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백수의 일상 - 124. <중동의 마리앙투아네트, 시리아 퍼스트레이디 아마스>

paxlee 2021. 3. 14. 17:42

"사랑 빠져" JP모건 사표…그는 지금 '중동 마리앙투아네트'

내전 중인 시리아의 퍼스트레이디 아스마 아사드가 2018년 한 행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아스마는 억대 연봉을 받던 투자은행 JP모건의 유능한 여성 애널리스트 아스마 아크라스. 영국

런던 지사에서 잘나가던 그는 25세였던 2000년 휴가를 다녀온 뒤 돌연 사표를 냈다.

상사인 폴 깁스에게 그가 남긴 말은 짧았다. “사랑에 빠졌어요. 그만두겠습니다.”

당시 아크라스는 입행 2년차 전도유망한 애널리스트였고 하버드대 대학원 유학도 확정된 상태였다.

아크라스는 하버드대에 입학 포기를 통보했고, “후회하지 않겠냐”는 학교 관계자에게 이렇게

했다. “어떤 바보가 사랑을 버리고 하버드를 택하겠어요?”

 

아크라스가 사랑에 빠진 이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2000년에 대통령 권좌에 오른 뒤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권좌를 쥐고 있는 그 인물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자에서

아스마를 집중 탐구했다. 현재 45세인 그는 10살 연상의 남편인 아사드 대통령과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국제사회는 퍼스트레이디인 아스마가 남편을 설득해 내전의

총성을 멈추게 하리라 기대했지만, 그는 남편을 적극 옹호하는 편을 택했다.

그가 한때 ‘중동의 다이애너’로 불렸으나 현재는 ‘지옥의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리는 까닭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왼쪽) 대통령과 부인 아스마. 2010년, 내전 발발 이전의 사진이다.

그 당시만 해도 아스마는 '중동의 다이애너'로 사랑받았다. AFP=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은 3월 15일로 꼭 만 10년이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시리아 정부군에 의한 시리아 국민

사망자 숫자가 수만 명에 달하며, 이 중 1만4000명은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지중해 동쪽 끝에 위치하고 중동과 러시아에 이웃했으며, 한반도보다 작은 이 나라의

내전 문제는 미국과 러시아, 중동의 고차방정식이 됐고, 그 핵심 인물

중 하나가 퍼스트레이디 아스마다.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다


아스마는 시리아계 영국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친척을 익명으로 인용하며 “시리아와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영국인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부모 모두 시리아계로, 영국 런던 교외의

중산층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 명문 여고를

거쳐 퀸스칼리지를 졸업한 뒤 JP모건에 입사했다.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부모

님과 계속 살았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부호 또는 명문가

에게 시집 보내기 위해 완벽한 통제를 원했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던 아스마는 독립하지 않았다.

아스마의 어머니는 자신의 친척이 시리아의 하페즈알 아사드가 권력을 잡는 걸 도왔다는

점에 착안했다. 아스마의 어머니는 이 인연을 활용해 영국 주재 시리아 대사관에

자리를 구했고 하페즈와 아스마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2016년 사진. 아스마는 내전 중에도 명품을 계속 사들였다고 서구 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하페즈 알 아사드는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로, 부정선거를 통해 아들에게 권좌를 넘겼다. 결국

2000년 여름, 바샤르아사드가 대통령 권좌에 오른 직후 아스마는 시리아로 휴가를 갔고 해변

가에서 바샤르를 만났다. 이 둘은 그해 결혼식을 올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용의주도한

바샤르는 부인을 신중하게 골랐다”며 “독재 정권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의 엘리트처럼 행동했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영국에서 교육받은 시리아계 여성인 아스마는 최적격의 퍼스트레이디 감이었다.

 

지옥의 퍼스트레이디 아스마는 유방암 투병까지


내전 발발 이전까지 아스마의 별명은 ‘시리아의 다이애너’였다. 그가 자녀 3명을 직접 등교 시키고

지적인 이미지와 함께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다. 영국 왕실의 다이애너 비를

본뜬 별명이다. 패션지 보그는 내전 발발 직전 그를 인터뷰하면서 그를

‘사막의 장미’라고까지 불렀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은 그러나 상황을 뒤바꿨다. 국제사회는 아스마가 남편을 설득해 내전을

멈추리라 기대했으나 그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가 내전 중에도 국가 예산을 사용해

대통령 관저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명품을 사들인다는 보도가 계속됐다.

그의 별명은 곧 ‘시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주-1)로 바뀌었다.

2016년 크리스마스 당시 사진으로 이미지 개성용 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AFP=연합뉴스

 

아스마는 그러나 꿈쩍 않았다. 시리아 정부는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 등을 통해 그의 이미지

쇄신에 안간힘을 써왔다. 크리스마스에 아사드 대통령과 함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사진을 게재하는 식이다. 2018년엔 그가 유방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동정표를 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사실도 보도됐다.

그러나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스마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 권력의 기반은 취약하다”며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스마에게

퇴로는 막혔다는 것이며, 누구보다 그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1)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1755~1793).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대혁명 때 반혁명파의 중심으로 활약하다 단두대에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전수진 중앙일보 기자.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