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계(市界)종주 7구간 ] 서울 남서·남동쪽 하천·산 두루 섭렵
- 하천 따라 10여㎞, 산길로 20㎞…발원지 우물·유물 확인하며 걸어
- 서울의 역사는 산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한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한강 쟁탈전을 벌였으며, 한반도 통일 이후에는 서민 삶의 애환이 서린 현장이기도 하다.
- ▲ 서울시계종주팀이 연주대가 보이는 서울과 과천의 경계 관악산 주능선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서울에는 모두 35개의 하천이 있으며, 이 가운데 국가하천은 한강과 안양천·중랑천 등 3개다. 청계천은 지방1급 하천이다. 서울시의 국가하천 가운데 중랑천과 안양천은 모두 한강으로 합류한다. 따라서 이들 하천은 한강의 제1지류이기도 하다. 한강을 기준으로 제1지류는, 즉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은 홍제천·봉원천·중랑천·안양천·반포천·탄천·성내천·고덕천 등 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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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지류로 흘러 들어가는 제2지류는 불광천·청계천·도봉천·방학천·당현천·우이천·묵동천·면목천·전농천·시흥천·도림천·개화천·사당천·양재천·세곡천 등 15개다. 이어 제2지류로 합류하는 제3지류는 녹번천·정릉천·성북천·가오천·화계천·대동천·봉천천·대방천·오류천·여의천 등 10개며, 제4지류로는 월곡천 1개가 있다.
이들 하천 중에는 이미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곳도 많다. 반포천·사당천·방학천 등은 하천 부지가 복개돼 주차장이나 도로로 이용되고 있어 그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다. 하천은 전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도봉산·남산·관악산·수락산·불암산·청계산 등지에서 발원, 한강으로 흘러들어 서울의 자연조건들을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과 기능들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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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기능을 상실하고 복개되어 하수구 역할로 전락한 하천도 있으나 환경단체의 ‘하천살리기’ 일환으로 되살아난 안양천·양재천 등은 예전의 건강한 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계 7·8구간은 유난히 많은 하천을 지난다. 7구간은 역곡천부터 시작해서 목감천을 거쳐 안양천에서 끝나고, 8구간은 하천 발원지인 관악산 자락의 호암산으로 바로 들어가서 양재천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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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과 하천의 발원지인 산을 따라서 서울시 경계를 밟아보았다. 이번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인산악회와 54트레킹동호회에서 동행했다. 서울시계종주가 등산객들 사이에서 화제로 오르내리자 각종 산악회에서 뒤따라오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있다. 바로 뒤에 쫓아오고 있는 25시산악회 총무가 정확한 코스를 확인하기 위해 7구간에서 합류했고, 8구간에서는 25시산악회원 10여 명이 대거 함께했다.
- ▲ 국가사적 제343호인 ‘한우물’과 주변 산성지. 호암산 한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며, 삼성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 [ 7구간 ]
온수역~역곡천~천황(굴봉)산~천왕역~개웅산~목감천~개명교~개봉1자연방류수문~안양천~금천구청역~석수역 20.7㎞
이번 구간은 하천에서 시작해서 하천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수역에서 오전 9시 어김없이 모였다. 7호선 온수역 2번 출구 바로 앞이다. 성공회대학교와 유한공고 사잇길로 해서 역곡천으로 접어들었다. 이 역곡천이 바로 서울시와 경기도 부천의 경계 지점이다. 역곡천도 제법 크고 길어서 지류에 속할 만도 하지만, 제4지류에도 포함되지 않은 하천이다.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조금 흐르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구릉지 산, 불분명한 이름 많아
서울시계는 이 하천을 따라 계속 나가야 하지만 지겨운 길이라 약 200m쯤 가다 밭이 있는 산자락으로 올랐다. 옛 문헌에는 이 산이 항동과 천왕동의 경계를 이루는 굴봉산, 또는 건지산으로 나오지만 주민들은 천황산의 한 봉우리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굴봉산은 145.6m, 143m, 105m의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동 경계를 이룬다.
- ▲ 하늘을 찌르는 창을 세워 놓은 듯한 관악산 정상 연주대의 장엄한 모습. 그 위에 연주암이 있다.
- 산자락 정상에는 행정구역이 ‘부천시 소사구’라고 알리는 삼각점이 있다. 등산로 중간에 쉼터도 있다. 구릉지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허허들판이 나온다. 미나리밭을 지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폐철로를 지나쳤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이 철로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하루에 한 번 정도 소형 화차(貨車)가 화물을 수송한다”고 대답했다.
매화마을 아파트단지에 들어섰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매화가 환하게 맞았다. 마침 매화가 필 무렵 이 아파트를 지나쳐서 그나마 더 인상에 남았다. 매화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것 같았다. 아파트를 지나자마자 왕복 2차선 도로가 나오면서 양쪽으로 ‘어서오십시오, 부천시입니다’와 ‘여기는 서울 구로구 항동입니다’라는 이정표가 마주 보고 있다. 시계를 제대로 찾고 있었다.
다시 산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면서 부천과 서울과 광명의 세 경계를 알리는 삼각점도 나왔다. 삼각점은 ‘광명’으로 적혀 있다. 실제로 이 봉우리가 해발 152m로 정상이지만 구로구에서는 다음 봉우리를 천황산 정상이라고 표시해 놓았다. 다음 봉우리는 144m밖에 안 됐다. 아마 제일 높은 봉우리는 행정기관이 세 군데나 겹쳐 관리 주체가 애매해서 아무 표시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구로구에서 아예 다음 봉우리를 정상으로 표시하면서 이정표와 전망대를 설치해놓은 듯싶었다. 서울시 지정 조망명소인 전망대에선 여의도와 북한산 인수봉도 희미하게 보였다.
이 산은 등산객들 사이에 천황산·천왕산·굴봉산·건지산 등으로 이름이 다양했다. 어느 명
칭이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1971년 8월 6일 건설부 고시 제465호’엔 “천왕동과 항동에 걸쳐 있는 굴봉산은 오류동 산25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53필지 587,860㎡를 대상으로 도시계획에 의해 도시자연공원인 천왕공원(天旺公園)으로 지정됐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 굴봉산이라 부르는 게 정확하지 싶다.
정상 이정표는 ‘←700m 항동, 천왕역 900m→’라고 가리키고 있다. 천왕역 방면으로 계속 직진이다. 끝 지점은 한창 공사 중이다. 아파트 공사와 터널공사·도로공사를 병행하고 있어 어지러웠다. 길도 없어졌다. 겨우 단지 중앙으로 빠져나와 천왕역을 찾았다.
천왕역 3번 출구 방향으로 나와 다시 산자락으로 올랐다. 굴봉산 동북쪽으로 해발 125m인 개웅산(開雄山)은 그 능선을 따라 오류동과 개봉동의 경계를 이룬다. 개웅마을의 지형이 움푹 들어간 관계로 난리 때마다 총탄이 개웃개웃 피해가서 개웅마을이라고 불렸고, 산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개웅산 근린공원이 조성돼 등산로도 잘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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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관악산 정상 비석에서 시계종주팀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우)관악산에서 내려와 남태령로를 건너면 바로 남태령 옛길 비석이 나오며, 이 길로 우면산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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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천은 시흥 목감동 630고지에서 발원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웅산과 굴봉산 등으로 둘러싸인 오류골은 현재의 오류동 외에 천왕동·궁동·온수동·항동 일대를 전부 포괄했다. 이곳의 명물은 참외였다고 한다. 오류골 참외는 조선시대 궁중의 진상품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개웅산 정상은 해발 130m에 불과한 구릉산지다. 정상엔 정자가 있어 주변조망을 가능하게 했다. 목감천이 흐르는 한진아파트 방향이 시계와 일치한다. 그쪽으로 하산이다.
목감천(牧甘川)은 안양천의 제1지류로서 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 위치한 630고지 계곡에서 발원해 안양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상류지역은 경기도 시흥시와 광명시를 경계로 북쪽으로 흐르다가 서울시 경계에 이르러 광명시 철산동과 구로구 구로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안양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목감천 발원지 부근에 조선시대 목암사(牧岩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며, 사찰 경내에 감나무의 개량품종인 단감나무가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목암사의 목(牧)자와 감나무의 감(甘)자를 따서 목감리라고 불렀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하천도 목감천이라고 부른 것으로 전한다.
광명교 아래 목감천으로 접어들었다. 목감천을 따라 무려 3㎞ 가량을 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곧 다가올 안양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목감천 좌우로 별로 볼 것도 없다. 그냥 흐르는 하천을 보거나 땅을 보며 걸을 뿐이다. 한마디로 무미건조한 길이다.
이어 개명교를 지나고 개봉1자연방류수문을 지나쳐 한강 제1지류인 안양천으로 내려갔
다. 한때 이곳도 난지도와 마찬가지로 오염과 악취로 악명이 높았던 하천인데, 지금은 시민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자전거도로와 좌우로 야생화·조팝나무·개나리 등을 가로수로 심어 지겹지 않게 조성했다.
- 안양천은 한강 지류 가운데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하천이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계곡에서 발원한 안양천은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백운산에서 발원한 왕곡천, 수리산에서 발원한 수암천, 삼성산에서 발원한 삼성천 등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안양천 유역은 상류로부터 경기도의 의왕·군포·안양·부천·광명시 등 5개 지자체를 거쳐 흘러 내려오며, 서울로 들어서는 금천·관악·동작·영등포·구로·강서·양천 등 7개 구를 지나가는 큰 물줄기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편에는 “대천(大川)이 현의 서쪽 4리에 있으며, 과천현의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의 철곶포(鐵串浦)로 흘러 들어간다”고 해 큰 하천이란 의미의 대천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과천현편에서는 “현의 남쪽 14리에 인덕원천이 있고, 현의 서쪽 19리에 학고개천(鶴古介川)이 있다”고 하여 안양천의 상류를 ‘인덕원천’, 중류를 ‘학고개천’으로 각기 명칭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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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지도서> 과천현편에서는 “안양천이 현의 서쪽 20리에 있는데, 사근천(沙斤川)과 인덕원천(仁德院川)이 금천에서 합류해 흘러간다”고 기록돼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기탄(岐灘)’으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안양천은 ‘대천’ ‘학고개천’ ‘기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름만큼 긴 안양천을 따라 계속 걸었다. 안양천은 총 길이가 3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목감천 합류 지점에서 시작해 석수역까지 총 8㎞ 남짓을 하천과 주변을 보며 걸었다. 그날 종주는 그걸로 끝이었다. 거의 하천에서 시작해서 하천으로 끝난 7구간이었다. 하천으로 걸으니 유독 더 길게 느껴져 무지하게 걸은 느낌이었다.
- - 글 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 정정현 부장 / 월간 산에서 -