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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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캔버스 삼아 펼쳐지는영상쇼
이상봉 | 패션디자이너
가끔 산책이나 운동을 하기 위해 한강에 나가 보면 수영장, 산책로, 자전거도로 등 이런저런 시설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괜찮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나 인상적인 건축물은 없는 것 같다. 한강 하면 몇 개의 다리 이름만 떠오를 뿐, 이거다 싶은 상징적인 공간이나 건축물은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에 비해 유럽의 도시를 관통하는 강들은 한강보다 규모는 작지만 강을 둘러싼 건축물과 조명으로 인해 낮은 낮대로, 또 밤은 밤대로 매력적인 강변 풍경을 자랑한다.
파리만 해도 오르세미술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있고, 바다를 끼고 있는 홍콩과 시드니에도 컨벤션센터와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물과 건축이 빚어낸 풍경이 그 도시의 상징이 된 대표적인 곳들이다. 반면 우리의 한강은 어떤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혹시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면서도 아쉽게도 그에 걸맞은 풍경은 부족하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한강은 아직 스케치와 채색이 끝나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인 셈이고 여백이 많기에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할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그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구상하고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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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도시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한강에는 서울의 자연과 건축물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공연시설과 컨벤션센터, 공공도서관처럼 시민 누구나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면 더 좋겠다. 한강에 예술의전당 같은 대규모 문화공간이나 국제적인 전시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가 있다면 서울 시민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한결 친숙하게 한강을 찾고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멋진 건축과 한강이라는 자연이 빚어내는 풍경, 그리고 시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라면 서울의 랜드마크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한강에서라면 패션쇼를 열어도 좋겠다. 물 위에 특수한 구조물을 설치해도 좋고 한강 다리를 무대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기존의 쇼 무대와 달리 넓은 스케일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물 위의 패션쇼는 그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멋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강물을 스크린 삼아 화려한 영상쇼를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 한강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은 불꽃놀이가 서울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강변 영상쇼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어둠이 내린 강물 위에 영상을 투사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이런 이벤트는 색다른 한강 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강 프로젝트는 소중하게 간직해두었던 옷을 리폼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에 변화를 주거나 단추 하나 액세서리 하나만 바꿔도 스타일이 살아나는 게 리폼한 옷의 매력인 것처럼, 시대의 정신과 풍경을 간직하면서도 남다른 가치를 불어넣은 한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나 홀로 꿈꿔보는 수중생태공원
강주배 | 만화가
한강을 개발한다고 하니 수준 높은 문화공간 창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런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얼마 전 사단법인 한국잠수협회 주관으로 수중 퇴적물을 탐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화공간 못지않게 한강의 수중 자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사 과정에 찍은 사진 속의 한강은 겔처럼 돌에 착 달라붙은 미생물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생활쓰레기로 가득했다.
너도나도 강 밖의 풍경에만 관심을 두는 동안 한강의 수중 생태에는 소홀했던 결과다. 우리는 그간 한강에서 회복해야 할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중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일본 도쿄에서 보았던 작은 강은 정말 맑았다. 규모 면에서야 한강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자그마했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개울처럼 맑고 깨끗했다. 한강도 그렇게 깨끗해질 수는 없을까.
자연과 물과 사람의 훼손된 관계를 되찾자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의미를 물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바다를 누비듯 한강 물속을 누비며 스쿠버다이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해저 계곡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물고기와 수중 생물의 환상적인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한강의 아름다운 수중생태를 감상하는 사람들이나 오염된 수중 사진 대신 도심에서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서울 시민의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당장 광활한 물속에 잠긴 그 많은 쓰레기를 제거하고 수질부터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스킨스쿠버 다이버가 즐겁게 활보하는 깨끗한 강이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 한강에 내가 원하는 공간 하나를 만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수중생태공원을 택하겠다. 화창한 주말 오후, 스킨스쿠버 복장을 한 시민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외국 관광객들은 그런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와 상어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름 모를 물고기들로 가득한 대한민국 서울의 한강이 수중생태공원이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그런 미래의 한강을 만화로 그려도 흥미로울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환경문제가 날로 심각해져 결국 지구의 물이 모두 오염되고, 전세계 물고기들이 지구에서 물이 가장 깨끗한 한강으로 몰려든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이 걸리고,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니, 깨끗한 강을 가진 것도 죄란 말인가?’ 내가 꿈꾸는 한강의 미래는 다분히 만화적이고, 또 그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한강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또한 한강에서 회복하고 창조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기 때문이다.
아기자기 수상가옥 옹기종기 마을 이루고
김미화 | 개그우먼
한강 근처에 살 때는 강에 나가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다. 아침 일찍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돗자리를 들고 나가 열대야를 피하기도 했다. 시골로 이사한 뒤로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지만, 매일 차를 타고 오가며 한강을 바라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창 공사 중인 한강을 보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한강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강이다.
다른 나라에 가보면 그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그 어느 강을 가봐도 그다지 웅장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라인 강만 해도 흙탕물에 불과할 뿐 그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도 작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강은 분명 그 규모만큼이나 가능성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한강을 바꾼다니 이러저러한 욕심이 꿈틀댄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수상가옥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상가옥이 유유히 떠 있는 한강,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추진할 일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집과 배가 작은 동네를 이루는 이국적인 풍경을 한강에 옮겨놓으면 여름마다 한강으로 피서를 가는 진풍경도 벌어지지 않을까. 수상가옥을 서울시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의미 있는 관광상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도시의 강과 달리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한강이기에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인 듯하다. 운치 있는 강변길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한강 다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한강에 바로 닿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걷고 생각하며 강변의 정취를 속속들이 느낄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드는 것이 내게는 더 멋져 보인다. 걸으면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올레 같은 것을 한강에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강을 꼭 첨단시설로만 채울 이유는 없다. 거창한 사업 마인드보다 시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소한 아이디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또 하나의 바람은 나무 그늘이 있는 한강이다. 한강은 커다란 나무가 있어 언제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마당 같았으면 좋겠다.
관심을 갖고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한강 둔치에는 큰 나무가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면 다리 밑으로 들어가 태양을 피해야만 한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큰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런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강변을 따라 잎이 무성한 나무를 울창하게 심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모인 시민들을 관객으로 모시고 공개 코미디 공연을 하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웃음은 사라지고 시름만 깊어지는 듯한 요즘이다. 드넓은 한강이 시민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쩌렁쩌렁 울리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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