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발자취

-* 우리는 산 친구 [1] *-

paxlee 2010. 1. 28. 21:40

 

                                [우리는 산친구] 김창호·김미곤·서성호

 
히말라야 설산에서 맺어진 끈끈한 우정(友情)

아무리 뛰어난 산악인이라 할지라도 히말라야 설산에 오르려면 죽음의 지대를 넘나드는 위험한 순간을 몇 차례씩 겪곤 한다. 거대한 빙탑이 무너지거나 낙석이 퍼붓고, 크레바스에 빠지는가 하면 설벽이나 암벽 같은 곳에서 추락하기도 한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때 목숨을 걸고 도와주는 게 바로 山친구, 자일파트너다.


김창호(金昌浩·41·서울시립대 OB·몽벨 자문역)와 김미곤(金未坤·37·서강정보대 OB·버그하우스)은 그렇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숨막히는 상황을 여러 차례 이겨낸 山친구다. 2004년 낙석이 총알처럼 빗발치는 로체(8,516m) 남벽을 함께 등반하고, 2005년 낭가파르밧(8,125m) 루팔~디아미르 횡단등반에서는 낙석에 맞아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은 김미곤을 김창호는 동료 대원들과 함께 표고차 4,000m 높이의 절벽에서 안전지대로 끌어내렸다. 뿐만 아니라 2006년 가셔브룸2봉(8,035m)과 1봉(8,068m) 등반, 2007년 에베레스트(8,848m)·로체 연속등반을 두 사람은 함께해냈고, 올 여름에는 세계 최장의 설릉 낭가파르밧 마제노 능선 종주등반을 함께할 계획이다.


12월 중순, 북한산 인수봉 서면벽 아래 안부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다. 고양시 일원의 평야를 관통한 거센 북풍이었다.


▲ “우리는 해낼 겁니다. 호랑이해엔 더욱 높이 뛰어오를 겁니다.” 김미곤·김창호·서성호(왼쪽부터) 세 산우가 인수봉 비둘기길에서 호랑이해를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니, 창호형. 얼음 하자는 거 아니었어요? 피켈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했지만. 난 형한테 이렇게 늘 당한다니까.” “미곤아, 내가 전화했잖아? 바위 한단 얘긴 안 했나?”


김창호와 김미곤, 그리고 김창호와 파트너를 이뤄 여러 차례 히말라야 고봉을 오른 서성호(徐成晧·28·부경대 OB) 역시 투박한 빙벽화를 신고 도선사주차장에서 예까지 올라왔다. 배낭 안에서 나온 장비는 달랐다. 안전벨트와 퀵드로에 확보장비까지는 같았지만 무엇보다 암벽화는 김창호·서성호 두 사람만 가지고 왔다.


“알았다, 알았어.” 김창호는 “두꺼운 양말 한 켤레 신으면 맞을 거야”라며 배낭에서 꺼낸 265mm 암벽화를 건네주고, 김미곤은 신발을 받으며 “이래서 또 당한다니까” 라며 한숨을 푹 내쉰다.


“그래도 슬랩은 광주 바위꾼이 잘하는 거 아냐?”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장비를 착용한 뒤 김미곤이 오르는 바윗길은 전형적인 크랙 루트인 비둘기길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바위가 손가락에 닿는 순간 얼어붙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는지 김미곤은 짤막한 바위 턱을 넘고 완경사 슬랩을 오르는 데도 순간순간 멈칫거렸다. 그러다 겨울 비둘기길에 익숙해졌는지 평상심을 되찾고 덧장바위 크랙을 타고 세련된 동작을 보이며 첫 피치를 끊었다.


낭가파르밧 4,000m 절벽에서 생사 함께한 사이


김창호와 김미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말. 2003 로체 남벽 신루트 영호남합동대 훈련에서였다. 창호는 미곤을 보는 순간 어깨가 쩍 벌어진 게 쉽게 대할 수 없는 친구다 싶었다고 한다. 미곤이 창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4년 선배이고 파키스탄 히말라야 탐사를 많이 한 산악인이라는 정도였다.

▲ 북풍이 몰아치는 인수봉을 등반하면서도 세 사람은 모일 때마다 웃음꽃을 피웠다.

첫 모임 때부터 저녁이면 원정대장이자 훈련대장 격인 50대 중반 선배들은 “내일 특별한 것 없으니까 실컷 마셔” 하며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권했고, 그러다 동이 트면 “놀면 뭐 하냐, 뛰는 게 낫지”하며 20km 달리기에 앞장섰다. 그렇게 술 아니면 운동에 전념하느라 이듬해 2003년 봄 로체 남벽 원정에 나서기 전까지 서로 속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


둘이 가까워진 것은 원정에 나선 뒤 베이스캠프에서 같은 텐트를 사용하고 파트너를 이루어 등반하면서였다. 당시 로체 남벽에서는 한 번도 맞지 않은 대원이 없을 정도로 낙석이 소낙비처럼 퍼부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험악한 자연환경에서 파트너를 이뤄 등반하다 보니 다른 대원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앞장서 올라갔는데 창호 형이 광주에선 확보하는 것 안 배웠냐 하시는 거예요. 확보할 시간이면 더 올라가는 게 낫겠다 싶어 빨리 등반한 건데 말이에요.”


“아니, 미곤이가 로프를 끌고 올라가기는 하는데 중간 확보가 거의 없는 거예요. 확보하느라 시간 끌고 확보지점 때문에 로프를 사용하느니 그냥 밀어붙이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그랬던 거죠. 하지만 밑에서 확보를 보는 저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어요. 떨어지면 받아낼 재간이 없잖아요. 고정로프 길이 200m를 모두 쓴 다음에 떨어지면 400m 추락인데 말이에요.”


1998년 알프스 3대 북벽 원정으로 해외 고산 등반을 시작한 미곤은 당시 이미 초오유와 마칼루를 무산소 등정한 고산등반가였으나 2002년 시샤팡마를 등반할 때까지 함께 등반한 산악인이 워낙 쟁쟁하다 보니 빛을 보지 못하고 속도도 늦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미곤이 등반 속도가 늦다고 들어왔는데 아니었어요. 미곤이가 참가한 원정대 대장이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중에 내려서야 했던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로체 남벽 등반은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낙석 때문에 매우 위험했다. 때문에 대장은 등정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대원들을 안전하게 귀국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컸고 그로 인해 대원들은 마음껏 등반할 수 없었다.


▲ “확보 잘 봐.” 홀로 중등산화를 신은 김창호씨가 슬랩에서 자세가 잘 나오지 않자 후배들에게 “잘 봐 달라”며 엄살을 떨고 있다.

“대장은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있었어요. 그래서 루트 개척조인 창호 형, 강연룡과 함께 대장 몰래 등반에 나서곤 했어요. 박상수 대장은 귀신 같았어요.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무전 연락이 오는 거예요. 위험한 행동하지 말고 캠프로 내려오라고 말이에요.”


두 사람은 이태 뒤인 2005년 여름 낭가파르밧(8,125m) 원정도 함께 나섰다. 1970년 독일원정대의 세계적인 고산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와 동생 귄터 메스너의 초등 이후 재등된 바 없는 루팔벽 중앙 립 직등 루트로 정상에 오른 다음 반대편인 디아미르벽으로 하산하는 횡단 등반이었다. 그 등반에서 베이스캠프에서 같은 텐트를 쓰면서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 위기는 김미곤에게 왔다.


6월 26일 0시부터 김미곤은 루팔벽의 절벽 협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난하던 등반이 해가 뜨면서 달라졌다. 오전 10시45분 해발 7,550m 지점을 지날 즈음 머리 위쪽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지다가 벽에 부딪쳐 깨지더니 수많은 돌멩이가 비 오듯 퍼부었다.


“끝장이다 생각하는 순간 의식을 잃었어요. 잠시 후 깨어났을 때는 오른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낙석을 맞아 쇠골이 부러지고, 3중화가 깨져나가면서 발등 뼈도 부러진 상태였고요. 동료 대원들이 멀쩡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죠. 베이스캠프의 대장은 사고 소식을 연락받았지만 2차 사고가 우려돼 대원들에게 구조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 김창호씨가 인수봉 정상 바위를 오르려 하자 김미곤씨는 추락시 받쳐줄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 루트 개척에 나섰던 이현조·주우평 대원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오른팔을 흔들리지 않도록 슬링으로 몸에 묶어주고, 자일을 안전벨트에 연결해 미곤을 내려가도록 살살 풀어주었다. 하지만 하켄 하나에 걸린 자일에 대원 4명이 매달려 미곤을 후송하는 상황이다 보니 하켄이 뽑히는 순간 3명 모두 1,000여m 아래 빙하로 떨어지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타 들어갔다.

김미곤을 비롯한 세 대원이 김창호와 김주형·구형준 대원을 만난 것은 제3캠프에서였다. 캠프 하나 차이로 운행하던 김창호 일행은 김미곤 일행을 만나자 함께 도우며 천길 낭떠러지 길을 따라 베이스캠프를 향해 조심스럽게 미곤을 옮겼다. 김미곤은 이렇게 돌이킨다.


“사고지점에서 베이스캠프에 이르기까지 표고차 4,000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절벽을 몸을 못 가누는 저를 데리고 내려서는 거였어요. 한 명 실수하는 날이면 6명 전원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 상황이었죠. 충격을 받지 않고 보온도 되게 하려고 매트리스로 몸을 감싸놔 오줌도 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물 마시는 것도 삼가야 했어요. 주형이 형은 저를 조심스럽게 내리기 위해 100만 원 하는 우모복이 다 터져 나갔어요. 창호 형도 참 고마웠어요. 제가 힘들어할 때면 앉은 상태에서 무릎 위에 저를 앉혀놓는 거였어요. 발아래가 1,000여m 낭떠러진데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베이스캠프 직전 풀밭에 도착하니까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다들 가만히 있는데 유독 창호 형이 야크 똥을 제 콧구멍에 턱 얹어놓지 뭐예요.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미곤아, 이게 생명의 냄새다’ 하는 거예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까 더 가관이었어요. 대원들끼리 ‘이제 우린 살았다’며 하이파이브를 하지 뭐예요. 저는 풀밭에 팽개쳐놓은 상태에서 말이에요.(웃음)”


죽음의 지대에서 겪은 사고로 잃은 山열정 일깨워줘


“2피치는 성호가 해라. 크랙엔 자신 있잖아?”


첫 피치 확보지점에서 세 사람 모두 옛 기억을 떠올리며 수다를 떨다가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자 “빨리 끝내고 우이동으로 내려가 한잔 하자”며 등반을 서둘렀다. 부산 산악계를 대표하는 고산등반가인 서성호는 제2피치 볼트 트래버스 구간에서 마음대로 등반이 되지 않는지 다음 볼트를 잡기 위해 팔을 몇 차례 뻗다가 어렵사리 네 번째 볼트를 잡은 다음 피치 종료지점에 올라섰다.


2006년 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오른 서성호는 2007년 삶에 충실하기 위해 직장 생활에 전념하다가 山열정이 되살아난 2008년 부산 마칼루-로체 원정 때 김창호와 동행했다.


“저야 뭐 창호 형 따라 다닌 거죠.”


서성호의 겸손함에 김창호는 “6,000m든 8,000m급이든, 짐이 많든 적든 속도가 똑같은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고산등반은 어떤 등반보다 속도와 체력이 맞지 않으면 파트너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속도가 비슷하기에 2008년 마칼루 등반 후 도보로 셰르파니패스와 암푸랍차패스를 넘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도착 3박4일이라는 세계 최단 시간 기록을 세우며 세계 제4위 고봉을 등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히말라야에서보다 한라산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어요. 정말 떼죽음 당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2009년 2월 초 부산산악연맹 마칼루-로체 원정대는 한라산 장구목에서 설벽등반 훈련을 펼쳤다. 그런데 장구벽 설벽에 3분의 2쯤 올라설 때 머리를 쭈뼛 서게 하는 굉음과 함께 판상눈사태가 덮쳐왔다. 그는 이렇게 돌이킨다.


“13명 중 11명이 눈에 파묻혔어요. 눈사태를 맞고 튕겨나간 류향미 선배와 저만 멀쩡했어요. 황당했죠.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손이든 발이든 튀어나온 것이 보이면 파냈어요. 홍보성 대장님은 거의 막판에 찾아냈어요. 대강 짐작한 지점에서 운 좋게 발견된 거죠. 신현한 대원은 끝장난 줄 알았어요. 마지막에 눈속에서 끌어냈는데 숨을 쉬지 않는 거예요. 30초쯤 지났을까, 푸 하면서 숨을 쉬더군요. 1초만 더 숨을 쉬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 인수봉 정상으로 오르는 사이 북한산 침봉들이 세 산악인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기라도 하려는 듯 불쑥불쑥 솟구쳐 올랐다.

 

신현한 대원은 지난 가을 김재수 대장 팀의 촬영담당으로 안나푸르나 원정에 나섰다가 눈사태 후폭풍을 맞고 넘어지면서 다리 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ABC에서 C1으로 향하다 사고를 목격한 김창호가 급히 달려가 신 대원을 업어 내려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김창호는 서성호가 고산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희망을 준 선배이기도 하다. 서성호는 2005년 봄 에베레스트 기슭의 푸모리(7,165m)에서 큰 사고를 겪었다. 4월 4일 오후 1시 서성호는 푸모리 정상에 올라섰다. 그가 오른 첫 번째 흰산이었기에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산길에서 선배 두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정말 황당했어요. 100여m 추락 후 크레바스에 빠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싶었던 향미 누나가 멀쩡히 살아 내려왔는데, 상상조차 못했던 선배 두 명이 어둠 속 하산길에서 한 명 한 명 사라져 버린 거예요. 폭설에 갇혀 C2에 묶여 있다 하산길에 두 선배를 같은 자리에서 발견했어요. 추락하는 순간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김도영 선배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해요.”


서성호는 이후 한동안 산과 인연을 끊고 지냈다. 방에 드러누워 불을 꺼도  차가운 눈밭 위에 드러누워 있던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슬픔을 차츰 잊게 해주었고, 또다시 고산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달궈주었다. 이후 2006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사회생활에 열중하기 위해 또다시 등반을 멈췄으나 2008년 마칼루-로체 원정을 통해 고산 등반의 열정을 다시금 일깨워준 사람이 김창호였다. 김창호는 서성호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정말 좋은 후배예요. 함께 등반하면 말이 필요 없어요. 서로 알아서 처리하니까요.”

서성호는 “매사에 침착하고 치밀한 창호 형이 든든한 버팀목 같다”고 표현하고 김창호는 “성호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후배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해준다”며 칭찬했다.


“형은 내 코에 소똥 넣었지. 조심혀. 낙상엔 똥물이 최고래”


제2피치 트래버스 등반을 끝내자 세 사람은 쏜살같이 제3피치를 끝낸 뒤 인수봉 정상에 올라섰다.


“저게 백운대 맞죠? 와~, 사람 정말 많네요. 전 한 번도 못 올라가 봤어요.”


백운대 정상을 빼곡히 채운 등산인들의 모습에 눈이 커다래진 서성호가 “대학시절 처음 인수봉에 찾았을 때 대슬랩을 뛰듯 올라가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하자 김미곤은 “내가 처음 인수봉에 왔을 때는 평범한 등산화 차림의 두 사람이 로프도 없이 우리가 올라온 길로 올라와 깜짝 놀라게 했다”며 맞장구쳤다.


▲ “다음엔 어딜 갈까?” “낭가파르밧 마제노 능선을 함께 간다면 인류 최초의 완등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부산산악연맹 원정대 대원으로서 여러 차례 고산등반을 펼쳐온 김창호와 서성호는 올 봄 캉첸중가(8,586m) 등반에 나서고, 김미곤은 한국도로공사 원정대원으로 마나슬루를 등반한다. 국내 산악인 가운데 마나슬루를 가장 최근에 등반한 이가 김창호와 서성호이기 때문에 김미곤은 두 사람을 통해 얻어야 할 정보가 많다. 김미곤은 회사 사정이 허락한다면 김창호가 추진하고 있는 히말라야 최장 능선 낭가파르밧 마제노 능선 종주등반대에 참가할 생각이다.


“저와 성호는 등반을 한 적이 없지만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창호 형과 셋이 함께 갈 수 있다면 가장 좋은 팀이 될 거라 믿어요. 더 이상 좋은 파트너가 없을 테니까요.”
김창호가 인수봉 정상에 얹혀 있는 최정상 바위로 크랙을 잡아당기며 오르려 하자 두 후배는 김창호가 혹시 떨어지면 받아주기 위해 바짝 다가섰다. 엉덩이를 받쳐줄 듯 말 듯한 자세를 취한 김미곤의 입가에 장난기가 맴돌았다.


“형, 낭가파르밧에서 내 코에 소똥 넣었었지? 낙상 치료에 똥물이 좋다는 거 알아? 조심혀.”

 

김창호

몽벨 자문위원
서울시립대산악회 회원
한국대학산악연맹 이사
히말라야-카라코람 연구소장


1993년 파키스탄 그레이트 트랑고타워 완등
1996년 가셔브룸4봉(7,925m) 동벽 신루트 등반
2000년 힌두쿠시 단독탐사
2001년 카라코람 멀티4 피크 원정
2001~2002년 카라코람·힌두쿠시 산맥·빙하 단독탐사
2003년 딜리상사르 등 6,000m급 4개 봉 세계 초등정
2007년 칠레 파이네 중앙봉 윌란스-보닝턴루트 한국 초등
2008년 바투라(7,762m) 세계 초등정
8,000m급 9개 고봉 무산소 등정


김미곤

한국도로공사 산악팀(수원지사 근무)
버그하우스 후원 전문산악인
서강정보대 OB


1998년 알프스 3대 북벽 등반
1998년  마나슬루 등반
1999년  로체 남벽 등반
2000년 마나슬루 등반, 초오유 등정
2001년  초오유 등정
2002년  시샤팡마 등반
2004년 로체 남벽 등반
2005년 낭가파르밧 루팔벽~디아미르벽 횡단등반
2006년 가셔브룸2봉 등정·1봉 등반
2007년 로체-에베레스트 등정
2008년 가셔브룸1봉-2봉 등반
2009년 다울라기리 등정, 안나푸르나 단독등반


서성호 / 부경대 OB

2004년 매킨리(6,194m) 등반
2005년 푸모리  (7,165m) 등정
2006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
2008년 마칼루-로체 등정
2009년 마나슬루-다울라기리 등정, 안나푸르나 등반

- 글 한필석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 / 월간 山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