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엄홍길과 함께 임페리얼 리더십 체험 *-

paxlee 2008. 7. 11. 17:40
 
          엄홍길과 함께 임페리얼 리더십 체험

인생은 도전과 개척의 연속,  대만 옥산 정상까지 '나를 따르라'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여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전은 개척을 반드시 수반한다. 미지의 세계를 나아가려면 도전정신에 이어 개척정신 없이 불가능하다. 개척정신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이 도전이다.


임페리얼에서 의미 있는 도전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소비자들을 초청했다. 지난 5월14~18일까지 4박5일간 동북아 최고봉인 대만의 옥산(3,952m, 대만 발음으로 유샨, 영어는 Jade Mountain)에 ‘엄홍길과 함께하는 임페리얼 리더십 체험 트레킹’을 실시했다. 임페리얼 17은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새 시장을 개척하는 브랜드 정신이 산악인 엄홍길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그를 초청한 것이다. 등산업체 트렉스타에서 등산조끼와 스틱, 비옷 등 장비 일부를 협찬했다.


선발된 소비자는 신청자 8,000명 중에서 9명만 뽑힌 ‘행운의 사나이들’이었다. 인생에서 800분의 1의 가능성으로 당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행운아들이 김도균(38·원당 연세정형외과 기획실장), 김주범(38·ING생명 중앙지점 FC), 엄성용(38·한국수출입은행 부부장), 류동훈(37·류동훈한의원장), 이금구(43·노무법인 C&B 대표), 권웅기(41·한비인터내셔널 대표), 정병훈(36·메리츠증권 마케팅팀 과장), 홍창학(44·KT인테리어 대표), 김영민(37·컴퓨터 영업대리점 대표)씨 등이다. 이들 외에 진로 발렌타인 임페리얼 마케팅 이미경 과장, 제일기획 프로모션 2팀 신상준 차장, 티앤씨 여행사 박성종 과장 등이 동행했다.


▲ 임페리얼에서 소비자 9명을 선발해서 지난 5월14~18일까지 대만 옥산 정상에 오르는 ‘엄홍길과 함께하는 임페리얼 리더십 체험’을 실시했다. 엄홍길 대장 바로 뒤를 따라 열심히 오르는 사람이 일행 중 홍일점인 이미경씨.

여기에 세계 최고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함께 했다. 산악인 엄홍길은 도전의 인생을 산 장본인이다. 그는 88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을 시작으로 2007년 5월 로체샤르 정상을 밟기까지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개봉 등정을 이끌어낸 불굴의 산악인이다. 올해가 그에게는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이다.


소비자 8,000명 신청, 9명 장도 올라


드디어 5월14일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화창한 날씨다. 엄 대장은 대만 옥산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일행보다 먼저 대만에 가 있었다. 2시간30여분의 비행으로 대만에 도착했다. 가이드와 엄홍길 대장은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간단한 소개와 중식을 마치고 예정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식사 후 2시간가량 ‘도전과 개척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엄 대장 강연과 2007년 5월 로체샤르 등반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보며 엄 대장이 설명을 곁들여졌다. 15일인 내일은 가의시를 경유해서 수백 년 된 편백나무(일명 히노끼)숲으로 유명한 아리산(2,170m) 삼림 산책을 하고 해발 2,584m 지점에 있는 상동포 산장에서 1박할 예정이다.


아침 7시 어김없이 모닝콜이 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가의시로 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맡겼다. 무려 6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한국의 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친 면적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버스로 6시간 간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대만은 75% 가량이 산이다. 3,000m 이상 봉우리만 하더라도 무려 222개나 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도 이해됐다. 버스가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갔다. 산 중턱엔 차밭도 있었고, 울창한 숲도 보였다.


아리산에 도착했다. 호젓한 오후다. 편백나무 숲엔 희미한 안개가 자욱했다. 운치를 더했다. 아리산은 대만에서 숲이 가장 아름다운 산이며, 그래서 신목(神木) 숲이라 했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편백나무들로 빽빽했다.


아리산 절경을 유감없이 감상하고, 숙소인 상동포 산장에 도착했다. 오후 8시30분, 조금 쌀쌀한 날씨다. 하늘을 보니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내일은 옥산 정상에 올라갈 계획이다. 일행들은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우다 겨우 잠이 들었다.


▲ 대만 옥산 정상 등정 기쁨을 나누며 일행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코 고는 소리에 자는 둥 마는 둥 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벽 4시30분 일제히 기상이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6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다. 상동포 산장에서 등산 시발점인 옥산 입구까지 버스로 20여 분 걸렸다. 해발 2,680m, 마침내 옥산 등산 입구라고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지명은 탑탑가안부라 했다.

 

후발 팀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서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풍경을 즐겼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구름, 그리고 산.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풍경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2,000m쯤 아래로 구름이 잔뜩 낀 새벽의 풍경은 등산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모두 합류했다. 엄 대장을 중심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도전! 옥산,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고 드디어 옥산 정상을 향해 출발이다. 시계는 6시40분이다. 등산 입구에서 배운산장까지 8.5km, 배운산장에서 옥산 주봉 정상까지 2.4km로 총 11km에 이른다. 왕복 22km다.


▲ 고도 3,500m 지점에 이르자 침엽수도 키가 작아지고 전형적인 돌산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까지 왕복 22km, 12시간여 걸려


새벽의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출발한 지 30여 분 지났을 무렵, 해발 2,838m 지점의 맹록정 휴게소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이름모를 새가 날아가지도 않고 일행을 반겼다. 손에 먹이를 주니 그대로 사뿐 앉아 물고 날아갔다. 모두들 신기해했다. 다소 지친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한 자연의 환대였다. 엄홍길 대장도 기운을 북돋우는 말을 보탰다.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등산만큼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인내하기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 다들 힘냅시다. 우리는 하나다. 도전! 옥산, 정상을 향하여.” 역시 극기의 과정을 많이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시 옥산 정상을 향해 2시간가량 더 걸었다. 백목림 대피소에서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배운산장까지 3.5km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5km를 지나온 셈이다. 해발 3,093m 지점이다. 모두들 배낭을 벗고 연신 기념촬영을 했다. 원래 계획은 배운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옥산 정상에 오르기로 했으나, 몸이 무거워 퍼질 수 있으니 엄 대장은 바로 오르자고 했다. 모두들 의견에 따랐다.


오전 10시35분 배운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3,402m다.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옥산 주봉까지 2.4km, 서봉 정상 2.2km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8.5km를 4시간 조금 안 걸렸으니, 보통 등산객 수준이었다. 그러나 엄 대장의 계산된 발언이 곧이어 나왔다. 옥산 정상에서 하산까지 예상 소요시간을 감안해서 오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내기 위한 의도된 발언 같았다.


“제가 산을 수십 년 탔지만 이번 팀이 최악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어떻게 옥산에 올 생각을 했습니까?” 배운산장까지 늦게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고산증세를 체크했다. 류병훈씨가 다소 높은 수치가 나왔다. 정상에 가는 걸 만류했다. 그러나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옥산 등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 명이 어지럼 증세와 함께 메스꺼움까지 느껴 중도에 포기했다.


나머지는 계속 나아갔다. 이제는 나무는 없어지고 전형적인 돌산의 모습이 드러났다. 등산로 옆엔 가끔 구토한 배설물들이 있었다. 낙석도 잦았다. 철망 등산로도 눈에 띄었다. 경사는 더 급해졌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지체됐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일단 먼저 오르자.” 엄 대장의 ‘나를 따르라’ 리더십이 시작됐다.


마침내 오후 1시40분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3,952m다. 출발한 지 7시간만이다. 예정 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늦어졌다. 한때 옥산이 3,997m로 알려져 대만 정부에서 4,000m를 채우기 위해 3m높이의 탑을 쌓았지만, 3,952m로 밝혀지자 탑을 없애버렸다고 했다. 일행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기념사진도 찍고 뭉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엄 대장이 모두에게 축하 한 마디를 했다.


“임페리얼 17년 행사에 행운을 안고 전국에서 선발된 여러분이 정상에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자신을 이겨냈기 때문에 여기 온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한 자에게만 정상을 내줍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사람 아니겠습니까?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겠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을, 목표를, 꿈을 향해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올라오신 그런 정신 자세와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정상에 오른 뿌듯함을 뒤로 하고 이제 배운산장으로 하산이다. 엄 대장은 일정을 조정하느라 연신 “스피드!”라고 소리쳤다. 오후 3시15분 다시 배운산장에 도착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너무 지쳐 그런지, 별로 배도 고프지 않다. 라면에 밥을 말아 대충 훌훌 먹었다.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지는 듯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마지막 남은 하산길 8.5km로 향했다. 시각은 오후 4시였다.


거의 내달리는 수준으로 내려갔다. 경치를 감상할 틈도 없었다. 어둠도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엄 대장을 열심히 따라갔다. 도저히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시야가 흐려졌다. 더 이상 따라가기 힘들었다. 엄 대장을 따라간 1진은 계속 갔다. 일행 중 홍일점이었던 이미경 과장이 1진이었다. 엄 대장 수제자로 하기로 했다. 바로 그 뒤를 가던 2진은 이구동성으로 쉬어 가자고 했다. 시계는 오후 5시45분이다. 무려 7km를 한번도 쉬지 않고 내려왔다. 1시간45분만에 7km를 내려왔다. 산길을 15분만에 1km를 간 셈이다.


1진은 오후 6시에 출발한 원위치에 도착했다고 했다. 2진은 6시20분이었다. 이제 가시거리는 불과 몇m에 불과했다. 자세히 봐야 앞 사람을 알 수 있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땀을 흘리고 비를 맞으니 바로 추워졌다. 일단 내려온 사람은 출발지였던 상동포 산장으로 먼저 내려갔다. 마지막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다. 밤 9시가 훨씬 넘어서야 비를 맞으며 돌아왔다. 무사하니 다행이다.


이제 가의시로 다시 돌아간다. 사방은 칠흑 같은 암흑이다. 조명등을 켰어도 안개가 워낙 심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이라 위험천만이었다. 심야 1시가 훨씬 넘어서야 가의시에 도착했다. 모두들 지쳐서인지 “잘 자라”는 간단한 인사말만 건네고 바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옥산 정상까지의 왕복 12시간 넘는 산행은 아마 이들에겐 인생에서 다시 겪기 쉽지 않은 영원한 추억일 것이다. 오는 길에 산에 왜 갈까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꽉 채웠다. 영원한 화두다. 엄홍길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목표와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목표가 있으며, 저의 목표는 산입니다. 산이 좋아서,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서 갑니다. 그 과정은 수도승과 고행승의 자세와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과 합일돼야 가능합니다. 내가 산이기 때문에 갑니다. 내가 산이고, 산이 곧 나입니다. 실패가 있음으로 해서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가졌으며, 위기가 오히려 촉매가 되어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위대한 일은 열정과 정열을 다할 때 이루어집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습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 위대한 성공은 실패에서 나와”


엄홍길 대장 2시간여 강연


▲ 엄홍길 대장이 대만 옥산 리더십 체험 트레킹에 앞서 도전과 개척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선발된 소비자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성공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며, 도전은 끝이 없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하고 위대한 성공은 위대한 실패에서 나온다.” 엄홍길 대장이 도전과 개척의 리더십이란 주제로 임페리얼이 마련한 대만 옥산 체험 트레킹에서 선발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2시간 동안 강연했다. 엄 대장은 그의 38번의 도전 역사에서 20번을 성공하고 18번을 실패하면서 겪은 솔직 담백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연들을 전부 공개했다.

 

1985년 에베레스트 첫 도전에서 실패하고 난 이후 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앞으로 절대 산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산과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부단한 도전 끝에 세계 첫 히말라야 16개봉 등정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기까지,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맞으며 이를 극복해낸 가슴 뭉클하면서 심금을 울리는 사연을 소개했다. 18번을 실패하면서 셰르파 포함 그의 동료를 10명을 잃었다고 전할 땐 눈가에 잠시 눈물이 엿보였다.


그가 가장 가슴 아파하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연은 두 번째 에베레스트 도전 때 셰르파가 추락사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신혼 3개월의 새 신랑이자 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리는 셰르파의 시신조차 수습 못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파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가 발족하는 ‘엄홍길 휴먼재단’의 첫 수혜 대상지도 그 셰르파의 고향이다.


엄 대장은 그 고통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다시 산에 올랐다고 했다. 아마 그 때 영원히 산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했다면 세상일도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세번째 도전만에 올림픽 성공적 개최 기념등반대를 꾸려 88년 9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세번째의 성공은 두 번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교훈삼아 비로소 성공했다. 실패의 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산에 갈 때 얻은 소중한 경험은 또 있다. “저 고지에 올라갈 수 있을까라고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원정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부정적 사고를 가지면 안 된다.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도 될까 말까한 게 세상일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저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엄홍길의 존재 근거는 동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앞으로의 삶은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바칠 것입니다.”


강연 후 모두 도전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한 인간의 위대성 이면에 감춰진 진솔함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한 인간의 모습에 보통 사람이 감동한 모습, 그 자체였다.

 / 글 : 박정원 차장대우 / 사진 : 티앤씨 여행사 박성종씨 제공 / 월간 산 [465호] 20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