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을 개최하기 위해 중국인들은 100년을 기다리고 7년을 준비하여 훌륭한 세계인들의 잔치을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기간 내내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은 인터넷이라는 戰場(전장)에서 첨예하게 부딪쳤다. 한국 선수단이 출전하는 경기장에선 중국 관중들이 노골적으로 상대팀을 응원했다.
이제까지의 통계를 놓고 보자면, 중국 관중들이 가장 적대감을 드러냈던 상대는 일본이다. 이번 올림픽을 기점으로 그 대상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이 맞대결을 펼치는 대목에서도 중국 관중들은 일본을 응원했다. 야구 준결승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 미스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림픽 대회가 가지는 속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올림픽은 쇼윈도이다.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사실 자체는 개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증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홍보창구’로 이보다 더 빼어난 수단은 없다.
중국이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
모든 나라의 꿈은 과거에도 훌륭했고, 현재도 훌륭하며, 미래에도 훌륭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과거가 부실한 나라는 역사를 再(재)창조한다. 신화를 만들기도 하고,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주관적으로 해석해 ‘과거의 영광’을 드높이려 애쓴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다. 현재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처한 딜레마의 출발점이 여기다.
2008년 현재 세계인들이 共有(공유)하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공업국’이지만, 한편으론 ‘짝퉁제조국’ ‘人權(인권)의 死角(사각)지대’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갖고 있다. 올림픽은 중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도약대였다. 문제는, 이러한 도약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이 구조적으로 부딪칠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古代(고대)와 中世(중세)에 중국이 세계 최일류국가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은 唐(당)의 경우 전세계 GNP의 50% 이상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明(명)나라 환관 鄭和(정화)는 2만명의 인원을 태운 대함대를 이끌고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 원정에 나서 동남아는 물론 아프리카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했다.
유럽인들이 최고의 탐험으로 손꼽는 콜럼버스의 7차 항해는 정화의 탐험이 있은 지 60여년 후의 사건이었다. 콜럼버스가 가장 많은 인원을 거느리고 나섰던 항해가 ‘1000인의 대원정’이다. 다소 거칠게 비유하자면, 고대와 중세의 중국은 유럽 대륙에 비해 10배 정도의 인원과 물자를 손쉽게 동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즉각적이며 실질적인 이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모험사업에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감행할 여력이 충분한 사회였다는 뜻이다.
중국이 이번 대회에서 민족적 자존심의 고양을 위해, 그리고 미래 중국의 가능성을 선양하기 위해 선택한 키워드는 ‘찬란한 歷史(역사)’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연출한 개막식은 夏(하)나라·殷(은)나라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중국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준 스펙터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를 창조적으로 계승한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역사는 역사적 광휘를 제한적으로만 발휘한다. 고대 중국은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다. 현대 중국은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나라다. 하지만 중국은 고대 중국과 현대 중국 사이의 역사적 계승에 관한 한 중요한 연결고리 하나를 잃어버렸다. 문화혁명 때문이다.
문화혁명은 ‘역사와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을 통한 새로운 人間型(인간형)의 창출’을 모토로 내걸며 과격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중국에는 ‘중국’이 없다. 중국이 간직하고 싶은, 혹은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문화와 전통’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
한국은 중국의 살아있는 모델
현대의 중국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중국에서는 문명의 인습은 물론, 장점까지가 거의 다 形骸化(형해화)했다. 孔子(공자)에 대한 공식 제사인 釋奠大祭(석전대제)도 원형을 보전하지 못했다. 이 행사에 관한 한, 우리나라 성균관이 유일한 계승자다. 중국에서는 사라진 正字體 漢字(정자체 한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현역으로 쓰인다.
예의와 범절, 인간관계와 관혼상제에도 현대의 대한민국은 동양적인 에센스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비약적인 경제개발을 이룩해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를 건설했다. 인구와 면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대한민국은 중국이 가장 가지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일을 한몸에 구현한 ‘살아있는 모델’인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은 중국적 시각으로 보기에 중국적 요소를 엄청나게 활용한 작품이다. 서양식 궁중예법이나 요리법과 비교하면, 서양풍습과 중국문명 사이의 거리보다는 <대장금>과 중국문화 사이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치열한 자기개발 끝에 찾아오는 성공, 음모와 암투 같은 현대적 敍事(서사)를 동양사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대장금>은 중국사회가 이 시간 현재 가장 갈망하는 드라마의 모델인지도 모른다. 이런 名品(명품)의 제조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것,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이 중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방영료를 받아간다는 사실은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문화적 뇌관이다. 여기에 더하여 古代史(고대사)를 두고 피차가 주장하는 疆域(강역)이 겹친다는 사정도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고대사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성립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뚜렷한 증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토문제는 현대 민족국가에서도 민감하고 첨예한 사안이다. 물러설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고대사를 현대사의 직접적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독자들이 많고, 그 충돌의 기저에 강역문제가 자리하기에 중국 내 嫌韓氣流(혐한기류)는 一過性(일과성) 폭풍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포츠는 그런 면에서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스포츠는 상징적이다. 지금 현재는 一流(일류)가 아니지만, 앞으로는 얼마든지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기록과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스포츠 세계에서 성적을 내려면 정직하게 노력하고 실력을 키우는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올림픽 종목 중 중국이 가장 석권하고 싶은 종목 가운데 하나가 양궁이다.
양궁은 그 형태와 기능이 상당히 변하기는 했지만, ‘고대전쟁의 첨단장비’인 활을 주요 장비로 사용하는 종목이다. 20년 넘도록 세계 정상에 머무는 한국양궁의 경이적 성적도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古代戰士(고대전사)의 DNA가 살아 숨쉬는 증거’라는 보도내용이 신경을 거스를 터이다. 양궁의 성적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찬란한 과거사를 현재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황금의 열쇠를 하나 제조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찬연한 중국문명을 되살리는 작은 길목 하나가 막혀버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축구.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인 축구에서 중국 대표팀은 수십년간 단 한 번도 한국을 이겨보지 못했다. 恐韓症(공한증)이라는 단어는 이제 현실적 울림을 넘어 중국인들의 잠재의식에까지 침투한 조어가 되었다. 중국은 올림픽 개막식 D데이로 8월 8일 8시라는 상징적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경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가을날씨를 제쳐두고, ‘發(발)’자와 발음이 같은 ‘8’자가 세 개가 겹치는 시간을 택한 것이다. 개막식 행사도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보여주기 보다는 중국 문명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톤으로 시종일관했다. 중국문명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중국이 세계에 전하는 자신감과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철저한 자기중심적(self-centered) 진행’이라고 볼 수도 있다.
韓中 인터넷 舌戰
앞서 말한 대로, 모든 사건은 양면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올림픽 기간 내내 인터넷을 매개로 펼친 舌戰(설전)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인터넷의 특징은 ‘즉시반응’이다. 장시간을 두고 熟考(숙고)하며 이성적·논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적·격정적으로 대응하는 행태가 주류를 이룬다.
감정적 반응은 또 다른 감정적 대응을 부르고 臨界點(임계점)을 넘어가며 엉뚱한 곳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여기에 고대사와 민족주의, 앞에서 언급한 여러 사정들이 얽히면,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리를 해야만 하는’ 단계로 凋落(조락)할지도 모른다. 중국 올림픽의 빛나는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