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알프스의 4,000m급 명봉(1)] 뮌히 *-

paxlee 2008. 12. 30. 20:38

              [알프스의 4,000m급 명봉(1)] 뮌히

 

베르너오벌란트의 삼두마차 중 오른 첫 봉우리

융프라우요호~뮌히요호~정상~뮌히요호 산장 답사

동구권의 슬로베니아에서부터 시작해 거대한 활 모양으로 휘어져 지중해 연안까지 뻗어있는 알프스 산맥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다.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태리의 경계선에, 세계적인 미봉 마터호른은 스위스와 이태리의 국경선에 위치해 있듯 많은 봉우리들과 고개는 여러 나라들을 구분 짓고 있다.


▲ 왼편에 구름을 잔뜩 품고 있는 북동릉 너머 저 멀리 그로스피셔호른과 그로스그룬호른이 보인다.

바로 이 알프스 산맥에 솟은 4,000m 이상 봉우리만도 82개나 된다. 물론 이 숫자는 단일 봉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논쟁의 여지가 있다. 즉 주봉에서 몇 미터 이상 떨어진 위성봉을 단일 봉우리로 택하느냐, 가장 높은 콜에서 서로 몇 미터 이상 떨어져야 단일 봉우리로 인정하느냐, 그리고 그런 수치적 정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누가 보아도 단일 봉우리로서의 위엄과 어려움, 아름다움을 갖춘 주변 봉우리도 단일 봉우리로 인정해야 되지 않냐 등등의 의견이 분분하다.


4,000m 이상 봉우리들은 스위스 동부의 베르니나(Bernina) 산군에서부터 프랑스의 에크렝(Ecrin) 산군까지 펼쳐져 있다. 알프스의 4,000m봉 완등 도전은 알프스 등반의 황금시기였던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다. 바로 마터호른이 1865년에 에드워드 윔퍼 일행에 의해 초등정됨으로써 알프스 등반의 황금시기, 즉 알프스의 초등반 시대가 막을 내림으로써 이후 새로운 도전이 생겨난다.


 물론 근대 알피니즘의 비조 알프레드 머메리가 이러한 등정주의에서 벗어나 정당한 수단에 의한 등로주의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한편에서는 알프스 4,000m봉 모두를 오르는 알피니스트도 생겨나게 되었다.


▲ (좌)본격적인 능선에 올라서기 전의 남쪽 사면을 오르는 일행 뒤로 융프라우가 보인다. (우)커니스가 심하게 진 북동릉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4,000m급 레이스 창시자 칼 블로디그
바로 이 알프스 4,000m봉 완등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칼 블로디그(Karl Blodig·1859-1956) 박사다. 비엔나 출신의 그는 레슬링과 체조로 단련된 체력으로 1905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4,000m봉 65개를 모두 올랐다.


하지만 당시는 새로운 4,000m봉들이 여전히 발견되면서 초등이 이뤄지는 시대였다. 하여 그는 그러한 것들을 하나씩 찾아 올랐으며, 마지막으로 73세의 나이에도 베르트 북사면을 혼자 올랐다. 그 때 오른 루트는 당시의 최고 가이드 아르망 샤를레가 초등한 지 불과 닷새 후의 일이었으며, 당시의 기준으로는 대단한 등반성과였다. 하여 그가 1882년부터 1932년까지 오른 알프스 4,000m봉들은 모두 76개였다.


이후 영국인 유스타스 토마스가 발리스 산군의 유명 산악가이드 조세프 크누벨과 함께 8년간 등반해 1932년에 블로디그의 76개봉을 완등한 기록이 있다. 이후 세계대전과 히말라야 초등반 시대에 접어들어 알프스 4,000m봉 완등에는 이렇다 할 관심이 대두되지 않았다.


한편 4,000m봉들을 한 시즌에 모두 오르겠다는 계획은 1980년대에야 대두되었다. 1986년에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과 앙드레 조르주의 연장등반 시도가 있었으며, 영국인 폴 매크릴과 존 롤랜드가 1988년 5월에 베르니나부터 시작해 도중에 한 명이 빠졌지만 9월19일에 마지막 봉우리를 올랐다. 그리고 1993년에 또 다른 영국 산악가이드 시몽 젠킨과 마틴 모란이 새로운 기준의 75개 봉을 52일만에 올랐다.


그런 후, 2004년까지 특별한 기록이 없다가 프랑스의 유명 산악인 파트릭 베로와 필립 마뇽이 1993년도에 발표된 국제산악연맹(UIAA)의 4,000m급 82개봉 목록에 따라 그 해 봄에 등반을 시도했다. 하지만 베로가 67개째 봉우리를 완등하며 돔-태시호른을 횡단하다가 커니스가 무너져 사망했다. 그 후 2007년 겨울에 슬로베니아의 유명 산악가이드 미하 발릭(Miha Valic)이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UIAA 기준의 82개 봉들을 모두 오른 기록이 있다.


앞으로는 현대기술문명의 이기 즉, 케이블카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서 82개봉을 모두 오르는 보다 ‘순수한’ 등반시도가 이어지리라 본다.


필자가 이곳 알프스에 본격적으로 와 지낸 지 올해로 8년이 된다. 그리고 알프스를 처음 찾은 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4,000m급 봉우리는 30개 가까이 올랐는데, 이번에 기회가 닿아 모든 봉우리를 하나씩 답사해보기로 했다. 단순히 숫자를 채우기 위한 등반이 아닌 알프스의 고봉들을 하나씩 오르며 알프스 등반의 정취를 만끽하고 가보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는 즐거움도 찾으며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하고픈 마음도 있다. 그러한 산정들에서 접할 감회가 어떨지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하여튼 이번 알프스 4,000m봉 등반계획은 국제산악연맹(UIAA)의 82개 목록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82개나 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 중 맨 처음 어디부터 오를까라는 즐거운 고민이 생겼다. 하여 한국 산악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뮌히(Mo¨nch·4,107m)와 융프라우(Jungfrau·4,158m)부터 오르기로 했다. 물론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부터 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필자가 머물고 있는 샤모니 계곡에서 늘 마주보고 있기에 몽블랑을 오를 기회는 자주 있으리라는 심산도 한몫했다. 이번 등반에 동행한 이는 이태리 볼자노에 거주하는 임덕용 선배와 한국서 온 산악회 후배 나현숙이다.


▲ 융프라우요호에서 본 뮌히. 등반은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임덕용, 나현숙, 그리고 나
이른 아침, 등반 짐을 가득 실은 임 선배의 승용차로 샤모니를 떠난다. 얼마 있지 않아 몽테 고개를 넘으며 샤모니 계곡을 빠져 나간다. 곧이어 국경을 지나 스위스 땅이다. 마르티니로 내려가자 아침햇살이 반긴다. 언덕에 경작하고 있는 포도넝쿨의 초록 잎들이 빛의 물결에 넘실댄다. 첫 등반에 대한 기대로 사뭇 마음까지 들뜬다.


이태리와 프랑스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인 중소도시 마르티니에서 우리는 곧장 론 계곡을 오른다. 그린델발트(Grindelwald·1,034m)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잡기 위해서다. 시온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터널이 나타난다. 이곳은 기차로 지나는 터널이다. 즉 승용차나 버스가 기차 위에 실려 터널을 지난다. 물론 통행료(25 CHF)가 있다.


승용차에 탄 채 기차에 실려 터널을 지나자 스위스 산골의 목가적 풍경의 마을들이 연이어진다. 얼마 후, 드넓은 호숫가에 위치한 인터라켄이 나타난다. 그린델발트로 오르는 계곡 위로 저 멀리 융프라우와 뮌히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이윽고 알파인 분지에 자리 잡은 그린델발트다. 우선 아이거 북벽의 웅장함이 마음을 잡아끈다. 한낮의 기온에 차츰 북벽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장비를 챙기고 융프라우요호 행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정오가 다 되어서다. 수많은 관광객들 틈에 아이젠이며 피켈, 심지어 설피까지 챙겨든 우리를 위해 승무원은 특별 좌석까지 마련해준다. 크라이네 샤이데그를 거쳐 이윽고 융프라우요호 전망대다. 곧장 긴 복도를 빠져나온 우리는 뮌히요호(Mo¨nchsjoch) 산장으로 이어지는 눈밭 길을 걷는다. 산장에 다녀오는 몇몇 산악인과 일반인들이 보인다.


30분쯤 걷자 저 멀리 오른편 산자락에 뮌히요호 산장이 보인다. 오늘밤 우리가 묵을 산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뮌히를 오르기 위해 산장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벗어나 눈밭 길을 오른다. 한낮의 열기에 녹은 설사면이 발목 이상 빠진다. 출발지점에 도착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등반에 필요한 짐만 챙긴다. 이미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팀도 있다. 대부분 이른 아침에 등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침 세 명의 산악인이 내려오는데, 맨 뒤에서 내려오던 산악가이드가 ‘곤니치와!’라며 인사를 건넨다.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하니 대뜸 한국인을 몰라봐 실례했다며 “안녕하세요”라며 답례한다. 스위스인의 한 기질을 엿본다.


기분 좋게 그들과 헤어진 우리는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출발지점의 바위지대를 올라 설사면이 시작되는 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한낮의 열기에 눈이 젖어 있다. 등반은 남동릉을 따르며 간혹 바위도 나타나지만 설사면을 타고 오르는 경우도 있다.


마침 위에서 두 명의 산악인이 내려오더니 뒤따르던 남자가 슬립을 한다. 천만다행으로 그는 앞사람을 피해 약 5m쯤 미끄러지더니 멈춰 선다. 앞서 내려오던 여자친구인 듯한 이가 놀란 눈으로 추락자를 지켜본다. 그들 아래로는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다. 이런 광경을 보고서 우리도 바짝 긴장한다. 비록 등반난이도가 PD+급으로 어렵지 않지만 만만하게 오를 생각일랑 말자며 한 발 두 발 조심해서 발걸음을 뗀다.


▲ (좌)남동릉 중간부를 오르는 일행 뒤로 알레치 빙하가 펼쳐져 있다.(우)남동릉 바위 아래에 위치한 뮌히요호 산장. 등반 출발지점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칼날 능선서 실수하면 최소 500m 추락
이제 본격적인 능선에 올라선다. 우측에는 에빅쉬네펠 빙하가 펼쳐져 있으며, 그 너머로 저 멀리 피셔호른과 핀스터라르호른이 보인다. 한편 좌측으로는 뮌히 남서릉 너머로 융프라우가 우뚝 솟아 있다. 길은 좁은 바위지대도 타넘고 설릉도 지난다. 임 선배와 후배는 안자일렌을 한 채 앞뒤를 번갈아가며 오른다. 오르는 그들 뒤로 알레치 빙하가 흐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긴 빙하다. 차츰 시간이 흐르자 구름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그리고 고도를 올리자 기온이 내려가 하나 둘 재킷을 챙겨 입는다. 뮌히 산장에서 잘 예정이기에 급할 게 없던 터라 등반에 여유가 있다. 천천히 올라도 4,000m대의 등반이라 숨이 가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더는 우리를 지나쳐 내려가는 산악인은 없다. 뮌히를 오르는 이는 우리뿐이다. 조용히 한 발 두 발 오르고 또 오른다. 마지막 바위지대를 지나자 긴 설벽이 펼쳐진다.


약 3,800m 지점이다. 한동안 설벽을 오르자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도의 설릉이 나타난다. 이제부터 루트는 북서 방향으로 나 있다. 한결 경사가 완만해졌지만 설릉 오른편으로 커니스가 져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바짝 긴장하며 칼날 능선길을 걷는다. 자칫 잘못해 혹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좌우로 최소한 500m 이상은 추락이다.


한낮의 열기에 피어오른 구름들이 이미 정상부를 뒤덮고 있다. 그래도 바람에 구름들이 흩어져 시야가 나쁘지는 않다. 마침내 정상이다. 좁은 눈언덕 위가 정점이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구름이 북동쪽에 머물러 있어 아이거는 보이지 않지만 남서쪽에 솟은 융프라우는 지척이다. 그래도 9년 전에 이곳에 올랐을 때보다는 한결 전망이 좋다. 그때는 온통 구름에 휩싸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리 셋은 악수를 나누며 등정을 축하한다. 알프스 첫 4,000m급 등정을 기념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뻐한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 덧옷을 껴입고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마신다. 빠르게 흩어져 지나가는 구름만이 알프스의 한 산정에 오른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바로 남쪽으로 흐르는 알레치 빙하를 굽어보며 적막한 기쁨을 즐긴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즐거움 때문에 산을 오르지 않겠냐는 생각에 만족해한다. 셋 모두의 표정이 밝다.


▲ 빠르게 흐르는 구름 사이에 올라선 뮌히 정상.

 

해발 3,657m의 뮌히요호 산장
자,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안전한 하산 후에 더 큰 등반의 만족감이 찾아올 테니 바짝 긴장하며 발걸음을 뗀다. 조심해서 칼날 설릉을 지난다. 가파른 설사면에서는 뒤따르는 자가 피켈로 확보까지 보며 내려간다. 설사면의 눈은 한층 젖어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럴수록 발걸음을 더 조심해서 뗀다.


쉼 없는 하산길 후, 드디어 출발지점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안도의 한숨에 모두들 얼굴이 환해진다. 두고 간 장비를 챙겨 뮌히요호 산장으로 향한다. 약 10분만에 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에는 몇몇 산악인들뿐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곧바로 침상에 든다. 뮌히 등반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새벽부터 움직인 긴 하루였기에 피곤했다. 밖에서는 나빠진 날씨에 바람소리가 심하다. 3,657m 고지의 산장이라 경미한 고소증세마저 느껴져 모두 잠을 설치는 밤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강풍이 산장 베란다에 걸어둔 스위스 국기를 세차게 때린다. 다음 등반 대상지인 융프라우 주변에는 먹구름이 잔뜩 몰려 있다. 하여 새벽에 떠나기로 한 계획을 잠시 미룬다. 몇 시간을 더 잤을까. 급히 일어나 바깥 창문을 여니 날이 개어 있다. 급히 짐을 챙겨 융프라우로 떠난다. 융프라우요호를 거쳐 등반 출발지점에 이르는데, 여섯 명의 산악인이 돌아오고 있다. 가만히 보니 어제 뮌히 등반 출발지점에서 만난 스위스 산악가이드가 인솔하는 팀이다. 그들은 기온이 너무 높아 눈사태 위험 때문에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 외에 융프라우를 등반하는 팀은 아무도 없다. 그런 와중에 융프라우 북동릉 사면에서는 쉴 새 없이 눈사태가 쏟아져 내린다. 갈등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와 등반을 포기할 순 없지만 눈사태의 위험은 어떠한 욕망보다 커 결국 우리도 등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작이기에 앞으로 얼마든 기회는 있으리라 여기며 발길을 돌렸다. 내년, 아니면 그 다음해에도 융프라우는 분명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터였다.


뮌히 등반정보


그린델발트 계곡 위에 우뚝 솟은 베르너 오버란트의 삼두마차(아이거·뮌히·융프라우) 정중앙에 위치한 뮌히는 수도사란 애칭이 붙어있다. 정상부가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뮌히는 상대적으로 등반높이가 낮아 당일등반을 즐길 수 있는 대상지이다.


초등은 1857년 5월에 포르지 일행이 남동릉의 북동스퍼로 올랐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널리 오르고 있는 안전한 루트는 1863년 7월 말에 맥도날드 일행에 의해 초등된 남동주릉이다. 등반높이가 500m가 조금 넘는 짧은 코스지만 리지 상의 바위구간들을 조심해서 지나야 하며, 여름 성수기에는 좁은 능선길에서 등행자들을 피해 오르내려야 하는 위험한 경우도 있다. 정상부 능선은 커니스가 진 구간도 있으며, 눈이 녹지 않는 아침 일찍 등반하는 게 바람직하다. 등반에 3시간, 하산에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뮌히요호 산장(Mo¨nchsjoch Hut 3657m)
뮌히 동남릉 자락에 위치한 뮌히요호 산장은 융프라우요호 전망대에서 2km 떨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북동방향으로 난 눈밭 길을 45분 걸으면 닿는다. 산장지기가 4~5월과 6월 말~9월 중순까지 상주하는 개인소유의 산장으로서 접근이 편하고 인기가 있어 성수기에는 예약 후 찾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1.5리터 물 한 병이 12프랑, 하룻밤 숙박비는 28프랑이며, 기타 식비 등은 비싼 편이다. 전화번호 및 이메일 주소는 다음과 같다.  41 (0)33 971 34 72, email : info@moenchsjoch.ch

- 글·사진 /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 / 월간 산 [468호] 2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