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 되는가?
10월 3일 광화문 집회를 막은 차벽
오늘의 386 집권층 좌파 정권이 조선 사림(士林)의 당파정치와 흡사하다. 나에게 동조하지 않는
대상은 적으로 몰아 숙청하고 귀양 보내는 그들의 정치를 어쩌면 그렇게 닮아가고 있는지 모르겠
다. 권력은 유한하고 정치는 계속 되어야 하는 속성을 잊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바라보는 세
계인은 한국의 대통령은 그 직에서 내려오면, 감옥에 가야한다는 평이 자자하다. 대통령을 지낸
그들의 정치가 잘못된 것도 인정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전직 대통령을 줄줄이 감옥에 가
둔 역사는 세계사에서 찾아 보아도 그 유래가 없다,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미숙하면 그런 오명을
쓰고 세계인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지, 우리의 역사가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에 한숨이 나온
다.
조선 500년을 되돌아 보면 당파정치의 굴곡이 두드러진 시대이다. 이 시기를 셋으로 나누어 보면,
훈구세력이 득세한 100년과 훈구가 사림을 잡아죽인 50년, 그 사림이 득세하여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350년의 역사가 오늘의 정치세력과 어깨를 견주는 것 같아 앞날이 암담하다. 권력은 유한
한데, 권력의 맛을 본 오늘의 정치 세력은 그들의 권력이 생존과 생리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흠뻑 취해 정치를 아수인수 격으로 휘두르고 있는 작태를 바라보는 마음은 암울하다.
공산주의가 한때 그 이상의 정치는 없다고 외칠만큼 두드러진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공산주의
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민주주의가 오늘날 정치 이념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고 하지만, 오
늘 우리의 민주주의는 땅에 떨어진 낙엽처럼 그 추하고 더렵혀진 몰골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무상
을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하게 만든다. 다수결의 원칙을 일방적으로 몰고가는 형태는 그 옛날 전
제정치를 보는 듯하여 골치가 찌끈 거린다. 만주주의 꽃인 논리 전개와 협상을 생략하고 일방통
행으로 밀고가는 오늘의 정치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처럼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조선조의 세조 반란은 조선의 기틀을 짓밟아 놓은 어처구니 없는 정치현실이 되어 왕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세력이 왕조를 쥐고 흔드는 사례가 되어 왕이 신하의 눈치를 보는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져
조선시대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아이러니를 연출 하였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어두워도 형님의 장자
로 왕위에 있는 족하 단종을 페위 시키고 자신이 왕좌를 찾이 한다는 것은 패륜 행위로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아들 둘을 20대도 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세
조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의 끝은 그 과정을 되돌아 보면 그대로 보인다.
요즘 문재인 정부의 386세대의 정치가 좌파일색이 정권을 잡고 흔드는 모양세는 조선의 당파싸
움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눈이 시리고,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돌아 역사는 반복 된
다고 했나보다. 국민은 어떻게 되든 권력의 그 힘이 언제까지 갈 것이라고 그리 권력을 남용하는
지 모르겠다. 권력은 그 한계가 뚜렷한데, 영원할줄 아는 그들의 옹졸함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
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일성과 손잡고 노벨평화상을 타려고 일탈을 벗어났던, 그 행위의 전철을
밟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에게 목을 매고 올인하는 삐뚤어진 정치를 지향하는 태도는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조선은 개국부터 준비되지 않은 왕정으로 출발 하면서 형재의 난을 겪으며 힘의 대결과 권력의
집중이 보여준 정치의 정도를 경험하지 못한 조선조는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하였다. 태조의 세
자책봉에 반기를 든 태종의 힘이 지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왕조의 출발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태종은 아들 셋 중에서 세째에게 양위를 하면서 왕조는 굴곡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정치가 정도를 벗어나면, 권력이 세력을 잡고 흔들게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 아쉬움으
로 남는다.
4대 왕이 된 세종은 두 형님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으므로 형에게 미안하고 세속의 질서를 어지렵
혔다는 죄책감에 정신을 차리고 정치에 매진 할수 밖에 없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을
발전시켜 농업을 발전 시켰으며, 국가 정책을 확립하고 문화와 문예진흥에도 발전된 정치를 이끌
어 갔다. 세종과 비슷하게 정도가 아닌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혁명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도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그정권의 도덕성과 의미지를 개선해 보려고 정
치에 매진하여 GNP가 500불도 안되는 나라를 2만불까지 끌어 올리며 보리고개를 넘어온 그의
신념은 한국을 현대화 시킨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훌륭한 대통령이다.
어쩌면 세종과 박정희는 동병상린의 지도자 인지도 모른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나라의 질서
를 세워 정치의 안정을 가져온 임금으로 추앙 받고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의 기틀을 튼튼
히 하여 발전된 한국을 세계속의 한국으로 우뚝서게 발전시킨 대통령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
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지만, 결과는 받아 들이고, 과오는 벌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역사에 나타난
혁명정치 그 자체는 실패와 성공으로 가름하여 왔다.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도인데,
그것을 지금의 잣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정도를 가야 한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역사의 진실이다. 민주주의 근본을 망각
하고 벌이는 오늘의 정치행태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주먹 세계를 보는 것 같아 정치에 신물이 난다.
힘의 논리로 전개되는 우리의 정치현실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목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욕심
이 팽배한 정치인의 눈에는 국민은 없고 자기들의 이익만 존중하는 이기집단으로 똘똘 뭉쳐 더불
어 협상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욕심과 이기심에 묻고 이기주의 논리로 정치를 일삼는
오늘의 정치행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가시밭길을 걷는 심정이다. 가을의 들판이 황금물결
로 일렁이는 결실의 계절은 풍요로워도 국민의 마음은 겨울의 찬 바람보다 더 세찬 황야에
내 동댕이 처친 신세라고 자탄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에 눈을 감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