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퍼온글

-* 삼성가의 숨겨진 이야기들 [1] *-

paxlee 2008. 2. 7. 23:53

     

 

  삼성가의 숨겨진 이야기들  

↑사진설명: 젊은날의 이병철 회장과

  어린이 시절의 이건희 회장

 

 ↑사진설명: 개인 홈페이지를 공개해 화제가 됐던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

 


↑사진설명: 1993년 이건희 회장의 가족사진.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홍라희 여사, 차녀 이서현,

  장녀 이부진, 장남 이재용, 막내 이윤형, 이 회장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

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

다. 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

들이 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

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

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 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

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 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

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

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

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

에 재벌 2, 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

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

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

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

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

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

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

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 2위

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

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 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

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

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

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

93년 6월 제일제당(CJ), 95년 7월 제일합섬(새한), 99년 중앙

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

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

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

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

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

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

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

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

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

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

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

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

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

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

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

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 87년 이병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

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

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

(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 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

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 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

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

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

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

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

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

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

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

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

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

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

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

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

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

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

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

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

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

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

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

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

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

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

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

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

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

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

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

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

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

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

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

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

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

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

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

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

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

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

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

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

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

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

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

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

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

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

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

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

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

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

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

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

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

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

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

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

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

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

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

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

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

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

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