을 먼저 발견한 노루 두마리가 침입자의 모습에 놀랐는지 달아나다 다시 멈춘다. 혹시 산행 출발 때부터 따라다닌 노루는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노루가 먼발치서 “산행하느라 수고했으니 잘 가시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노루야!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거라.” 노루의 배웅을 받으며 한라산을 벗어날 무렵에도 봄을 재촉하는 비는 여전히 내린다. 비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봄을 잉태하는 한라산. 그 한라산이 다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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