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흥망사로 배우는 기업생존전략 [2]
로마 흥망사로 배우는 기업생존전략 [2]
지금부터 조직의 발전원인을 조직론적이고, 문명론적인 입장에서 규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성공의 요인은 6가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가능하게 한 운동사이클이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때는 번영했지만 성공의 6가지 요인이 변질되는 순간에는 하강 사이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한쪽의 요인이 성장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이것이 변질될 때는 바로 하강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요인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로마를 들 수 있겠습니다. 특히 공화정체제가 되겠습니다. 로마의 과거 훌륭한 시스템은 오늘날 미국의 번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미국의 건국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골격은 자유의 정신을 중심으로 균형과 견제의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은 자유이지만 권력은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시스템이며, 지킬 것은 정신이고, 변혁의 대상은 시스템인 것입니다.
폴리비우스가 말하길 로마 국운 번창의 주요한 요인은 정치체제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귀족정을 나타내는 원로원, 민주정을 나타내는 민회, 왕정적 요소를 나타내는 집정관이 발란스를 맞춰가는 혼합정체가 로마 발전의 기반이었던 것입니다. 혼합정체가 가지는 의미는 견제와 균형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협동 시스템, 수많은 리더와 시민의 희생과 공동체 정신을 통해 로마의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BC326년부터 40년동안 계속된 샴륭족과의 전투에서 귀족 출신 집정관인 파비우스가 민회에 평민출신인 데키우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해줄 것을 건의하여 그동안 귀족만으로 선출되던 집정권에 평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로 시스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19명중 10명의 집정관이 죽었어도 계속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리더를 배출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역량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로마는 일찍이 국가가 직면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시스템, 제도, 전략에 대한 변혁을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약화될 때 로마는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시스템이 약화될 때 나타나는 사회의 특징에 대해 기번이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그러나 정당하면서도 우울한 반성이 인간의 가장 숭고한 쾌락을 실망시켰다. 태평성대가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반성이 일어났던 것이다". 기원전 4세기의 공화정의 혼란은 그것의 극복을 통해 성장이 가능했지만 기원후 1~2세기 황제시대의 평화는 오히려 쇠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평화가 쇠망의 원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이몬의 만족과 생산성 모델을 통해 평화가 쇠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종업원의 생산성 증가는 보수와 작업조건의 만족에서 발생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종합적인 상황에 불만족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과 탐색으로 조직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결과에 대해 종업원이 만족하여 안주하게 되면 계속적인 발전과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직의 이상과 비젼과 욕구수준을 자극해야 합니다. 즉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와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종업원들의 달성을 위한 노력과 탐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리더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로마의 성공요인중 두번째를 이해하기 위해 로마의 시민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로마는 협동체적 시스템으로 운용되었고, 이러한 배경에는 리더도 있었습니다만 바로 로마 평민의 시민성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시민성이라는 것은 개인보다는 국가와 조직을 중시하는 공동체 정신이고, 실패와 곤경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가 로마의 시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민과 People의 기원은 라틴어의 '포플루스'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말은 원래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바로 전쟁에서 전우애를 나누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전사들의 공동체가 시민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 시민의 특징은 국가를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데 그 뜻이 있겠습니다. 또 리퍼블릭 즉 공화국이라는 단어도 원래 라틴어의 '레스 푸불리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사단, 시민단 등 조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선조의 유풍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국가를 먼저 위한다는 전통중시를 기반으로 하여 자발성, 신의, 명예, 용기, 희생 등의 덕목으로 무장한 대제국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시민의 시민성이 로마의 성공의 요인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시민성은 조국애와는 불가분의 것입니다. 로마의 시민성은 첫번째로 조국의 일, 두번째로 양친의 일, 세번째로 자신의 일을 생각하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조직론적 입장에서는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이상이 일치된 것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시민성이 포에니 전쟁을 끝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질에 대해 기번이 쓴 것을 보면 "로마의 평민들은 귀족층의 굴욕을 내심으로 즐거워 하면서 오직 빵과 구경거리만을 요구했는데, 아우쿠스투스 황제는 이 두가지를 모두 제공해 주었다. 원로원은 위엄을 상실했고, 대부분의 귀족가문이 소멸되었다. 용감하고 능력있는 공화주의자들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추방당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로마 시민의 우민화로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다음 세번째 요인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귀족의 절제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이라는 책을 통해 귀족의 절제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귀족이 아무런 고귀한 것으로 가장하지 않고, 평민과 사귀고 평민과 같은 복장을 하고, 평민으로 하여금 그들의 모든 쾌락에 참가토록 하면 평민은 그들이 미력한 존재라는 것을 잊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에서 말하는 리더쉽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바로 로마귀족의 절제정신입니다. 이러한 귀족의 절제정신이 있었기에 로마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시민이 이러한 귀족의 행동에 공감해서 위기극복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로마 귀족의 모습을 좀 더 살펴보면 원로원은 귀족과 귀족이 아닌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만 원로원 귀족의 수가 건국 500년후에는 1/5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원로원의 수가 100명에서 300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귀족의 원로원에서의 비율은 1/15로 감소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지도자급인 귀족들의 희생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로마 귀족의 리더쉽은 자기 희생으로 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파비우스 가문은 10여세만 되면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몸을 불살랐습니다. 이런 귀족의 모범과 강한 의무감이 절제정신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숨만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국가건설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세금 등을 통해 전재산을 바쳤던 것입니다. 특히 카르타고에서 패하자 귀족들이 전재산을 바쳐 군선 200척을 만들어 2,3차 포에니 전쟁에서 이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귀족의 절제정신이 바로 조직력을 만들어 내는 리더쉽의 필수요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대중화가 진행되고, 시민의 우민화가 진행되어 변질되었다고는 하지만 시민성의 우민화 현상은 그 근본에는 리더의 변질, 리더쉽의 상실로 부터 야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네번째 요인으로는 개방과 포용을 들 수 있습니다. AD1세기에서 2세기초 플루타르코스라는 역사학자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로마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개방성에 있다", 그리고 영웅전에서는 "패자 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만큼 로마의 개방과 포용은 로마가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도 개방성에 의해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의 유지가 가능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선 것, 뛰어난 것을 받아들여 힘을 키워나간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왕정시대인 제5대 타르키니우스왕때 에투리니아인의 건축기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기술을 사용하여 형편없었던 로마의 7개 언덕에 성도 쌓고, 포로 로마노 광장도 만들고, 수도도 만드는 등 건축기술을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BC450년대 무렵에 그리스에 사람을 보내 그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을 볼 때 앞서고, 뛰어난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여 자기의 것 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개방과 포용의 두번째 의미로는 관대함이라는 것입니다. 동맹국과 적국의 사람까지도 로마의 국적을 주어 살아가도록 하는 포용성, 관대함이 로마를 성공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가 실제로는 초대에는 남자로만 구성된 라틴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족 번식을 위해서 옆의 민족인 사비니족의 마을로 쳐들어가 여자를 납치했는데, 이로 인해 전쟁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극적인 화해를 통해 합병을 하게 되고, 서비니 족이 아주 로마시내로 이주하여 한민족이 되게 됩니다. 또 하나는 3대 툴로스왕 때의 일인데 알바롱가를 정복하게 되는데 이들을 멸족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동화되어 살게 하였습니다. 만일 알바롱가를 멸족했다면 알바롱가의 후손인 율리우스 케사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정복은 하되 동화하고, 공존.공영하는데 로마의 특징이 있겠습니다.
일본의 고사카 마사타카가 쓴 문명의 종말이라는 책을 보면 그곳에 약 70페이지 정도로 로마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로마는 싸움에서 패배한 이탈리아와 그 밖의 모든 국가를 속국으로는 삼지 않았다. 로마는 그들을 동맹국으로 다루고, 내정에는 개입하지 않았으며 단지 전시에 병사의 공급을 의무화시키는데 그쳤다. 즉 로마는 좁은 시야에서 승리를 탐욕하려 하지 않고 관대하게 다루었던 것이며, 그래서 지배를 영속시킬 수가 있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로마의 개방과 포용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기원전 197년에 마케도니아왕 필리포스가 쓴 글에 보면 "로마에서는 노예 조차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기회만 있으면 노예에게도 시민권을 준다. 시민으로 인정할뿐만 아니라 공직에 앉히기까지 한다. 훌륭한 로마 시민이라고 생각하여 대하다 보면 선대에 노예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결과 우리는 땅에서 솟아났는가 하고 여겨질 만큼 언제나 새로운 로마인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방식으로 그렇게 강대해진 로마인에게 과연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인
가."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다섯번째의 성공요인을 보면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진정한 보수주의라는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원로원 이라는 것은 왕정시대의 장로회의를 유지한 것인데 로마의 원로들은 기본적으로 집정관과 세무관과 법률관이라는 고관을 거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고, 그 권위를 통해 로마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권위주의자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수주의와 연결이 됩니다. 그러한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신중했고,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리스 사신들이 로마를 견학갔을 때 로마 원로원들의 태도를 보고 한명 한명의 원로원이 왕과 같다고 할 정도로 근엄했고, 보수적인 외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원로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했으며, 적절하게 혁신과 개혁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보수주의가 양보와 변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진정한 보수주의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의 보수주의가 진정한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개혁을 수반했기 때문이며, 환경이 급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꾼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또 반보 후퇴하면 반드시 거기서 교훈을 얻어 일보 전진했습니다.
여섯번째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들 수 있는데 사회를 위한 인프라 투자를 이미 2900년전에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도로와 공공시설, 법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예링이 말하길 로마는 세번 세계를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군사력으로 했고, 두번째는 라틴어로, 세번째는 로마법이라는 정신으로 정복을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로마법은 세계 법정신의 원전이 되고, 세계법률문화의 기초가 될 정도로 인류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상 여섯가지로 로마의 성공요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로마의 성공요인을 기업의 성공원리에 어떻게 도입시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업성공의 조건은 로마의 경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유지의 대상과 변혁의 대상은 국가의 경우와 기업의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건국이념과 국가운영원리와 기업의 창업정신과 운동원리는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시대 상황에 맞게 변혁해야 되는 부분은 국가의 경우는 권력구조와 정치체제이며, 기업의 경우는 경영전략과 조직 등 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로마의 장기성장 과정을 보면 '자기변혁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기업의 조건을 보면 첫째는 자기 스스로 변혁한다, 두번째는 변혁할 것은 변혁하되 창업정신과 운동원리는 유지한다는 것이 성공조직의 양대조건이 되겠습니다. 로마의 경우를 볼 때 자기변혁에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시대적 모순의 인식과 모순의 인식을 변혁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순의 인식은 자기변혁의 출발점이며 모순이 없는 곳에 발전은 없습니다. 로마의 공화정 말기를 보면 "옛 로마의 공화정의 구질서가 지속되는 한 산적한 문제들은 해결될 수 없었다. 당면한 세계국가의 통치문제를 원로원이 더 이상 처리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 실현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정치를 채택하는 것이었다. 공화정은 껍질에 불과하였고 새로운 변이가 필요하게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시대적 모순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자기변혁의 시작이 가능한 것입니다. 케사르는 이와같은 모순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세계국가에 걸맞는 변혁을 시도하였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변혁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게 됩니다. 전략과 시스템을 항상 시대상황에 맞게 변혁시켜야만 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모순을 인식하였을 때 이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은 변혁의 리더쉽을 가진 사람에 의해 가능할 것입니다. 리더가 '시대의 높이를 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과연 지금이 성장 커브를 그리고 있는지 또는 하향 커브를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시대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대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케사르가 이러한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케사르가 생각했던 것은 로마제국이 로마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의해, 지방에 의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다종다양한 여러 민족이 협력하고 모든 민족이 연대감을 갖는 국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지배하는 중앙과 복종하는 주변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 각 도시국가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거대한 사회적 조직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대중은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의 불편함만을 생각하나 리더는 과연 내일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안목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 높이가 아니라 미래의 시대 높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하나 변용의 리더쉽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변용의 리더쉽은 일반적인 리더쉽과 다릅니다. 일반적인 리더쉽은 자기 혼자 솔선수범하고, 자기 혼자 불타는 것이라면 변용의 리더쉽은 동료와 상사 등 주변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용의 리더쉽의 핵심은 기존의 성공요인을 유지하려고 하는 수구성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변혁의 대상인 전략과 제도는 수시로 변혁해야 하며, 때로는 급격하게, 때로는 완만하게 변혁시켜 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켜야 되는 것은 국가의 경우는 건국정신이며, 기업의 경우는 창업정신입니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케사르는 로마의 정신을 유지하고자 했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케사르를 죽인 부르투스는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공화정의 적으로 케사르를 생각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시스템은 유지되었지만 정신은 소실되었던 것입니다. 기업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국가의 건국이념은 기업의 창업정신입니다. 개혁과 변혁의 본질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자기 변혁이라는 것은 본래의 창업의 모습과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혁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창업정신을 토대로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고객과 함께 번영한다'라는 말이 창업정신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단이 아니고 바로 영원히 유지되어야 하는 정신입니다. 이것은 로마가 동맹국가와 공존을 추구했듯이 우리도 고객과 같이 공존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창업정신과 함께 운동원리도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신한은행이 늘 가지고 있는 운동원리는 바로 'Fighting Spirit'입니다. 이것은 몽테스키외가 그의 저서에서 말한 '야만성'입니다. 야생마와 같은 불타는 투지, 언제나 팔팔 뛰는 정신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한은행이 로마의 연구를 통해 얻게 된 것은 창업정신과 운동원리는 필히 유지하되, 시대상황에 맞게 전략과 시스템을 끊임없이 변혁시키는 시대적 지혜와 능력을 갖춘 관리들과 구성원들의 협동시스템을 구축해야만 무한경쟁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가 그의 저서에서 간절하게 했던 기도를 끝으로 말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켜야만 하는 것은 절대로 이것을 지켜야만 한다는 냉정함과 버려야만 할 것은 단호히 이것을 버려야만 한다는 용기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판단하는 지혜를 신이여 주시옵소서."
질문 : 우리나라 조직 문화를 보면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신한은행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는 과정에서 옛날 것을 고집하는 조직내의 계층은 없었는지 그리고 변화하는데 걸린 시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이 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성찰이라고 합니다. 자아 성찰을 하지 못하는 개인과 조직은 절대 발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임직원의 경우 자기변혁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강구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고, 자기 혁신의 요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 다.
답변 : 저희 은행에서 변화를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임원진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합병문제와 조직개편문제, 사업본부제가 논의되었을 때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원진이었습니다. 1991년에 저희는 전통적으로 은행이 가지고 있던 대기업, 중기업, 소기업, 외국기업 등 '모든 거래처를 상대한다'는 전략에서 'Retail'전략으로 선회를 했었습니다. 그 이후 시중은행에서 우리를 따라서 전략을 구사하는 은행들이 많았는데 이 부분이 저희 은행의 전략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Retail'전략을 추진했던 것은 이미 대기업이 은행에서 이탈하고 있고, 중소기업이 타켓이 되었으면 좋겠는 데 10개 기업중 3개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Retail부분으로 선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Retail'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Middle Market'전략으로 바꾸기 위해 보스톤 컨설팅 그룹에 이를 맡겨서 15개월 동안 연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충고는 사업본부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Retail 본부, Middle Market 본부, 대기업본부 등으로 매출액이 3,000억이 넘으면 대기업본부에 속하고, 30억부터 3,000억까지는 Middle Market 본부에 속하고, 그 이하는 기업이라도 Retail에 가야한다는 권고안을 받았는데 채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사용하고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은행에서 사업본부제를 두어서 동일한 부서에서 대출의 결정과 심사와 실행을 한다면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80년대 일본의 스미또모 등에서 실시한 사업본부제의 실패와 일본의 실패를 토대로 실시의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폐기처분한 것은 아니고 보류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저희 은행도 마찬가지이지만 창업주가 물러나고 2대, 3대로 이어지더라도 회사의 창업이념은 변경되어서는 안되고, 자기변혁은 역시 전략적인 부분과 전술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은행의 경우는 Middle Market으로 가는 부분이 혁신의 시급한 대상으로 추진.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자 : 송연수(신한종합연구소 부소장)
- 출처 / 시오노 나나미 팬클럽 http://cafe.daum.net/oriol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