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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2구간(벽소령-성삼재) 지리산종주 산행기 *-

paxlee 2008. 9. 18. 20:22

                             백두대간2구간(벽소령-성삼재)지리산종주 산행기

 

[벽소령-(1.3)-형제봉-(2.05)-연하천-(2.94)-토끼봉-(1.25)-화개재-(0.75)-삼도봉-(2.15)-임걸령-(1.05)-돼지평전-(2.23)-노고단-(3.5)-성삼재]/[접속구간: 중산리(매표소)-(3.25)-법계사-(1.98)-천왕봉. 계: 5.23km]


 5시 20분경 일행들과 함께 일어났다. 담요를 개어 모아 논 곳에 함께 두고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미 별이 사라진 깜깜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멀리서부터 여명이 밝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후 큰 뭉개 구름에 의미한 햇살이 비치며 붉게 물들어 보였다. 5시 35분 벽소령을 출발했다. 아침은 연하천에 가서 먹기로 했다. 어제보다 짐이 줄어 배낭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을 올라 6시 10분 형제봉에 닿았다. 조망이 훤히 트인 바위에서 쉬면서 앞으로 겹겹이 펼쳐 보이는 산세를 감상했다. 드넓은 지리산이 느껴졌다. 그리고 희미하게 무지개도 떠 있었다. 곧 동이 트고 해가 솟아오를 것 같았다.

 

내리막길을 가다 다시 앞에 놓인 평선봉에 올랐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부부가 방금 일출을 보았다고 했다. 해뜨는 방향을 바라보니 막 올라와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전에는 무지개도 보았다고 했다. 앞을 보니 그 무지개는 아까보다 더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지금도 보인다고 했더니 따라서 보며 그 모습에 감탄을 했다. 다시 길을 가다 연하천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걸린다고 했다. 다시 길을 가는 동안 새로운 아침햇살이 숲 사이로 비췄다. 길가에 처음 이름을 듣는 백당나무가 보였다. 6시 35분 우측으로 솟은 커다란 바위를 지났다. 노고단 12.6KM 벽소령 1.5KM 지점이다.

 

그 봉우리를 넘어 내리막 숲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보니 뽕닢 피나무라고 명찰이 달린 나무가 보였다. 그것은 바둑판을 만들기 좋은 나무이다. 아까부터 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피곤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제 세석에서 벽소령 올 때보다 길이 나아져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7시에 나무다리를 걸쳐 길을 이어놓은 곳을 지나며 우측을 돌아보니 멀리 천왕봉이 보였다. 우리가 머물던 벽소령 산장도 보였다. 길게 능선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하나의 산으로 인식되었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자 맞은편에서 일하는 복장으로 지게를 진 사람이 다가왔다. 무슨일을 하시냐고 묻자 연하천 산장에서 공사하는데 짐 받으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길 우측으로 철조망을 둘러쳐 놓았는데 그 곳은 연하천 주목 군락지 특별관리구역이었다. 7시 45분 연하천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 곳은 지나온 대피소들과 달리 좁은 장소에 있었다. 그곳에는 51.3m2의 기존 건물이 있는데 83.6m2로 중측 공사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 피로를 가시게 할 생각으로 세수부터 하고 물도 채웠다. 대피소에 도착할 때마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뒤이어 도착한 일행들과 취사장에 자리를 잡고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황선욱 건축사가 나눠준 햇반 반쪽에 라면 국물을 부어 먹다 토할 것 같아 바닥에 우의를 깔고 잠시 누웠다.

 

다리에 힘이 다 빠져나간 듯이 느껴졌다. 어제 저녘을 먹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일행들이 걱정을 하였다. 걱정을 덜으려고 조금 후 함께 커피를 마시고 9시 그곳을 출발했다. 올라갈 초입에는 목재로 데크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고무판을 대어놓아 디디기가 편했다.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밧줄 난간도 있었다. 완만한 오르막 길을 걷는 동안 깨끗한 숲공기가 느껴지고 맑은 목청의 새소리가 들렷다. 평화롭게 느껴지는 숲길을 걷는 동안 마음도 평화로워졌다. 맞은편에서 오던 여성 두분이서 바로 옆에 보이는 투구꽃이라며 찍었다. 조금 후 나타난 이정표에 노고단까지 10.1km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내리막길을 걸어가다보니 앞쪽으로 지나갈 산들이 이어져 보였다. 다시 평평한 길을 가는 동안 맑은 아침햇살을 받은 초목이 더 깨끗하게 눈길에 닿았다.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걸었다. 사람들이 봄철에 체취하러 다니는 작은 고로쇠나무가 보였다. 한동안 편안한 숲길을 걷다 뱀사골 2.6Km로 표시된 팻말을 지나 평평한 길은 앞으로 완만하게 이어진 오름길을 걸어갔다. 거기서는 양옆의 숲과 멀리 산봉우리가 낮게 보여 그곳이 높은 지대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길가에 아까 보았던 투구꽃이 보였다. 계속 완만한 길이 이어져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더우기 이따금 바람결도 느낄 수 있었다.

 

숲길로 접어들어 완만한 길을 오르다 앞에서 모여 쉬는 사람중에 인사를 해서 보니 어제 벽소령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우리보다 일찍 출발해 가다 쉬고 있었다. 어제 벽소령서 내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찍었던 분이 사과를 1/4쪽으로 나눠주어 맛있게 먹었다. 어제 저녘부터 아침사이 먹은게 별로 없어서 체력 보충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10시 토끼봉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구름과 함께 반야봉이 멀리 보였다. 거기서 지나온  연하대피소는 3.0KM 지났는데 조금 앞 이정표에 2.4KM라고 되어 있던 것과 차이가 나서 헷갈리게 되었다. 다시 길을 걸으며 앞을 보니 반야봉 푸르른 산세가 시원스레 보였다. 그리고 좌우로 바다 같은 산세가 펼쳐 보였다.

 

다시 숲길을 걷는 동안 날것들이 얼굴에 부디쳐 번거롭게 하였다. 길가에 세워 놓은 낮은 푯말에 반야봉 3.5KM로 쓰여 있었다. 길을 가는 조릿대 숲길에 햇살이 아롱거리며 비추었다. 10시 29분 데크로 된 길을 지나 평지길이 나왔다.  터널 끝처럼 보이는 앞쪽 주변에 다른 일행들이 쉬고 있었다. 앞에 나타날 반야봉을 목표로 계속 걸어갔다. 아까부터는 몸의 컨디숀이 좋아져 걷는 기분이 홀가분해졌다.10시 31분 화개재에 당도했다. 그곳은 경남 연동골에서 소금 해물을 가져오고, 전북 뱀사골 삼베 산나물을 가져와 장이 섰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길에 깔아 놓은 목재 데크를 걸어 지나갔다. 거기서는 한번 되돌아가도록 길이 되어 있었다.

 

가는 방향에 반야봉이 가까이 있었다. 마주 오는 사람에게 그리로 가는 길을 물으니 길은 편한 한데 이삼백개 계단을 한번 올라야 한다고 했다. 잠시 후 과연 그 계단길이 나타났다. 안내판에 화개재와 삼도봉을 잇는 길이 240M 폭 1.5M(1999) 30% 급경사 구간에 안전한 탐방 동선 유도라고 써 있었다. 10시 37분 계단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주변에 자연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정통로만 이용해주세요라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계단 밑을 보니 험한 바위들이 널부러진 곳이었다. 만약 그대로라면 걷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젊은 분과 지나치며 인사를 건냇더니 다리가 후들 거린다고 했다.

 

내가 거꾸로 가보세요 했더니 왜 내가 그 방법을 생각 못했죠 하며 뒤돌아 내려갔다. 다시 한참을 올라갔으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더 가다 보니 위쪽이 휜해 보였다. 내려오는 중년 부부에게 저 보이는 위가 다예요? 하고 물으니 아뇨 더 올라가야 돼요 라고 했다. 위쪽에 휴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데크에서 잠시 쉬었다. 뒤돌아보니 돌아본 구간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10시 52분 반야봉 1.5KM로 쓰인 팻말을 지났다. 우측에 산봉우리를 느끼며 좌측으로 돌아난 좁은 길을 갔다. 좌측으로  비스듬히 뉘인 경사진 바위 옆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초한지에 나오는 잔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좌측에 있는 큰 계곡에는 안개가 자욱히 끼어 있었다.

 

그 곳을 지나 10시 58분 삼도봉에 도착했다. 그 곳은 잔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3도 경계 지점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는 사이 뒤에 오던 일행이 올라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11시 20분 삼도봉을 출발해서 노고단을 목표로 갔다. 이제 종주 구간도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었다. 11시 30분 노루목에 도착했다. 거기서 노고단까지 4.5KM 남았다. 아침에 몸이 좋지 않을 때와 달리 기운이 회복되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어갔다. 우측으로 반야봉 정상이 놓여 있는데 오르지 않고 능선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나 누군가 말을 걸어 쳐다보니 조병섭 건축사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연하천에서 앞서 출발한 황선욱 건축사와 최완규씨 두 사람이 뱀사골대피소로 잘못 갈까봐 알려 주겠다고 급하게 앞서 갔었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 11시 57분 임걸령에 도착했다. 주변이 시원하게 트인 공간이었다. 난간이 쳐진  바위 끝에 다가가니 그 너머로 산세가 보였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니 둥근 학돌에 샘물이 고인 샘이 나왔다. 옆에 놓인 물 주걱에 가득 받아 샘물을 마셨다. 물맛이 시원하고  좋았다. 뒤에 오는 일행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함께 사진을 찍고 쉬었다. 12시 15분 임걸령을 출발했다. 이제 종주구간도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노고단을 지나 성삼제까지 갈 길만 남았다. 12시 26분 피아골 삼거리(1336)를 지났다.

 

언제부턴가 피아골이라는 단어에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부근에서 쉬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작은 공터를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키 큰 활엽수 숲이어서 색다르게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지나 트인 길을 걷게 되었다. 뒤돌아보니 황선욱 건축사와 최완규씨가 뒤따라오고 있어 사진을 찍었다. 좌측으로는 이삭이 팬 들풀이 초원을 이루고 있어 느낌이 좋았다. 그 곳을 지나가니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도 지나온 능선이 멀리 이어져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니 노고단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곳을 지나가는 동안 갑자기 비가 내려 급히 우비를 꺼내 배낭까지 감싸게 입었다. 5분 정도 지나 12시 45분 비가 그쳤다.

 

그러나 초목에 고인 빗물이 바람결에 쏟아져 비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잠시 후 다시 햇살이 숲 사이로 비추었다. 좌측에 능선을 느끼며 터널 같은 산죽길을 걷다 앞으로 시야가 트여 바라보니 능선 위의 탑이 보였다. 1시 13분 노고단(1507)에 올랐다. 노고단은 길상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곳은 천왕봉(1915) 반야봉(1732)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인데 노고단의 명칭은 신선 할머니(노고단 老姑壇)에게 제사지내는 단이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은 신라 화랑의 수련장이기도 했으며, 이 지역은 넓이가 30만평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추리 군락지로서 한여름 기온이 서늘한 아고산(亞高山) 기후이며 각종 고산 식물이 자란다.

 

종주길에서 노고단이 위로 보였다. 긴 길을 걷다 올라갈까말까 망설이다 의미 있게 여겨저 올라갔다.  1시 20분 노고단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는 돌무더기로 탑을 쌓아 놓았다. 그 사이 일행이 지났을까봐 빨리 내려 왔으나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렸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되돌아보니 황선욱 건축사였다. 뒤이어 일행이 도착해 함께 바로 아래 보이는 노고단 대피소로 내려갔다. 그곳도 공사중이었다. 일행이 머물 듯 하다 바로 2시 50분 성삼재 길로 내려왔다. 계단길과 완만한 길이 안내된 표지판을 보며 계단 길로 내려가 탁족을 하니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했다. 거기서부터 성삼재까지는 포장길이었다.

 

그 도로를 따라 가는 중에 도로 난간 너머로 강줄기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짐작대로 섬진강이었다. 그 우측으로 우리가 기차를 타기로 한 구례가 보였다. 길을 걸어내려와 성삼제에 도착했다. 당초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구례로 가는 길은 861 지방도로였다. 내려가면서 우측으로 천은사 입구가 보였다. 다시 내려오는 동안 차창밖으로 우리가 잠시 머물다 온 지리산 산세가 친근하게 보였다. 평야로 내려오자 주변에 벼 이삭이 팬 들녘이 보였다. 택시가 구례를 지나쳤다. 구레구역은 실제로는 순천에 위치한다. 택시 기사가 구례 양반들이 기차역이 생기면 시끄럽다고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고 설명했다.

 

3시 30분에 구례구역 앞에 도착했다. 식당을 찾아 그 지역에서 유명한 매운탕을 먹으려다가 시간이 없어 중국집에 들러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당초 부안으로 가서 일을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여의 치 않아 바로 올라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역으로 나가 기차를 기다렸다. 플랫폼 시설은 콘크리트와 철로 지어져 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은 시골 풍경처럼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빨간 기관차가 객실을 이끌고 기적을 한번 울리며 플랫폼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4시 8분 용산행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 글 / 김 석 환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