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삶의글

황새바위에 숨겨진 이야기

paxlee 2017. 5. 29. 22:35



황새바위에 숨겨진 이야기


황새바위는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분들의 성지이다.


순교자의 무덤경당으로 들어가는 지하입구이다.


무덤경당의 중앙에 돌관이 놓여있다. 이곳에서 숨진 337명이 넘는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들의

고향의 흙으로 체운 돌관이다. 이 돌관에 손을 올려놓고 그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자고 해설자가 안내를 해 주었다.


돌무덤 경당 앞에는 예수님의 모자이크 형상이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의 모자이크 형상이 고뇌하는 모습이다.


무덤경당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돌 계단은 좁고 협소하고 가파르며 경사가 직선에 가깝다.


광장에 세워진 순교자의 탑이다.


잘 정돈된 순례자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활의 집(부활성당)에 이른다.


부활의 집 모습이다.


밖에서 먼저 성모마리아 상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순교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모마리아는

하늘과 소통하는 메신져 역활을 하고 계시는 마리아 님의 왼손은 가슴에 언고, 오른손은 

 순교자 들의 손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내 밀고 있다면서 해설자가 마리아님의 손을 잡고 해설을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활성당 안내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해설사의 부활성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활의 집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꽃 무늬를 그리고 도자기 가마에 꾸워서 만든

특이한 바닥제가 깔려있다.


사방 벽에는 이와 같은 문양의 도자기 벽화로 꾸며진 부활의 집 내부에 들어서면서

감동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른 문양이 가로ⅹ세로의 길이가 약15~20㎝ 크기의 도자기 벽화는

놀라움을 자아내게 하였다. 세로로 17개ⅹ가로로 42개가 연결된 사방의 벽은

화려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약 3000여장의 도자기 문양이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같은 그림이라도 칼라가 달라도 달랐다.


해설자가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씩 골라 보라고 하여 하나님의 빛이 순교자에게 전하여 지는 그림이다.


조금 더 확실하게 그림을 보기위해 확대하여 찍어 보았다.


부활의 집 벽을 계획하고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로 꾸어 완성한 분은 화가 조부수 님이라고 해설해 주었다.

2013년 3월부터 2016년 6월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옆에 2015년 boo s.라는 싸인이 있다.


이곳은 야외 십자가 동산이다. 방문객들이 집에서 가져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기증한 것이라고 함.집에서 가져오지 못한 분들은 나무로 십자가를 직접 만들어 놓은

초라한 모습의 십자가도 있었다.


돌 무덤 뒤에는 12개의 돌이 기념비식으로 서있다.


돌 비석 뒤에는 순교자의 이름이 밝혀진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순교자 성지 순례를 오는 분들이 고개를 숙이고 엄숙하게 들어 오라고 돌 문을 조금 낮게 만들었다고 함.


우리는 황새바위의 유적을 탐방하기 위해 몽마르트 카페에서 해설사를 만나 커피 한잔을 하고 해설사의

안내로 황새바위에 숨겨진 이야기을 경청하면서 순교자 성지 순례를 돌아보았다. 공주 황새바위는 

천주교 순교유적으로 공주의 백제역사문화 유적의 탐방객은 천주교인이 아니드라도 이곳을 반드시

둘러보게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교인이 많은 이유는 조선 후기에 충청도

관찰사와 감영이 이곳 공주에 있었기 때문에 관찰사만이 재판을 하고 사형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

졌기 때문에 이곳에서 1500여명의 죽음을 당한 장소가 바로 황새바위 아래 금강 모래사장이었다고 한다.



공주 감영록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교우만 337위라고 한다. 황새바위 터는 1784년부터 1879년까지 100년

동안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공주 구 시가지를 관통해 흐르는 제민천에는 그 당시 붉은 피로 물들여 흘렀다고

전한다. 그래서 공주에는 제민천이라는 개천이 흐르고 있다. 재민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은 이곳 밖에

없다고 한다. 황새바위 언덕에서 공주시내를 내려다 보는 경관이나,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조망되어 황새바위와

삼각형의 지형을 이루고 있어 공주의 역사가 금강과 더불어 백제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