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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로키 트레킹 [5] *-

paxlee 2008. 8. 21. 21:29

 

                                   캐나다 로키 트레킹 - 포트리스 산

                                           목가적 풍경에 우뚝 선 엄숙한 성채

◇ 캔모어에서 742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만나는 스프레이 호수(Spray Lakes). 호수 속에 로키 산맥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카나나스키스(Kananaskis)란 지명은 캐나다 로키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약간은 생소한 느낌이다. 그 이름만 듣고서는 선뜻 로키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로키에 속해 있는 국립공원 다섯 군데에 비해선 아무래도 유명세가 많이 떨어지는 까닭이리라. 하지만 카나나스키스 지역은 로키의 동쪽 사면을 차지하고 있는 로키 산맥의 한 식구임이 분명하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이 지역은 밴프 국립공원과도 접경을 이루고 있고, 그 서쪽에 자리 잡은 산악지형 대부분은 대륙분기점을 사이에 두고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와 또한 경계를 이룬다.

 

호젓한 산행 즐길 수 있는 카나나스키스

캘거리 남서쪽에 포진한 카나나스키스의 중심 도시는 캔모어(Canmore)이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 노르딕 스키 경기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1번 하이웨이를 차로 달리면 캘거리에서 1시간, 밴프에서는 20분 정도 걸린다. 원래 이 지역은 피터 로이드(Peter Lougheed)가 앨버타 주 수상을 지낼 때 앨버타 주민들의 건전한 여가를 위해 1977년 특별히 개발한 곳이다. 국립공원을 벗어난 지역임에도 마구잡이식 개발이 아니라 생태보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전체 면적은 4000㎢로 밴프나 재스퍼 국립공원보다는 작지만, 요호와 쿠트니 국립공원을 합쳐 놓은 것보다는 훨씬 크다. 여느 국립공원에 비해 풍광은 그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이곳을 찾는 인파가 적어 호젓한 분위기에 젖을 수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눈이 일찍 녹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트레킹이나 산악자전거, 승마, 낚시, 골프, 카약 등 다양한 아웃도어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나있다. 그러면 카나나스키스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캐나다에서 발음이 생소한 지명은 대개 원주민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카나나스키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크리(Cree)족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는데, 그 말의 본래 의미를 알게 되면 절로 실소가 나온다. 원래는 ‘도끼에 머리를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다소 엉뚱한 뜻이라고 한다. 크리족 원주민 한 명이 어떤 까닭인지 도끼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았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났단다. 그래서 카나나스키스란 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이 후대에 전해지고 있으니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 그 이름을 이 지역에 붙인 사람은 원주민이 아니라 1857년부터 1860년까지 팰리저 탐사대를 이끌었던 존 팰리저(John Palliser)란 사람이었다.

카나나스키스 지역엔 몇 개의 주립공원이 있지만, 단연 피터 로이드 주립공원이 그 중심에 있다. 이 공원은 1985년까지는 카나나스키스 주립공원이라 불리다가 피터 로이드 주수상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붙여 개명을 하였다. 피터 로이드 주립공원은 카나나스키스 트레일(앨버타 주에서는 웬만한 차도는 트레일이라 부른다)이라 부르는 40번 하이웨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면적은 509㎢로 앨버타 주에서 가장 큰 주립공원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호수가 많아 하이킹이나 야영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카나나스키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대만계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 배경은 미국 와이오밍 주이지만 실제 촬영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만년설로 뒤덮인 하얀 봉우리, 맑고 깊은 계곡,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노니는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영화 속의 목가적인 분위기는 카나나스키스만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이 외에도 <가을의 전설>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와 같은 영화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 742번 도로와 스미스 도리언 계곡 건너편으로 로키 산맥의 주봉들이 흘러가고 있다. 오른쪽 위에 있는 봉우리가 써 더글라스 산(Mt. Sir Douglas·3406m)이다.

난공불락의 성채 포트리스 북벽


이제 카나나스키스의 피터 로이드 주립공원 안에 특이한 모습으로 의연히 서 있는 포트리스 산(The Fortress·3000m)으로 떠나 보자. 포트리스는 로키 중앙부에 있는 카나나스키스 연봉에 속한다. 40번 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멀리 보이는 그 생김새가 마치 성채 같다고 해서 포트리스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는 타워(The Tower)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인근의 다른 봉우리에 이름을 넘겨주었다. 하이웨이에서 보면 하늘 높이 솟은 600m의 포트리스 북벽이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보인다. 그 꼭대기까지 감히 오르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반대 방향에서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 걸어 오를 수가 있다. 인근에 있는 포트리스 마운틴 스키장이나 재스퍼 남쪽에 있는 포트리스 산(Fortress Mountain·3020m)과는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로키에서의 산행은 눈이 녹은 시점인 6월부터 9월까지가 제철이다. 이는 카나나스키스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그리즐리(회색곰)나 쿠거와 조우하는 상황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포트리스 산행에서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은 벼랑에서 떨어진 바위들이 쌓여있는 급사면을 오르는 일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굉음을 내며 떨어져 내리는 눈과 돌덩이를 코앞에서 보는 것도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경감해주는 것은 초원지대에 만발한 야생화와 멀리 대륙분기점을 따라 흐르는 산들의 빼어난 자태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울퉁불퉁한 바위산에서 풍기는 회색빛 황량함은 오히려 산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안에 숨어있는 묘한 색감을 찾아내는 일도 산행에서 접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 올라온 사람에게 산은 멋진 조망으로 보답을 하는 법. 포트리스를 둘러싼 풍경도 여느 곳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동쪽으론 낭떠러지 아래로 포트리스 호수가 자리잡고 있고 40번 하이웨이를 넘어선 또 다른 산군이 버티고 서있다. 서쪽으론 빙하를 안고 있는 써 더글라스(Sir Douglas)와 조프리(Joffre)가 로키의 등줄기를 잇고 있다. 날씨만 맑다면 로키를 대표하는 봉우리 중 하나인 아시니보인(Assiniboine),

 

그리고 그 너머엔 퍼셀(Purcell) 산맥에 속하는 부가부 침봉 중 하나인 하우저 타워(Howser Towers)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남서쪽 가까이에는 체스터(Chester·3054m)가, 북서쪽으론 거스티(Gusty·3000m)와 갈라테아(Galatea·3185m), 엔가딘(Engadine·2970m)이 줄지어 있다. 이 주변의 산들, 즉 체스터나 거스티, 갈라테아, 엔가딘과 같은 봉우리는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 전함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 북미 대륙의 분수령 역할을 하는 로키 산맥과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계류는 카나나스키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글·사진 / 이남기 캐나다 통신원 / 월간 마운틴 2007,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