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산윤선도유적지를 찾아서
「고산윤선도유적지」를 찾아서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안내판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건물이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사료들이다.
퇴계 이황선생 문집 [많은 전시물 중 일부]
유물전시관에서 「미인도」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찍은 사진이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고택
녹우당 안채의 모습이다.
정원에 심어진 대추나무에 대추가 많이 달렸다.
유자나무에 유자가 익어가고 있다.
빨간 동백나무 열매가 달려있다.
이 은행나무는 해남윤씨 중시조 윤효정의 아들(고산) 진사시 합격을 기념하기 위하여
식재한 기념 식수라고 한다. 수령 500년, 수고 23m, 나무둘레 5.9m이다.
우리는 벌교의 조정래태백문확관을 관람하고, 강진을 지나 해남 땅끝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해남읍에 이르러
「고산윤선도유적지」를 들려야 한다면서 그곳을 찾아갔다. 윤선도기념관 앞에 도착하니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건물이 아담하였다. 기념관 내부에는 윤선도선생의 자료들이 잘 정돈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모든 자료집이 고서와 그림 등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냥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정원에는 대추나무와 유자나무, 동백나무에는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주위 환경이 덕음산 자락에 해남윤씨 윤선도의 고택 양우당은 모두 문이 닫혀있어 그냥 한바퀴 돌면서 겉 모습만 보았다.
비자림숲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산 중턱으로 약 500m를 올라가야 한다는 안내판을 바라보고 그냥 생략하기로 하였다. 유적지 곳곳에 심어져있는 비자나무를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동백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달려있어 가을에 동백나무를 보는 기회가 없어 동백나무 열매가 달리는지도 몰랐는데, 동백나무 열매와 유자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남쪽지방의 자연을 접하는 것으로 자위를 하였다. 고산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대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고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 되었다고 한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 후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 별시 문과의 초시에 장원급제한 후 봉림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고 ㅓㅇ서윤과 ㅖ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벙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며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겨 조경문화와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고산은 조선 중기의 시조 시인이다. 그는 자연의 모습을 아름다운 우리 말로노래한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등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과 서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시조의 최고봉이자 산수 미학의 정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남 윤(尹)씨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선생의 고택 녹우당(綠雨堂)이며 현재 고산사당 및 어초은사
당(漁樵隱祠堂), 고택이 모두 잘 남아 있고 여기에는 가전고화첩(家傳古畵帖) 및 윤고산 수적(手蹟), 관계문서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은 선조(宣祖) 20년(1587)에 출생하여 현종 12년(1671)
에 죽었으며, 조선왕조 중기의 시조 작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경사백가(經史百家) 에 통달하였고 의약, 음
양지리에도 정통한 학자였다. 사화(士禍)에 의해 유배 당하기도 하였으나 효종과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부
(師傳)가 되기도 하였으며 사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근세의 선비 주택 시설을 고루 잘 갖추었고, 고산선생
을 비롯한 고인들의 문적(文籍) 문서(文書) 및 고화(古畵) 등을 고루 갖추어 근세의 주택사 뿐만 아니라 사회사,
미술사, 문학사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남아있다.(문화재청)
오우가(五友歌)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등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하나 그칠 때가 많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프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영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