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백수의 일상 - 118.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paxlee 2021. 3. 5. 09:13

대의를 위한 희생

 

자크루이 다비드 ‘브루투스에게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바치는 호위병들’. 1789년.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예술작품에는 창작자가 살던 시대적 상황과 고뇌가 어떤 식으로든 담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자크루이 다비드만큼 정치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 정치적 대의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킨 브루투스 이야기를

그려 살롱에 전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브루투스는 기원전 509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독재자를 몰아내고, 로마 공화국을 창시한 인물이다.

왕위를 빼앗긴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왕정복고를 위해 귀족 자제들과 손잡고 반란을 모의

했는데, 하필 브루투스의 두 아들도 이에 가담했다. 반란 음모가 발각되자 브루투스는 즉각

아들의 처형을 명했다. 다비드는 두 아들의 시신이 브루투스의 집으로 이송돼 오는 장면을

상상해 커다란 화폭에 담았다.

 

공화국의 영웅 브루투스는 왼쪽 어두운 곳에 홀로 앉아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아들들의 시신이

들어오고 있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반면, 오른쪽에 있는 아내는 주검 쪽으로 손을 뻗어 울부

짖으면서 공포에 질린 두 딸을 안고 있다. 딸 중 한 명은 이미 실신했다. 푸른 천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여자는 하녀다. 궁정화가로서 평생 권력자의 표정과 마음만 헤아려왔던

그에게 하녀의 슬픈 감정 표현은 너무 어려웠던 걸까. 화가는 그녀의 표정을

생략해버렸다.

 

<전쟁터에서의 나폴레옹>

 

사실 다비드는 실제로도 상당히 정치적인 화가였다. 루이 16세의 궁정화가로 명성을 누렸지만,

혁명이 일어나자 주군을 단두대로 보낸 혁명정부의 공식 화가가 되었다. 이 그림을 포함해

혁명정신을 담은 그림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혁명시대 예술의 최선봉에 섰다.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하자 다시 황제의 선전화가로 활약했다.

 

정치적 격동기에 철새 행보를 보였음에도 다비드는 혁명, 반혁명 세력 모두가 원하는 그림을

그린 덕에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미덕을 그보다 잘

선전하는 화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동아일보 2021-02-25]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초상화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로 강렬하고 극적인

표현과 더불어 사실주의적 표현 양식을 지닌 고유의 화풍을 발전시킨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7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다비드는 정치에 뛰어들어 국민의회 의원이자 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가도 했다.

살롱전을 모든 미술가들에게 개방하여 아카데미의 배타적 특권을 없앴으며, 공공

축제와 행사를 개최하였고, 혁명당원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그림으로

표현 하기도 했다. <마라의 죽음> <바라의 죽음><테니스 코트의 서역>

등을 그렸다.

 

<마라의 죽음>

<마라의 죽음>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유명한 정치 선전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자코뱅당의

지도자 마라가 지롱드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한 소녀에게 자기 집 욕실에서 목욕하던

모습은 순교자를 연상 시킨다. 그의 손에는 '저는 아주 간난한 사람입니다. 이 한가지

이유만으도 당신이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실 이유가 충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쓰인 메모가 들려 있는데,소녀는 이 메모를 보내 마라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어려운 인민을 위해 충실히 봉사했던 마라가 그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는 처참한 상황이 고요한

적막속에 부각되어 있다. 잉크병이 놓인 나무상자에 쓰인 '마라에게, 다비드가 바친다'라는

헌사는 정치적 동지인 마라를 추도하는 비문의 역할을 한다. 이 작품에서 마라는 이상을

추구하다 희생당한 한 사람의 정치가가 아니라 '신선한 혁명의 순교자'로 표현되어

있다. 선택한 주제를 극적인 드라마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던
다비드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