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산악인의 한계 *-

paxlee 2007. 12. 25. 09:09

                       
           산악인의 한계

 

 
◇ 산악인의 한계라는 개념은 그들의 인생에 한계가 있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준엄한 자연 조건에 자기를 투신하는 등산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한계가 있다는 적극적 의미다. 등산은 책임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행위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율·자발적이다. 그러므로 세속적 구속이나 욕망이 따르지 않는 자유불기(自由不羈)의 세계가 등산이다. 사진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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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등산 세계에서는 어떤가 이따금 생각해 본다. 세계의 고산 지대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산악인들의 생애를 볼 때 눈부신 활약을 한 사람일수록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산 사람이 많지 않다.
 
산악인, 즉 등산가는 일상적·사회적 구속을 벗어나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셈이고, 그들이야말로 건전한 심신을 가졌을 터이니 나무랄 데 없는 인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은 그런 사람들이 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애석하다.
 
이것은 특히 유명한 등산가들 이야긴데, 그들의 등산가로서의 능력이 불가항력적인 자연 조건에 부딪쳐 싸우다가 그 한계를 맞는 것은 보기에 너무나 처절하다. 오늘날 큰 업적을 남기고 세계 등반사에 발자취를 새긴 등산가 가운데 그런대로 장수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8000m 고소를 넘어선 '모리스 에르조그'와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을 이룬 '크리스 보닝턴', 그리고 세기의 숙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해낸 '라인홀트 메스너' 등이 그런 점에서 대표적이다.
 
물론 알프스 개척기의 인물로서는 마터호른 초등으로 알프스 등반사의 황금기를 장식한 '에드워드 윔퍼'가 있으며, 여기에 알프스 벽시대를 개척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한 '리카르도 캐신'과 '하인리히 하러', 그리고 '발터 보나티'도 그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을 끝까지 뚫고 달려간 인물들이다.

산악인의 한계라는 개념은 그 능력의 한계인 동시에 그들 생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등산가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의 인생에 한계가 있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준엄한 자연 조건에 자기를 투신하는 등산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한계가 있다는 적극적 의미다.
 
인생에서도 소극적 또는 적극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자가 결정하고 그 책임을 진다. 그런데 등산은 책임이나 의무감에서 하는 행위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율·자발적이다. 그러므로 세속적 구속이나 욕망이 따르지 않는, 말 그대로 자유불기(自由不羈)의 세계가 등산이다.
 
메스너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자유를 주제로 한 책이 있다. ‘Freiheit, aufzu Brechen, Wohin Ich Will(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자유)’가 그것인데, 이 이상 등산가의 의지와 행위의 자유를 설명한 글도 보기 드물다. 그리고 이 표현에는 등산가의 한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자유로운 세계를 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혼자 알프스의 빙설벽을 누비던 '게오르그 빈클러'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의 등산가로서의 한계는 너무나 좁았다. 19세의 젊음을 알프스에 바쳤으니까.등산은 젊은이들의 특권인 의식과 행위의 세계다.
 
패기에 넘치고 사회적 구속이 덜한 세대인 만큼 그들의 세계로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윔퍼가 마터호른에 도전했을 때, 그는 약관 20세였다. 윔퍼는 그야말로 칠전팔기 끝에 당시 알프스 최후의 보루였던 마터호른을 초등하는 성공했다.
 
그러나 하산 때 자일이 끊어지며 일행 7명 중 4명이 추락하는 엄청난 비운과 시련을 맞았다.이 불상사로 윔퍼는 그 젊은 나이에 알프스를 떠나 그린란드와 캐나다 등지를 전전하다 72세라는 등산가로서 쉽지 않은 긴 생애를 마쳤다.
 
등산 세계에서 화려하고 눈부신 성취보다 처절하고 비참한 불상사에 먼저 눈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간의 정이리라. 그러한 불행한 사태는 등산의 역사 가운데 결코 적지 않으며, 그중 으뜸가는 사건도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이때 개인보다 팀 전체 사고가 돋보이는 것은 그 정황이 사람의 마음을 크게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등반대의 사고로 역사적인 것은 1865년 마터호른 참사를 비롯해서 1934년과 1937년의 낭가파르바트 대참사가 있다.
 
그러나 1936년 아이거 북벽에서 4명의 클라이머가 한꺼번에 희생된 사건은 등반사고 가운데서도 더 한층 처절한 인상을 남겼다. 낭가파르바트 때는 히말라야라는 오지에서 눈사태로 삽시간에 일어났으나, 아이거의 경우는 밑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벽에 붙어살겠다고 악전고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일행 4명은 벽에서 합류한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밖에 등산 무대가 4000m 고소에서 8000m 고소로 이행하며 첫 희생자가 되었던 '앨버트 머메리', 1920년대 초엽 히말라야 개척기에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되어 20세기 최대의 신화로 남았던 '말로리'와 '어빙'과,
 
마터호른 북벽을 동계 초등한 '슈밋트 형제' 가운데 그 동생인 '토니 슈밋트'-그는 이듬해 그로세스 비이스바흐 북벽에서 추락했는데, 이들은 모두 젊음을 불사르고 근대 등산의 선구자의 길을 갔다. '프란츠 슈밋트'는 훗날 <자일을 묶은 동료>라는 책에서 동생 토니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한 사람의 쾌활한 청년의 종말은 너무나 빨랐고 어이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보다 길었어도 알맹이 없는 잿빛 일생의 끝과는 다르다’고. 이 말은 1948년에 태어나 1989년 로체 남벽에서 가기까지 초인적 등반활동을 벌였던 '예지 쿠쿠츠카'가 ‘긴 세월을 평범하게 살며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저 높은 데서 한 달 사이에 체험한다’고 했던 감회와도 통한다.
 
알피니즘에는 ‘한계도전’이라는 주제가 있다.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조건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나 여기 도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계 도전자를 특히 독일에서는 ‘Grenzganger’라는 용어로 부르는데 이 말을 가장 즐겨 쓰는 알피니스트가 바로 라인홀트 메스너가 아닌가 한다.

그만큼 메스너는 20세기 후반 젊은이로서 슈퍼알피니즘의 선구적 역할을 했는데, 등산가로서의 그의 한계는 능력과 수명 어느 모로나 많은 등산가 가운데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그 폭이 넓었다. 메스너의 저서에 <죽음의 지대>나,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등 색다른 제목의 등반기가 있는 것도 그의 세계가 그만큼 남다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악인의 한계는 산악인으로서의 의식과 행위에 따라 정해지고 좌우된다. 산악인이 산에서 한계에 도전할 때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헤르만 불은 낭가파르바트 단독 초등 때 등반보다 하산 도중에 그러한 정황에 부딪쳤다. 그가 남긴 오직 한 권의 책 <8000m 위와 아래>는 이때 기록으로 등반기 가운데 가장 돋보인다.
 
이러한 히말라야 개척기에 알프스에는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는 과제들이 있었는데, 몽블랑 산군의 프레네 중앙릉은 그 중의 하나였다. 여기를 1961년 발터 보나티 일행이 도전했는데, 그는 산악인으로서 특이한 한계를 지닌 알피니스트였다.
 
강풍과 눈보라와 극도의 허기 속에서 6일 동안 오직 죽음과 싸운 보나티 일행 7명의 운명은 끝내 다섯이 죽고, 프랑스 팀의 리더였던 '피에르 마조'가 빈사 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상에 올라선 사람은 보나티뿐이었다.
 
보나티는 산을 언제나 체험의 장소로 보았다. 그는 ‘사람은 산을 오르고 또 오르지만, 우리 자신이 체험하고 그것이 우리 것이 되는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나의 생애의 산>에 썼다. 익스트림 클라이머로서의 발터 보나티가 남다른 산악인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데는 이러한 그의 철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과 인생, 산과 사람의 관계는 영원한 진리를 가진 주제요 대립이다. 그러나 산악인에게 산은 이러한 일반적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정된 인생을 살지만 산악인의 생애는 이러한 한정과는 거리가 있다. 인생은 원래 자연성을 띠는데 산악인의 생애는 인위적이다. 이것이 산악인의 한계의 특성이다.
 
  / 글 / 김영도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