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용마산~아차산
전설 따라 오르는 아기자기한 유적이 서려있는 산행
서울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287m)에서 광진구 중곡동으로 이어진 용마산(348m)은 도심 속 작은 휴식처다. 산의 높이야 용마산의 높이가 훨씬 높다지만 사실 이 산은 ‘장군봉’이라고도 불리는 아차산 줄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볼 수 있다. 용마산은 그렇게 아차산과 함께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루고 있다. 또 예전에는 아차산과 함께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 오른 산이라 해서 ‘남행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이 높던 크고 작던 간에 어떤 산이든 이름이 없는 산은 보기 힘들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미물을 비롯해 모든 생명들과 교감을 나누고자 했던 것인지 모든 것들에 각자의 고유명사를 부여했다. 특히 산에는 이름만 붙여 준 것만 아니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전설들이 깃들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아차산과 용마산의 경우에도 산 이름에 관한 전설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함께 유적을 품고 있는 귀중한 산이다.
용마산의 전해오는 전설
아차산의 원래이름은 아단산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이곳에 아단성을 쌓았다고 한다. 아단을 아차로 바꾼데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된후 이름을 아단으로 바꾸자 임금의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려는의도에 단과 비슷한모양의 차로 바꾸엇다고 설이있으며, 용마산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지는데, 삼국시대에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이곳에서 장사가 될 재목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걱정하던 부모가 아기를 죽여버렸으며 그뒤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간 데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는 조선시대 산 아래에 말 목장이 많아 용마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아차산성은 일명 아차성 또는 아차산성, 장한성, 광장성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삼국시대의 매우 중요한 요새였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390년에 한강 남쪽에 자리한 백제의 도읍을 함락시킨 이래 신라 무열왕이 675년에 한반도를 통일할 때까지 260여년 동안 이곳 장한성과 강 건너 풍납성을 중심으로 한 넓은 산과 들은 신라, 고구려, 백제 세 나라가 서로 확보하려고 싸움을 벌이던 무대였다. 광진구의 동북 경계를 이루며, 예로부터 중랑천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구려가 전쟁에 대비해 만든 소규모 요새지인 보루 유적이 있다. 197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가 아차산과 용마봉 일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용마돌산공원 등 도시자연공원을 조성하였다.
아기장수전설
옛날에 저기 서울 워커힐옆 아차산 최고봉 우리가 용마봉입니다. 옛날에 거기서 용마가 나왔다고 해요. 이조시대 그 이전 이야기지요. 여기 한강 광나루는 원래 백제 고구려 경계였지요. 백제성이 있을 때인가.
옛날에는 장사가 났다고 하면 다 잡아 죽이던 시절인데, 장사가 났다니까 여기 어디서 난 사람이겠지요.
여기 산밑에 살던 어른이 한번은 아이를 나서 보니까 서랑은 사내아인데, 인제 첫국밥을 해서 먹여놓고 잠깐 나갔다가 오니까, 아이가 갓난 애가 온데간데가 없더란 말입니다. 아이가 어디갔을까 참 이상하다 하고 어머니가 혼자 두런두런하고 방을 둘러보니까는 방안 선반에 어린애가 올라가서, 무슨 수로 올라갔는지 올라가서 놀고 있더란 말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보니까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렸더래요. 그래서 남편을 불러서,
"애가 날아서 선반에 올라갔으니 이거 어쩐다지요?"
그러니 남편이랑 하는 소리가,
"이 애는 우리 집이 망할 징조요, 역적이 나면 죽을 것이니."
그리고 부부가 의논을 한 끝에 죽이자고 결판을 보고, 그 어린 것을 볏섬이라나 멧돌로다가 찍어 눌러서 죽였다는 겁니다.
이렇게 부모가 장사를 찍어 죽이고 나니, 아,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갖고 날라 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애석한 일이지요.
용마산과 아차산은 서울 시내와 한강이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도심 속 작은 휴식처다.
먼저 산 이름에 유래를 살펴보면 이렇다. 아차산의 경우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면 조선시대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을 내 놓고 그 숫자를 맞추어 영험한 능력을 판가름하고자 했다. 그러나 홍계관은 숫자를 맞히지 못했고 명종은 그에게 사형을 명했다.
뒤늦게 궤짝 안에 들어 있던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종은 아차 싶어 사형을 중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사형을 거행했던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 이 산에는 온달에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온다. 온달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은 전설과 함께 실제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온달은 산 끝자락에 걸쳐있는 아차산성(사적 234호)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용마산에 비해 아차산은 오르고 내리기가 쉽다.
용마산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백제와 고구려의 경계였던 용마산 일대에서 장사가 될 재목인 아기가 태어났다. 당시에는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고 한다. 걱정하던 부모는 고심 끝에 아기를 죽여 버렸는데 그 뒤 산봉우리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다른 데로 날아갔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산 아래 말 목장이 많아 용마가 태어나길 기원하는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예로부터 중랑천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삼국시대의 훌륭한 전략적 요충지이었다. 그와 관련된 유적지 중에는 고구려가 전쟁에 대비해 만든 소규모 요새지인 보루 유적이 용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다. 또 온달의 전설과 함께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 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사적 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 기념물 15호),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화사와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암굴 외에 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유적이 많다.
아차산 정상 막바지 지점의 돌계단.
얼마 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되어 귀중한 나라의 재산, 역사적 보물이 한 줌 재가 되어 버린 사건이 있다. 아차산과 용마산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산마다 깊은 역사와 조상들의 숨결, 이야기가 담겨 있는 보물 등을 품고 있다. 단순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행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역사가 담긴 소중한 자연, 보물을 물려주기 위해 아끼는 마음을 담아 산행을 즐기기를 권해본다.
서울 시내와 한강 조망 뛰어나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면목아파트단지 입구가 나온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용마폭포공원이 나오는데 이 공원은 용마산의 일부 암벽을 서울시 도로 등 건설에 필요한 골재 채취장으로 이용하다가 조성된 곳이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용마산의 일부이며 암반 채석으로 생긴 바위절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최대한 이용한 인공폭포가 절경을 이루며 산을 오르기 전에 그 웅장함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인공폭포의 가동기간은 5~9월이라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인공폭포가 조성된 곳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공원 놀이터가 있다. 이곳이 용마산으로 오르는 산 입구 중 하나다. 면목아파트에서 놀이터 반대쪽 사가정역 방면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이 길이 산행의 묘미가 뛰어난 코스로 알려져 있다. 산을 오르는 입구에는 철조망으로 길을 분리해 놓았다. 산길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책로 같이 평평하고 오르기 쉽다. 입구에서 10여분 정도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향하면 산 입구에서 보이던 송림이 드물게 보이면서 큰 바위가 겹겹이 쌓인 암릉 코스가 이어진다. 30분 정도 오르면 서울 시내 특히 광진구 일대를 시원하게 내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아주 훌륭하다. 자주 용마산에 오른다는 어느 노부부는 “이 코스는 암벽을 타고 올라와야 하는 코스라 조금은 어렵고 아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능선을 타고 수월하게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중간 턱에서 5분 동안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평평한 길로 연결되는데 올라오는 길에 볼 수 있었던 인공폭포 꼭대기와 맞닿는다. 인공폭포 위쪽 부근이 이 코스로 용마산을 오르는 중간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폭포 위에 쳐진 철조망을 따라 다시 바위를 타면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길이 이어진다. 곧이어 또다시 나타난 갈림길에서는 오른쪽 길이 좀 더 수월한 길이고, 왼쪽 길은 아찔한 바위를 넘나들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길은 급격히 가팔라진다.
다행히 위험한 구간마다 로프가 설치돼 있고 산길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별다른 이정표 없이도 쉽게 헤매지 않고 길을 찾아 갈 수 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암릉지대와 급한 경사길을 오르면 용마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평일·주말 구분 없이 산 정상에는 등산객 뿐 아니라 인근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에서는 한강줄기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회색빛 도시가 이렇게도 멋있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유적 따라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
용마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아차산 방향으로 나아가면 바로 용마산 체력단련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가거나 노점상에서 파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평평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제3헬기장에 닿는데 이곳에서 바로 제2헬기장으로 길이 이어진다. 제2헬기장을 알리는 이정표에서 왼쪽 길은 망우산, 오른쪽 길은 아차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아차산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면 다시 숲이 우거지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용마산을 오르는 길이 다소 경사가 급하고 암릉지대였다면 아차산으로 가는 길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라 볼 수 있다. 또 용마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을 볼 수 있으며 나무계단이나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용마산 정상 바로 옆에는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작은 요새인 보루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아차산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삼국시대의 유적의 흔적들이 기다리고 있어 여유를 가지며 역사의 의미를 짚어가는 산행도 계획해 볼 수 있다.
제2헬기장에서 능선을 타고 30여분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 긴고랑고개 입구에 도착한다. 긴고랑고개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은 긴 계단이 이어진다. 오던 방향에서 직진하면 아차산 정상에서 아차산 생태공원으로 하산할 수 있다. 돌계단과 나무계단, 로프가 설치된 바위지대를 넘어 20여분 진행하면 아차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상 아차산 정상은 고구려 유적 발굴 작업으로 인해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정상점을 꼭 찍어야 하는 것보다 유적이 잘 발굴되고 보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편이 도리가 아닐까.
용마산을 오르면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에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고 왔는데 아차산 정상 부근에서 보이는 조망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어느 방향이든 시야가 막힘없이 시원하게 뚫려 있고 한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가까이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보루의 흔적을 따라 생태공원 쪽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조망명소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천마산부터 고산, 강동대교와 고덕산, 예빈산, 암사 선사유적지, 검단산, 일자산, 남한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데크 앞쪽으로는 희망 쉼터가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증거로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아차산 생태공원으로 하산하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연리지 나무를 볼 수 있다. 새삼 서울 시내에 이토록 의미 깊고 볼거리가 풍부한 산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꽃이 피고 숲이 울창해 지는 계절에 산행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산이 될 것 같다.
교통
용마산 방면으로 오를 경우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 2번 출구에서 산으로 바로 오르는 방법과 사가정역을 이용할 수 있다. 또 중곡동을 경유하는 542번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용마폭포를 경유하는 버스로는 19번, 555번, 525번, 567번, 205번, 50번 시내버스가 있다. 아차산으로 바로 오를 경우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또는 아차산역을 이용하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아차산생태공원에 9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요금은 750원. 기본 30분이며 10분당 250원씩 추가된다.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 주변 우미내 마을에도 약 1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무료 주차장이 있다.
용마폭포공원
아차산성
삼국시대 한강유역 쟁탈전 당시 중요한 요새였던 아차산성은 1973년 5월 25일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곳으로 면적은 10만 3375㎡이다. 이 산성은 아단성(阿旦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이라고도 하며 아차산 해발고도 200m 산정에서 시작해 동남쪽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 중턱 위쪽을 두른다. 둘레는 약 1000m 이상의 성벽으로 구축되어 있다. 현재는 동쪽·서쪽·남쪽에 성문지(城門址)가 남아 있다.
- 글·사진 조민영 프리랜서 작가 -
서울의 산을 이야기 하면서 내사산을 시작하여 남산(1)과 북악산(2)을 돌아보았고, 인왕산(3)과 낙산(4)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외사산으로 삼각산(북한산)(5)과 도봉산(6)에 이어 관악산(7)을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외사산 좌청룡(左靑龍)인 용마산(8)을 찾아 왔다. 용마산은 우측으로 아차산과 좌측으로 망우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한데 묶어서 산행을 하게 된다. 우백호(右白虎)으로 서쪽에 뚝 떨어져 있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9)을 찾아보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수락산과 불암산, 다음은 청계산을 찾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