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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우리 팀은 시샤팡마(8,027m)와 로체(8,516m) 2개 봉을 등반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올해 초 티벳 내의 정치적인 환경변화로 중국 정부는 초모랑마(8,848m·에베레스트), 초오유(8,201m), 시샤팡마 등반허가를 불허하여 하는 수 없이 출국 1주일 전 1차 등반지를 시샤팡마에서 마칼루(8,463m)로 변경했다.
우리는 30일 안에 마칼루 등반을 마치고 헬리콥터를 이용해 로체로 이동하여 BC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고락셉 로지에 머물면서 약 10일만에 로체를 등반한다는 계획 아래 준비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부터 마칼루 등반정보는 물론 장비와 식량 등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다른 원정 때보다 더욱 바삐 움직였다.
출국 전 미리 현지대행사와 협의하여 전용 비행기를 임대한 덕분에 상행캐러밴 출발지인 툼링타르(410m)로 모든 원정화물을 수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일 툼링타르에서 도보캐러밴 시작지점인 보테바스(1,730m)까지 지프로 이동했다.
- ▲ 마칼루 북릉 상의 전위봉을 오르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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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 텐트 찢어지고 폴 부러져나가
4월4일 본격적인 캐러밴이 시작되었다. 보테바스에서 75명의 포터들에게 짐을 배분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마칼루를 향한 힘찬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눔(1,560m), 세두와(1,500m), 타시가온(2,100), 콩마(3,760m), 뭄북(3,520m), 타타샤(3,900m)를 거쳐 7일만에 4,800m에 위치한 탕마르 BC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하루를 쉬면서 5,200m까지 고소적응 등반을 한 후 다음날 5,600m 지점의 모레인지대에 위치한 BC로 이동했다. BC에는 영국대가 이미 입성해 있었고, 우리 팀이 두 번째였다.
13일.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거행하고, 이튿날 고용인들을 총동원하여 본격적인 등반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설사면이 시작되는 5,850m 지점의 ABC로 운반했다. 다음날 KNN의 김백수, 임혁규 두 촬영대원은 BC를 떠났다.
이제부터 캠코더 촬영은 내 담당이다. 하지만 감기증세가 악화되어 꼬빡 이틀이나 약을 먹고 텐트에 누워 있어야했다. 다행히 이틀간의 휴식으로 감기는 떨어낼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원들이 기온차로 인한 감기증세와 고소에 순응하지 못하여 며칠간 휴식을 취했다.
- ▲ 수직의 바위벽으로 선 마칼루 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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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차례의 고소적응 등반 후 등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차는 6,600m 지점의 C1까지, 2차는 7,400m의 마칼루라에 위치한 C2까지 진출한 후 BC로 하산하여 휴식을 취한 뒤 C1, C2를 거쳐 7,800m지점에 C3을 설치하고 등정을 시도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ABC에서 6,400m 지점의 중간캠프까지는 우리 팀과 영국대 셰르파들이 합동으로 고정로프를 설치했다. 그런데 영국대원들의 등반수준에 맞게 전 구간에 고정로프를 설치하다보니 C2인 마칼루라까지 설치할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고, 예년에 비해 적설량이 적어 암벽이 노출되어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사전정보에 의하면 7개 팀이 등반허가를 신청하여 당연히 다른 팀도 고정로프를 준비해 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들은 고정로프를 준비해오지 않았고 BC에 입성하지 않은 팀들도 많았다. 결국 고정로프, 아이스 스크류를 영국대에 빌리게 되었고 로체 등반 때문에 우리 팀이 선등하면서 루트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역시 마칼루 등반은 바람이 좌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이 무척 강했다.
- 모든 구간의 고정로프를 우리 팀이 설치해야만 했다. 그리고 워낙 많은 팀이 등반하다 보니 등반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등반대가 고정로프 설치는 물론 등반장비도 제공하지 않았으면서 고정로프 사용승낙도 받지 않고 등반하고 있었다.
고소적응을 위해 C1과 C2를 여러 번 운행하는 사이 역시 마칼루 등반은 바람이 좌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이 무척 강했다. C1에 설치한 텐트 폴이 누워 있는 머리에 닿을 만큼 강풍이 불어댔고, ABC와 C1 사이에 설치한 중간캠프(6,400m)의 텐트 플라이가 바람에 찢어지기도 했으며, C2에 설치한 바람에 강하다는 브랜드의 텐트 폴이 두 개나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다.
C2까지 고소적응 등반을 마친 우리는 국내에서 보내오는 기상정보를 분석해 BC에 입성한 지 15일만에 첫 등정시도 예정일을 4월30일로 정했다. 27일 C1에 진출하여 이튿날 C2로 오르던 중 날씨가 나빠진다는 기상예보로 1차 등정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BC로 내려와 며칠간 달콤한 휴식에 들어갔다.
- ▲ 5,60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와 그 뒤로 마지막 노을이 마칼루를 황금빛 봉우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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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이 보름간 고소적응 등반을 하는 동안 BC에는 15개국의 20여개 팀이 모여들어 텐트를 설치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비좁아졌다. 텐트가 무려 60여 동이 설치되었다.
우리 캠프에는 항상 셰르파를 비롯한 현지고용인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우리 팀은 4년 연달아 히말라야 등반을 했기에 현지인들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었고, 또한 다른 팀의 현지고용인들에게 무료로 위성전화를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어 각 국의 등반대원들이 저마다 오름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등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마칼루라까지 진출한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다른 팀들은 바쁠 것이 없었다. 마칼루 등정 적기는 5월 중순이기 때문에 우리 팀만이 로체 등반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심지어 5월 초에 BC에 입성하여 라마제를 지내는 팀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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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차 1,000m 극복하며 마칼루 정상에 올라서
드디어 등정 예정일이 5월5일로 정해졌다. 영국대 대원 2명과 셰르파 2명이 우리 팀과 같이 등정하기를 희망해 왔다. 우리는 며칠간의 휴식으로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문제였다. 날씨가 등반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일 드디어 BC를 출발, C1으로 향했다. 몇 차례 C1, C2를 오르내린 덕분에 6,000m부터 시작되는 주마링도 숨이 차지 않았고, 6시간만에 C1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계획대로 나와 창호형, 정용형은 C2로 진출하고 향미 누나와 세현은 암벽구간 기점인 7,000m까지만 등반한 후 BC로 하산하기로 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암설 혼합벽을 지나 마칼루라에 올라서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창호형은 향미 누나, 세현과 함께 운행하느라 한참 뒤에 있었는데, 어느새 따라와 정용형과 함께 마칼루라에 도착했다. 운행속도가 우리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다. -
- ▲ 마칼루라(7,400m)에 위치한 C2(7,400m)에서 C3(7,600m)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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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보다 하루 먼저 C2에 진출해 있던 셰르파들은 7,700m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C2로 돌아왔다. 등반 중 처음으로 셰르파들과 한 텐트에서 식사를 했다.
4일. 마지막 캠프인 C3으로 진출하는 날이다. 마칼루라에서부터 전위봉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BC와 무선교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저께 저녁 C1에서 마지막으로 대장님과 교신을 통해 등반루트와 운행시간을 한 번 더 숙지했다. C2에서 설사면을 따라 약 3시간을 올라 7,600m 지점에서 세락지대를 횡단하여 빙설벽 구간 아래 7,800m 지점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하면 7시간 정도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어 날이 밝기 시작하는 새벽 3시경 출발해도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사다 치링에게 분명 7,800m 지점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하라고 했는데 2시간만에 C3에 도착한 것이다. 고도계로 해발 7,600m였다. 셰르파들이 어제 세락지대 횡단구간에 고정로프만 설치하고 다시 돌아와 7,600m 지점에 C3를 설치한 것이었다.
- ▲ 8,400m 프렌치 쿨와르 상부는 바위지대로 이곳을 올라서면 정상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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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으나 텐트를 이동할 수도 없었다. 7,800m부터 정상까지 고정로프가 설치가 되어있지 않았고 하루에 고도를 1,000m나 올려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오후 10시경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번 등반에서 등정하지 못하면 시간상 로체 등반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오를 다졌다.
정오경 영국대 셰르파 1명이 C3으로 내려왔다. 그 날 새벽 C3를 출발하여 대원 1명과 셰르파 1명이 정상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부를 바라보니 10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상능선에 올라서지 못하고 프렌치 쿨와르 초입을 오르고 있었다. 분명 오늘 저녁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했는데, 시즌 초등을 위해 약속을 어기고 무리하게 등반하고 있었다.
BC를 출발할 때부터 대장님이 내린 결정에 따라 창호형은 무산소 등반을 하고 정용형과 나는 산소를 사용했다. 텐트에 편안하게 누워 산소통에다 티바(T-Bar)를 연결하여 정용형, 밍마 셰르파와 3명이 산소마스크를 쓰며 휴식을 취했다.
- ▲ 5월4일 마지막 캠프인 C3(7,600m)에서 밤 10시에 출발, 12시간의 긴 여정 끝에 오전 10시10분경 마칼루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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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고정로프를 따라 정상을 향했다. 바람 한 점 없고 그믐이라 달은 없었지만 별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세락지대를 횡단하다 어제 등정에 성공한 영국팀을 만났다. 무려 24시간이나 운행하여 모두들 탈진한 상태였다. 세락지대를 지나니 더 이상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크레바스에 추락할 위험이 있는 구간과 가파른 빙벽구간에 고정로프를 설치하면서 올랐다.
프렌치 쿨와르 입구에 도착하니 저 멀리 구름 끝자락이 밝아져 오고 있었다. 너무 추워 해가 빨리 비춰주기를 기원하면서 손도 비벼보고 발가락도 계속 꼼지락거려본다. 거의 2시간만에 간신히 프렌치 쿨와르 초입을 찾아 등반을 시작했다.
반쯤 올랐을까? 햇볕이 들어와 고글을 쓰니 산소마스크에서 올라오는 김이 서려 너무 불편했다. 여러 번 고글을 벗었다 쓰는 행동을 반복했지만 불편해서 견딜 수 없어 산소마스크를 벗어버리니 도리어 더 편하게 느껴졌다.
- ▲ 마칼루 베이스캠프를 철수, 로체를 등반하기 위해 3일간의 도보 캐러밴을 시작했다. 이스트콜(6,135m)과 웨스트콜(6,143m), 암푸랍차라(5,845m) 고개를 넘어 쿰부히말의 딩보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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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능선에 올라서니 쾌청하고 바람 한 점 없는 훌륭한 날씨였다. 전위봉 아래에는 구름바다에 몇몇 섬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구름보다 높은 산들 위로 구름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힘든 것도 잊은 채 정신 없이 캠코더에 주위 풍경을 담았다. 전위봉을 넘어 칼날능선 밑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니 정상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상은 한 사람도 못 올라갈 만큼 뾰족했다.
12시간의 긴 여정 끝에 오전 10시10분경 대원 3명, 셰르파 3명 모두 6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우리는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친 후 2005년 푸모리에서 운명을 달리하신 고 정상균, 김도영 선배의 사진이 담긴 수통을 정상에 묻었다. 12시간동안 1,000m 고도를 오르는 힘든 운행이었기에 다들 체력이 소진된 상태라 하산이 걱정이었다. 대원들뿐만 아니라 셰르파들도 마차가지였다. 나는 수통을 묻으면서 두 선배님께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기원했다.
우리 팀이 마칼루 BC를 떠나는 날인 5월8일 김홍빈 선배가 정상에 섰으며, 오은선 선배도 5월13일 정상에 도달하여 한국 여성 초등을 일구어냈다.-
BC 도착 사흘만에 제4위 거봉 등정
로체 등반을 위해 우리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당초 탕마르 BC에서 페리체까지 헬리콥터로 이동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성수기라 헬리콥터 수배가 용의치 않았고 1만 달러를 요구했다. 돈도 중요했지만 날씨가 나쁘면 며칠 기다려야 하므로 걸어서 딩보체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8일 마칼루 BC를 출발하여 마칼루 서벽이 눈앞에 보이는 이스트콜 아래 캠프지(5,600m)에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이스트콜(6,135m)과 웨스트콜(6,143m)을 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안전벨트를 차고 150~300m의 암설벽을 하강해야만 했다.
- ▲ 에베레스트를 뒤로하고 로체 서벽 쿨와르를 통과 설사면을 오른다.
- 둘째 날은 판치포카리(5,450m) 호숫가에서 머물고 다음날 마칼루-바룬 국립공원과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의 경계인 암푸랍차라(5,845m)를 넘어 추쿵을 거쳐 딩보체(4,310m)의 로지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빨래도 하고 오랜만에 머리도 감는 여유를 부리면서 이틀간 로체 등반을 위한 휴식을 취한 뒤 5월13일 하루만에 고락셉(5,180m)으로 이동했다.
에베레스트 BC에는 중국정부가 올림픽 성화 봉송관계로 올해 봄 시즌 티벳쪽 등반을 불허하여 대부분의 등반대가 네팔쪽으로 몰려 50여개 팀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로체 등반을 위한 장비로 고정로프 200m와 스노바 몇 개만 준비했다. 다른 팀이 이미 로체를 등정했기를 기대했지만 네팔정부가 5월10일부터 C2 이상 진출을 허용하여 아직 등정 팀은 없었다. 다행히 한국팀들이 5월17일 등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 ▲ 로체는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다. 모든 짐을 지고 원푸시 스타일(one push-style)로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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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은 큰 등반을 성공적으로 끝낸 상태에서 작은 등반에 너무 욕심을 내면 사고의 위험이 따른다고 하여 로체 등반은 등정여부를 떠나 한 차례만 시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보내온 기상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5월18~19일이 등정일로 최적이었다. 등정시도는 나와 창호형. 정용형, 향미 누나, 세현은 C3까지만 진출하고 하산하기로 결정되었다.
15일 고락셉에서 에베레스트 BC로 이동하여 이튿날 오전 5시경 BC를 출발했다. 한 차례 시도로 등정해야 했으므로 배낭 무게가 20kg이 넘었다. 창호형과 나는 무산소 등반을 하기로 했기에 그나마 배낭이 가벼웠으나 치링 셰르파는 정상등정 때 사용할 산소통 때문에 엄청 무거웠다. 우리는 C1(5,950m)을 거쳐 C2(6,500m)로 진출했다. 운행 도중 많은 셰르파들은 등정 예정일이 다가오자 짐을 운반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베이스캠프 출발 3일만에 로체 정상에 섰다.
- 17일 오전 6시, C2를 출발해 오후 4시경 C4(7,800m)에 도착했다. 10시간의 길고 긴 운행이었다. 우리는 한국팀 텐트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200m 위에 얼음을 깎아내고 힘겹게 텐트 1동을 설치하고 C1에 머물고 있던 정용형에게 자정경 무전기를 통해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로체 등정에 성공한 한국대원들이 한 사람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축하인사를 하고 따뜻한 물을 대접한 후 휴식에 들어갔다.
18일 오전 2시, 마지막 캠프를 출발했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8,000m 거봉 무산소 등반이었기에 너무도 떨렸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고 운행속도도 늦은 편이 아닌 듯했다. 어제 한국팀이 설치해 놓은 고정로프를 따라 쿨와르에 들어섰다. 간간이 바람은 불었지만 날씨는 너무 좋았다.
- ▲ 로체 정상 직전의 서성호 대원과 사다 치링.
- 나는 창호형과 C4 출발 7시간45분만인 오전 9시45분 무산소로 로체 정상에 올랐다. 우리 팀은 2006년 봄 시즌 이탈리아팀이 수립한 기록(BC 도착 후 등정까지 4일 소요)보다 하루 앞당긴 3일만에 정상에 도달하여 로체 최단시간 등정을 이루었다.
우리는 하산하면서 구름 속에 우뚝 솟아있는 푸모리를 바라보곤 했다. 이번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푸모리에서 영원한 삶의 길을 떠난 두 분의 도움이라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오슈의 추모비를 뒤로하고 데보체로 향했다.
- 글 서성수 대원 / 사진 다이나믹 부산 마칼루-로체 원정대 / 월간 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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