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15. <영월 장릉(莊陵)을 가다. >

paxlee 2020. 10. 26. 08:18

*영월 장릉(莊陵)을 가다.

영월 기차 역사

 

장릉의 단종 역사관

 

단종의 영정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귀양살이 중에도 책을 읽고 있다.

 

역사관 내부.

 

귀양갈때 타고 간 거마.

 

역사관을 둘러보고 장릉으로 가는 길.

 

드디어 장릉이 보인다.

 

숙종때 단종으로 복위된 후 조성된 장릉.

 

장릉에서 홍살문쪽으로 내려가는 길.

 

단종의 장릉 홍살문이다. 장릉이 좁은 공간의 능선위에 있고, 홍살문은 그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장릉의 정자각에서 바라본 장릉은 저 높은 언덕위에 위치한다.

 

홍살문 밖의 금천교 아래 물이 흐른다.

 

장릉 홍살문 밖 공간에 있는 연못에 수련이 가득하다.

 

장릉의 공간의 경계는 담장이 둘러있다.

 

장릉(莊陵)은 세계유산, 사적 제196호로 제5대 문종의 아들이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승하하여 단종은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1453년)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 단종 3년에 세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 여름철 장마에 잠길 우려가 있어 객사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영월 유배 4개월만인 음력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를 일기로 승하 하였다. 1516년 숙종 11년에 복위되어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수 있었다. 1698년 숙종 28년 묘호를 단종, 장릉이라 하였다.

 

단종 역사관은 2002년 조선조 제6대 왕인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이다. 단종이 잠들어 있는 세계유산 조선왕릉 영월 장릉에 위치해 있다. 외관은 전통 한옥으로 건축되어 1층은 주제별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단종의 세자 즉위에서 부터 단종대왕으로 복귀하기 까지의 일대기를 차근차근히 볼수있다. 자하로 내려가면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단종문화계에 관한 자료, 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볼수 있다. 단종은 1441년 7월 23일 세종 23년에 문종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홍위(洪暐)이다. 8세에 왕 세손에 책봉 되었고, 10세에 왕 세자로 책봉 되었다. 문예관제학 윤상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 14세때 여랑부원군 송현수(宋玹壽)의 딸을 왕비로 맞았 드렸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유배갈때 영도교에서 이별한 후 혼자 왜로운 삶을 살았다. 82세까지 사시다가 승하 하였다. 릉은 남양주에 있는 사릉(思陵)이다.

 

*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淸泠浦)

배를 타야 건너가는 청령포.

 

청령포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곳.

 

담장 밖에서 본 단종이 머물던 집이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있다.

 

소나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렇게 옆으로 굽어서 자랐을까?

 

관음송으로 이어지는 길.

 

청령포 관음송이다.

 

관음송은 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소나무 높이가 3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5m이며, 지상 1,2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고, 갈라진 두 가지의 밑 둘레는 각각 3,3m와 2,95m이다.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른다. 이 소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하여 볼관(觀), 소리음(音)자를 써 관음송(觀音松)이라 전한다.

 

단종이 유배를 간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쎃여 있고,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섬과 같은 곳이다. 단종의 유배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백년생의 거송이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 349호인 관음송은 수령이 600여년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이다. 이곳은 배를 타지 않으면 나올수 없는 천애의 요새지이기도 하다. 세조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 단종이기에 이렇게 심한 유배지를 선택하였을까? 바로 형님의 아들 조카인 단종을 유배를 보내고, 그것도 안심이 안되어 사약을 내려 죽였을까. 임금이 되기위해서는 부모형제도 없다는 말이 전하는 전설같은 이야기와 단종의 유배 생활과 최후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