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 티베트의 천장 풍습 *-

paxlee 2012. 12. 1. 14:08

 

    "신성한 독수리여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소서"

 
티베트의 신성한 장례의식 천장(天葬)
     독수리에 육신보시하고 환생 믿어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일어난 것은 가라앉으리니 태어남의 마지막은 죽음이 되리라.” -달라이 라마-

육신은 그저 영혼을 담는 껍데기일 뿐이다.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혼이다. 죽어서 육신을 떠난 영혼은 라마승의 도움을 받아 다른 육신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상이 티베트 불교를 숭앙하는 티베트인들의 믿음이자 신앙이다.

티베트인에게 육신이란 그저 한 벌의 옷과 다를 바 없다. 몸을 떠난 영혼은 옷을 갈아입듯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三世輪廻)와 환생(還生)이다. 

▲ 망자를 하늘로 보내는 신성한 장소인 천장 터. 영혼이 떠나 의미가 없어져버린 육신을 독수리에게 보시함으로써 티베트인들은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되풀이한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돌로 쌓은 탑에 시신을 안치하는 탑장(塔葬)을 하거나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 물속에 묻는 수장(水葬), 새의 먹이로 주는 천장(天葬.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을 한다. 탑장과 화장은 주로 덕이 높은 승려가 죽으면 하고, 신분이 낮거나 어린 나이에 죽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으면 대개 수장을 한다. 일반인 사이에 가장 많이 이뤄지는 것은 천장이다.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방인이 보기엔 잔인하기 그지없는 티베트의 천장 풍습은 어쩌면 티베트의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수장은 가뜩이나 부족한 물을 오염시킨다. 화장은 땔감을 사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든다. 시신을 땅에 묻는 토장은 티베트 고원이 대부분 암반층인 탓에 땅을 깊이 팔 수 없거니와 한껏 메마른 덕분에 시신을 파묻는다 하더라도 잘 썩지 않고 미라가 되고 만다.

티베트인은 시신이 남김없이 잘 썩어야 제대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신의 살과 뼈를 발라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하는 천장은 시신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고 육신을 온전히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더구나 티베트 불교는 현세에서 선행을 베풀면 부유한 집안에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에 기꺼이 자신의 육신을 독수리에게 보시한다.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천장

티베트인은 독수리를 망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사신(死神)과 같은 존재로 여겨 신성시한다. 독수리가 시신을 먹고 그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면 영혼이 승천하거나 부귀한 집안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조장 풍습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에서도 행해졌다. 땅과 불을 신성하게 여기는 조로아스터교는 시체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토장이나 화장을 하는 것은 땅과 불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조장을 했다. 티베트의 조장 풍습도 조로아스터교에서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문화대혁명(1966~1976)이 일어나던 시기에는 티베트로 온 홍위병들에 의해 천장이 전면 금지되었다. 만약 이를 어기고 천장을 하다가 발각되면 승려와 천장장 등을 공개처형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천장은 다시 행해지고 있다.

▲ 흰 천에 싼 시신들.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시신을 집에 두고 라마승을 불러 천장 준비를 한다. 4일째가 되면 비로소 시신을 천장터로 가져가 장례를 치르게 된다.
천장은 티베트에서는 일상적인 풍습이지만 외국인이 보기엔 가장 독특한 풍습임에는 틀림없다.  티베트의 수도 라싸 시내의 세라 사원 뒤쪽에 천장장이 있지만 티베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천장장은 라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드리쿵 사원 근처의 천장장이다. 천장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많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장례식을 외국인들이 참관하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만약 천장장 현장에 간다 하더라도 망자의 가족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기본 예의다.

천장장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드넓은 평원에 검은 돌처럼 내려앉아 꿈틀거리는 것들은 모조리 독수리다. 피 냄새에 길들여진 이 독수리들은 온 종일 천장장 주위에서 ‘고기’가 던져지기만을 기다린다.

시신의 살을 바르고 토막 내는 일은 ‘돔덴(Domden)’이라 부르는 천장사(天葬師)가 맡는다. 천장사는 티베트에서도 신분이 낮은 이들이다.

천장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기하고 있던 라마승이 예식을 집행한다. 라마승의 임무는 육신을 떠난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내용을 담은 ‘티베트 사자의 서(바르도 퇴돌)’를 읽어주며 영혼을 달래는 것.

생애 마지막으로 행하는 최고의 보시

라마승의 의식이 끝나면 천장사들이 작업을 시작한다. 천장대의 작은 기둥에 묶인 끈에 시신의 목을 걸고 뒤쪽부터 살을 바르고 뼈를 부수어 독수리가 먹기 좋게 길게 늘어놓는다.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천장사는 시신에 대해 예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순서대로 살을 바르고 관절을 부러뜨려 독수리가 먹기 좋도록 시신을 손질할 뿐이다.

믿음이 깊으면 슬픔도 덜하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것이 슬프긴 하지만 유가족들도 그저 독수리가 시신을 깨끗이 먹어치우길 바랄 뿐이다.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버닝가트의 풍경이 소란스럽게 웃고 떠드는 일상의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듯 티베트의 천장장에서도 죽음의 기운은 음산하지만은 않다. 

작업을 마친 천장사가 자리를 떠나면 이윽고 독수리 떼가 달려든다. 그렇게 살점을 모두 먹어치우면 천장사는 두개골과 남은 뼈를 모아 망치로 부수고 으깨 가루를 만든다. 그 뼛가루는 참파(rtsam-pa)라고 부르는 보릿가루와 버무려 다시 독수리에게 던져준다. 이제 세상에 망자의 육신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하지만 영혼이 있기에 영원불멸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망자의 가족들은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 대신 그저 독수리가 영혼을 최대한 하늘 가까이 인도해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 글·손수원 기자  / 사진·심혁주 기자 / 월간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