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4]
"삶에 쉼표가 필요할 때" [1-2]
에어아시아나의 비좁은 좌석과 긴 환승시간을 견딘후 드디어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카우치서핑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카우치서핑은 숙박비를 절약 할수있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시스템이다. 호스트 삿팔이 패이스북 메세지로 보내준 주소를 확인하였다. 공항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카우치서핑은 호스트가 무료로 잠을 제워주니, 서퍼는 작은 선물을 하거나 요리를 해 주는것이 관례이다. 첫날 저녁은 인도식 카레를 해 주었다. 나는 한국요리로 뭐가 있을까 고민 하다가 떡볶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만드는 되는 소질이 없다. 요리를 못한다고 안해 줄수도 없었다. 그래서 겨우 "삿팔 내가 한국요리 해 줄까?" 그는 "좋지, 단 너무 맵지는 않게 만들어줘" 라고 했다. 그는 TV를 보고 있을 때 나는 떡뽑기 만드는 법을 찾아보고 숙지를 했다. 인터넷에 레시피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다음날 저녁에 중국마트에 가서 재료를 샀는데, 고추장이 없어서 대용으로 칠리갈릭소스를 들고 왔다. 한동안 부엌에서 소스와 씨름하여 떡뽁기와 비슷한 맛을 내기위해 마늘과 양파를 이용해 단맛은 중화 시켰지만, 색깔은 도저히 빨간색이 나오지 않았다. 맛이 훌륭 하지는 않았지만 삿팔이 계속 집어먹는 걸 보면 엉터리는 아닌거 같다. 나는 집에서 간단한 음식도 만들어 보지 않았다.
Australia Cairns 에서는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했다. 시내에서 깨나 떨어져 있었다. 공원을 지나 가는데 늘 비어있던 벤치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공원을 지나 시내로 나갔다. 케인즈의 명물인 인공호수 해변을 혼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으로 버거까지 챙겨먹고 무료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공원에서 보았던 남자가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너도 혹시 제이제이스 백페커스 호스텔에 가니?" "응, 너희도 같은 숙소야? 어제는 못본거 같은데" "우리는 오늘 아침에 도찾했거던, 반가워, 나는 레오나르"야 라고 했다. 그는 호주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친구와 여행을 온 이탈리아 친구라고 했다. 숙소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영은, 맥주 한잔 하지 않을래?" "지금? 난 다시 시내로 나가기 싫어, 게다가 네 친구는 어떻게 하고" "내가 이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맥주를 사올께, 친구는 오늘 밤에 클럽에 간대" "너는 같이 클럽에 안가?" "너랑 맥주 마시고 싶어서 안간다고 했어" 그러고는 그는 맥주를 사러갔다. 맥주를 사가지온 레오나르도와 나는 게스트하우스 마당 평상에 낮아 맥주를 마셨다. 나는 장기여행을 시작 하면서 다짐을 했다.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정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오랜 시간 함께 할수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레오나르도 너는 곧 이탈리아로 돌아 가겠지, 나는 호주를 떠나 여행을 계속 할거야" 우리가 만난다고 해도 아주 짧은 이야기 일거야.
Nepal Himalaya 트레킹에서 전초기지인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트레킹을 할까말까 망설였다. 같은 시기에 세계일주를 떠난 부부가 SNS로 연락이 왔다. 이틀 후 포카라에 도착 하는데, 함께 트레킹을 시작하지 않겠냐고 물어와서 쾌재를 부르며 승락을 했다. 그렇게 동희 오빠와 의정 언니를 맞났다. 우리는 10여년 알고지낸 친구처럼 금새 친해졌다. ABC코스(안나푸루나 베이스 캠프)는 산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조금 고생하면 오를 수 있었다. 하루에 5~6km씩 4,130m에 위치한 베이스 캠프에 오르는 코스다. 1일 차부터 포기하면 안된다고 버텼다. 2일차에 푼힐까지 길게 4천여개의 계단을 오르다가 너무 힘들어 자갈길에 토하고 말았다. 3일차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법에 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었다. 죽음에 가까운 터널을 지나고 드디어 등반에 성공 했음을 알리는 깃발 앞에 멈추어 섰을 때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온 세상이 새 하얀 백년설을 가슴으로 안으며 함성을 질렀다. 나는 이들 부부와 함께하지 않았으면 이런 경험을 꿈도 꾸지 못하였을 것이다. 일곱 낮과 밤을 동고동락 하면서 내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들 덕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영은아, 할수 있어! 처음 산 타는데 이정도면 진짜 잘하는 거야" 라고 응원 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활홀한 자연의 진수를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힘든 회사생활을 5년이나 버틸수 있었던 것도 입사 동기들 덕분 이었다. 혼자서 무엇이 든지 잘 할해 왔다고 생각 했는데, 정작 힘들었던 순간에는 누군가가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세상에 없는 풍경을 놓치지 마라" 히말라야 롯지에 적혀있는 글인데, 히말라야를 다 내려 올때까지 이 글이 나를 얽어 매고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등반에 힘이되어준 부부팀과 함께.
India Varanasi에서 만 판다는 말라이 토스트는 그 맛을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다. 잘 구워진 토스트 위에 생크림같이 생겼지만 달지않은 우유 크림을 얹고 설탕을 뿌려 마무리한 빵 종류다. 한입 베어물면 바삭한 토스트 사이로 고소한 크림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화룡첨정으로 달달한 설탕이 입 맞을 돋우어 준다. 바라나시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한 도시다. 강가에서 시신을 태우고, 그 물에 빨래를 하고, 심지어 그 물을 마시기도 한다. 죽음을 마주하는 그들의 태도는 슬픔보다는 무표정하게 죽은 자와 산자의 길을 간다. 눈물을 흘리거나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육신이 재가 되어 강물에 흘러가고 삶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바라 보았다. 이것이 삶이고 죽음인 인도의 문화는 이렇게 달랐다.
인도의 빈디는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여인이 얼굴 이마 가운데 칠을 하거나, 보석등을 붙이는 행위를 말한다. 빈디는 물방울이란 의미이다. 힌두 문화권에서 빈디를 찍는 미간은 제3의 눈이 존재하며 에너지의 중심인 6번째 지점으로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힌두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진 4세기부터 인도의 여성은 빈디에 칠을 하면서 결혼 여부를 판단 하였다. 기혼여성은 붉은 칠을 하고, 과부는 칠을 하지 않거나 검은 빈디를 붙였다. 나는 기념품으로 빈디를 샀다.
저자의 이마에 빈디가 붙어있다.
요르단에 온 것은 패트라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도 호객꾼들이 끈질기게 달라 붙었다. 돈이 없다고 거절하면, "현금대신 비자, 마스타카드도 가능하다고" 한다. 당나귀를 타라고 달라붙는 호객꾼을 물리 치는데, 익숙해진 나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헤이 코리안 걸, 당나귀를 타라고 모나스트리까지는 꽤 많이 걸어야 해" "당나귀 안타", "돈 없단 말이야, 걸어 갈거야" 한 다섯번 쯤 거절 했다. 무하매드는 갑자기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오 케이, 그러면 너 나랑 친구하지 않을래" 그는 생뚱맞은 제안을 하였다. "그래 친구하자! 대신 이제 귀찮게 하지마, 나 빨리 모나스트리까지 가야해" 친구, 그게 뭐 어렵나, 길 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지면 그게 친구지. 나는 가볍게 대답하고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자신의 당나귀에 타라고 한다. 페트라의 최종 목적지인 모나스트리까지 안내 하겠다며, "응.....? 너 돈 벌어야지, 나는 진짜 돈이없어, 걸어가야 해!" "친구한테는 돈 안받아. 어서 타!" 몇 번을 거절해도 확고한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다. 결국 나는 당나귀에 올라탔다. 무하메드는 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한마디를 덧 붙인다. "이 당나귀가 오늘은 너만의 페라리야" 그는 하루 종일 모나스트리 뿐만 아니라 페트라 구석구석을 보여 줬다. 그는 가족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나를 새로 사귄 친구라고 소개하고 전통차와 빵까지 대접을 하였다. 그의 다른 친구가 "무하메드 그 친구는 누구야?" "안녕, 아브라함, 새로 사귄 한국인 친구야." "영은, 난 이제가야 하니까, 조심해 들어가, 만나서 즐거웠어" 그는 쿨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Egypt Dahab. 나는 배낭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다합에 도착했다. 이곳은 며칠만 머무르려다 몇 달간 묶인 곳이라 여행자들이 그렇게 불렀다. 이집트 경제가 나빠져 환율이 반토막이 나면서 경제적 부담앖이 여행을 즐길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딱 2주만 머물 생각이었다. 여행은 시작한지 100일도 안되어 이곳 왜 에도 가고 싶은 곳이 넘처났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으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딸수 있다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한국인 사모님과 이집트인 알리가 운영하는 썬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몇 일분 방값을 계산하고 방을 정리해 놓고 밖으로 나갔다. 다이버 샵 몇군데 들려 가격을 비교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반에 들록했다. 두어시간 다니며 한바퀴 돌아보니 충분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낯선 얼굴들이 나를 반겼다. 2년간 세계여행을 하고 마지막 여행지로 다합을 선택한 준환 오빠, 주영오빠, 영찬오빠, 현영이까지 한국인을 이곳에서 만났다.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2층 침대에 누웠다. 우리는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았다. 오후에는 해변가 레스토랑 투어를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으며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혼자 외롭던 여행이 이곳에선 즐거움이 새롭게 다가왔다. 일주일 후 오픈 워터와 어드벤스드 자격증에 내 이름을 세겼다.
"난 다이빙이 너무 재미있어서 더 있고 싶어! 언니 오빠들이랑 노는 것도 좋고, 이럴게 아니라 그냥 우리 집 구해서 같이 살아볼래? 낯선 도시에서 한달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준환이 오빠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상관 없다며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저렴한 물가 때문에 세계여행 중 한달 살기를 한다면 다합이 어떨가라는 상상은 해 본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한달이나 머무는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이 숙소에 도착하니 주영오빠와 병찬 오빠도 반겨준다. 여행자 신분에 집이 생기고 가족이 생긴다면 새로운 경험이 될것 갔았다. "그래 내일 당장 랜트할 집을 보러 다니자, 그럼 오늘 제목은 이렇게 쓰야겠다! 가족이 생긴날" 우리집 전용 주방장은 준환 오빠, 수박자르기 담당 주영 오빠. 바닥쓸기 신공을 보여준 병찬 오빠, 귀여운 막네 현영이, 그리고 자타공인 집 주인은 나, 이렇게 얼굴도 이름도 모른채 20여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던 우리는 하루 아침에 가족이 되었다. 2017년 3월 기준 이집트 파운드는 방 2개 다섯명이 같이 사는 집이 4000파운드다. 5인이 나누면 월 5만원정도로 가능했다.
여행에서 만난 5인이 한 가족이 되다.
Ethiopua Mekelle를 거처, Kenya Masai Mava에서 사파리 투어 가이드 깁슨은 "쉿 조용, 저기 사자가 있다. 방금 누를 사냥 했나봐" "엇 저기 하이에나가 있는데? 누 시체를 노리는 것 같아, '꾸웨액," "이게 무슨 소리지! 저쪽으로 가보자!" 우리는 하이에나의 비명 소리가 울렸던 곳으로 차를 몰았다. 사자가 번뜩이는 눈 빛을 한채 하이에나의 목덜미를 물고 서있다. 누를 사냥한 하이에나를 사자가 사냥한 것이다. TV 다쿠멘터리에서 보는 광경을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인 것이다. 이곳은 자연 그대로 대자연 이었다. 코끼리 가족은 눈에 띄게 거대한 덩치덕에 위엄이 있었고. 기린은 나무보다 큰 키를 자랑했다. 야생에서 본 그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은 진짜 살아있는게 뭔지 보여 주었다.
Tanzania, Zanzibar
그리운 사람이 그리워 질때
물장난 치다가 더위에 지쳐,
자리에 털석 주저 앉는다.
차가운 기운을 끌어 당기고 싶어
발 끝은 해변에 살짝 담가본다.
조게 껍질도 아프리카의 태양이 뜨거웠나보다.
내 옆에 조심스레 앉는걸 보면
고운 백사장이 꼭 스케치북 같아서
지구 반대편에서 그리운 이의 이름을 쓰내려 간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이름을
애써 한글자씩 새겨 놓았더니
파도가 데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파도가 떠난 자리에는
새하얀 물거품만 일렁인다.
이왕이면 아주 먼곳으로 떠나려 갔으면 좋겠다.
좁은 내 마음속에 품기 벅찼던 그리움을
이제는 드 넓은 바다가 품어줄 테니.
Zimbabwe, Victoria Folls.
빅토리아 폭포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랬다.
할수 없는 것들이 점점 늘어 나는 것,
힘든 일이 있을 때, 남들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기.
비를 맞으며 좋다고 뛰어 다니기,
안될걸 알면서도 잔뜩 고집 부리고 때를 써보기,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까지도,
빅토리아 폭포는 한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물보라가 일었다.
우비를 쓰고 있어도 홀딱 다 졌었다.
물보라가 마치 소나기처럼 내린다.
그 아래서 즐거워하는 내 모습이 바보 같으면서도 해 맑다.
내가 이런 웃음을 지울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물을 잔뜩 머금은 옷의 감촉이 선명해져 올수록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딱 물에 빠진 생쥐 꼴인데,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토록 즐거워하며 비를 맞아본 적이 었었나.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우비를 입고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