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대모산(大母山/293m)과 구룡산(九龍山/ 283m)
1. 명칭과 연혁
대모산과 구룡산의 주능선을 따라 동·서축으로 발달한 산세는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표고 293m의 대모산은 일원동과 내곡동의 경계를 이룬다. 산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의 헌릉이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옛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산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 하였다는 설과, 구룡산 봉우리와 더불어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대모산에서 서쪽으로 솟아있는 구룡산은 표고 283.2m로 개포동과 염곡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옛날 이 산에서 용 아홉마리가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구룡산의 주봉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도 한다. 이는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바위굴이 있어 봉수군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봉수는 청계산 동쪽 천림산으로 이어지는 천천현에 있었던 것으로, 봉수대 위치의 확인은 인릉산과 구룡산 사이에서 실지조사가 필요하다.
대모산은 서울시청에서 동남으로 반경 13km 지점에 위치하여 북쪽은 양재대로, 남쪽과 서쪽은 헌릉로, 동쪽은 밤고개길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듯하다. 내곡동고개를 통하여 인릉산과 청계산으로 산줄기를 잇고 있다. 이렇게 산기슭은 도로교통이 발달하여 있다. 이는 조선시대 이래 한양에서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삼남대로가 산기슭의 서쪽을 지나면서 일찍이 역, 원이 발달하였고, 봉수대가 설치되는 등 그 전통을 계승한 면모라고 할 수 있다.
대모산의 남쪽과 동쪽 기슭은 일찍이 왕릉터로 주목되어 조선 초기에는 태종의 헌릉과 세종의 영릉, 광평대군 묘역, 조선 후기에는 순조의 인릉이 자리잡게 되었다. 세종의 영릉은 예종 원년(1469)에 여주로 이장되었다. 그 자리에 묻혔던 영릉의 신도비 등 석물은 1973∼1974년에 걸쳐 발굴하여, 이를 1974년 4월 세종대왕기념관 내로 옮겼다. 이때 호석 1쌍은 단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남산에서 이전되어 대모산의 국가적 운영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하겠다.
- 좌측 구룡산과 우측 대모산 전경 -
- 대모산 오름 나무계단 길 -
그러나 1963년 서울에 편입된 이래 직업여성재활교육을 위한 행복원이 들어서고, 1970, 1980년대의 강남지역 개발과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건립에 따라 청동기유적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제 대모산은 산기슭과 중턱에 있는 약수터를 찾는 주민들의 운동과 휴식공간으로, 또 청소년 자연학습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 사방 산기슭에는 농장과 농원이 발달되어 있어 서울시민에게 아름다운 화훼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에는 경찰의 교통통신시설로 송수신탑이 세워져 있으며 헬기장이 마련되어 있다.
2. 자연생태
대모산은 태종의 헌릉 신도비에 “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남쪽으로 수천리를 넘어 상주 속리산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북서쪽으로 또 수백리를 달려 과천 청계산에 이르며, 또 꺾여 북동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을 거쳐 한남정맥을 따라 올라와 한강으로 끝나기 직전에 솟아오른 산봉우리임을 말하고 있다. 아울러 대모산은 땅의 신령스런 기운이 멈추어 솟아올라 맑은 기운이 꿈틀거리니, 진정코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간직하여(天作地藏) 능의 길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대모산은 구룡산과 쌍봉을 이루며 양재천과 한강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고, 내곡동 쪽으로 뻗은 부(副) 능선에 의해 세 방향의 단조로운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 산계곡에 흐르는 물줄기는 양재천과 탄천으로 흘러들어 한강으로 합류된다. 대모산과 구룡산은 구릉성 산지로서 그 지질은 주로 선캠브리아기의 경기변성암 복합체에 속하는 호상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이 편마암의 지질시대는 시생대로 대개 8억 내지 29억년 정도로 추정되었다. 대모산과 구룡산의 정상부 일대는 암석이 50% 이상 노출된 암석노출지로 되어 있다.
헌릉과 인릉의 현무(玄武)에 해당하는 능 뒤편에는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소나무숲 뒤쪽으로는 참나무류의 일종인 갈참나무숲이 나타난다. 헌·인릉 일대에는 지금도 수목이 울창한데, 예전에는 숲이 유별나게 우거져 낮에도 어두워 어둔굴이라 불리기도 했다. 대모산과 구룡산 일대에서는 박새를 볼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박새는 높은 산에서 도심의 공원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분포하여 사람들과 친숙한 새이다. 박새는 나뭇잎에 기생하는 유충을 즐겨 먹지만 식물의 열매도 먹어 식물의 분포에 영향을 미친다.
3. 등산로
대모산과 구룡산 주변 일대에 1970년대 이후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산 주변의 많은 시민들이 산을 찾게 되었다. 아울러 강남·서초구청에서 등산로, 약수터, 운동시설, 쉼터 등을 개발하여, 인근 주민이 아침 저녁으로 즐겨 오르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대모산과 구룡산의 등산 들머리는 지하철 3호선의 일원역 또는 수서역에서 하차하여, 강남공업고등학교 우측으로 상록수아파트를 돌거나 궁마을 서쪽 산길로 오르면 된다.
등산은 대모산과 구룡산을 종주한 후 다시 북측 산기슭을 돌아서 일주하여 일원동으로 하산할 수 있으며, 뜻에 따라 자연공원 개발지구 어느 곳으로나 하산할 수 있다. 강남공업고등학교에서 자연학습원 쪽으로 들어서 실로암약수터를 지나서 성지약수터까지 올라가는 길은 통나무 계단길이다. 성지약수터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면 능선길이 정상까지 연결된다. 또 자연학습원에서 불국사를 거쳐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구룡산이 건너다 보인다. 정상에서 구룡산 쪽으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면 중계탑 있는 곳에 우측은 옛약수터길, 좌측은 구룡산길의 갈림길이 있다. 좌측 능선길 고개까지 가면 샘물과 쉼터가 있다. 고개에서 좌측 철조망길을 따라 곧바로 가면 구룡산 정상이다. 구룡산의 정상에 오르면 한강의 큰 흐름과 강남의 신시가지, 강북의 도심과 북한산, 서쪽으로 관악산과 우면산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염곡동 구룡산 제1약수터 쪽이고, 우측은 전망대를 지나서 계단으로 내려서면 양재대로로 나오게 된다. 내곡동 헌·인릉 방면의 들머리는 헌·인릉의 동쪽 철조망을 따라 산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인적이 드물고 통제되기도 하여 일원동이나 개포동, 염곡동, 포이동 등 양재대로와 헌릉로 쪽에서 올라야 한다.
- 대모산과 구룡산 지도 -
4. 실태와 관리
대모산과 구룡산은 서초구와 강남구의 경계를 이루며 1971년 8월 6일 건설부고시 제465호로 미시설 대모산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1986년 5월 20일에 건설부고시 제229호로 변경되어 최종 결정고시 되었다. 현재 강남구 관내 면적은 2,277,252㎡(약 69만평), 서초구 관내 면적은 2,752,006㎡(약 83만 4천평)으로 합계 5,029,258㎡(약 152만 4천평)이다. 대모산공원의 시설물을 살펴보면 강남구에 광장 1개소가 있으며, 등산로는 강남구 지역 6개소 2.3km, 서초구 지역 4개소 2.5km가 있다.
조경시설로 강남구 지역에 파고라 1동이 있으며, 편익시설로는 야영장이 강남구 지역에 1개소, 서초구 지역에 2개소가 있다. 그리고 강남구 지역에 정자 7개소, 야외탁자 11개, 벤치 343개가 있다. 유희시설로 강남구 지역에 유료시설이 하나 있고, 운동시설로 강남구 지역에 간이운동장 5개소, 성인 운동기구 9종 130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편익시설로 강남구 지역에 주차장 1개소가 있으며 옹달샘은 강남구 지역에 15개소, 서초구 지역에 3개소가 있다.
한편 1989년 서울시가 추진한 ?근교 큰산 살리기운동?의 하나로 대모산공원 활용계획이 수립되어 공원시설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 대모산 자연공원은 구룡약수터지구·천의약수터지구·불국사지구·성지약수터지구로 구분 정비되었는데, 이곳은 모두 강남구 지역이었다. 이는 1988년에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분구되었는데, 이미 계획된 지역은 강남구 지역에 해당되었고, 서초구는 아직 도시계획이 미수립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룡약수터지구는 도시계획도로의 개설을 감안하여 도입시설지역과 계획도로 예정부지와의 완충공간을 설정하였다. 도입시설지역은 진입 휴식기능·청소년 활동기능·근원주민 휴식기능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천의약수터지구는 기존의 약수터를 이전하여 휴식기능을 수용할 수 있게 하며, 운동기능을 보완하여 단일기능지역으로 하였다. 또 기존 도로를 정비하여 구룡약수터와 연계하여 확장하였다.
불국사지역은 사찰보호지역·시설지역·완충지역으로 나누고, 시설지역은 근린주민의 휴식공간을 부여하고 기존 등산로를 정비하여 지역내 소로를 순환시켰다. 성지약수터지구는 주차기능·운동기능·휴식기능지역으로 나누고 기존 도로체계를 정비하였다. 아울러 전체 대상지를 순환할 수 있는 자연관찰로 겸 숲길을 개설하였다. 한편 1995년 5월 대룡약수터에서는 오전 6시에 8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북소리에 맞춰 판소리 가락을 뽑아내는 판소리 교실이 열렸다. 대모산은 주민들의 문화생활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5. 사적과 문화재
1) 헌·인릉(獻·仁陵)
- 헌릉, 인릉 -
대모산 남쪽 아래 내곡동 산 13번지 1호에는 헌릉과 인릉이 자리잡고 있다. 헌릉은 조선 제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의 능이다. 헌릉의 서쪽에 있는 인릉은 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의 능이다. 흔히 헌릉과 인릉을 합쳐서 헌·인릉이라고 부르는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헌릉의 자생풍수적 명당론을 보면 북쪽·동쪽·서쪽으로는 대모산·인릉산·구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남쪽으로는 조금 떨어진 목동산(신원동 쪽)이 안산 구실을 한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장풍국(藏風局)의 형세인 것이다.
헌릉은 원경왕후가 세종2년(1420)에, 태종이 1422년에 승하하여 모셔졌는데, 능역 면적 411,014평이다. 능의 상설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릉과 정릉의 제도를 답습하여 만들어졌다. 즉 봉분을 2기로 하되 주위의 난간을 터서 연결시킨 쌍릉제이다. 봉분 하부에는 병풍석을 만들고 면석 중앙에 각 방위별로 12지신상을 조각하였다. 인릉은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만들어진 동원합봉(同原合封) 형식의 능이다.
순조가 1834년에 경희궁에서 승하하자 이듬해 파주 탄현의 인조 장릉(長陵) 경내에 처음 장례를 모셨다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철종 7년(1856) 현위치로 이장하였다. 순원왕후 김씨는 철종 8년(1857)에 승하하여 인릉에 모셔졌다. 내곡동 13번지에는 건평 900평의 헌·인릉 능참봉가(陵參奉家)가 남아 있다. 원래 이 집은 순조를 받들던 능참봉가이며, 태종을 받들던 능참봉 집은 일제 침략 때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2) 광평대군(廣平大君) 묘역
대모산(일명 光秀山) 북동쪽 기슭 수서동 산 10번지 1호에는 광평대군 묘역이 있다. 이는 서울과 근교에 현존하는 왕손의 묘역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까우며, 1981년 2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평대군의 묘소는 처음 광주군 서촌 학당현, 지금의 삼성동 선릉(宣陵) 부근에 있었다. 연산군 원년(1495)에 성종의 능을 그곳에 정하면서 당시 광주군 대왕면이었던 이곳 대모산으로 이장하였다. 광평대군의 사당은 처음에 지금의 성북구 안암동 궁말에 있었는데, 1911년 10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묘역에는 세종의 다섯째 왕자인 광평대군의 사당과 그 내외 묘소, 태조의 일곱째 왕자인 무안대군 방번(芳蕃) 내외 묘소, 광평대군의 아들 영순군 이하 그 후손들의 묘소 700여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신도비, 혼유석, 석등, 석인 등이 규례대로 갖추어져 있는 광평대군의 묘소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묘역에는 광평대군신도비, 무안대군신도비, 영순군신도비, 혜정공신도비, 이현응묘비, 이회묘비 등이 있으며, 특기할 것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세장기비(世葬紀碑)가 있어 가족묘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3) 전통가옥 이병무가(李炳武家)
대모산 북동쪽 기슭 수서동 514번지 8호에 위치한 이병무가는 전주이씨 광평대군파의 종중 소유로 1987년 4월 8일 강남구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의 건립연대는 약 5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개인의 집으로는 최대인 속칭 99칸 집이었으나 임오군란 때 일부가 불타버려 현재는 40칸 정도 남아 있다. 가옥 총 건평 49.1평에 대지는 721평인데, 안채,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의 배치는 남향으로 위치하여 ㄱ자형 안채에 사랑채가 ㄴ자형으로 연결되어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가 동쪽으로 덧달아 나와 있는 평범한 양반집 형태이다.
4) 불국사(佛國寺)
- 대모산 불국사 약사보전 -
불국사는 대모산 북쪽 기슭 강남구 일원동 자연학습원 위에 위치해 있다. 고려 공민왕 2년(1343)에 진정국사(鎭靜國師)가 창건하고 불국사라 했는데, 조선 고종 17년(1880)에 네번째로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곳에 약사전이 있으므로 일찍이 ‘약사절’이라고 불리었다. 진정국사는 고려 개국공신 염달의 후손으로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고 문장에도 능하였다. 만덕산에 들어가 원묘(圓妙)에 의하여 중이 되었고, 백련사(白蓮寺)의 4대 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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