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중에서 가야금 연주 감상하며 망중한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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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가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는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고향의 노모처럼 무한히 너그럽다. 백두대간을 달린 건각부터 뒷동산에서 놀던 평범한 등산 애호가까지 우리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차별 없는 길, 바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다.
-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오르고 있는 트레커들. 남봉의 위압적인 절벽이 뒤로 펼쳐졌다.
- <월간山>과 혜초트레킹이 함께 기획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이 11월 27일부터 12월 7일까지 네팔 현지에서 진행됐다. 30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좋은 날씨 속에서 전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이하 ABC)에 오르며 무사히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트레킹에는 국악인 권기정씨가 동행하며 가야금과 단소, 오카리나를 이용한 산중 음악회를 열어 품격을 한층 높였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체험을 가미한 독특한 스타일의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다.
“아이 러브 스위트(I love sweet)”
사슴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트레커들을 보고 달려 나왔다. 유창한 영어와 함께 서슴없이 손을 벌리는 작은 천사들. ‘달콤한 것’을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주머니를 열었다. 하지만 사탕이나 초콜릿 때문에 생긴 아이들의 충치가 골칫거리라는 생각이 떠올라 손이 멈칫했다. 모른 척하기도 곤란하니 진퇴양난에 빠진 꼴이다. 연필이나 볼펜을 챙겨온, 남다른 준비성을 보여준 분들이 부럽다. 여행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모양이다.
- ▲ 데우랄리 패스를 통해 타다파니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
-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네팔 산골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황량한 히말라야의 산야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숲과 물이 있는 안나푸르나는 놀라운 경험이다. 높은 고도까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급경사의 비탈을 계단식으로 일궈 농사를 짓는 그들의 삶은 경이로울 정도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을 넘어서는 고차원적 경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긴 기간 동안 산중을 걷는 여정은 일반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신비로울 정도로 환경에 잘 적응한다. 특히 걷기는 수만 년 동안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어 온 동물적 본능 중 하나다. 트레킹 참가자들 역시 100km가 넘는 산길을 걸으며 스스로 이러한 능력을 증명해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군살이 빠지는 즐거움은 보너스다.
- ▲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볕이 잘 드는 멋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 히말라야에 적응되어 가는 나를 본다!
하루 평균 7시간, 평균 10km의 이동거리는 국내 산행의 기준으로 볼 때 큰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장거리 산행 경험이 전무한 이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운동량이다. 이번 트레킹에 참가한 김미옥씨의 경우, 나야풀(Nayapul)에서 푼힐(Poon Hill) 전망대로 오르는 초반 구간에서 무척 힘에 부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배낭 메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니까 몸이 가뿐해지는 겁니다. 오르막에서 숨이 차기는 했지만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두어 달 동안 거의 매일 대모산에 오르며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실전에 들어가니 근본적인 체력이 달렸던 것이다. 하지만 트레킹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면서 몸이 적응이 되어 수월하게 산행이 가능했다. 이러한 경험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부분이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는 최고 도달 고도가 4,130m로 다른 히말라야 지역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베이스캠프에서 하루만 머물고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정이라 큰 위험은 없는 편이다. 그래도 누구나 고소증세를 느낄 수 있는 고도라 주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비해 주관사인 혜초트레킹은 혈중산소포화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구와 고산병 응급처치 장비인 가모 백(Gamow Mountain Bag) 등을 항상 지참했다. 만약을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 ▲ ABC로 가는 도중 데우랄리 직전에 나타나는 힌쿠 동굴. / 물고기 꼬리 모양의 전형적인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보이는 히말라야 로지에서 포즈를 취한 국악인 권기정씨.
- 이번 트레킹에서도 몇몇 사람이 약간의 고소증세에 시달렸다. 그 가운데 신원철씨가 베이스캠프에서 두통과 오한으로 고산병을 가장 심하게 경험했다. 이번 트레킹을 극기훈련으로 생각했다는 그는 등산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평범한 도시인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알게 됐고, 바쁜 일상을 탈출해 히말라야에 도전장을 던졌다.
“베이스에 도착하니까. 갑자기 추워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하룻밤을 보내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까 금방 좋아졌습니다. 좋은 경험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저에게 신경을 써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겪었던 고산증의 고통은 안나푸르나의 추억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약간의 어려움들이 좋은 기억들을 빛나게 하는 조미료 역할을 하기도 한다. 힘들여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찾은 히말라야에서 얻는 가치는 이렇게 여러 가지 얼굴로 다가오는 법이다.
- ▲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고 있는 안나푸르나 남벽. / 포카라의 페와호수에서 본 안나푸르나 산군. 물에 비친 히말라야의 설경이 장관이다.
- 7년을 벼른 끝에 찾은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가 이번 트레킹팀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깊은 계곡을 타고 이틀을 걸어 오른 고라파니(Gorapani)는 짙은 구름에 잠겨 있었다. 습한 기운이 넘나드는 고갯마루의 로지(lodge) 마당에서 달빛에 비친 안나푸르나 산군을 감상하는 재미 또한 남달랐다. 하지만 역시 이곳의 백미는 푼힐 전망대에 올라 감상하는 일출이다.
새벽을 헤치고 오른 푼힐 전망대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트레커로 북적거렸다. 우리도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대했다. 이 짧은 순간을 기대하며 많은 이들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이곳을 찾은 것이다. 창원의 강미정씨는 안나푸르나를 찾기 위해 7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셋째 아이를 낳고 후유증이 심해서 산후조리원에 누워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안나푸르나가 나오는 거예요. 새하얀 눈이 덮인 히말라야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때 반드시 저곳에 가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주부이면서 직장 생활을 겸하고 있는 강씨에게 열흘이 넘는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법. 아이들과 시부모님에게는 연수를 간다고 말했고, 직장에는 한턱 크게 내는 것으로 긴 휴가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로 했단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기 마련이다.
- ▲ (위)타다파니에서 달빛에 비친 안나푸르나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사람들. (아래)별이 빛나는 데우랄리의 밤. 안개가 수시로 계곡을 타고 들락거렸다. / 사진 강권신
- 푼힐 전망대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안나푸르나 산군이 정면으로 보이는 널찍한 언덕은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훌륭한 조망처였다. 그 한가운데 커다란 전망대를 세워 높은 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전망대에서 보는 일출은 당연히 감동적이다. 이곳에 오르면 히말라야 트레킹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다.
해가 뜨는 곳은 산이 낮은 동쪽이지만, 이곳에서 즐기는 일출의 묘미는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아름다운 봉우리를 보는 맛에 있다. 북동쪽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안나푸르나 산군의 실루엣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푼힐의 일출은 안나푸르나 남봉(7,219m)에서 히운출리(6,434m)와 마차푸차레(6,997m)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선이 어둠을 가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해가 떠오르면 서서히 이들 산봉의 윤곽이 선명해지며 모습을 드러낸다. 푼힐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보이는 큰 산줄기는 세계 7위 봉인 다울라기리(8,167m) 산군이다. 이 굉장한 남벽에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지면 산자락 전체가 붉게 타오르면서 일출이 절정에 이른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만큼 장관이다. 푼힐의 경험은 분명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안나푸르나 남벽의 ‘불 쇼’를 보셨나요?
- ▲ ABC에서 본 안나푸르나 3봉과 간다르바 출리의 석양.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고산등반대의 캠프인 동시에, 안나푸르나를 찾는 트레커들의 최종 목적지다. 로지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안나푸르나 남봉과 주봉, 히운출리, 타르프출리 등의 고봉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속의 아지트다. 고산을 체험하는 장소로 생각해도 좋지만 이곳에서 아침 나절에 보는 붉게 타오르는 안나푸르나 남벽의 절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푼힐 전망대에서 베이스캠프로 이어지는 트레킹은 데우랄리 패스(Deurail Pass)를 통해 타다파니(Tadapani)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이후 촘롱(Chhomrong)과 시누와(Sinuwa)를 거쳐 밤부(Bamboo), 도반(Dobhan), 데우랄리(Deurail)를 경유해 ABC로 오르게 된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며 육중한 히말라야의 허리길을 돌아가는 이 4일 동안의 여정은 인내가 필요했다. 오르내림이 심해 체력적인 부담도 컸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히말라야의 모습은 피곤함을 잊게 했다.
베이스캠프의 로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마당에 모여 일출을 감상했다. 마침 트레킹팀이 ABC에 도착한 날이 보름이었다. 남봉에 걸려 있던 둥근 달이 산 너머로 사라지자 곧이어 ‘불쇼’가 시작됐다. 해발 8,000m가 넘는 고봉의 끄트머리부터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너무도 강렬했다. 희박한 공기에 숨이 차고 손발이 저릴 정도로 추웠지만 가슴은 따뜻했다. 히말라야를 찾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감동일 것이다.
백두대간과 9정맥 완주를 코앞에 두고 안나푸르나를 찾은 인천의 김순영씨는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산중에서 묵는 마지막 밤에 열린 파티에서 그녀는 함께했던 가이드들과 춤을 추며 기쁨을 나눴다. 그녀는 그토록 기대했던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 너무도 기뻤다고 말했다.
- ▲ 1.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 멀리서 마차푸차레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2. 촘롱 가는 도중에 들른 로지의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한 속초의 김재익씨. 3. 푼힐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한 트레킹 참가자들.
- “이 시간,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겁니다.”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 모두가 그녀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도록 협조해준 좋은 날씨도 고마웠고, 여행 내내 맛있는 한식으로 입맛을 돋웠던 노련한 주방팀의 음식 솜씨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여러 모로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이었다.
트레킹 Guide
푼힐과 ABC 모두 둘러보는 핵심 루트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여러 코스가 있다. 산군을 한 바퀴 도는 라운드 트레킹이 있는가 하면, 푼힐 전망대만 오르는 속성 코스도 있다. 이번 행사는 푼힐 전망대와 베이스캠프를 연결한 루트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핵심적인 경관을 모두 볼 수 있는 일정으로 총 11일이 걸렸다. 산중에서 머무는 날은 9일로 매일 평균 10km를 약간 넘게 걸었다.
일정은 크게 푼힐을 가는 것과 베이스캠프를 가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푼힐을 가기 위해서는 나야풀(Naypul)에서 출발해 비레탄티(Birethanti)에서 강을 건넌 뒤 왼쪽 계곡을 통해 고라파니(Gorapani)로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푼힐 전망대까지는 약 50분 거리로 새벽에 출발해 전망대에서 일출을 맞게 된다.
- 푼힐 전망대는 바람을 피할 곳이 없는 지형이라 오르기 전에 보온과 방풍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강풍이 불면 엄청나게 춥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침낭을 뒤집어쓰고 일출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본 뒤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려면 고라파니에서 데우랄리 패스(Deurail Pass)를 통해 타다파니(Tadapani)로 넘어가서 다시 1박을 한다. 이후 큰 마을인 촘롱(Chhomrong)을 경유해 시누와(Sinuwa)에서 하루를 머물고, 밤부(Bamboo)와 도반(Dobhan)을 거쳐 다시 데우랄리에서 또다시 하룻밤을 묵는다. 그런 다음 날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경유해 ABC로 오르게 된다.
베이스캠프에서 하산은 이틀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 트레킹의 하산 일정은 첫날은 밤부에서, 두 번째 날은 노천온천이 있는 지누단다(Jhinudanda)에서 머무는 것으로 짰다. 지누단다의 온천은 내려가는 데 20분, 올라오는 데 40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물도 풍부하고 수온도 적당히 따뜻해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지누단다에서 트레킹 종료지점인 나야풀까지는 다시 하루 거리다.
이번에 진행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귀족이 부럽지 않은 여행이었다. 산중 숙박시설인 로지의 환경은 허름했지만 참가자들이 받은 대접만큼은 일류였다. 아침에 짐만 꾸리면 다음 로지까지 포터들이 자동으로 배달해줬고, 때만 되면 정확하게 끼니를 챙겨주는 주방팀의 조직력도 대단했다. 대열의 선두와 후미, 중간을 적절히 조절하던 가이드 시스템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참가자들은 그냥 마음 편히 걷기만 하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주는 것이다.
물론 편한 것이 꼭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 여유를 내기 어려운 바쁜 현대인들에게 패키지 트레킹 상품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시간과 준비만으로 자신이 원하던 곳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즐기는 산상 음악회는 특별 보너스였다. - - 문의 혜초트레킹 02-6263-2000, wwwtrekking.co.kr. -
- 글·사진 김기환 월간 산 기자 / 월간 산 2010, 1월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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